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16
◈ 216. [STAGE 9] 요르문간드
공격대 파티 3개 15인.
우리는 해 뜨기 전 새벽부터 준비를 마치고 [호숫가 나루터]로 텔레포트.
검은 호수를 내려다보는 지점에서 요르문간드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으랏~차차차!”
내 옆에서는 켈리베이가 호수를 내려다보며, 짧은 팔다리를 욥욥 펴는 체조를 하고 있다.
그…… 이런 말하기 뭐한데 체조 자세가 진짜로 영감님 같아요. 그만두십쇼.
“뭠마, 너도 옆에 와서 따라해 봐! 맨날 그렇게 구부정하게 있으면 나이 먹고 후회한다?”
“뭔 아빠 같은 잔소리를…… 아니, 잡아끌지 마세요!”
그래서 반쯤 강제로 켈리베이에게 끌려와 나도 호수를 내려다보며 체조를 하게 되었다. 이런 젠장…… 읏차차.
“호수왕국 밖으로 나오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구먼!”
체조를 끝낸 켈리베이가 몸의 앞뒤로 박수를 짝짝 치며 말했다.
“저 안에 있으면 시간의 흐름에 무뎌진단 말이지.”
“굳이 저 안에 계실 필요 있습니까? 어차피 텔레포트 게이트도 있겠다, 크로스로드에 대장간 하나 지어드릴 테니 햇볕 잘 드는 바깥에서 선선하게 계시죠.”
아주 골수까지 쪽쪽 빨아 이용해…… 아니, 영감님 건강 걱정해서 이런 제안을 했는데. 켈리베이는 고개를 저었다.
“저 안에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그리고, 저 밑에 기어 다니는 불쌍한 다른 친구들에게도 대장장이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겠나.”
그래도 어떻게 구워삶아 보려 했지만, 켈리베이는 두 귀를 막고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쳇. 드워프답게 똥고집이 딴딴한 노친네라니까.
“흐음…….”
그런 우리의 옆에서 레이나와 지원군 파티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살피고 있었다.
“이곳에는 신기한 물건이 많군요, 전하. 소실된 순간이동 마법에, 호수 아래 던전이라…….”
“저 괴수들의 근원과 연관된 고대의 마법왕국이 저 아래 있어.”
나는 레이나에게 피식 웃어 주었다.
“중앙에서는 다 파악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파견 올 때 간단한 언질 정도는 들었습니다만, 현대 마법에서 넘볼 수 없는 이런 것들까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턱을 괴고 고민하던 레이나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았다.
“다음 탐사 때는 저도 데려가 주실 수 있으십니까?”
“상황이 맞으면.”
하여간 마법사들은 죄다 고대 마법 이런 거에 흥미를 보이는군.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지원군은 지원군일 뿐. 어차피 곧 떠날 친구들을 굳이 탐사 끼워서 경험치 나눠먹게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레이나 파티를 던전에서는 떨어뜨려 놨던 거고.
‘그래도 다음은 보스 스테이지인 10. 모든 영웅 캐릭터들의 합을 맞추기 위해서는 같이 탐사 가서 합동 훈련 진행하는 것도 괜찮을지도…….’
뭐 이런 잡담을 두런두런 나누면서 긴장을 덜어 내고 있자니.
쿠구구구궁-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 직감적으로 적의 도래를 알아챘다. 나는 소리쳤다.
“전원, 준비해!”
부글부글…….
새카만 호수의 수면이 폭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거칠게 요동치더니, 이윽고.
쏴아아아……!
무시무시한 물보라가 솟아올랐다.
그 물보라 사이에서, 은회색으로 번들거리는 거대한 뱀의 머리가 드러났다. 나는 놈의 이름을 씹어 뱉었다.
“요르문간드……!”
고오오오오-!
괴물의 싯누런 두 눈이 대기 중에 드러나며, 공기가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거대하다.
몇 번이고 사용한 형용사지만, 또 쓸 수밖에 없었다. 이만큼 놈을 잘 설명해 주는 단어가 없었으므로.
이제 겨우 수면 밖으로 빠져나온 머리 부분만 해도 거의 저택 한 채 정도의 크기인 것 같다.
이 무식한 사이즈는 대체 뭐야!
‘이것이 ‘초거대’ 괴수……!’
직접 눈으로 보니, 게임에서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박력이다.
세상에 이렇게 커다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쉬르르르륵-
소름끼치는 숨결을 내뱉으며 요르문간드가 천천히 호수 밖으로 몸을 빼냈다.
소형 방패 정도 크기의 비늘이 빈틈없이 붙은 거대한 은회색 몸이 느리게 바닥을 기며 마침내 육지에 상륙했다.
철썩-!
검은 호수의 물이 파도를 치며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
나루터 옆에 서서 이 모습을 보는 우리의 머리 위로 소나기처럼 물방울이 쏟아졌다.
“……직접 눈으로 보니 어처구니가 없이 크네요.”
온몸으로 물을 맞으면서도 에반젤린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정말로 우리가…… 이런 괴물을 격퇴할 수 있을까요?”
“격퇴해야지.”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못하면 괴수전선은 끝장나고, 세계는 멸망한다.”
돌이켜보면, 모든 방어전이 그랬다.
막아 내지 못하면 모두가 죽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이 세계의 최종방위선이었다.
이번에도 그렇다. 다를 게 없다.
괴물을 죽인다.
사람을 구한다.
언제나 해온, 그 일이다.
내가 그렇게 덤덤하게 말하자, 얼어붙어 있던 파티원들의 어깨가 조금씩 풀렸다.
“정신 차려, 오합지졸 산적 놈들.”
제일 굳어 있는 형벌부대의 어깨를 루카스가 퍽퍽 쳤다.
“벌써부터 쫄아서 어쩌게? 그러다간 나중에 진짜 다 죽는다. 괜히 시체 치우게 하지 말고 정신 차려.”
“누, 누가 쫄았다고 그래, 기사님!”
2m가 넘는 거구 주제에, 다리를 덜덜 떨던 쿠일란은 루카스의 말에 바락 소리쳤다.
“벌써부터 뱀 사냥 나갈 생각에 신이 난 것뿐이야!”
“퍽이나 그래 보이는군. 약골.”
“진짜거든! 젠장, 나중에 다 끝나고 전공(戰功)이나 비교해보자고!”
“그거 좋군. 허접한 네놈들과 나의 차이를 명확하게 일깨워 주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루카스가 차갑게 조소했고, 쿠일란은 이를 갈았다.
나는 그쪽을 보며 피식 웃었다. 허세라도 좋으니 지금은 파이팅 해 주는 게 좋다.
‘그리고, 생각만큼 어려운 적은 아닐 거야.’
그냥 기어갈 뿐인데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진동하는, 규격외의 괴물이긴 하지만.
사실 게임에서 요르문간드는 내가 선호하는 보스 몬스터였다.
공략법이 명확하기 때문이었다.
호전성도 낮고. 그냥 북상만 하는 놈이니. 철저하게 부위파괴 기믹만 수행해 주면 크로스로드 접근 전에 충분히 격퇴 가능했다.
게다가 이번 스테이지에서는,
[이번 스테이지에서는 다크 이벤트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적용 가능한 최대 난이도입니다. 이 이상 난이도를 올릴 수 없습니다.]이놈의 엿같은 다크 이벤트도 없다!
흡혈귀 때와 같은 ‘최대 난이도’라는 이유로 다크 이벤트가 없다.
최대 난이도인 점은 빡치지만, 어쨌든 다크 이벤트가 없다는 말인즉슨 추가 변수가 없다는 뜻이다.
‘안정적 공략이 가능하다.’
팔에 찬 갈고리 발사기를 고쳐 끼우며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자연재해 같은 몬스터지만.
충분히 할 만하다.
“자, 슬슬 탑승할 시간이다!”
요르문간드의 거구가 벌써 절반 가까이 호수를 빠져나왔다.
타이밍을 재던 나는 괴물의 몸을 향해 갈고리를 쏘아 냈다.
“가자-!”
촤륵! 촤르르륵!
거의 동시에 은사가 매달린 갈고리 열다섯 개가 괴물뱀의 몸을 향해 쏘아져, 놈의 비늘 사이에 걸렸다.
핑! 피이잉!
장치의 태엽이 휘감기며 줄이 우리를 끌어당겼고, 영웅 캐릭터 15인은 모두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올랐다.
탓! 타닥!
놈이 지상에 상륙했듯이.
우리도 놈의 등 위에 상륙했다.
“너, 넓어…….”
요르문간드의 등 위에 막 기어오른 에반젤린이 감탄했다.
“내 몸에 올라온 개미가 이런 기분이려나……?”
요르문간드의 몸은 그 막대한 질량 때문인지 원통을 옆으로 놓고 위아래를 누른 듯한 형태였다.
다시 말해서 윗부분이 꽤 평평한 편이다. 우리가 충분히 움직일 만하다.
그 위를 가볍게 팡팡 뛰어다니던 에반젤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뱀이 아니라 용 아니에요? 이 정도면?”
“뱀이든, 용이든, 이무기든, 지렁이든. 아무렴 어때. 우리의 적일뿐이다.”
나는 모두가 올라선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낙오자는 없고.
“사전에 지시한 대로다. 이곳에서 세 파티 모두 각자의 작전구역으로 향한다.”
파괴해야 하는 신경중추는 세 개. 투입된 파티도 세 개.
각자 하나씩 신경중추를 맡기로 했다.
메인 파티인 우리가 머리 쪽, 레이나와 지원군 파티가 중앙 쪽, 마지막으로 형벌부대가 꼬리 쪽.
머리 쪽으로 상륙했다간 괜히 놈의 신경을 건드릴까봐, 또 꼬리 쪽은 움직임이 요란해 상륙이 어려워서.
일단 전원이 중앙에 상륙한 뒤 각자 작전구역으로 흩어지기로 했다.
“우리가 파괴해야 할 신경중추는 저렇게 생겼다.”
나는 손을 뻗어 요르문간드의 몸 중앙을 가리켰다.
놈의 등 가운데에 뿔처럼 솟은 거대한 돌기가 보였다.
요르문간드의 신경중추 세 곳 중 하나.
부위파괴 대상이 먹음직스럽게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향해 손짓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착실하게 공략하면 각자 이틀에서 이틀 반나절 만에 부술 수 있을 거다.”
뱀의 몸이 원체 길다 보니 파티 간 의사소통은 조금 어렵겠지만.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는 가장 치트라고 할 수 있는 시스템 창이 있었다.
[요르문간드 – 부위파괴 진행도]-첫째 중추 : 0%
-둘째 중추 : 0%
-셋째 중추 : 0%
이걸 통해 현 상황을 체크하고, 다른 파티들의 진척이 느려지거나 멈추면 상황을 파악하러 움직일 생각이었다.
‘인간 세상을 침략했겠다, 괴물. 그럼 우리도 네놈의 등짝을 침략해 주마.’
히죽 입가를 말아올린 나는 파티원들에게 손짓했다.
“좋아, 그럼 각자 작전구역으로…….”
움직여라, 라고 지시하려는 순간.
쿠과과광!
갑자기 진동이 거세어졌다.
우리가 올라탄 요르문간드의 온몸이 거칠게 떨렸다. 마치 두터운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뭐야?!”
“꽉 잡아!”
기겁한 영웅 캐릭터 전원이 바짝 엎드리며 요르문간드의 등에 붙었다.
휘청거리는 나를 루카스와 에반젤린이 양쪽에서 잡아주었다.
쾅! 쿠과광!
사방에서 흙더미가 쏟아지고, 땅이 굉음을 울리며 갈라졌다.
‘무슨 일이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목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이윽고 요르문간드가 험준한 산골짜기로 제 몸을 밀어 넣고 있음을 깨달았다.
‘뭐야? 왜 멀쩡하게 크로스로드로 닦인 길을 내버려두고, 냅다 산으로 파고드는 거지?’
이해를 못 해서 눈을 끔뻑이던 나는 이윽고 그 이유를 깨달았다.
‘설마……!’
이 뱀 괴물은 정직하게 북상한다.
다시 말해서, 굳이 인간이 낸 길을 이용하지 않는다.
제 거대한 몸으로 스스로의 길을 파내며, 정북향(正北向)으로 그저 전진할 뿐……!
“이런 미친-?!”
콰광! 쿠과과과광!
요르문간드가 향하는 경로에 있던 야산들이 연이어 흙더미를 쏟아내며 무너졌다.
족히 수십에서 수백 년간, 어떤 외부의 손길에도 노출되지 않고 높다랗게 자라 있던 나무들이 줄지어 쓰러졌다.
쏟아지는 흙과 나무 잔해를 온몸으로 맞으며 우리는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질렀다.
산이 무너지는 굉음 앞에서 고작 인간 따위의 비명은 들리지조차 않았다.
자연재해.
이 정도 크기의 뱀은 그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문자 그대로 경천동지(驚天動地)였다.
“조금만 버텨! 곧 산 지대가 끝나면 작전을 속행할 수 있을…….”
일대의 지도를 떠올리며 외치는 내 눈에, 저 멀리 뱀의 머리가 거대한 바위산 아래로 파고드는 모습이 보였다.
쿠르르르릉!
뒤이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하는 바위산의 모습도.
“……아니, 씨발.”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다크 이벤트가 없으니, 게임에서의 공략을 착실하게 수행하면 쉽게 클리어하리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이곳은 우리의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성벽 위가 아니다.
전장(戰場)이 바깥으로 옮겨진 순간부터, 모든 것이 변수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뱀 새끼야-!”
우르르르- 쿠과과광!
쏟아진 바위 산사태가 뱀의 몸을 휩쓸었다.
그 뱀의 몸에 매달린 우리도, 바위와 흙의 폭우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