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66
◈ 366. [STAGE 15] 낙오 (2)
내 눈 앞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던 마법의 문이 붉게 빛나더니, 이윽고 무너지듯 닫혔다.
저쪽의 게이트가 파괴당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으로 그림자부대를 본 사람은?”
“그, 그것이…….”
머뭇거리던 데미안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게이트에 타기 직전 뒤를 돌아보았을 때, 퇴각 행렬에서 빠져나가서 성벽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어요.”
“…….”
다른 누구도 아니고 데미안의 보고니까 정확할 터.
머리가 아파 와서 나는 손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그때 토르켈이 내게 와서 더듬거리며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전하. 워낙 상황이 급박해서, 행렬의 마지막만 살피다 보니, 저희가 끝인 줄 알았습니다…….”
나는 나병척살대에게 영웅 파티의 최후미를 맡겼다.
다른 아군이 모두 퇴각했는지 확인하는 것 또한 그의 임무였다. 하지만 그림자부대의 이탈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희 탓이 아니다.”
하지만 사방에서 3만의 고블린이 성을 함락시키며 돌진해 오는데, 제멋대로 행렬을 이탈한 다른 파티까지 챙기라는 것은 최후미에게 너무 가혹한 일 아닌가.
그러니, 잔인하지만.
“스스로 이탈 후 낙오된 그림자부대 자신의 책임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잠시만요, 애쉬님! 이대로 그림자부대를 버리실 셈은 아니죠?!”
다급하게 이렇게 물어 온 것은 베르단디였다.
엘프인 그녀로서는 그림자부대의 세 엘프 또한 동족이니, 동료애를 강하게 느낀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전진기지 내부에 비상용 게이트가 하나 더 설치되어 있잖아요! 그쪽으로 구출부대를 파견하면 돼요!”
“…….”
베르단디의 말대로다.
전진기지에 설치된 게이트는 총 세 개. 이중 안뜰에 설치된 두 개가 방금 파괴당했다.
비상용으로, 추후에라도 활용할 수 있도록, 마지막 하나는 기지 다른 곳에 숨겨서 설치해 두었다.
이 게이트를 통해 구출부대를 투입할 수 있다.
그래, 투입할 수는 있지만.
“……그러면 어쩔까? 지금 막 적의 본대가 점령한 곳에 구출부대를 꾸려서 보낼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3만의 고블린 부대가, 요새화된 기지를 점거한 상태다.
이곳에 구출부대를 보내서,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그림자부대를 찾게 하라는 말인가?
십중팔구 구출부대까지 전멸할 것이다.
“아직 놈들의 점령은 완전하지 않아요! 놈들이 기지를 완전히 손에 넣기 전, 지금만이 구할 수 있는 찬스라고요!”
베르단디가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차라리 놈들이 기지를 비우고 크로스로드로 북상할 때까지 기다린 뒤, 그때 수색을 보내는 게 낫다. 적어도 수색부대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을 테니…….”
“그러면 그림자부대는 모두 죽는다고요!”
베르단디의 외침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와 함께 사선을 넘나든 그림자부대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나를 대신해 죽은 올드걸과 스컬도 떠올랐다.
‘그림자부대’라는 이름으로, 이들이 얼마나 많은 무훈을 세웠나.
그들이 보낸 헌신을 생각하면, 당장 구출부대를 편성하는 것이 맞지만…….
“주군.”
그때, 내 옆에 선 루카스가 차갑게 말했다.
“안 됩니다.”
“…….”
내가 돌아보자, 루카스는 서늘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여 예전 에반젤린 때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다면, 결단코 반대하겠습니다.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
“상대는 악몽 군단장이고, 적의 규모는 3만을 헤아립니다. 분산되지도 않고 하나로 뭉쳐 있는 상태로요. 그때와 같은 요행을 바랄 수 없습니다.”
“…….”
“남부전선의 사령관답게,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십시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베르단디에게 말했다.
“고블린 군단 앞에서 행렬을 이탈하고 낙오된 시점에서, 이미 목숨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낼 수 있는 가능한 차가운 목소리로.
“우리는 아이들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전쟁을 하고 있다.”
“…….”
“한 개 파티가 낙오되었다고 해서, 다른 모두까지 위험에 빠지게 할 수는 없다. 지금 감정적으로 행동해서, 이쪽의 전력이 더 누수되고, 결국 이곳 전선에서 저 고블린 군단을 분쇄하지 못하면, 세상 전체가 괴수에게 짓밟힐 거다.”
나는 확인하듯 한 번 더 말했다.
“그림자부대는 적의 본진 복판에 낙오되었다. 이들의 구출을 위해 다른 이들의 목숨을 걸 수는 없다.”
베르단디의 입이 꾹 다물렸다.
책임을 느끼는 듯 토르켈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였다.
끼익. 끼익.
바퀴 구르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그쪽을 보았다.
휠체어에 앉아, 입술을 깨문 채, 창백한 얼굴로 다가오는 적발의 마법사가 보였다.
나는 마지못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릴리.”
***
전진기지는 녹색 괴수들로 우글거리고 있었다.
기지 외곽의 빈 방 하나에 숨은 채, 그림자부대는 호흡을 낮추고 주위를 살폈다. 온 사방이 살의로 눈을 희번덕이는 고블린 투성이었다,
“놈들은 이곳에 오래 있지 않을 거다.”
갓핸드가 번아웃과 바디백에게 낮게 속삭였다.
“곧 크로스로드를 향해 진군할 거야. 그러면 기지가 빌 거고, 탈출할 기회가 올 거야……. 그때까지만 들키지 않으면 돼.”
번아웃과 바디백은 식은땀에 번들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삐걱. 삐걱.
목제 바닥을 밟는 무거운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놀란 갓핸드가 그쪽을 살피자, 화려한 갑옷을 입고 얼굴에는 독특한 문양을 새긴 커다란 고블린이 복도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고블린 아미르.
신왕 바로 아래 계급의 고블린 장수였다.
《키릭. 수색은 잘 되고 있나?》
《예, 키릭! 기지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신왕께서 직접 명령하셨다. 쥐새끼가 있을 수 있다. 철저히 살피도록. 키릭.》
벌컥!
쾅!
아미르가 이끄는 고블린 무리는 복도의 방들을 하나씩 열어젖히며 수색을 이어 갔다.
갓핸드와 번아웃, 바디백은 당황한 시선을 서로 나눴다.
숨어야 하는데- 숨을 곳이 없다.
창문을 통해 건물 밖을 살피자, 바깥도 고블린들로 그득하다. 어느 쪽이든 외통수였다.
삐걱. 삐걱.
이제 발소리는 바로 코앞이었다. 갓핸드는 이를 악물었다.
쾅-!
거칠게 문이 열렸다.
방 안으로 고블린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몇 걸음 뒤에서 따라 들어온 고블린 아미르가 찬찬히 방 안을 살폈다.
《흠…….》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키릭?
키리릭…….
고블린 병사들이 방 내부를 수색했다. 창고로 쓰인 듯 잡동사니가 그득한 곳이었지만, 특별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쪽 구역에는 이상 없군, 키릭. 다음 구역으로 가자!》
고블린 아미르가 뒤돌아섰다. 뒤따라서 다른 고블린들도 우르르 방을 빠져나갔다.
“…….”
“…….”
“…….”
깨끗하게 비워진 방을 살피며, 갓핸드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지금 그림자부대 3인은 천장 바로 아래에 떠올라 있었다.
바디백의 염동마법.
이것으로 다급하게 셋의 몸을 허공으로 띄워 올렸고, 천장에 바짝 붙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천만다행히도 고블린들은 천장 쪽은 쳐다볼 생각도 않았다.
몇 분의 시간이 더 지난 뒤, 세 엘프는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내려섰다. 셋은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해냈다. 놈들의 수색을 피해 냈다…….
《키킥. 키키킥. 이럴 줄 알았지.》
그때, 바닥을 긁는 듯한 질 낮은 웃음이 세 엘프의 귓가에 울렸다.
기겁한 갓핸드가 그쪽을 보자, 떠난 줄 알았던 고블린 아미르와 병사들이 복도 저편에서 우르르 나오고 있었다.
《냄새가 났다고, 키릭.》
고블린 아미르가 히죽 웃으며 자신의 매부리코를 손끝으로 톡톡 두들겼다.
《야들야들한 엘프 놈들의 고기 냄새가……!》
“큭……!”
《키릭! 엘프를 죽여라! 전공을 세우면, 신왕께서 너희를 ‘진급’시켜주실 거다!》
키릭! 키리릭!
고블린 병사들이 눈을 시뻘겋게 번뜩이더니,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복도를 내달려 돌진해왔다.
갓핸드는 창고에 쌓인 철제 방패를 이어붙였고, 바디백은 그 바리케이드를 방의 입구에 쌓았다. 번아웃은 활과 석궁을 꺼냈다.
싸워야 할 시간이었다.
키야아아아!
최선두의 고블린이 가뿐하게 바리케이드를 뛰어넘더니, 갓핸드에게 달려들었다.
갓핸드는 왼쪽 의수로 놈의 턱을 후려치고, 오른손에 들린 창으로 놈의 배를 찔렀다. 놈은 즉사했다.
바로 뒤이어 따라온 놈은 바디백이 염동마법으로 내팽개쳤고, 그 뒤의 두 놈은 번아웃이 쏘아낸 화살에 맞아 피를 뿌리며 고꾸라졌다.
잠시간의 전투 동안, 고블린들은 그림자부대에게 접근조차 못했다. 일순 그림자부대 3인은 이대로라면 수월하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바뀌었다.
푹!
“큭?!”
스무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을 해치웠을 즈음, 쌓인 시체 너머로 달려든 고블린의 창 하나가 갓핸드의 어깨 갑옷을 찔렀다.
놈을 죽이자 그 다음 고블린들이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놈들을 죽이자 이번에는 복도 저편에서 고블린 궁병들이 화살을 쏘아냈다. 아군이 맞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마구잡이로 쏘아 내는 화살이었다.
바디백이 염동력으로 그 화살들을 걷어냈지만, 몇 발은 기어코 날아들어 그림자부대의 몸에 상처를 남겼다.
챙그랑!
와장창-!
동시에 방의 좌우 창문이 깨지더니, 그곳으로도 고블린들이 난입하기 시작했다. 정면뿐만 아니라 세 방향에서 고블린들이 날붙이를 꼬나 쥐고 튀어올랐다.
흔히들 고블린은 가장 약한 몬스터로 묘사되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성인 인간 남성의 절반 정도 체구에, 근력도 절반 이하. 나름대로 재빠른 민첩성을 갖췄지만, 그래봐야 인간보다 우월하지 못하다.
대략 열 살 미만의 어린 인간 아이와 비슷한 정도.
하지만 이것은 1대1에서의 비교.
놈들은 무리지어 행동하고, 본능적으로 살육에 능하다.
열 살 정도 되는 인간 아이들이라 해도, 수십씩 몰려 달려든다고 가정하면.
하물며 그 손에 칼이며 창 따위의 날붙이가 들려 있다면.
게다가 제 목숨 따위는 아랑곳 않고 상대를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데에 능숙하다면.
아무리 장사(壯士)라고 해도 감당하기 어렵다.
“허억! 허억!”
그림자부대가 오십 마리 가까운 고블린들을 해치웠을 때.
좁은 방은 고블린들의 시체와 피로 범벅이어서 운신도 힘들었고, 세 엘프는 온몸에 자잘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발각 당했다.
숨어 있다가 몰래 탈출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더 이상 희망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싸우다 죽는 최후뿐…….
세 엘프는 죽음을 직감했다.
《키킥, 키릭. 멍청한 엘프 같으니.》
세 엘프가 지친 기색이 역력하자, 고블린 아미르가 직접 칼을 뽑아들고 다가섰다.
《네놈들은 귀는 특별히 내가 직접 잘라서, 신왕께 진상해 주마.》
놈의 긴 혓바닥이 자신의 칼날을 핥았다. 갓핸드는 저 놈을 길동무로 삼는다면 고블린 군단에 어느 정도의 타격을 줄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아.’
문득 자신의 연인이 보고 싶었다.
침대 베개 위에 흐트러져 있던 그녀의 붉은 머리칼이, 다정하게 자신을 보던 시선이…….
나란히 앉아 보던 밤하늘이 그리웠다.
자신도 모르게 갓핸드는 중얼거렸다.
“릴리…….”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광-!
혀로 칼을 핥으며 다가오던 고블린 아미르와 그의 호위부대가 복도 째로 무지막지한 화염에 휘감겼다.
끔찍한 살 익는 냄새와 지독한 열기가 방을 휩쓸었다. 그림자부대 3인은 다급하게 바닥에 엎드려 그것을 피했다.
‘어?’
열기의 폭풍이 지나고, 갓핸드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들어 앞을 살피자.
“야.”
그곳에 있었다.
“내가 말했지.”
가쁘게 숨을 내뱉는,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는, 그의 연인이.
괴수전선의 선임마법사- 릴리는 씩 웃어 보였다.
“무슨 일 있으면, 내가 구하러 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