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96
◈ 196. [자유탐사] 경고
“꽤 오랜만에 보는걸, 무명.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노발대발하는 켈리베이를 어찌어찌 진정시키고.
나는 괜히 친한 척을 하며 무명에게 다가갔다.
‘이 친구, 던전 안에서 온갖 템을 다 팔아 주는 던전상인 NPC잖아!’
지난번에는 자그마치 SSR등급 장비를 두 개나 거저 줬다. 엄청나게 좋은 녀석이라고 내심 판단하고 있다.
잘 엉겨 붙으면 또 콩고물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내 안부인사에 무명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곳 호수왕국에서의 일상은 항상 똑같지. 괴물을 죽이고, 등불을 밝히고, 그리고…… 기도하고.”
산발한 백발과 후드에 가려 표정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입가가 쓴 웃음을 짓고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장비를 수리하러 온 참이다.”
“장비?”
“내 검.”
무명은 켈리베이의 대장간 쪽을 손짓했다.
“이곳에서 내 검을 고칠 수 있는 이는 켈리베이 정도뿐이니까.”
그쪽을 보자, 부루퉁한 표정으로 켈리베이가 낡은 검을 두들기고 있었다.
무명이 항상 등에 짊어지고 다니던 그 낡아빠진 장검이었다.
깡-! 깡-!
망치가 칼날에 떨어질 때마다 눈부시게 환한 빛이 새어나왔다. 뭔가 마법적인 공정을 거치는 모양이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 가지 충고를 해 주지. 애쉬.”
수리중인 검에서 눈을 돌려 나를 마주본 무명이 느릿하게 내뱉었다.
“악몽 군단장 중 일부가 너를 노리고 있다.”
“악몽 군단장?”
“이곳 호수왕국이 괴수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인 것은 알고 있겠지.”
그야 당연하지. 온 사방이 괴물밭이잖아. 놈들이 여기 바닥을 꽉 채우고 넘쳐나면 크로스로드로 쳐들어오는 거고.
“호수왕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괴수들이 있다. 그리고 각 괴수 군단마다 우두머리- 군단장이라 불리는 개체가 존재하지.”
무명은 흘깃 베이스캠프 저편으로 이어진 길을 보았다.
길 저편은 캄캄한 어둠으로 뒤덮여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그 괴수 군단 중 가장 강력한 상위 세력 10개 군단. 서열 10위까지의 군단장을 ‘악몽 군단장’이라 부른다.”
제일 센 보스 열 마리를 말하는 거로군.
나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 친구들이 나를 노린다 이거지? 그런데 괴물이 인간 노리는 거야 당연한 일 아냐?”
“그렇지.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애쉬, 놈들은 ‘너’를 특정해서 죽이려 하고 있다.”
무명은 저쪽에 선 내 파티원들을 살폈다.
“너와 네 동료들은 벌써 악몽 군단장 중 둘을 해치웠다. 놈들이 너희를 경계하기 시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
“올롭은 그렇다 쳐도, 셀렌디온까지 쓰러뜨린 시점에서, 너는 괴수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게 된 거다.”
요컨대 괴물 새끼들이 내 머리 위에 표식 찍었다 이거지. ‘Wanted : Dead or Alive’ 뭐 이렇게 현상수배도 발행됐고.
“호수왕국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놈들은 더 수월하게 네 흔적을 찾아내고, 추적자들을 보낼 것이다. 최악의 경우 군단장이 직접 너를 죽이려 나타날 수도 있다.”
나는 콧방귀를 뀌며 팔짱을 꼈다.
“어차피 밖에서 죽여야 할 놈들인데, 미리 만나서 싸우는 것도 괜찮지 않아?”
“이곳은 놈들의 본진이다.”
무명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괴수들은 호수왕국 바깥에서는 각자의 능력에 여러 제약을 받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어떤 제약도 없이 온전한 힘을 낼 수 있다.”
……방어 스테이지에서 보스로 등장하면 스탯 역보정 받아서 잡을 만하지만, 던전에서 만나면 그딴 거 없단 말이렷다?
“나는 너와 네 동료들의 잠재력을 고평가하고 있다, 애쉬. 무엇보다,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장하다.”
무명은 온화하지만 엄정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하지만 현재 네 파티의 수준으로는, 이곳의 어둠 속에서 악몽 군단장과 맞닥뜨리면…… 목숨을 보장하기 힘들 거다.”
“…….”
문득, 이곳 던전의 ‘패자의 길’에서 셀렌디온과 마주쳤을 때가 떠올랐다.
확실히 우리 파티는 그때 셀렌디온에게 전멸당할 뻔했다.
놈이 스스로 죽고 싶어 하는 별종이라 우리를 살려 보내 주었지만, 다음에는 그런 요행은 없을 것이다.
또 다시 던전에서 군단장과 마주치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그리고 스테이지 역보정이 없는 군단장들은 진짜 악몽 같은 힘을 발휘할 것이다.
“앞으로의 탐사는 더욱 험난해질 거다.”
그야 그렇겠지. 던전 심도 6부터는 오죽하면 별명이 마계(魔界)다. 던전 하나하나가 뭐같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 군단장의 동태도 신경 써야 하다니…….
뭔놈의 난이도가 햄버거 사이에 내용물 추가하듯 끝도 없이 올라가고 있다. 패티에 양상추에 치즈에 소스에…….
아주 이러다 배 터지겠어!
무명이 물끄러미 나를 응시했다.
“네가 이곳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물러선다 해도 비웃지 않겠다. 여기까지 온 이들만 해도 거의 없었거든.”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나는 씩 웃어 보였다.
“길이 보이는 한, 나는 절대로 공략을 포기하지 않아.”
어렵고 끔찍하지만. 활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까 걷는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그뿐인 일이다.
“…….”
무명도 흐릿하게 마주 웃어 주었다.
“네 말이 진실하기를, 그리고 너와 네 동료들의 앞길에 무운이 함께하기를 빌지.”
그때 저쪽에서 켈리베이가 꽥 소리쳤다.
“무명! 수리 끝났어, 가져가!”
무명은 그쪽으로 가서 검을 받아 들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장검을 등에 찼다.
“좋군. 항상 고맙다, 켈리베이.”
무명이 값을 지불하려 했지만 켈리베이는 손을 휘저어 거절했다. 무명은 작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애쉬.”
성큼성큼 걸어 베이스캠프 저편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춰선 무명이 말했다.
“오늘은 이 앞으로 가지 마라.”
오늘부터 다음 던전의 공략을 재개할 생각이었던 나는 눈을 깜빡였다.
“어? 왜?”
“조금…… 청소를 해 둘 셈이거든. 오늘은 이쪽으로 안 오는 게 나을 거야. 그럼.”
무명은 흐릿하게 미소해 보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멀어진 그녀의 발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다.
“…….”
그쪽을 물끄러미 보던 나는 켈리베이를 돌아보고 물었다.
“저 사람, 정체가 대체 뭐예요?”
“엉? 그것도 모르고 친하게 지내는 거야?”
정체야 모르지만, 길 알려주고 아이템 뿌려 주고 조언도 해 주고 그러니까.
약간 게임 고인물이 뉴비한테 쩔해 주는 느낌이라 감사하게 받고 있는 것뿐인데.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이름부터가 무명(無名)이잖아.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도 저래서 얼굴도 모르겠고. 출신도 성분도 전부 다 베일에 감싸여 있지.”
켈리베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항상 괴물들을 죽이고 있고, 안전거점에 불을 밝히고 다니지. 내가 여기 처음 오기 한참 전부터 그 일을 해 왔다더라고.”
직후 켈리베이는 아! 소리를 내더니 덧붙였다.
“그런데 저번에 한 번, 다른 호수왕국 생존자가 저 여자를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있어.”
“뭐라고 불렀는데요?”
“뭐라더라…… 폐위왕녀, 라고 했던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폐위왕녀?
설마, 이곳 호수왕국의 왕녀라는 뜻인가?
‘어라…… 잠깐만.’
나는 불현듯 의 최종 스테이지를 떠올렸다.
742회차. 지옥 난이도 철인 모드.
최후의 던전 ‘호수왕국 왕성’에서, 육성했던 모든 캐릭터들이 죽어 나가는 가운데, 홀로 살아남은 루카스가 최종보스에게 마지막 공격을 날리던 장면이 눈에 선했다.
그런데 그 최종보스의 이름이, 분명히…….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
나는 퍼뜩 무명이 사라진 길을 바라보았다. 어둠은 잠잠하고, 사라진 무명의 뒷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설마, 아니겠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켈리베이가 손바닥으로 내 등을 짝 쳤다. 아야! 왜 때려요!
“이건 내 머리 놀린 벌이고, 그리고 이건!”
짝!
한 대 더 가볍게 친 켈리베이가 기다란 지팡이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장비 제작 맡겨 놓고 안 찾으러 와서 내가 계속 다듬게 한 벌이다.”
고급스럽게 제련된 지팡이였는데, 머리 끝 부분에는 피처럼 붉은 보석이 박혀 있다. 척 봐도 무진장 좋아 보인다.
내가 입을 벌리고 우와- 같은 소리만 내뱉고 있자, 켈리베이는 괜히 심술을 부리며 지팡이를 내 품에 안겼다.
“아, 노인네 팔 아프게 하지 말고! 후딱 가져가!”
셀렌디온의 마력핵으로 만든 마법 지팡이.
나는 스탯을 살폈다. 사기템 떴냐-?!
[로드 오브 크림슨(SSR) Lv.55]– 분류 : 마법 지팡이
– 공격력 : 149-151
– 내구도 : 10/10
– 지력+15 마력+15
– 적을 죽일 때마다 정수를 흡수해 최대 10개까지 저장합니다.
– 저장한 정수를 소모해 HP 또는 MP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정수당 10퍼센트)
– 정수 10개를 한 번에 소모하면 임의의 혈마법을 한 번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이 무기로 처치한 적 숫자에 따라 개방)
– ??? (이 무기로 처치한 적 숫자에 따라 개방)
기본 깡뎀부터 준수하고 스탯 보너스도 두툼하게 잘 붙었다. 아주 좋은 장비다.
게다가 흡혈귀 군주의 마력핵으로 만든 무기답게, 적을 죽이면 정수를 흡수해서 자원으로 사용하는 옵션이 붙었다.
‘상황에 따라 유동적 대처가 가능하네, 이것도 활용에 따라 사기겠군…….’
쓸 수 있는 혈마법이 어떤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쥬니어라면 잘 써먹어 주겠지.
문제가 있다면 [블랙 퀸]처럼 이 장비도 나이트메어 슬레이어인지라, 킬카운트에 따라 개방되는 ‘???’ 옵션이 붙었다는 점인데.
나는 데미안 쪽을 슬며시 살폈다. 데미안은 등에 짊어진 [블랙 퀸]의 어둠에 스멀스멀 파묻혀 있다.
나와 데미안의 눈이 마주쳤다. 데미안은 잠시 망설이더니, 내게 씩 웃어 보였다.
“크큭…….”
“…….”
우리 순진하던 데미안의 빵긋 웃음이 저 허세 가득 중2병 미소로 변해 버린 것 좀 봐. 이게 다 저 무기 때문이라고.
‘정말 저걸 제대로 극복하고 자신의 힘으로 삼을 수 있을까……?’
쥬니어도 이 무기 킬카운트가 많이 차오르면 사용을 멈춰 두든가 해야겠다.
어쨌든 당장이라도 극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 주긴 줘야겠지.
나는 쥬니어를 불러다 지팡이를 건넸다.
쥬니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지팡이를 받아 들었다. 어린 마법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이건…… 정말 엄청난 장비인데요, 전하? 이 마력량은 대체…… 살면서 이런 건 처음 봐요.”
“너라면 알아보겠지만, 그 셀렌디온의 마력핵으로 만든 장비야.”
쥬니어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지팡이를 쥔 두 손이 꽉 쥐어졌다.
“이렇게 귀한 걸 제게……?”
“강력하지만 위험한 장비야. 조심해서 다루도록 해.”
요근래 시금치에 토마토만 씹으며 맛이 살짝 가 있던 쥬니어였지만, 이 지팡이 앞에서는 오랜만에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쥬니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가치를 이렇게까지 인정해 주신 분은 전하가 처음이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전하께서 후회하지 않으시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아니, 분골쇄신은 그만 하고.”
안 그래도 몸도 안 좋은 게 뭔 분골(粉骨)이고 쇄신(碎身)이야. 그러지 마. 그 지팡이로 HP 회복이나 계속 하면서 뒤에서 좀 편하게 딜 넣으렴.
그 외에도 나는 켈리베이에게 새로운 장비 제작 의뢰를 넣었다.
스테이지5에서 얻은 흡혈귀 장군 마력핵 두 개로 만들 장비였다. 역시 SSR등급이라 강력한 장비가 나올 것이다.
이렇게 얼추 장비도 찾았고, 베이스캠프에서 해야 할 일은 대충 정리가 됐다.
“으음.”
나는 무명이 사라진 어둠 쪽- 다음 심도의 던전 쪽을 보다가 이윽고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예전에 클리어한 던전이 있는 방향이었다.
무명의 충고는 들을 거지만 이대로 돌아가기는 뭐하고, 예전에 클리어한 던전을 가볍게 돌면서 정찰 정도만 할 생각이었다.
다음 방어전에 쳐들어올 몬스터 군단이 어떤 놈들인지는 알아야 할 테니.
진작 준비를 끝낸 메인 파티원들에게 나는 소리쳐 물었다.
“자, 그럼 다들 오랜만에…… 몸 좀 풀어 볼까?”
루카스와 에반젤린, 데미안과 쥬니어가 일제히 횃불과 랜턴을 치켜들었다.
그리하여 예전에 깬 3구역 던전에 진입. 던전룸 초입에 들어서며 나는 외쳤다.
“이번 시즌의 몬스터는 뭘까~요?”
그러자,
철벅! 철벅!
무언가…… 꿀렁꿀렁거리는…… 젤리 같은 형태의 괴물들이 던전 입구부터 우리를 향해 굴러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기겁해서 꽥 내뱉었다.
“아니, 이건 또 뭐야 씨바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