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44
◈ 444. [Side Story] All The Kings (4)
데미안의 마탄에 붉은 거미 여왕의 머리가 날아갔다.
직후, 거짓말처럼 거미들이 멈췄다.
전역에 남아 있던 모든 붉은 거미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정지했다. 머리를 싸매고 덜덜 떨던 왕들은 그런 거미들의 모습에 눈을 끔뻑였다.
“머…… 멈췄어?”
“이게 무슨 일이지?”
“혹시, 끝난 건가……?”
그런 왕들에게 다가가며 내가 싱긋 웃었다.
“정말 다행히도, 더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저희 쪽 저격수가 적 여왕을 수색해내서…… 방금 제거했습니다.”
“그, 그렇다면……?”
“네. 당장의 방어전은 끝났습니다.”
나는 잠시 성벽 아래를 보았다. 왕들도 주춤거리며 그쪽을 보았다.
거미들의 시체가 언덕을 이루어 쌓여 있었다. 아직 숨이 붙은 놈들도 모두 움직임을 정지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이 기괴한 풍경을 보며 나는 덧붙였다.
“또 몇 주 뒤면 새로운 괴수들이 몰려오겠지만요.”
“또, 또 온다고요……? 이만한 규모가?”
“그렇습니다. 이 이상이 온 적도 많아요…… 뭐 어쨌든, 오늘은 상황 종료. 우리의 승리입니다.”
몸을 돌린 나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전군! 모두 수고했다!”
척!
병사들이 일제히 내 쪽을 보았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미 군단은 내가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맞닥뜨렸던 괴수 군단이다. 그때 크로스로드는 자그마치 수천이나 되는 병력을 잃어야 했다.”
튜토리얼 스테이지 당시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처절하고 힘겨웠던 전투, 죽어나가던 아군 병사들…….
나는 손을 뻗어 성벽 위를 쭉 훑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측의 사상자는 한 명도 없다.”
그리고 그때 그토록 끔찍하고 강력하던 거미 군단은, 오늘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붉은 거미들은 끝내 성벽을 넘지 못했고, 우리 측 병사들은 잔부상 하나 입지 않았다.
“여러분은 강해졌다!”
나는 한 번 더 힘주어 외쳤다.
“우리는 강해졌다! 자랑스럽구나, 나의 전사들아!”
틀림없이 우리는 성장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다.
나는 환히 웃으며 주먹을 쥐고 들어올렸다.
“오늘은 편히 먹고 마시자!”
와아아아-!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크로스로드의 성벽 위는 승리의 포효로 가득 찼다. 화포소리만큼이나 귓가가 쩌렁쩌렁할 정도였다.
한껏 고양된 병사들에게서 돌아선 나는 왕들을 바라보며 슬쩍 눈웃음을 쳤다.
“우리 전선이 손님분들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군요.”
왕들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압도적인 괴수의 군세를 직접 목격하고, 실제 코앞에서 피습까지 당한 데다, 또 그걸 단숨에 승리로 돌리고 병사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여 줬으니.
정신이 없을 것이다. 생각할 것도 많을 테고.
나는 성벽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가리켰다.
“자, 내려가시죠. 하던 이야기 마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왕들을 다시 안전하게 호텔로 모시게 하고.
전선의 뒷정리를 지켜보는데, 루카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굳이 거미들과 격돌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데미안이 거미 여왕을 저격해서 끝내면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맞아.”
애초부터 여왕의 위치를 특정해 둔 상태였고. 데미안은 저격을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신호를 줄 때까지.
보스만 잡으면 모두 움직임을 멈추는 데다, 그 보스 개체는 전투력이 취약한 여왕 거미 개체.
안전하고 먼 곳에서 지휘를 하는 타입이지만, 데미안에게 이 정도 장거리 저격은 일도 아니다.
애초에 훨씬 쉽게 스테이지를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극적 효과가 없잖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먼 곳에서 안전하게 살아오며 이 거대한 위협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괴수란 어떤 존재인지.
놈들이 인간에게 지닌 영혼 밑바닥에서부터의 증오가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이곳 괴수전선의 사람들이 어떤 싸움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갈 것인지.
‘따지자면 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요한 쇼였다.
그때 누군가가 휘청거리며 내 쪽으로 왔다. 그녀를 돌아본 나는 빙긋 미소했다.
“수고했다, 바이올렛.”
“……시키신 일은 다 끝냈어요.”
이번에 영입한 도박사 파티 ‘갬블 클럽’의 리더, 환영술사 바이올렛이었다. 그녀는 입술이 비죽 튀어나온 채였지만 성실하게 보고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환술영역을 전개, 이곳에 모인 왕들에게 붉은 거미가 달려드는 환상을 보여 줬습니다…… 이러면 된 거죠?”
“잘 했어. 다들 깜빡 속더라.”
그렇다.
붉은 거미 군단의 공격은 진짜였지만, 전투 후반부에 왕들 쪽으로 난입해 온 거미들은 모두 환술이었다.
괴수가 VIP를 공격하게 둘 만큼 우리 수비선이 허술하지 않다. 전부 내가 계획하고 실행한 쇼의 연장이었다.
– 이놈들, 어째 괴수가 아니라 물풍선 같냐! 시원시원하게 잡는 맛은 좋네!
쿠일란 녀석이 이 대사 칠 때는 속이 뜨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짜 괴수가 아니라 바이올렛이 만들어 낸 환상이었으니까…… 이쪽이 주먹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픽픽 쓰러지도록 연출했으니 당연하지.
“괴수의 위협은 소문으로 듣는 것보다,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더 와닿고.”
나는 성벽 위에 고꾸라져 죽은 붉은 거미의 앞에 섰다.
“멀리서 눈으로 보는 것보다, 코앞에서 죽음의 위협으로 직접 느껴 보는 게…… 훨씬 더 와닿지.”
징그러운 거미 괴수는 반쯤 입을 벌리고 뒈진 상태였다.
나는 괜히 발을 뻗어 그런 괴수의 입을 한 번 뻥 차주었다.
“하지만 VIP들 머리를 실제로 괴수 아가리 사이에 들이밀 순 없으니, 유용한 신입 활용해서 이렇게, 간접체험 시켜준 거야.”
대부분의 진실에, 조금의 허풍.
이 정도 비율로 섞어 주면 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완성된다.
그리고 이만큼- 거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는 수준으로 괴수의 위협이 중차대함을 깨닫게 해줬으니.
왕들도 상황을 좀 더 제대로 볼 수 있게 될 테고. 앞으로 이야기하기도 좀 편해지겠지.
“자, 그럼 적당히 겁을 줘놨으니…… 천천히 구워삶아볼까?”
대뜸 채찍부터 후려갈긴 지금 상황.
정신 못 차리는 왕들에게 당근을 먹일 시간이었다.
***
그날 밤.
병사들이 승리 연회를 가지는 동안, 나는 손님들과 함께 만찬을 가졌다.
왕들 중에서 몇 명은 도망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한 명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명색이 왕이라 다들 깜냥이 있는 건지, 아니면 여기서 도망치면 체면이 안 서서인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잘 됐지 뭐.’
만찬장은 나름대로 화려했다.
이 시골 오지에서도 세레나데는 솜씨를 부려서, 황도의 그것에 딱히 꿀리지 않는 코스 요리를 내어 왔다.
하지만 왕들의 시선은 요리가 아니라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맛있는데 먹으면서 듣지. 나 혼자 고기 썰고 있으니 좀 뻘쭘한데.
“오늘 쳐들어온 놈들은 전체 괴수 군단 중 극히 일부입니다.”
황도에서 배운 예법대로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썬 뒤, 우악스럽게 입에 집어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그러면서 나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매번 쳐들어오는 괴수들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그런 괴수들이 더, 그리고 많이 나온다고……?”
“최종적으로는 오늘 거미보다 훨씬 더 강력한 괴수 개체가 수백, 수천 배로 몰려나올 겁니다.”
실제로 게임에서도 그러했다.
3년차 후반부로 가면 괴수들의 파워인플레가 맛이 가 버려서 방어전이 성립이 되질 않는다.
더 이상 크로스로드가 버티지 못하고 함락되기 전에, 이쪽에서 놈들의 본진- 호수왕국 내부 마지막 던전, ‘왕성’을 공격해야 한다.
만약 왕성 공략에 실패하고, 3년차 마지막 날이 되면…….
“감당이 안 되죠.”
문자 그대로 물밀듯 쏟아지는 괴수들의 범람에 크로스로드는 함락. 괴수전선은 붕괴된다.
그 뒤는 뭐, 안 봐도 뻔하지. 괴수 잡는 데에 이골이 난 이곳 전선이 무너지는데, 위쪽 세계라고 무사할 리가 없잖은가.
“지금 당장은 이곳의 병력만으로 잘 막아 내고 있지요. 하지만 점점 감당하기 버거워질 겁니다. 그리고 놈들이 마침내 이곳 괴수전선을 돌파한다면…….”
나는 왕들을 둘러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오늘 직접 보셨으니 이제 잘 아시겠죠. 어떤 일이 벌어질지.”
괴수전선이기에 막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괴수전선이 무너진다면.
남쪽에서부터 괴수의 군세가 파도처럼 몰아닥치면, 다른 도시나 국가들을 고스란히 멸망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좀 더 대놓고 말하자면, 도움 정도가 아니라 여러분의 전력(全力)이 필요합니다.”
나는 슬슬 이 왕들을 여기 모은 목적을 입에 담았다.
“저는 여러분이 가진 거 다 싸들고 와서 이곳 괴수전선에서 함께 싸워 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안 그랬다간, 여러분과 여러분의 사람들도 다 죽을 테니까.”
왕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까 낮과는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실제 괴수와 대면하지 않았을 때에는 내 말이 텅 빈 협박으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 직접 괴수를 목도했다. 바로 코앞에서 공격 받았다.
그 위협이 자신의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것을, 아주 쉽게 상상할 수 있겠지.
“제 목적은 페르난데스와의 정쟁(政爭) 따위가 아닙니다. 이 세계를 지켜 내는 것입니다.”
실재하는 위협이 있고.
“그리고 세계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도 협력해 주셔야겠습니다.”
대의와 명분이 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무엇이 필요하냐?
“그리고 협력을 해 주신다면- 여러분 또한 이곳 괴수전선에 합류해 주신다면, 각자가 바라시는 일을 기꺼이 제공하겠습니다.”
바로 당근이다.
이렇게 거대한 위협을 코앞에 두고서도 결국 사람은 당근으로 움직인다. 뭐 어쩌겠는가? 이것 또한 순리라면 순리일 것인데.
어쩌면 가장 기다렸을 화두였다. 왕들의 눈이 번뜩였다.
나는 이곳에 모인 왕들 중 가장 필요하고 또 강력한 세력- 네 명의 이종족 왕들을 차례로 둘러본 뒤, 나지막이 내뱉었다.
“우선, 이종족 차별 철폐.”
“……!”
“백년간 이어진 이종족 노예제를 없애겠습니다. 자치구 거주 제한을 없애고, 고향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이종족 노예제가 도입된 가장 큰 이유는 인류가 전쟁의 승자임을 공고히 하고, 제도적으로 이종족을 짓밟아 두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처음부터 이것을 없앨 생각이었다.
뭐 내가 고결한 뜻을 품었다거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다 왔기 때문이라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다.
이것이 이들 이종족을 끌어들일 가장 효과적인 카드이고.
무엇보다, 괴수 앞에서는 종족이나 신분 같은 구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괴수들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공평하게 죽이지요. 제국민이라고 먼저 죽이지 않고, 이종족이라고 나중에 죽이지도 않습니다.”
괴수들의 목적은 단순하다.
사람을 죽인다. 세상을 멸망시킨다.
그렇기에 그에 맞서는 이곳 괴수전선의 목적 또한 단순하다.
사람을 구한다. 세상을 지킨다.
“괴수전선의 투쟁에는 이념이 없습니다. 국가도 없고, 종족도 없습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오직 성벽 뒤의 사람을 구하겠다는 단순한 목적뿐입니다.”
단순하기에 숭고하다.
우리는 오직 생(生)을 위해 싸운다. 이 전선에 합류하는 다른 이들도 내가 세운 기치를 따라야 한다.
나는 이것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괴수전선은 이념과 국가와 종족으로 갈라서서 내분해서는 안 됩니다. 괴수전선에서 우선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의 목숨만을 가진 것은 마찬가지고, 그 목숨값에 차별을 둘 순 없는 노릇이다.
이종족을 고기방패로 사용하고 인간들만 살린다거나, 하는 짓을 애초에 막기 위해서.
그리고 이 보증을 통해 이종족들이 마음 놓고 참전하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괴수는 세상 모두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싸워야 이길 수 있는 강적이기에.
우리 모두는 동등한 위치에 서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신분을 백 년 전으로 복구시켜줄 생각이었다.
“어떻습니까?”
나는 깍지를 끼며 물었다.
“제법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너희가 이걸 어떻게 거절할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