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71
◈ 171. [Side Story] 파트너
그렇게 하마터면 로맨틱한 분위기로 발전할 뻔했지만.
역시 내 인생에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댄스 연습을 시작하고 10분도 되지 않아서, 내가 세레나데의 발을 네 차례나 밟아 버린 탓이었다.
“우……우윽…….”
처음에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던 세레나데였지만, 발등이 네 번쯤 밟히자 결국 쪼그려 앉아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미, 미안. 많이 아프니?
“혹시 일부러 이러시는 건가요, 낭군님……?”
세레나데는 빨개진 눈가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소녀가 싫으셔서 괴롭히시는 건 아니죠……?”
“정말 아냐. 그런 악취미는 없어.”
춤 가르쳐 달라 해놓고 발을 연속으로 밟아서 괴롭힌다? 창의적이긴 한데 너무 복잡한 괴롭힘이잖아.
세레나데의 빨개진 발등을 내려다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뱉었다.
“정말 미안한데. 나 몸치인가 봐.”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면서 움직인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약혼녀 발을 이렇게 자근자근 밟을 줄은 몰랐다만.
“약혼식 날이 생각나네요. 벌써 10년 전 일인데.”
내 부축을 받아 일어난 세레나데가 중얼거렸다.
“돌이켜보면, 그때도 춤은 참 못 추셨지요.”
“그때도 네 발을 밟았던가?”
“발만 밟으셨나요? 제 치마에 발이 걸리셔서 우리 둘이 나란히 넘어졌잖아요.”
세레나데는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아프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아득하게 중얼거린 세레나데는 발을 몇 번 털고는,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아픔도 가셨고! 이번에는 처음부터 잘 가르쳐드릴게요!”
세레나데는 내게 반걸음 다가왔다.
“자, 다시. 손부터.”
내 왼손과 세레나데의 오른손이 마주 쥐어지고.
그녀는 자신의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더니, 자신의 왼쪽 겨드랑이 아래를 짚도록 유도했다.
“여기에 올려 주세요. 네, 이렇게.”
그리고 세레나데의 왼손은 내 어깨 위에 올라왔다.
이것이 대표적인 사교댄스인 왈츠의 기본자세.
거의 숨결이 닿을 만큼 몸이 가깝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서로의 심장 소리도 들릴 것 같다.
“……읏.”
나와 시선이 마주친 세레나데는 다급히 눈을 내리깔더니, 숨을 가다듬었다.
“이제 스텝을 밟아 볼게요. 낭군님께서 익숙해지실 때까지는, 제가 리드할게요.”
나는 세레나데가 리드하는 대로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세레나데의 발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자아, 몸에 힘 푸시고. 긴장 마시고 천천히. 왼발 앞으로. 오른발 옆으로. 모으고, 좋아요. 오른발 뒤로, 왼발 옆으로, 모으고. 잘 하고 계세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하나, 둘, 셋. 좋아요. 하나, 둘, 셋. 바로 그거예요.”
긴장이 풀리고 몸이 예열되어서인지, 그 뒤로는 더 이상 세레나데의 발을 밟지 않고 춤을 연습할 수 있었다.
세레나데 역시 긴장이 풀렸는지 한결 편안한 얼굴로 미소해 보였다.
“금방 익히시는걸요, 낭군님!”
“…….”
“조금만 더 연습하시면, 공식석상에서도 아무런 문제없으실 거예요.”
처음 보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미소를 나는 가만히 마주보았다.
세레나데는 오래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금세 또 눈을 내리깔았다. 뺨이 붉다.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나는 천천히 목소리를 냈다.
“세레나데.”
“네, 낭군님.”
“너희 가문은 곧 멸문 당한다.”
온화하던 공기가 얼어붙었다.
내 느닷없는 말에 세레나데의 어깨가 굳었다. 삐끗거리며 스텝이 멈췄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보던 세레나데가 더듬거렸다.
“……네?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세레나데. 너희 가문은 곧 멸문 당한다.”
나는 흘깃 창문 쪽을 보았다. 이 강당에서 우리가 춤추는 모습이 건물 밖에서도 보일 것이다.
“계속 춤춰. 우리를 감시하는 눈이 있을 테니까.”
나는 그동안 배운 대로 왈츠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세레나데는 얼떨떨해하며 내 움직임을 따라왔다.
“춤을 배운다는 건 핑계였어. 이걸 네게 말해 주려고 찾아온 거다.”
이게 본래 목적이니까 나 같은 숙맥이 이성에게 춤 가르쳐 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거지. 뭐, 그야 춤도 배워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만.
세레나데의 귓가에 대고 나는 내가 들은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황제는 오래 전부터 윈터실버 상단을 쓰고 버리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도로정비사업만 끝나면 나와 세레나데 사이의 약혼이 파기되고, 황실이 윈터실버 상단을 집어삼키리라는 것. 그리고 이제 그 때가 되었다는 것까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세레나데에게 나는 물었다.
“전조를 느끼지 못했나?”
“그야, 낭군님께서 저를 냉대하신 지난 수년간…… 혹시 파혼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세레나데는 덜덜 떨리는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설마 저희 가문 자체를 짓밟을 생각인 줄은, 꿈에도…….”
황실은 윈터실버 상단을 고스란히 집어삼킬 생각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인 윈터실버 가문을 얌전히 내버려둘 리가 없지. 멸문지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세레나데. 내가 이곳에 왔다. 너희 가문과 너희 상단을 지키기 위해서.”
게임에서 윈터실버 상단은 크로스로드와 일절 거래를 해 주지 않는다.
아마도 윈터실버 상단이 황실에 집어삼켜진 뒤, 제국 내의 다른 일에 동원되기 때문이겠지.
변경의 전선 따위와는 얽힐 건수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둘 것 같으냐.’
윈터실버 가문을 존속시켜서 크로스로드의 든든한 후원자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공략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애쉬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애쉬의 첫사랑이자 약혼녀인 이 아가씨를 구하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겠지.
“며칠 안으로 나는 아바마마와 형님들을 만나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수호자 회의.
그 자리에서 황제와 황자들을 만나 그들이 속에 담아 둔 진의를 파악할 수 있을 터.
그리고 그 진의를 파악하면, 윈터실버를 살릴 대책도 명확하게 세울 수 있겠지.
“그에 앞서 우리끼리도 대비를 해야 한다.”
나는 떨리는 세레나데의 은빛 두 눈을 들여다 보았다.
“말해 줘, 세레나데.”
“네?”
“너희 상단이 취급하는 상품은 무엇이지?”
어떻게 해야 풍전등화 같은 이 작은 상인 가문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그 상품 중에…… ‘정보’는 있나?”
세레나데의 눈이 커졌다. 나는 계속했다.
“그 어떤 상품보다도 비싸고 치명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고급 품목이 바로 정보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 상단은 실물 상품만 거래해 온지라…….”
“그럼 이참에 새 항목을 신설하도록.”
나는 천천히 세레나데의 손을 놓고, 그녀에게서 몸을 떼어 냈다.
“앞으로 파티 당일까지, 매일 네게 춤을 배우러 오겠다.”
“…….”
“이 일주일 동안, 너는 상품으로서 ‘정보’를 사고 팔 수 있도록, 상단 전체를 재정비하도록 해.”
말이 거창하지 별 것 없다.
빠르고 안전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고, 전국도로사업에 개입해 온 윈터실버 상단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터.
춤이 끝난 뒤에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예를 표해야 한다. 나와 세레나데는 서로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낭군님.”
“나도 즐거웠어, 세레나데.”
이렇게 오늘의 댄스 강의가 끝났다.
몸을 붙이고 있을 때에는 괜찮았는데, 떨어지고 거리가 생기자 괜히 멋쩍어졌다.
나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네. 슬슬 가 볼게.”
“……낭군님.”
뒤돌아선 내 등에 대고, 세레나데가 더듬거리며 내뱉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를, 그리고 저희 상단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
“저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 주시니 기쁘긴 하지만, 마음이 바뀌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유가 필요한가?”
나는 빙긋 웃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결혼을 약조한 사이잖아.”
“소녀를…….”
세레나데는 눈을 내리깔고 숨을 몰아쉬었다.
“천한 상인 가문 출신인 소녀를, 싫어하지 않으시나요?”
“그런 적 없어. 한 번도.”
크로스로드 입장에서는 언제나 거래하고 싶은 상대였지.
애쉬 입장에서는…… 뭐, 첫사랑이었다고 하잖아.
나는 그런 달콤쌉쌀한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와서, 어떤 느낌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싫어할 이유가 없다.
좋은 파트너가 되었으면 할 뿐이다. 사업적 측면으로도, 사교댄스 측면으로도.
“내일 또 올게.”
세레나데는 입술을 깨물고 복잡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그녀의 발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발등에 연고 발라 두고.”
***
이후 나는 매일 세레나데에게 찾아가 사교댄스와 파티 매너를 배웠다.
감시하는 시선이 곳곳에서 느껴지긴 했지만, 페르난데스는 그 뒤로 딱히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
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3일 뒤. 아침.
며칠 연속 춤을 췄더니 뻐근한 저질 체력 몸을 끌고 별궁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어쩐지 별궁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들썩이는 것이 느껴졌다.
오가는 하인들의 얼굴에 들뜬 기색이 선명했다.
“오늘 무슨 일 있나? 아직 승전 축제까지는 며칠 남지 않았어?”
내 식사 시중을 드는 알베르토에게 묻자, 알베르토는 인자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새벽에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오늘 라르크 황자 전하께서 개선하신다고 합니다.”
“……!”
1황자 라르크가 서부전선에서 돌아온 것이다.
“황도 서문에서 개선 퍼레이드가 준비 중입니다. 시민들이 기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내 찻잔에 차를 따른 알베르토가 바깥으로 눈짓했다.
“어떻게, 전하께서도 형님을 맞으러 가시겠습니까?”
“당연하지!”
동방예의지국 출신인 이 몸이 당연히! 먼 길 돌아오신 형님 마중하러 가야지. 얼굴도 봐두고 싶고.
그렇게 알베르토와 함께 황도 서문 쪽으로 마차를 타고 나갔다.
출입이 통제된 서방 대로를 따라 환호성이 연달아 울리는 걸 보니 벌써 개선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나 보다.
대로 주위에는 이미 사람들이 득시글거려서, 알베르토는 내 마차를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웠다.
대로를 따라 줄줄이 배치된 병사들이 개선 퍼레이드 행렬이 다가올 때마다 한 명씩 복창했다.
“황제 폐하의 첫째 아드님이자 제국군 총사령관, 라르크 ‘아발란체’ 에버블랙 전하의 개선이십니다!”
와아아아-!
대로 좌우로 몰려든 시민들이 환호성과 함께 꽃을 뿌렸다. 공항에서 귀국한 아이돌을 맞는 팬들 느낌인걸.
그 쏟아지는 꽃다발과 환호성과 갈채 사이로- 1황자 라르크가 말을 몰고 개선하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3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실용적인 디자인의 칙칙한 금속 갑옷을 차려입었는데, 등 뒤로 나부끼는 흰 망토는 화려했다.
뒤로 깨끗하게 빗어 넘긴 새카만 머리칼에는 검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두꺼운 눈썹 아래에 깊게 들어간 두 눈 또한 검푸른 빛깔이었다.
저 남자가 제국 전체의 군권통솔자이자, 서부전선 사령관. 그리고 무패의 기사.
“라르크…….”
와아아아……!
온 시민들의 축복과 갈채 속에서도 라르크는 무표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개선 퍼레이드인데 한 번쯤 웃어 줘도 좋으련만, 무뚝뚝한 시선을 앞으로 향한 채 가만히 말을 몰았다.
“형님 뭐,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대? 표정이 왜 저래.”
내 질문에 알베르토가 쓰게 웃었다.
“평생 저러셨지 않습니까. 표정 변화가 드무신 분이니까요.”
아, 그런 성격인가. 하긴 태어났을 때부터 저 대리석 조각상 같은 얼굴 그대로 굳어 있었을 느낌이긴 하다.
그때였다. 개선하던 라르크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좌우를 살피더니, 이쪽을 홱 보았다. 음?
그의 검푸른 두 눈과 내 두 눈이 분명히 마주쳤다. 어……?
타앗!
그대로 라르크는 말을 몰아 대로변을 메운 시민들을 훌쩍 뛰어넘었다.
시민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그는 내 마차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뭐, 뭐야?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