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79
◈ 279. [자유탐사] 베이스캠프 (3)
나는 무명에게서 이런 저런 장비를 선물 받고, 또 구입했다.
개인 사용 용도로 모아 둔 마석이 꽤 있었기에, 좀 괜찮다 싶은 장비는 가격을 치르고 가져왔다.
게다가 무명은 장비의 값어치에 비하면 염가나 다름없는 가격에 퍼주었다. 내킬 때만 장사한다는 것만 빼면 정말 좋은 상인 NPC란 말이야.
‘안 그래도 이것저것 필요한 상황이었지.’
지난 전투에서 우리 애들 장비가 꽤 많이 망가졌다.
루카스가 오래 쓴 [망령의 갑옷]도 너덜너덜한 수준이고.
특히 에반젤린의 장비 손실이 심각하다.
[골렘 아머]는 걸레짝이 됐고, 양손의 크로스로드 가문 전통의 창과 방패도 망가지기 직전.장비는 원래 소모품이다. 아끼지 말고 갈아 주자.
‘기사 듀오가 쓸 갑옷 두 벌 사고…… 다른 애들도 스펙업 좀 시켜 줘야지.’
꾸준히 장비 업그레이드를 받아온 메인 파티와 형벌부대는 좀 상황이 낫지만.
이번에 복귀한 그림자부대의 경우에는 장비 티어가 몇 스테이지 전에 머물러 있다. 얘네도 한 번 싹 갈아 줘야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정신없이 지르다 보니, 아무리 무명이 염가판매 중이었다 해도 내 개인 보유 마석을 거의 동내 버리고 말았다. 헉……!
텅 빈 마석 인벤토리를 보며 속쓰려하고 있자니, 무명이 빙그레 웃으며 좌판을 손끝으로 톡톡 두들겼다.
“이번에 많이 샀으니 하나 더 서비스해 주지. 골라.”
“어이어이! 네녀석 진짜 천사냐고! 제엔장!”
나도 모르게 이상한 말투가 튀어나왔지만 아무렴 어때! 공짜 만세다!
해서 공짜 장비 2개에 내 마석 주고 산 장비 9개까지. 도합 11개나 되는 장비 쇼핑이 끝났다.
제작으로 이만큼 만들려면 돈도 돈인데 시간도 무진장 걸리기 때문에, 무명 덕분에 절약 오지게 했다. 감사합니다-!
“뭘 감사까지야. 너와 네 동료들의 성장이 내 기쁨인걸.”
무명이 하얗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이어이! 적당히 하라고! 그러다 진짜 날개 달려서 날아가 버리면 곤란하다고!
그렇게 쇼핑도 끝내고.
이번 자유탐사를 종료하고 크로스로드로 귀환할 시간이 되었다.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우리는 여기 남겠수다.”
쿠일란의 말에 형벌부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들은 일단 베이스캠프에 머물면서 전진기지 건설 준비를 할 것이다.
코코 할멈에게 의뢰한 텔레포트 게이트가 완성되면 전진기지 건설을 돕게 될 거고.
“제가 선배로서 잘 이끌겠습니다. 전하.”
쟈칼이 씩 웃으며 그런 쿠일란과 어깨동무를 했다. 근육근육-수인족이라는 공통점 덕인가, 나름 금세 친해진 모양이군.
쟈칼에게는 이곳 베이스캠프의 경호, 그리고 앞으로 있을 전진기지 건설까지 전반적인 도움을 요청했다.
이곳 호수왕국에서 수백 년 살아오면서 잔뼈가 굵었으니 잘 도와주겠지.
“전하.”
그때 갓핸드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저희도 여기에 남겠습니다.”
“응?”
“베르단디 님의 파티가 아직 회복을 끝내지 못했고, 이곳 베이스캠프 또한 안정화가 덜 되었습니다.”
갓핸드는 베이스캠프 곳곳의 NPC들을 쭉 둘러보았다.
“이곳의 여러 분들을 돕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베르단디네 파티야 너희와 동족이라 쳐도. 다른 이들은 아니지 않나? 그래도 도울 거야?”
“전하께서는 저희와 다른 종족이시지만 저희를 돕지 않으셨습니까?”
갓핸드가 흐릿하게 미소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데에 이유가 없는 법이지요.”
“…….”
나는 내 필요 때문에 너희에게 손을 내민 것뿐인데.
그렇게 환한 선의로 대답하니 굉장히 머쓱해지는구나. 나는 멋쩍게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보스 스테이지인 스테이지10이 끝난 직후다. 다음 스테이지까지는 시간이 꽤 있다.
여기서 지내면서 베이스캠프 안정화에 도움을 주겠다면야 나로서는 말릴 이유가 없지.
다만.
“그런데 릴리는…… 감당할 수 있겠어?”
“헉.”
그제야 크로스로드에서 기다리고 있는 릴리를 떠올린 갓핸드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너는 보니까 나쁜 남자상은 아닌데, 연인 속 터지게 하는 재주는 있는 거 같다.
“이, 이해해 주실 겁니다. 릴리님이라면.”
“퍽이나 이해하겠다, 야…….”
“어떻게 말씀 좀 잘 해 주십시오…….”
“걔가 내 말이라고 듣겠냐고…….”
얼마 전 커다란 불공으로 보스몹을 원킬내던 릴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와 갓핸드는 동시에 공포에 몸을 떨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형벌부대 5인과 그림자부대 3인을 이곳 베이스캠프에 두고, 나와 쥬니어만 귀환하게 되었다.
“자주 올게! 너희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이거 타고 돌아와! 알겠지!”
텔레포트 게이트 안으로 몸을 집어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내 파티원들, 쟈칼, 베르단디, 코코 할멈, 게다가 무명까지 손을 흔들며 그런 나를 배웅해 주었다.
아니, 명절 끝나고 상경하는 맏아들 보는 듯한 그런 눈빛은 뭐야!
“해바라기씨…… 맛있었지…….”
“영주님네 조리장님의 미트파이가 갑자기 그립네…….”
“신선한 과일이랑 꿀도…….”
게다가 은근슬쩍 먹고 싶은 거 말하고 있고! 야! 내가 그런다고 사올 거 같아?!
…….
……해바라기씨하고 미트파이하고 과일이랑 꿀? 더 없어? 그게 끝인-
번쩍!
***
크로스로드로 귀환하자마자 쥬니어는 휴식을 취하라고 돌려보냈고. 나는 바로 대장간으로 왔다.
“흐음. 베이스캠프에 그런 일들이 있었단 말이지…….”
켈리베이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자, 즉시 짐을 싸기 시작하며 드워프 노친네가 말했다.
“나도 슬슬 돌아가야겠구먼. 대장장이가 있어야 베이스캠프도 원활하게 돌아갈 테니.”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위의 다른 대장장이들이 일제히 어깨가 굳더니, 온몸을 내던져 켈리베이의 팔다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장인님! 가시기는 어딜 가신다는 겁니까! 아직 비법 전수 덜 해 주셨잖아요!”
“저는 아직도 드워프식 강철 만드는 법을 이해를 못했다니까요!”
“금형 전수도 덜 해줬으면서 가긴 어딜 가!”
“다 가르쳐주기 전엔 여기 못나가-!”
“이 찰거머리 같은 인간 놈들이?! 아주 골수까지 다 빨아가려고!”
우당탕쿵쾅 아수라장이 되는 대장간을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지켜보았다. 잘한다, 대장장이들아. 아주 콱 잡고 놓아주지 마렴.
“저기…… 전하.”
“응?”
작은 손길이 내 바짓자락을 꾹꾹 당기는 느낌에 내려다보자, 조그마한 체구의 소년이 보였다.
더벅머리로 눈앞을 가린 어린 N등급 용병. 내가 켈리베이에게 조수로 붙여준 한니발이었다.
“만약 켈리베이님께서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신다면…… 혹시,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
잠시 말문을 잃었던 나는 허리를 숙여 한니발과 시선의 높이를 맞추었다.
“멀진 않지만, 어둡고 습하고 괴수도 자주 출몰하는 곳이야. 목숨을 걸어야 해. 그래도 갈 거야, 한니발?”
“괜찮아요! 저…… 켈리베이님께 아직 더 배우고 싶거든요.”
나는 더벅머리 속에서 올곧게 반짝이는 한니발의 눈을 한참 들여다본 뒤, 싱긋 웃어 주었다.
“저 영감님에게 허락 받는다면, 그렇게 하자.”
어차피 한니발은 너무 어려서 전력외다.
켈리베이 옆에서 도움이 될 기술 하나라도 배워 둔다면 한니발에게도, 장기적으로 이곳 전선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한니발의 더벅머리를 손으로 툭툭 가볍게 두들겨준 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제 켈리베이는 자기에게 들러붙는 대장장이들을 엎어치기로 메다꽂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의뢰 맡길 것도 있었는데.”
오늘 무명에게 사온 장비들 재조정이랑.
에반젤린이 쓰던 크로스가문의 창과 방패를 SSR등급 전용장비로 업그레이드하는 것.
이건 마법 대장장이인 켈리베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오늘 의뢰하려고 했는데, 꼴을 보아하니 오늘은 텄다……. 다음에 의뢰하자…….
***
다음날. 영주 저택 텔레포트 게이트 앞.
밤새 한숨도 못자고 대장장이들에게 기술 전수를 했다는 켈리베이는 퀭한 얼굴로 자신의 짐을 끌고 왔다.
그 뒤에서 한니발이 싱글벙글하며 수레를 끌고 왔다. 수레 안에는 다른 대장장이들이 또 밤새 만들어준 이별 선물들이 들어차 있다.
어째 전부 흉악한 칼붙이나 금속 덩어리인 게 이 사람들 취향 참 일관되다 싶군.
“그런데, 허리는 다 나으셨어요?”
애초에 켈리베이가 크로스로드에 머물게 된 이유. 세계의 뱀 요르문간드를 물리칠 때 허리가 나가서 아니었던가. 완쾌하셨는지?
“다 나았었는데…… 어제 무리했더니 도진 것 같다, 야…….”
“아프실 때마다 오세요. 신전 공짜로 쓰게 해드릴게.”
“올 때마다 이렇게 물어뜯길 것 같은데, 내가 돌아오겠냐?!”
꽥 소리친 켈리베이는 직후 허리가 아픈지 아야야야 소리를 냈다.
한니발이 작은 손으로 그런 드워프 영감의 허리를 통통통 두들겼다. 얘야, 저거 엄살이야. 저 영감님 레벨이 몇인데.
“그러는 너야말로, 나한테 의뢰할 거 좀 있는 모양인데.”
한니발의 손안마가 먹혔는지 허리를 곧게 편 켈리베이가 내게 눈짓했다.
“베이스캠프 안정화만 끝나면 최우선으로 네 의뢰 받아줄 테니까, 딴놈 맡기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알겠지?”
“허리도 안 좋으신 거 같아서 그냥 이 동네 대장간에 맡기려고 했더니.”
“허리는 허리고 네 일은 내 일이지! 딴놈 주기만 해봐! 돌아와서 다 뿌셔 버릴 거야!”
켈리베이가 손에 들린 망치를 빙빙 돌리며 위협했다. 허허, 한 번 더 크로스로드에 오셨다간 영영 베이스캠프에 못 돌아가실 텐데…….
그렇게 입에서 불을 토해 내는 켈리베이를 한니발이 살살 밀어서 텔레포트 게이트 안으로 번쩍! 하고 사라졌다.
드워프 대장장이와 그 조수가 사라지는 모습을 나는 손을 흔들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둘이 사라지고 나자,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릴리?”
흠칫.
살금살금 휠체어 바퀴를 끌어 텔레포트 게이트로 다가가던 릴리가 내 부름에 어깨를 떨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빙그레 웃었다.
“뭐하니?”
“…….”
삐질. 삐질삐질.
식은땀을 쏟던 릴리가 데구루루 눈을 굴려 나를 보았다.
“그…… 베이스캠프 보수도 그렇고, 전진기지 건설도 그렇고. 연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한 명쯤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휠체어 뒤에 매달린 연금술 관련 짐들이 한 보따리 보였다. 나는 나지막이 숨을 내뱉었다.
던전이라면 질색하는 그 릴리가 자청해서 파견을 요청하다니.
“이것이 사랑의 힘인가……?”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이제 와서~ 부정하기엔~ 너무 멀리 오지 않았뉘~?”
즉석에서 노래를 흥얼대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너네가 뭔 견우직녀도 아닌데, 내가 너네 연애를 무슨 심보로 막겠니.
“가서 즐거운 시간 보내렴.”
“그런 거 아니라고요오오오오!”
릴리는 길게 외치며 휠체어를 끌고 텔레포트 게이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번쩍!
나는 피식 웃으며 엄지를 치켜 주었다.
여러분이 행복하다면 오케이입니다…….
***
형벌부대도 떠나고. 그림자부대도 떠나고. 켈리베이와 한니발도 떠나고. 심지어 릴리까지 떠나자.
크로스로드는 제법 한산해졌다. 나는 휑하니 빈 영웅 편성창을 보며 어쩐지 허전함을 느꼈다.
‘할 일이나 하고 있자.’
지난 방어전 때 망가진 성벽 및 수성장비 보수,
사망자들에 대한 위로금 지급.
새 장비 발주. 새 용병 고용. 전진기지 건설을 위해 비축해 둔 자재 체크…….
할 일은 끝도 없었다. 나는 오랜만에 행정 업무에 몰두했다.
그렇게 방어전 종료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아침.
제법 날씨가 쌀쌀해져서, 뜨거운 커피를 삼키며 아침 업무를 보기 시작하는데.
“영주니이이이임~!”
디렉터…… 겸 영주보좌관 에이더가 호다닥 달려와서 보고했다.
“루카스 경이 정신을 차리셨습니다아!”
“……!”
나는 즉시 자리를 박차고 저택을 나섰다.
크로스로드에는 감옥이 여러 군데 있는데, 루카스를 수감한 곳은 그중 중앙 감옥이었다. 가장 깊고 튼튼한 시설이어서다.
최하층 지하감옥에 들어서자, 널찍한 독실 안에 쇠사슬로 사지가 결박당한 루카스가 있었다.
지난 전투 때의 피범벅인 갑옷도 벗지 못하고, 오른손에는 [카르마 이터]가 둘둘 묶인 채. 일주일 넘게 저 몰골로 이곳에 갇혀 있었다.
“주군!”
나를 알아본 루카스의 두 눈에 환한 안도가 스쳤다.
반듯한 주인공의 얼굴에는 이미 야수의 흔적은 없다. 평소의 골든 리트리버 같은 착해빠진 순둥이 얼굴이다.
감옥 앞에 선 나는 경비병들에게 짧게 명령했다.
“열어.”
“옙.”
끼익-
감옥 문이 열리고.
나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서서 루카스의 앞으로 향했다.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그런 나를 바라보며 루카스가 입을 열었다.
“주군! 다행입니다, 무사하셨군요! 지난 전투는 큰 탈 없이 끝난…….”
짜악-!
듣지 않고, 나는 있는 힘껏 손을 휘둘러 루카스의 뺨을 후려쳤다.
올려붙인 뺨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루카스의 터진 입술에서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어……?”
홱 돌아갔던 고개를 천천히 돌려, 루카스는 얼떨떨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주, 군……?”
“야.”
루카스의 멱살을 홱 잡아채고,
“내가 야수화 쓰지 말라고 했지.”
나는 이를 갈며 씹어 내뱉었다.
“사람 말이 개 X으로 들리냐, 이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