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22
◈ 422. [STAGE 20] 해적 퇴치 (2)
일반적인 괴수라면 진작 목숨이 끊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타격을 입었지만.
베르나르트 포커는 악몽 군단장이었다.
게다가 ‘유령’ 카테고리의 괴수답게, 치사(致死)에 이르는 대미지를 입고도 몇 초간 더 움직일 수 있는 기믹을 보유하고 있었다.
《……흐흐흐흐.》
갈가리 찢긴 온몸에서 희뿌연 영체를 흩뿌리며, 유령해적 군단의 우두머리는 사악하게 웃었다.
《너희가 이겼다, 인간. ……하지만.》
다음 순간, 포커는 형체를 잃었다.
제독 모자도, 코트도, 대포도 대검도 놓아 버리고, 그저 한 마리 영락한 유령이 되어, 나를 향해 쏘아졌다.
촤아아악!
엑토플라즘으로 이뤄진 제 몸의 조각을 뒤로 흩뿌리며 유령이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나는 무심하게 그런 괴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차피 수틀렸으니, 판 한 번 뒤집어엎고 가는 정도의 진상은 부리게 해 달라고-!》
포커가 커다랗게 웃어젖히며 희뿌연 영체의 팔을 내게 뻗어 왔고,
퍼억-!
그런 포커의 마지막 공격을, 내 앞에 선 토르켈이 분쇄했다.
토르켈의 손에 들린 [여신이 축복한 메이스]가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망령의 마지막 육신을 으스러뜨렸다.
최후의 최후에 시도한 발악마저 저지당한 적장의 잔해를 노려보며, 나는 짧게 으르렁댔다.
“나가 이 자식아.”
《흐하하하, 훌륭하다, 망할 뭍 놈들…….》
포커는 흩어지는 허망한 웃음과 함께 완전히 소멸했다.
《너희가 과연 언제까지 이겨나갈 수 있을지, 즐겁게 지켜보마…….》
거대한 적의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토르켈이 긴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나는 그런 토르켈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고생했어. 토르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거짓말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내리 쏟아지던 폭풍우가 그치더니, 어느새 눈부신 뙤약볕만이 남았다.
적장이 소멸했고, 동시에 [폭풍우 치는 바다]의 효과가 끝난 것이다.
물에 젖은 남쪽 벌판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비 갠 후의 풍경에는 눈이 멀어 버릴 듯한 선명함이 있었다. 일순 성벽 위의 모두는 말문을 잃고 그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전우들이여!”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내가 주위의 영웅들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승리했다-!”
내가 번쩍 팔을 치켜 올리자, 주위의 영웅들이 그에 호응하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는 뒤이어 성벽 아래의 병사들에게도 외쳤다.
“반복해서 선포한다! 나의 사람들아! 우리는 승리했다!”
와아아아-!
병사들이 투구를 벗어 위로 던지며 환호했다.
나에게도, 그리고 영웅과 병사들에게도.
이게 대체 얼마만의 전투 승리 후 연설인지 모르겠다.
나는 목소리에 실리는 열기를 숨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난 며칠, 모두가 밤낮없이 훈련하고 또 준비했기에, 이번 방어전은 어떤 피해도 없이 괴수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동안 벌인 악몽 군단장과의 방어전 중 최초로.
이쪽의 피해는 전무한 채로, 놈들을 격멸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 있었고, 또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쪽이 ‘아주 잘 싸웠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 정말로 잘 싸웠다.’
내가 없던 반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니, 그 이상으로.
영웅과 병사들 모두 잘 제련된 상태로 전투에 숙련되어 있었다. 일사분란하게 내가 지시하는 대로 쏘고, 막고, 움직였다.
내가 지난 반년 동안 스스로를 찾아 싸우는 동안 정신적으로 성장했듯이.
그 반년 동안, 나 없이 전투를 치러오며…… 나의 영웅과 병사들 또한 성장한 것이다.
“여러분 모두에게 약속하마.”
숨을 가다듬은 뒤,
나는 이곳의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앞으로도 나는 여러분의 가장 앞에 서서 깃발을 흔들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고,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뭐라 말하든 상관없다는 듯 환호성만 내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을 구하고 괴물을 죽인다는 이곳 괴수전선의 기치를, 마지막까지 지켜 내 보이겠다.”
이 모든 영웅과 병사들 중 몇 명이나 내 말의 진의를 이해할까.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이들 모두가, 나를 믿고 지금까지 기다려준 사람들이므로.
나의 진심을 전할 뿐이다.
“이제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더 이상 헤매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이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
모두를 한 번 쭉 둘러본 뒤, 나는 크게 외쳤다.
“그러니 여러분도, 나와 함께 해다오!”
오늘처럼 수월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날이 언제고 올 것이다.
많은 죽음, 많은 고통, 많은 슬픔이 또 다시 이곳 전선을 뒤덮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역경이 닥쳐오든 간에.
나는 깃발을 들고 여러분의 앞에 서 있겠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나의 뒤에 여러분이 서 있을 것을 믿고서.
폭풍우가 그치면 햇살이 드리우듯이.
우리에게 남은 이 기나긴 역경을 모두 헤치고 나면…… 눈부신 진엔딩이 도래할 것을 믿고서.
각자의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을 둘러본 뒤, 나는 씩 웃으며 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자! 승리를 축하하자!”
그리고, 모두가 가장 기다렸을 말을 외쳐 주었다.
“연회를 준비해라-!”
***
[STAGE 20 – CLEAR!] [STAGE MVP – 루카스(SSR), 데미안(EX), 토르켈(SR)] [레벨업 캐릭터]– 토르켈(SR) Lv.50 (↑1) (3차 전직이 가능합니다!)
– 그 외 20인
[사망 캐릭터]– 없음
– 없음
[획득 아이템]– 유령해적 군단 마석 : 340개
– 유령사략함장 마력핵(SSR) : 1개
[스테이지 클리어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하여 주십시오.]– 해적의 랜덤 보상 상자 : 10개
>> Get Ready For The Next STAGE
>> [Next STAGE : 에버블랙]
***
방어전이 끝나고 나면, 괴수의 사체에서 쓸 만한 재료를 채취하고 소각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오늘은 이 과정에 하나의 단계가 더 추가되었다.
그것은 바로…….
“물고기다-!”
온 바닥에 흩뿌려진 생선들을 회수하는 것!
유령해적 군단의 [폭풍우 치는 바다]는 남쪽 망망대해 어딘가와 하늘을 냅다 연결해 버리는 무식한 스킬이었다.
자연히 바닷물과 함께 온갖 생선들이 휩쓸려 함께 떨어졌다.
남쪽 벌판에 고인 바닷물 속에는 비늘을 반짝이는 생선들이 잔뜩 쏟아진 채 펄떡거리고 있었다.
생선 뿐 아니라 문어, 오징어, 조개, 새우 등등, 보기 드문 온갖 해양생물들이 불쌍하게도 휩쓸려서 지상 한 가운데에 떨어졌다.
내버려 둬봐야 말라죽을 뿐이니, 오늘 연회에서 일용할 양식으로 활용하는 게 낫겠지.
“야호! 물고기 파티다!”
에반젤린이 연신 환호를 내뱉더니, 머리 위에 큼지막한 광주리를 지고는 벌판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크로스로드는 내륙에 위치한 도시이기에, 평소에는 생선을 볼 일이 드물다. 당연히 맛볼 일도 드물다.
에반젤린은 평소에 못 먹던 해산물을 양껏 먹을 생각에 신이 난 것인지, 입가의 침을 닦을 생각도 않고 열심히 광주리를 채웠다.
다른 영웅과 병사들도 이 느닷없는 해산물 축제에 신이 난 것인지 각자의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우고 생선 회수에 합류했다.
“으아아악! 떼줘! 떼달라고!”
커다란 문어 하나에게 팔다리가 꽁꽁 묶인 채 비명을 지르는 쿠일란 쪽을 보다가,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어려운 임무를 맡겼는데,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군.”
역시 허리춤에 커다란 광주리를 찬 루카스가 허허 웃어 보였다.
“주군께서는 저희 역량에 맡는 임무를 맡겨 주셨습니다. 마지막에 조금 오버해서 비공함을 무리시킨 건 저희지요.”
비공함 제로니모에 타고 요격을 나섰던 영웅들은 모두 무사했다.
제로니모는 불시착했고, 그 불시착에 휘말려 다들 조금 현기증을 겪었지만, 지금은 멀쩡하다는 모양이다.
“와…… 조개 진짜 오랜만에 보네요.”
“줄로 꿰어 목걸이를 만들자꾸나! 어서! 어서!”
베르단디와 더스크 브링어는 눈을 반짝이며 조개를 줍고 있다. 다들 신났군.
이렇게 뜻밖의 생선 수확제가 열리고, 모두 싱글벙글하며 저녁에 먹을 생선을 광주리 가득 채우고 있는데-
“황자님!”
데미안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나는 의아하게 그쪽을 봤다. 왜 그래?
“새…… 생선들 사이에…….”
“사이에?”
“인어! 인어가 있었어요!”
데미안의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인어?! 어째서 인어가?!
“그렇구나! 남쪽 바다에 [폭풍우 치는 바다]로 게이트가 열리니까, 그쪽에 있던 인어가 사고로 휘말린 거야……!”
뜻밖의 사태에 이마를 탁 친 나는 데미안을 보고 물었다.
“지금 어디에 있는데?”
“저쪽에 모셔 뒀어요! 제가 응급처치를 해두긴 했는데, 이, 일단 황자님께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잘 했어, 데미안! 안내해!”
한때 4대 이종족 중 하나로 일컬어지던 인어종은 100년 전 종족전쟁 이후, 이곳 대륙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남은 것은 혼혈들뿐이라고.
그런데 아직 이곳에 남은 이들이 있었던 걸까?
여러 생각을 품으며 나는 데미안이 안내한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니, 인어는 인어인데.”
내 상상과는 전혀 딴판인 존재가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데미안의 귓가에 속삭였다.
“보통 인어라고 하면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이 물고기 아니야? 이 분은 왜 반대야……?!”
“죄, 죄송해요, 저도 인어는 처음 뵈어서……!”
당황한 데미안도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긴 갈색 다리를 거만하게 꼬아 앉은 이 인어 분은…… 그러니까, 다리만 사람이었다. 허리 위로는 비늘이 반짝이는 물고기였다.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힘들어하던 생선의 커다란 눈이 빙글 돌더니 나를 보았다. 아니 이래서야 그냥 물고기잖아!
‘이게 인어종의 원래 형태란 말인가?!’
내 동심은 어디로 가는겨?!
“쯧쯧. 편견을 거두거라, 애쉬.”
그때 내 뒤로 조개를 한가득 광주리에 담은 더스크 브링어가 나타났다.
손에도 큰 조개를 들고 쫑쫑 걸어오는 꼬락서니가 무슨 해달 같다.
“인어종은 바다에서는 물고기의 형태를 띠지만, 지상에 나오면 신체를 활동하기 편하게 바꿀 수 있는 셰이프시프터(Shape-shifter)다.”
“어…… 그러니까, 변신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뭐 그렇지. 수행의 경지에 따라 변화 정도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이 인어는 신체의 절반까지 바꿀 수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는 말씀은……?”
“변형 부위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지. 이 친구도 부위를 바꿀 수 있을 게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인어의 온몸이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봐라, 변하지 않느냐! 하하, 어떠냐? 과인 좀 박학다식하지 않느냐?”
“오, 오오……! 신기해……!”
이 신기한 폴리모프(Polymorph)? 셰이프시프팅(Shape-shifting)? 좌우지간 변신을 나는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번쩍!
“…….”
“…….”
인어는 좌반신이 사람, 우반신이 물고기로 변했다…….
변신을 끝내고도 밸런스를 못 잡아서 인어는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에서 퍼덕거렸다. 나도 더스크 브링어도 이 광경을 보며 침묵했다. 이게 뭐여…….
그때였다.
“잠시만요, 제가 이 분과 대화를 해볼게요!”
소식을 들었는지, 세레나데가 달려왔다.
그래. 세레나데는 인어와 인간 사이의 혼혈이지. 이 사태를 해결할 방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어의 앞에 쪼그려 앉은 세레나데는 손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그러자 인어도 하나뿐인 손으로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화답했다. 저건 뭐하는 거지?
그러자 더스크 브링어가 큰 조개를 바닥에 탁탁 깨서 내용물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인어들은 원래 수화(手話)로 소통한다. 물속에서 목소리로 대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
“아, 과연.”
납득하는 내 앞에서 반인반어와 세레나데는 계속 무어라 수화를 나누더니, 인어는 마침내 깨달았다는 듯 지느러미로 바닥을 찰싹! 치고는-
번쩍!
다시 한 번 변신.
이윽고 푸른빛이 사그라지자, 그곳에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인…… 전형적인 동화 속 이미지 그대로인 인어 남성이 한 명 있었다.
구릿빛 근육질 상반신은 전사의 그것이었고, 인어종 특유의 푸른 머리칼은 검푸를 정도로 짙었다.
굵은 눈썹 아래로 사파이어 같은 두 눈이 빛을 뿜는 듯했다. 눈썹도, 그리고 턱 아래 풍성하게 자라난 수염도 푸른색이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는 진주로 엮은 왕관이…….
……예? 왕관?
두 손을 쓸 수 있게 된 그 인어는 유창하게(?) 수화를 구사했고, 1분 정도 더 수화를 나눈 세레나데가 우리에게 그 인어를 소개해주었다.
“소개하겠습니다, 전하. 이분께서는 이 대륙에 남은 인어족의 마지막 왕…….”
세레나데의 얼굴에는 살짝의 당혹이 섞여 있었다.
“……킹 포세이돈 13세 님이십니다.”
이름을 들은 내가 더 당황했다.
아니, 인어왕이 여기서 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