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68
◈ 368. [STAGE 15] 수어사이드 스쿼드 (2)
구출부대가 전진기지로 진입하기 전.
칼리-알렉산드르는 포대 위에서 이미 비상용 텔레포트 게이트를 발견했다.
점령지를 가장 높은 곳에서 살피는 것을 즐겨하기에, 포대 위에 올라섰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포대를 구성하는 벽돌 사이에 교묘히 섞인 텔레포트 게이트의 마법석들을.
본래 바로 파괴하려 했으나, 무수한 전투로 다져진 고블린 신왕의 직감이 그것을 말렸다.
이 게이트를 오히려 역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일부러 포대를 비워 두고, 주위를 병력으로 빼곡히 감쌌다. 그리고 이 게이트가 사용되는 것을 감시하라 일렀다.
빨라도 하루는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고작 몇 십 분 만에 인간들이 돌아올 줄은 몰랐지만.
《인간 쪽 병사들은 5인 1조 체제로 움직이지.》
전진기지 북쪽에서 요란하게 전투를 벌이는 미끼 부대.
그리고, 전진기지 내부에서 탈출 중인 구출 부대.
성벽 위에 서서 이들의 모습을 훤히 내려다보며 칼리-알렉산드르는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우리가 죽인 것은 낙오된 둘. 같은 조의 인원이 더 남아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이 타당하다.》
칼리-알렉산드르의 에상대로였다.
낙오된 인원이 더 숨어 있었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인간측은 무리한 구출작전을 감행하고 있었다.
《이쪽은 2천을 잃었는데, 저쪽은 고작 둘만 잃어서는 교환비가 너무하지.》
칼리-알렉산드르는 손을 휘저었다. 그의 명령을 알아들은 고블린 아미르들이 일제히 경례해 보였다.
포대 쪽으로 달려가는 인간 영웅들과, 소용돌이처럼 그들을 포위해가는 고블린 군단.
이 모습을 지켜보며 칼리-알렉산드르는 손끝을 가볍게 튕겼다.
《상호 간에 병력 교환비율을 조금 더 합리적으로 조정해 보도록 할까.》
***
성배탐사대, 그림자부대, 그리고 릴리는 포대를 향해 내달렸다.
그새 주위에는 고블린들이 빽빽하게 깔려 있었다.
바깥에서 미끼 부대가 상당수의 고블린들을 꾀어내고 있었지만, 여전히 전진기지 안의 숫자도 까마득하게 많았다.
“그래 봤자…….”
일행의 선두에 선 베르단디의 녹색 눈이 선명한 마력광을 내뿜었다.
“고블린이잖아-!”
연녹색 잔상을 흩뿌리며 베르단디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앞으로 내달렸다.
섬광처럼 움직이는 그녀의 궤적 뒤로, 고블린들이 모조리 목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SSR등급 암살자이자, 요정왕가 출신의 전투원답게 그녀의 전투력은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하아, 하아, 하아!”
고블린들이 끝없이 몰려들고, 전투가 길어지자 베르단디는 금세 지쳐 갔다.
암살자 클래스의 타고난 단점.
일대일 상황과 단기전에는 강력하지만. 일대다 상황과 장기전에는 취약하다.
조건도 불리한 데다, 순수 딜러인 그녀가 최선두를 맡는 것은 부담이 컸다.
앞에서 길을 트는 성배탐사대의 나머지 멤버들도 순식간에 소모되어 갔다.
그래서,
“하아아아압-!”
릴리가 이 상황에 적합했다.
화르르륵-!
릴리의 2스킬 [파이어 월]이 작렬했다.
일행의 우측 측면으로 거대한 불꽃의 벽이 솟아올랐고, 그쪽으로 달려들던 모든 고블린들이 일제히 불타 버렸다.
물량공세 군단의 천적, 광역 화염 마법사의 진가가 유감없이 드러났다.
말도 안 되는 효율로 고블린들이 불타 죽자, 베르단디가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휙 불었다.
“네 여친 좀 쩌는데?!”
“저한테 과분하긴 합니다!”
“면전에서, 하아, 말하지 마요! 하아! 부끄러우니까!”
갓핸드의 품에 안겨 이동하며 릴리는 연신 마력 포션을 입에 들이부었다.
연비가 최악인 화염 마법사다 보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냥 계속 마셔 줘야 했다.
일행은 마침내 포대에 도착했다.
포대 입구에는 고블린들의 시체가 언덕을 이루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고블린과 자신의 피로 칠갑을 한 토르켈이 막 다른 한 무리의 고블린들을 방패와 대검으로 내려찍어 죽이는 모습이 보였다.
“토르켈!”
“올라가십시오, 어서……!”
성배탐사대와 그림자부대, 릴리까지 모두를 포대 안으로 들인 뒤, 토르켈은 최후미에서 고블린들을 막아 내며 따라 올라왔다.
포대 위에서는 나머지 나병척살대 전사들과, 기어 올라온 고블린들이 악전고투 중이었다.
그새 대규모의 습격을 받은 것인지 포대 위도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얼굴에 안도가 스쳤다.
이제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탈출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작전을 성공하다니, 정말…….”
무어라 말하려던 베르단디가 입을 멈췄다.
피이잉-
불길한 소리가 울리더니,
쐐애애액!
콰과과광!
폭발과 함께 포대 전체가 진동했다.
고블린들이 노획한 대포를 포대를 향해 쏴 갈기기 시작한 것이다.
기지에 남은 대포는 인간 병사들이 스스로 불을 질러 대부분 극도로 손상된 상태였기에, 제대로 발사되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폭발하는 경우도 잦았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무식하게 계속해서 포탄을 갈겼다.
포대가 연신 흔들리고 포탄의 화염이 바로 옆에서 치솟았다. 베르단디가 고함을 질렀다.
“게이트를 가동해요! 즉시 탈출을……!”
그때였다.
쿵-
포대 아래쪽에서부터 육중한 진동이 타고 올라오더니,
콰과과광-!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구출부대가 모두 포대 안으로 들어가길 기다린 뒤, 대기 중이었던 고블린 자폭병이 일제히 투입된 것이다.
개개의 폭발 위력은 형편없지만, 칼리-알렉산드르가 포대 폭파에 투입한 고블린 자폭병의 숫자는 일백을 상회했다.
앞선 포격으로 약해져 있던 포대는 버티지 못했다.
포대의 하단부가 녹아내렸고, 그대로 포대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포대 최상층에 서 있던 구출부대 전원 또한, 속절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
“으음…….”
릴리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명멸하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잡고 상반신을 일으키자, 어쩐지 눈에 익은 풍경이 보였다.
포대는 건물 째로 1층까지 폭삭 무너져 있었다.
무너진 포대의 잔해가 벽을 이루어 주위를 둘러싸서, 마치 우물 안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다.
‘이건…….’
1년 전.
검은 거미 군단과 이곳에서 싸울 때, 최후의 탄환을 장전하던 포대의 모습과 꼭 닮았다…….
“동쪽에서 옵니다!”
“남쪽에서도 증원!”
“엄폐물이 더 필요해요!”
“이런 젠장, 엎드려-!”
이곳에서 구출부대의 영웅들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포대 최상층에서 1층까지 추락하는 바람에 다들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지만, 직후 고블린 놈들이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바람에 이를 악물고 싸워야 했다.
“릴리님! 정신을 차리셨군요!”
피투성이 몰골로 달려온 갓핸드가 바보처럼 웃어 보였다. 릴리는 힘겹게 몸을 마저 일으켰다.
“왜…… 다들 싸우고 있는 거예요? 게이트로 탈출하면……,”
“그게…….”
갓핸드는 말끝을 흐리며 옆을 보았다. 릴리도 그쪽을 보았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루는 마법석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당황하는 릴리에게 갓핸드가 쓰게 중얼거렸다.
“추락하면서 게이트도 망가진 모양이에요. 작동하지 않습니다.”
“…….”
“다들 싸우고는 있지만, 이대로는…….”
사방에서 고블린들의 파상공세가 이어졌다. 영웅들의 얼굴에서 삽시간에 희망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릴리는 숨이 막혔다.
이것이 헛된 도전의 대가인가?
“……아니.”
릴리는 멍하니 멈춰 있던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검은 거미 군단과의 전투에서 생존한 여덟 명 중 하나였다.
예전에, 애쉬와 함께 검은 거미 여왕을 쓰러뜨렸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똑같은 상황에서 애쉬는 이렇게 말했다.
– 불타 죽더라도 주사위는 던져 봐야지.
그래.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그런 평범한 인간에게도…… 권리가 있다.
도전을 포기하지 않을 권리가.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제가 고쳐 볼게요!”
릴리는 일부러 크게 목소리를 냈다. 주위의 영웅들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저, 크로스로드 선임마법사고, 연금술 공방 아티팩트 담당자에요. 게이트 설치도 제가 관여했어요.”
머리를 뒤에서 질끈 동여 묶고 릴리는 흩어진 마법석 파편을 앞으로 그러모았다.
“조금만 시간을 벌어 주세요, 조금만……!”
잠시 멈칫했던 영웅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두두두둑……!
사방에서 무시무시한 숫자의 화살들이 날아왔다.
포대는 전진기지의 중앙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주위 모든 고블린들의 눈이 닿는 곳이고, 가장 공격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주위를 포위한 고블린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냈다. 문자 그대로 화살의 비가 쏟아졌다.
“엄폐해요!”
“걷어내-!”
갓핸드가 즉석에서 방패를 만들어 내고, 바디백이 염동력으로 한 번 걷어냈지만 어림도 없었다.
화살비가 소나기처럼 내리꽂혔다.
고블린의 화살은 조악해서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숫자였다. 어느새 영웅들의 몸에는 화살이 몇 개 씩 틀어박혔다.
하지만 화살은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었다.
무너진 포대 벽을 넘어 달려들던 고블린들의 병종(兵種)이, 일반 보병에서 기병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산양에 올라탄 고블린의 기동성과 위력은 보병의 몇 배는 되었다.
앞에 나서서 고블린들의 돌진을 막아 내던 나병척살대의 영웅들이 하나 둘 누적된 부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성배탐사대 또한 진작 바닥난 체력으로 힘겹게 맞서 싸우다가 버티지 못하고 하나씩 무릎을 꿇었다.
화살도, 포션도, 엄폐물로 사용할 바리케이드마저도 바닥났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모두가 느끼는 그때였다.
키이이잉!
선명한 작동음과 함께, 무너져 있던 마법석들이 빙그르르 솟아오르며- 허공에 마법의 문을 만들었다.
“수리 완료했어요!”
놀란 모두가 그쪽을 보았다. 릴리가 배시시 웃고 있었다.
“마력핵과의 연결이 끊겨서, 동력 보급이 안 되고 있는 것뿐이었어요. 임시로 제 마력로를 연결했어요.”
“릴리님……!”
“다들 탈출하세요! 어서!”
릴리가 재촉했다. 실제로도 모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부상당한 파티원을 부축하며 게이트 앞으로 온 베르단디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면 릴리님은요?”
“저는 게이트를 유지해야 하니까, 마지막에 탈출할게요.”
일순, 릴리와 베르단디의 시선이 마주쳤다.
입술을 꾹 깨문 베르단디는 고개를 꾹 숙여 보인 뒤, 싱긋 웃었다.
“……알았어요. 조금 있다가 봐요?”
영웅들이 차례로 게이트를 통해 퇴각했다. 이제 남은 것은 토르켈, 갓핸드, 릴리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쏟아지는 화살을 방패와 몸으로 받아 내던 토르켈이 둘에게 눈짓했다.
“제가, 최후미입니다……! 어서 들어가세요!”
“말했잖아요. 게이트 유지 때문에 제가 마지막이에요. 곧 따라갈게요, 토르켈.”
“먼저 가시기 전에는, 저도 못 갑니다. 더 이상 제 뒤에 누군가를 남기고 싶지 않습니…….”
홱!
그렇게 말하는 토르켈의 등을 갓핸드가 밀어 버렸다.
토르켈은 눈을 크게 뜬 채 그대로 텔레포트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번쩍-!
“…….”
“…….”
이제 둘만이 남았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요, 갓핸드. 바로 따라갈 테니까.”
“…….”
“가라니까요! 나 힘든 거 안 보여요?!”
“릴리님. 그거 알아요?”
릴리의 앞에 천천히 쪼그려 앉은 갓핸드가 미소했다.
“릴리님은 거짓말이 서툴다는 거.”
마력핵이 파손된 이 텔레포트 게이트는 지금 릴리의 마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릴리가 손을 떼는 순간, 게이트 또한 닫힐 것이다.
그러니까…… 릴리는 처음부터 탈출할 수 없었다.
갓핸드는 진작 이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릴리는 내뱉었다.
“당신 살리려고 내가 이러고 있잖아요, 갓핸드. 제발, 가요…….”
“…….”
“내 마지막 부탁이에요, 그러니까…….”
“싫어요.”
가뿐하게 답한 갓핸드의 손이 천천히 릴리의 손 위에 올라왔다.
텔레포트 게이트의 마력로를 작동시키는 손이었다.
“이기적이라고 욕하세요. 당신의 헌신과 배려를 짓밟은 멍청한 놈이라고 욕하세요. 하지만, 나는, 당신 앞에서는…… 스스로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요.”
“갓핸드……!”
“당신을 남겨 두고 혼자 살아남아서, 영원한 삶 동안 후회하느니…….”
갓핸드는 릴리의 손을 꼭 쥐고는, 천천히, 게이트의 마력로에서 떼어 놓았다.
우르르…….
게이트를 이루던 마법석이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말을 잃은 릴리의 손을 갓핸드가 꼭 붙잡았다.
“찰나라도 좋아요. 당신과 함께 할래요.”
“…….”
“릴리.”
온 사방에서 괴물들이 우글거리며 몰려오는 이곳에서, 피와 재로 범벅이 된 채로.
떨리는 연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갓핸드가 수줍게 물었다.
“나랑 결혼해 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