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54
◈ 454. [Side Story] 황제의 이름으로 (3)
강의 북쪽에서 황도방위군이 서로 갈라서 싸우는 것과 동시에.
강의 남쪽. 이곳 세계수호전선에서 갈라졌던 세력들은 삽시간에 수습되었다.
“애쉬 황자, 우리 마음 알지요?”
“그쪽을 배신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우리도 살아야 하니까…….”
잠깐 나에게 무기를 겨누었던 세력의 장들이 비굴하게 빌며 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나는 별 말 없이 피식 웃기만 했다. 다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애초에 이들이 나를 배신하고 페르난데스에게 붙으려던 이유는 간단했다. 페르난데스가 이후 세계의 패권을 거머쥐리라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황제가 돌아왔고, 또 내 뒤에 선 이상.
다시 나에게 붙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모두가 눈치 챘다. 그리고 용서를 비는 게 빠를수록 좋다는 판단 하에 즉각 나에게 엎드린 것이다.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그들에게 나는 미소하며 손을 휘저었다.
“괜찮습니다. 다 이해합니다.”
못 믿을 새끼들.
하지만 힘의 논리 앞에 솔직한 자식들이기도 하다.
내가 등 뒤에 황제를 업고 있는 이상은, 내 밑에서 기어 줄 것이다.
“애쉬 황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역시 도량이 넓구려……!”
내가 그들을 문책하지 않고 다시 받아들여주자, 그들은 내게 고개를 조아리며 고마워했다.
‘뭘. 나야말로 이번에 본색 드러내줘서 고맙지.’
이들은 모두 언제든 내 적이 될 수 있는 이들.
반대로, 끝까지 내 쪽에 있던 나머지 절반이 진짜 믿을 수 있는 이들이다.
이번에 알아서 판별되어줘서 고마울 뿐이다.
한편, 강 북쪽의 상황도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물러난다!”
페르난데스가 소리쳤다.
여전히 페르난데스를 따르는 절반 정도의 황도방위군이, 돌아선 나머지 황도방위군들을 향해 무기를 겨눈 채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황도 뉴 테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아바마마. 그리고…… 애쉬.”
애초에 페르난데스도 전력(全力)을 이끌고 나온 것이 아니다.
휘하의 아이기스 특무대, 그리고 마법병단은 뉴 테라에서 대기 중일 터.
이번은 어디까지나 전초전으로, 기왕이면 자신은 별 피해 없이 우리 쪽에 내분을 일으켜 타격을 입히려는 속셈이었겠지.
안타깝게도, 내분으로 타격을 입은 건 황도방위군 쪽이지만 말이다.
우르르…….
둘로 쪼개진 황도방위군은 서로 창칼은 겨누었지만, 차마 서로를 향해 휘두르지는 못한 채 거리를 벌렸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부대로 함께 동고동락해온 이들이다.
제국에 대한 충성이 시험받는 이런 상황이라 해도, 당장 서로 공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돌아가자, 이랴!”
페르난데스가 먼저 말머리를 돌렸고, 그를 따르는 절반 정도의 황도방위군 또한 천천히 진을 물려 북쪽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페르난데스를 보다가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의 저격수, 데미안이 천천히 장총의 조준경에서 눈을 떼어 냈다.
“데미안. 어때?”
“네. 황자님의 말씀대로에요.”
데미안은 페르난데스의 등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환술이에요. 페르난데스 전하께서는 애초에 이곳에 오시지도 않은 모양이에요.”
그럼 그렇지.
페르난데스는 이런 위험한 곳에 직접 몸을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다.
본체는 뉴 테라 깊은 곳에 꽁꽁 숨은 채, 환술로 분신컨트롤이나 하고 있겠지.
“페르난데스를 보내 주는 겁니까?”
“지금 공격해 사로잡는 게 어떻습니까?”
그런 사정을 모르는 다른 왕들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추격은 않을 겁니다. 마땅한 수단도 없으니까요.”
분신 쫓아서 잡아서 뭐할 거야.
보내 주고 당장 강을 건널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일부러 보내 주는 게 이득이다.
그래야 이쪽이 준비한 다음 수를 쓸 수 있거든.
강의 건너편에 남은 황도방위군의 병사들이 우물쭈물하며 강을 따라 섰다.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제국의 충성스러운 군인들이여, 잘 남아 주었다. 그대들의 충성은 폐하께서 반드시 기억해 주실 것이다.”
불안해하던 그들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그러자 내 뒤에 서 있던 황제가 혀를 끌끌 찼다.
“……나팔수 역할을 아주 잘 하는구나, 애쉬.”
“위정자의 기본 소양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자주 맡겨 주십시오.”
“하여간 내 아들 아니랄까봐 말하는 꼬락서니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황제는 이리스 강의 기슭에 서더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그나저나, 이곳의 다리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이곳 이리스 다리는 네 증조부께서 황위에 오른 첫 해 지은 다리였는데. 쓸려나간 것을 보니 마음이 안 좋구나.”
“다리야 새로 지으면 되지요.”
“그래. 다리야 복구하면 되지. 하지만 당장은 어떻게 건널 셈이냐? 멀리 우회할 테냐? 시일이 꽤 걸릴 것인데.”
“아니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손에 들린 깃발을 흔들어 보였다.
“임시 다리는 제가 지을 수 있거든요.”
직후, 나는 깃발을 땅에 우악스럽게 박아 넣었다.
화아아아악-!
궁극기 [제국령선포].
내 몸에서 회색 마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거대한 벽의 형상을 이루며- 강물 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요새 건설 스킬이지만, 다양한 형태 응용이 가능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요새보다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쓰고 있다…….
쿵! 쿠구궁!
이윽고 완성된 간이 다리 위에 올라선 나는 반대편을 향해 팔을 뻗어 보였다.
“자, 먼저 건너시지요, 아바마마.”
“이 회색 마력…… 그리고 이 마력실체화는…….”
황제는 놀란 듯 나를 보더니, 이윽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래, 그런 건가.”
“……?”
나는 멀뚱하게 눈을 깜빡였다. 뭐가 그런 건데?
하지만 황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나를 지나쳐서는, 강 건너편으로 가 버렸다.
뭐요. 뭔 얘기야? 뭘 의미심장하게 혼자 복선 깔고 계신 건데!
***
내가 [제국령선포]로 지은 다리를 통해, 세계수호전선의 모든 이들이 강을 건넜다.
이후 즉시 황도로 진군하지는 않았다.
황제도 막 현세로 귀환했고, 황도방위군의 일부까지 합류했으니 편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거라. 이 정도 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
황제는 입은 그렇게 말했지만,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괜히 허세 부리지 말고 좀 쉬십쇼. 아무리 대단하신 분이어도 그 영계에 그렇게 오래 박혀 계셨는데. 회복은 하셔야지.
해서 강을 건너고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진을 차리고 하루만 휴식하기로 했다.
어차피 조금 전 일도 있고 해서, 동맹의 모든 왕들 불러다가 서열정리 겸 기강다지기 한 번 더 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니까.
가장 큰 막사를 차리고 침상을 준비했다. 황제는 의연한 척하더니 침상에 몸이 닿자마자 거의 고꾸라지듯이 쓰러졌다.
미동도 않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혹시 붕어(崩御)하신 것 아니지요?”
“……불손한 것. 그게 애비에게 할 소리냐?”
아니 거의 급사(急死)하시는 수준으로 자빠지시길래 돌아가셨나 걱정돼서 여쭤본 겁니다.
“영계에서도 겨우 살아 돌아왔는데, 고작 피로 좀 쌓였기로소니 여기서 엎어져 죽겠느냐…… 조금 피곤한 것뿐이다.”
“푹 쉬시지요. 나가 보겠습니다.”
“잠깐 기다려 보거라.”
베개에 코를 박은 채로 황제가 웅얼거렸다.
“짐이 자리를 비운 동안, 제국이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지. 페르난데스는 황도에서 무얼 꾸미고 있는지. 모두 소상히 말해 보거라.”
“좀 쉬고 나서 들으셔도 될 텐데.”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마음 편히 쉴 수조차 없을 듯하구나. 어서 말해 보거라.”
나는 베개에 고개를 파묻은 황제의 옆에 앉아서, 간단하게 그동안의 일들을 말해 주었다.
라르크와 페르난데스가 일전을 치룬 것.
라르크가 패배한 것.
페르난데스는 괴수에게 세계가 멸망하리라 확신하고 있다는 것.
페르난데스가 황도 지하에 셧다운 프로토콜을 설치 중인 것. 황도의 모든 시민을 녹여 죽이고 영계로 떠날 계획인 것. 등등…….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한동안 침묵하던 황제는 천천히 한숨을 내뱉었다.
“짐은 이 제국에서 모르는 것이 없다 생각했다. 전능(全能)하지는 못하더라도, 전지(全知)에는 한없이 가깝다 생각했지.”
“…….”
“하지만 오만이었구나. 바로 옆 아들의 속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제라도 바로잡으면 됩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잘못되기 전에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려고 나도 온 것이고.
“……짐은 고갈되었다. 애쉬.”
황제는 천천히 몸을 돌려 침대에 바로 누웠다.
그의 신화적인 얼굴에, 처음으로 인간의 것과 같은 깊은 피로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한동안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구나. 내가 잠든 동안, 계속해서 나의 권한대행으로서…… 황제의 대리인으로서, 네 형을 막아 낼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아바마마.”
안 그래도 할 일이었다. 황제의 이름을 등에 업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지.
“그러면 부탁하마. 너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듯하구나.”
“한 가지 여쭙고 싶은데, 권한대행이라 함은 어느 정도까지의 권한을 제게 주신다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전권(全權)이다.”
황제의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황제는 이 나라의 모든 것에 대한 권한을 가진다. 그것은 잘라내거나 일부만 인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네가 나의 권한대행이라는 것은,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
“내가 권한을 거두기 전까지, 너는 이 나라의 황제와 진배없다. 그 권한으로 이 제국을 지켜내 보거라.”
황제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그러면 짐은 조금, 쉬고 오마…….”
“편히 주무십시오. 아바마마. 일어나실 즈음에는 모든 상황이 해결되어 있을 겁니다.”
황제는 잠들었다.
평범한 인간처럼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잠들었다.
‘아빠 특. 자는 거 같아서 TV 끄려고 하면 안 잔다면서 리모컨 챙겨감.’
선왕 특. 양위를 하니 수렴첨정을 하니 권한을 주니 말만 해놓고 아들 하는 짓 마음에 안 들면 왕권 다시 가져감.
하지만 황제는 이번에는 정말로 깊게 잠든 모양이었다. 말인즉슨 이번에는 리모컨…… 아니, 황권을 실제로 나에게 맡겼다는 뜻이었다.
“……내가 딱히 효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께서 주무시는 동안, 근심거리를 해결해 놓을 정도의 효심은 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팔뚝을 걷어붙였다.
“후딱 해치워 볼까?”
***
우선 우리에게 합류한 황도방위군은 황제 직할의 부대로 임시 편성했다. 황도방위군의 병사들은 감격스러워하며 기꺼이 수용했다.
“다시 폐하의 명령을 받을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또 나는 더스크 브링어에게 이들에 대한 탐문을 요청했다.
“대공. 이들에게서 황도의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내고자 합니다. 도와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러도록 하마. 맡겨 두거라.”
직후 잠시 우물거리던 더스크 브링어가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트라하는, 무사한 게냐?”
황제를 감히 이름으로 부르다니.
한때 제국을 지키던 공국의 여왕이자, 황제와 막역한 사이였던 더스크 브링어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영계에 좀 오래 갇혀 계셨다 보니 지치셨을 뿐입니다. 며칠 푹 쉬시면 회복되실 겁니다.”
“그래, 그렇구나…….”
“하실 말씀이 많으신가 봅니다?”
“멱살 붙잡고 흔들면서 따질 일이야 많지. 하지만, 그보다는.”
더스크 브링어는 쓰게 웃었다.
“……내 기억 속에서 트라하는 언제나 젊고 어린 청년 황제였는데. 오늘 보니 느닷없이 늙었더구나.”
황제는 올해로 예순이 넘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인이라 40대 초반 정도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영계에서 고생 좀 하고 왔더니 외양이 폭삭 나이를 먹어 버렸다.
이제 좀 외모가 자신의 나이를 따라간다고 해야 하려나.
“사람의 세월이란 무섭도다. 트라하가 젊은 청년일 적에, 제 아이가 태어난다며 호들갑을 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갓 태어난 핏덩이인 너의 미들네임을 고심하던 때가 바로 어제처럼 훤한데.”
더스크 브링어는 나를 지그시 보았다.
“트라하는 노인이 되었고, 너는 자라서 청년이 되었구나.”
“하하. 이제 한 번 더 눈을 감았다 뜨시면 저도 늙어서 수염이 주렁주렁 길어 있을 겁니다.”
“……그 모습 또한 보고 싶구나.”
장난스레 답했는데, 더스크 브링어는 씁쓸하게 웃었다.
“세월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늙는다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냐. 사람의 역사가 이어진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냐.”
“…….”
“모두가 흘러가는데, 과인만 옛모습 그대로 이곳에 박제되어 있구나.”
직후 더스크 브링어는 핫! 소리를 내더니 작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이 늙은이가 또 할미다운 감상에 젖었구나. 신경 쓰지 말거라.”
더스크 브링어는 다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황도방위군을 둘로 쪼개 놓은 것은 좋았지만, 이제는 어쩔 셈이냐?”
우리는 이리스 강을 건넜다.
이제 북상하면, 황도는 코앞이다.
문제가 있다면 황도 뉴 테라의 굳건한 방어겠지.
수십 척의 비공함과 마법 시스템, 그리고 아이기스 특무대와 마법병단이 지키는 제국의 심장부.
정면으로 들이받았다간 이쪽이 박살 날 것이다.
“계획의 다음 단계로 가야지요.”
나는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평야를 둘러보았다.
많은 일이 있었던 오늘도 금세 끝나고, 다시 밤이 찾아온다.
그리고 밤에는 쥐새끼들이 움직인다.
나는 이 쥐새끼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열쇠를 침투시킬 겁니다.”
“열쇠?”
“예.”
의아하게 나를 보는 더스크 브링어에게 나는 씩 웃어 보였다.
“황도 뉴 테라의 굳게 잠긴 문을 활짝 열어 줄, 열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