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58
◈ 458. [Side Story] 황도공략전 (3)
황도(皇都) 뉴 테라(New Terra).
대륙 내해(內海)에 닿은 항구도시이자, 전세계 무역과 물류의 중심지.
이 거대한 도시의 남문은 굳게 걸어 잠긴 상태였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높고 두터운 성문 앞으로 왕관을 쓴 이들이 말을 몰고 다가왔다.
그중 선두에 선 작은 체구의 소녀- 높은 은관에 긴 흑발을 휘날리는 드래곤 레이디가 목청을 높여 외쳤다.
“듣거라! 과인은 브링어 공국의 왕인 더스크 브링어다!”
작은 체구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쩌렁쩌렁한 사자후였다.
“세계의 미래를 염려하여 모인 우리, ‘세계수호전선’의 현장지휘관으로 이곳에 왔다!”
그러나, 높은 성벽에서는 어떤 반응도 없다.
그러든 말든 더스크 브링어는 계속했다.
“제 형을 참하고, 제 아비를 해하려 든 패륜아 페르난데스는 들어라! 당장 항복하라! 그러면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묵묵부답.
페르난데스가 코빼기도 비추지 않자, 더스크 브링어는 타깃을 바꾸었다.
“제국의 병사들이여!”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성벽에 대기 중일 제국의 병사들에게 그녀는 외쳤다.
“진짜 황제 트라하 ‘피스메이커’ 에버블랙은 우리 쪽에 있다! 너희는 거짓 황제에게 속고 있다!”
“…….”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을 선택하지 마라! 지금이라도 결단하고, 성문을 열어라! 국민을, 가족을, 동료를 지켜라!”
더스크 브링어는 작은 입을 벌렸다.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지 않겠다면…….”
그녀의 뾰족하게 돋은 이 사이로, 마력광이 불꽃처럼 일렁이며 모여들었다.
“완력으로 부숴 주마.”
드래곤 브레스를 준비하며, 더스크 브링어가 포효했다.
“한때 너희의 나라를 지켰던 수호룡의 후예이며, 너희의 우방이자 방패였던 브링어 공국의 왕이며- 그리고 너희에게 나라를 짓밟힌 폐허 위의 여왕으로서! 망설이지 않고 너희의 성문을 불태워 주겠노라!”
번쩍-!
더스크 브링어의 입에서 응축된 마력이 빔 형태로 쏘아졌다.
용혈이 부여한 권능 중 하나, 원초적 마력 방사(放射)인 드래곤 브레스가 뉴 테라의 남문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콰과과과광!
막혔다.
성벽에 펼쳐진 마법 배리어가 선명한 푸른 빛을 발하며 붉은 브레스를 모조리 상쇄해냈다.
“쳇!”
더스크 브링어는 혀를 차며 입가로 작은 불꽃을 홱 흘렸다.
“고대의 보호 마법인가…… 이거 한두 방으론 안 뚫리겠는데.”
그래도 드래곤 브레스의 위력은 확실했다.
보호 마법을 펼치던 성벽의 아티팩트들이 일제히 마력이 방전되어, 스파크를 튀기며 침묵했다.
계속해서 드래곤 브레스 타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일까.
쿠구구구…….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호오, 드디어 과인과 대화할 마음이 들었느냐?”
더스크 브링어가 반색했지만, 그런 의도로 문을 연 것이 아니었다.
척! 척! 척!
열린 문틈으로 정연하게 갑옷을 차려입은 병력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황도방위군 중 페르난데스 쪽에 남은 이들이었다.
번쩍!
기이이잉……!
동시에 성벽 위에 마법병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수백 개의 마법 아티팩트들이 공격 태세를 취하며 더스크 브링어를 향해 겨누어졌고, 하늘에는 날렵하게 떠오른 비공함들이 천천히 고도를 낮추며 접근해 왔다.
“핫! 벌집을 들쑤셨더니 잔뜩 나타나는구나!”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제국군을 살피며 더스크 브링어가 웃는데, 뒤에서 계속해서 보고가 들려왔다.
“보고드립니다, 각하! 후방에서도 제국군이 출현!”
“뭬라?”
“매복입니다! 저 깃발은…… 제국군 제2군단과 제3군단의 깃발!”
“후방에서부터 우리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더스크 브링어는 놀라서 뒤를 보았다.
부관들의 보고대로, 저 멀리 후방에서 어느새 나타난 일련의 군단들이 넓게 이쪽을 포위해오고 있었다.
제국의 국경을 지키는 것이 제1군단, 황도 뉴 테라 인근을 지키는 것이 황도방위군이라면, 나머지 제국의 영토를 수호하는 것이 바로 제2군단과 제3군단.
이들은 어느새 황도로 소환되어 페르난데스의 명령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얌전히 두들겨 맞는 수성전을 펼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는 건가.”
성문의 황도방위군. 성벽의 마법병단. 후방을 막아선 제2군단과 제3군단.
사방에서 조여오는 제국군의 진영을 살피며 더스크 브링어가 이를 갈았다.
그런 그녀에게 요정여왕 스쿨드와 드워프왕 켈리손이 다급하게 물었다.
“용혈의 공왕이여, 이제 어찌할 셈이죠?”
“이대로 충돌하면 우리쪽이 필패요!”
급한 대로 그러모은 병력의 덩치는 있었지만.
급하게 모았기에, 현재 세계수호전선은 하나의 군대로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처럼 정직한 정면승부 상황에서는 결코 제국군을 이길 수 없었다.
“……애쉬가 지시한 대로 합시다.”
더스크 브링어는 말머리를 홱 돌렸다.
“퇴각합시다!”
“……!”
“모두 들어라! 퇴로를 뚫는다! 포위가 완성되기 전에 일점으로 돌파한다! 자, 과인을 따르라-!”
더스크 브링어는 맹렬한 도발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매끄럽게 군의 방향을 돌리고 이곳 전역을 빠져나갈 준비를 했다.
“퇴각을 준비하라! 돌진 대형으로!”
“돌진 대형으로-!”
사전에 어설프나마 훈련한 대로 진형이 갖추어졌다.
이곳에 모인 몰락한 왕 세력 중 단일 군대로는 가장 강한 브링어 공국의 기사단이 선두에 섰고, 나머지 세력들이 그 뒤로 차례차례 집결했다.
“빠져나갑시다! 이랴! 이랴-!”
더스크 브링어의 호령과 함께 세계수호전선의 병력은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후방에서 포위해 오는 제국군 제2군단과 제3군단은 모두 중장기사단. 움직임이 굼떴다.
“길을 내라-!”
포위가 완성되기 전에 세계수호전선의 병력은 헐레벌떡 달려 나갔고, 두 군단의 사이를 뚫어내며 다시 남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
“…….”
이 모습을 레이나는 성벽 위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브레스 한 번 쏘고 이쪽이 반격하려 하자 그대로 도망치는 꼴이라니.
“현관벨 울리고 도망치는 어린애도 아니고, 이게 무슨…….”
“레이나 경, 추격을 명하지 않으십니까?”
부관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레이나는 바로 답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렸다.
‘애쉬 황자는 보통내기가 아니야. 뭔가 꾸미고 있을 거다.’
레이나는 애쉬의 의중을 파악하려 애썼다.
‘……우리 쪽을 유인해 내려는 건가?’
굳이 성문 앞까지 왔다가 다시 도망치는 것은, 이쪽의 추격을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괜히 저쪽의 도발에 당해서 이쪽이 깊이 추격을 나섰다가는 애쉬의 함정에 빠질지도 모른다.
‘당장 어제 보았던 제로니모만 해도, 정체불명의 은신 기능을 갖추고 있어…….’
추격을 나간 이쪽의 병력을 은신 중인 복병이 기습해 온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럼 밖에 나간 병력을 불러들일까요?”
“……아니.”
모처럼 완성한 포위 진형이었다. 그리고 지금 도망치고 있는 저 병력이 세계수호전선의 전력 대부분임은 자명했다.
‘다소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지금 치는 것이 옳다.’
적들은 어중이떠중이 변경의 촌놈들이었다.
하나의 군대로 완성되지도 못한 채, 뒤뚱뒤뚱 도망가는 저 꼴 좀 보라지.
‘애쉬 황자는 대단할지 모르지만, 그가 모은 세력은 별 것 아니다.’
억지로 몸을 부풀린 풍선이나 다름없다.
바늘로 찔러서 헛바람을 빼낼 수 있다면,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판단한 레이나는 명령을 내렸다.
“제2군단과 제3군단은 포위망을 넓히면서 뒤를 잡고, 황도방위군은 기동성을 살려서 저들을 앞질러 막아서도록!”
중장병력인 제2군단과 제3군단이 저들의 발목을 잡으면, 기병 위주 병력인 황도방위군이 넓게 우회해서 저들의 뒤통수를 타격. 포위 섬멸하는 전술이었다.
“비공함대는 한 박자 늦게 천천히 포위를 뒤따른다. 적에게는 은신 비공함이 있다! 언제나 유념하도록!”
“옙!”
“적들은 함정을 파놨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는 각오한다!”
레이나가 손을 앞으로 뻗으며 명령했다.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다. 나아가라!”
***
세계수호전선의 도망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제2군단과 제3군단은 돌파 당했지만 끈덕지게 달라붙으며 세계수호전선의 속도를 늦췄고, 황도방위군은 제 영역 안에서 날듯이 말을 달려 세계수호전선의 앞을 막아섰다.
결국 성벽에서 멀찍이 떨어진 남쪽 평야에서, 세계수호전선은 제2군단과 제3군단, 그리고 황도방위군에게 포위당했다.
“하아, 하아…….”
대열이 잔뜩 흐트러진 채 멈춰선 병력의 선두에서 더스크 브링어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기어코 완성된 제국 육군의 포위망 위로, 비공함대가 신중하게 주위 공역을 수색하며 뒤따라 날아오고 있었다.
“와, 완전히 포위됐어.”
“이제 정면으로 부딪혀야 하는 건가?”
“승산은 있는 거야……?”
잔뜩 긴장한 세계수호전선의 병사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한 것은 제국군 쪽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씩 거리를 좁혀 오며 제국 쪽 병사들도 침을 꿀꺽 삼켰다.
틀림없이 애쉬 황자가 함정을 파뒀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어제도 비공함을 두 척이나 잃었다지 않은가.
이번에는 대체 무슨 기묘한 술책을 준비해 두었을까…….
제국군은 주춤거리며 느릿하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며 더스크 브링어는 피식 웃었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본목적을 달성했다 할 수 있겠도다.”
직후, 더스크 브링어는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의 안장에서 무언가를 홱 꺼냈다.
긴장한 제국군 병사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드디어 애쉬가 준비한 함정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더스크 브링어가 꺼내들어 펼친 것은…….
펄럭-!
……백기였다.
“항복이다!”
평범한 하얀 깃발을 좌우로 흔들며 더스크 브링어가 소리쳤다.
“투항한다! 우리는 더 이상의 전투 의지가 없다!”
“……?!”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세계수호전선의 병사들도, 제국군도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든 말든 더스크 브링어는 낄낄 웃으며, 애쉬가 시킨 대로 외쳤다.
“페르난데스 황제 폐하 만세!”
왜 애쉬가 또라이 망나니로 살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살려 줘!”
이거 재밌었다.
***
“……매복이 없다고?”
보고를 들은 레이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게다가 얌전히 항복해? 그게 무슨 헛소리야?”
“이, 있는 그대로의 일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이 지경으로 일을 벌려두고 항복을 한다고? 이 상황에서?”
어처구니가 없어서 중얼거리던 레이나가 퍼뜩 어깨를 떨었다.
“……잠깐만. 그럼 설마.”
직후 레이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늘을 살펴!”
“예?”
“황도에 설치된 스캔 아티팩트를 총동원해서, 하늘을 살피라고! 뭔가 이상 움직임이 없는지!”
마법병단의 마법사들이 급히 동원되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한 명의 마법사가 이상을 감지하고 외쳤다.
“레이나 경! 보고드립니다!”
“말해!”
“상공에서 열원을 감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황도를 향해 쾌속으로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레이나는 직감했다.
애쉬의 기함 제로니모다.
“어디로 오고 있나?”
“예?”
“목적지는 황도의 어디냐고!”
“그것이…… 이 경로라면, 황궁입니다!”
“……!”
레이나는 이를 악물었다.
분석을 끝낸 마법사가 식은땀이 번들거리는 얼굴로 다시 한 번 외쳤다.
“적 비공함은 까마득한 고도에서…… 황궁을 향해 그대로 내리꽂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