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86
◈ 486. [STAGE 23] 시드 (2)
해룡에게 저주를 받은 어머니가 막내 메두사를 낳고 죽은 뒤.
스테노와 에우리알레는 동생을 키우기로 했지만, 어려움은 끝도 없었다.
스테노도, 에우리알레도, 아직은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의 생계를 꾸려 가는 것도 난관이었다.
– 응애……! 응애……!
눈을 가려둔 어린 메두사가 울 때마다, 두 언니는 요람 옆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래도 소녀들은 필사적으로 동생을 키웠다.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안고, 재우고, 자장가를 불러 주고…….
그리고 또 메두사가 잠이 들면, 두 소녀는 부모님이 남겨 준 나룻배와 낚시 도구를 챙겨 바다로 나섰다.
육아도, 생계도, 모두 혹독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스테노와 에우리알레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스테노와 에우리알레가 동생을 키우며 어른으로 성장하듯, 유년의 메두사 또한 무럭무럭 성장했다.
석화의 마안을 사용하지 못하게 두 눈을 가리고, 흉측한 몸을 숨기기 위해 이 더운 남부지방에서도 언제나 몸을 꽁꽁 싸매야 했지만.
두 언니는 정성껏 막내를 돌봤고, 세 자매는 서로를 위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인적 드문, 별이 뜨는 밤이면…… 두 언니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바닷가로 향했다.
그리고 메두사의 눈을 묶은 천을 풀고 바깥세상을 보여 주었다.
– 보렴, 메두사.
하늘을 가득 메운 은하수 무리를 함께 올려다보며, 두 언니는 메두사의 금속 손을 꼭 쥐었다.
– 세상은 이렇게나 아름답단다.
메두사는 숨을 삼켰다.
올려다본 하늘은 눈부셨다.
그 하늘을 반사한 바다의 수면 또한 가슴 떨릴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그 수면에는 두 언니의 얼굴이 비쳤다.
비록 언니들과 직접 눈을 마주할 수는 없었지만, 메두사는 바닷물에 비친 언니들과 눈을 마주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늘만큼이나, 바다만큼이나, 두 언니는 사랑스러웠다. 동생을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혈육…….
그러나, 메두사 자신은.
수면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은 흉측한 것이었다.
뱀의 머리. 찢어진 입. 기다란 혀. 금속 팔다리와 털로 덮인 몸…….
고운 언니들과는 너무도 다른, 괴물.
자신이 이런 괴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름답고 착한 두 언니는 괴롭게 살아야 한다.
그 사실이 어린 메두사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 슬퍼하지 마렴, 우리 아가.
메두사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즉시 모래가 되어 떨어졌다.
그런 메두사를 양쪽에서 꼭 끌어안고, 스테노와 에우리알레는 속삭였다.
– 너와 함께 있어서 우리는 행복해.
– 그러니 너도, 행복하길 바란단다.
세 소녀는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그런 밤이 있었다.
이제 세 괴물도 잘 기억하지 못할 만큼, 까마득한 옛 일이었다.
***
쿵……! 쿵……! 쿵……!
괴수의 무거운 발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무언가를 찾듯, 괴수는 이곳 신전 내부를 서성이고 있었다.
“…….”
릴리는 한쪽 손으로는 자신의 입을 가리고, 반대쪽 손으로는 잠든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사제장실의 책상 아래 웅크려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저 괴수를 막기 위해 맞서며 무어라 악을 지르던 토르켈의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저 괴수에게 죽어 버린 것일까.
토르켈이 시간을 벌어 주는 동안 신전 밖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녀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몸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바퀴를 끌어 봐야 멀리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급한 대로 이곳에 숨었지만, 과연 이것이 맞는 판단일지 알 수가 없었다.
‘다리가 멀쩡했다면…….’
그랬다면 아이를 안고 멀리 도망칠 수 있었을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릴리는 생각을 이어 갔다.
다리가 멀쩡했다면, 사무직이 아니라 현장직으로 일해서 공격마법 사용에 더 능했다면, 그도 아니면.
갓핸드가…… 칼라일이 살아 있었다면.
릴리는 이를 악물었다. 이런 의미 없는 가정 따위에 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
“…….”
릴리는 잠든 아이- 시드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내아이였다. 머리칼은 엄마를 닮아 붉었고, 지금은 감긴 눈은 아빠를 닮아 연녹색이었다.
낳는 과정이 너무도 괴로워 내심 밉기까지 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막상 이 조그만 생명이 자신의 품에 안긴 뒤로는, 무슨 수를 써서든 이 아이를 지키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쿵……. 쿵……. 쿵…….
괴수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신전의 다른 구획을 수색하러 떠난 모양이었다. 운이 좋다면 이대로 신전을 빠져나갈지도 몰랐다.
릴리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키는데, 품속의 시드가 몸을 뒤틀었다.
“아우…… 아…….”
릴리는 혹시 시드가 울까 봐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드는 몸만 몇 번 뒤척였을 뿐, 이윽고 옹알이와 함께 다시 잠들었다.
‘휴…….’
잠든 아이의 등을 부드럽게 쓸며 릴리가 안도했을 때.
콰직-!
사제장실의 문이 뜯겨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릴리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쿵……! 쿵……! 쿵……!
사제장실 안으로 들어온 괴수가 거센 발걸음 소리와 함께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릴리는 덜덜 떨리는 몸을 천천히 굽혀, 아이를 품에 묻듯이 끌어안았다.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아이에게 하는 말이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서럽고, 아프고, 괴로웠다. 하지만 릴리는 제 입술을 꽉 깨물어 눈물을 참아 냈다.
그동안 겪은 고난에 비하면, 이까짓 일 별 것 아니다.
그리고 또 이 아이를 키우며 겪을 고난에 비하면, 이까짓 일은 별 것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울지 마. 울지 마…….
속으로 되뇌며 릴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쿵……!
사제장실 중앙까지 들어온 괴수, 스테노가 멈춰 섰다.
《……크륵.》
스테노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주위를 천천히 살폈다.
실제로 스테노가 사제장실에 들어와서 서 있었던 시간은 고작 수 초에 불과했다. 하지만 릴리에게는 거의 몇 시간 정도로 느껴졌다.
쿵……. 쿵……. 쿵…….
스테노가 다시 걸어 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릴리는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참았던 숨을 천천히 토해 냈다.
지나갔다, 지나갔다, 이제 무사할 거야…….
“……우으.”
그때였다.
“응애……! 응애애……!”
시드가 울음을 토해 냈다.
릴리의 품에 파묻혀 있을 때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란 릴리는 어떻게든 시드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했지만,
홱-!
쿠당탕탕!
이미 늦었다.
몸을 180도 반전시켜 날듯이 되돌아온 스테노가 사제장실 책상을 한손으로 집어 들고 옆으로 던져 버렸다.
바닥에 웅크린 릴리와, 그녀의 품에 안긴 시드는 이제 훤히 노출되었다.
“…….”
더 이상 어떤 엄폐물도 없이 바로 뒤에 괴물을 등진 채, 릴리는 생각했다.
불꽃 피부를 활성화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괴물이 더 접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화염 마법을 먹인다면?
해낼 수 있을까? 이길 수 있을까? 이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가능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야.’
지난 며칠간 이어진 난산으로 너덜너덜해진 릴리의 몸에, 마력로를 타고 불꽃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해낼 거야.’
그녀는 도전하기로 했다.
자신의 삶에 맞서기로 했다.
그러니까…… 포기할 수 없다.
등 뒤에 있는 것이 괴수든, 혹은 이 세계 전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나는…… 이 아이와 함께, 살기로 했단 말이야……!”
동시에 괴수가 손을 뻗어왔고, 릴리가 마력을 끌어올리려는 그 순간.
챙그랑-!
이번에는 릴리가 몸을 앞으로 향한 쪽, 사제장실의 창문이 깨져나가며 누군가가 포탄처럼 안으로 쏘아져 들어왔다.
“어이, 괴물!”
비산하는 유리조각과 함께 안으로 난입한 것은 제니스였다. 안으로 날아든 기세 그대로 다리를 쭉 뻗으며 제니스가 일갈했다.
“신께서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Deus Non Vult)!”
제니스의 발끝에 눈부신 신성력이 몰려들더니, 금속 장화의 형태로 바뀌었고-
쩌억-!
그대로 스테노의 턱을 후려갈겼다.
완전히 릴리와 시드에게만 집중하고 있던 스테노는 그대로 기습을 허용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기껏 엄마랑 애 둘 다 살려 놨더니, 이제는 괴수가 염병짓이냐…….”
스테노와 릴리의 사이에 선 제니스가 구시렁거리며 전투 자세를 다잡았다.
“지랄 맞은 동네긴 하네, 크로스로드!”
“……사제장님?”
어안이 벙벙해서 중얼거리는 릴리에게 제니스가 눈짓했다.
“늦어서 미안해요, 릴리. 나도 애 우는 소리 듣고 바로 튀어온 거야.”
“아뇨, 그보다…… 괴수와 싸우실 수 있으세요?”
“이래봬도 소싯적에 교단 이단심문관으로 이름 좀 날렸거든. 뭐 몸 안 쓴지는 좀 됐긴 한데…….”
무너진 돌벽에 깔리는 바람에 너덜너덜해진 제니스의 사제복 안으로, 등에 새겨진 성흔(聖痕)이 하얀 빛을 뿜어냈다.
“어쩌겠어. 상황이 이러면 예비군도 다 튀어나와야지.”
그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스테노가 기괴하게 몸을 꺾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
스테노가 입을 벌리고, 더듬거렸다.
《아, 가.》
투학!
스테노는 여전히 제니스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릴리와 시드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제니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어허! 좋은 말씀 전하러 왔다니까! 한 번 들어나 보셔!”
제니스는 스테노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마치 창을 쥐듯 두 손을 모아 쥔 뒤- 스테노의 배에 꽂는 듯한 동작을 했다.
“신께서 그것을 원한다(Deus Lo Vult)-!”
이번에는 제니스의 가슴팍에 새겨진 성흔이 빛을 뿜어냈고, 제니스의 손에는 어느새 기다란 신성력의 창이 쥐어져 있었다.
푸욱!
스테노의 배에 신성력의 창이 박혔다.
크게 한 번 휘청인 스테노는 거칠게 포효하며 제니스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제니스는 다급하게 신성력 갑옷을 한 번 더 전개했지만,
“커헉!”
쿠당탕! 콰광-!
스테노의 공격에 맞고 나가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크륵……!》
방해자를 치운 스테노는 앞을 홱 보았다.
하지만 릴리와 시드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우와아아앗!”
릴리와 시드는 갑자기 날아든 새카만 마력에 붙잡혀, 그대로 깨진 창문을 통해 밖으로 홱 빼내어졌다.
“옳지! 옳지! 잡았어-!”
창문 밖은 바로 신전의 안뜰이었고, 그곳에는 블랙리스트의 흑마법사가 서 있었다.
흑마법사가 손모양을 취하는 대로 움직인 흑색 마력이 릴리를 낚아채 밖으로 빼낸 것이었다.
“태워!”
흑마법사는 그대로 릴리를 바로 옆에 세워진 골렘의 손 위에 앉혔다. 골렘의 반대편 손에는 골렘술사가 앉아 있었다.
흑마법사가 버럭 소리쳤다.
“달려, 이것아! 최대한 멀리!”
“안 그래도 그럴 셈이거든?!”
마주 꽥 내뱉은 골렘술사가 릴리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골렘에 손님 여럿 태워 봤지만 막 태어난 애랑 그 엄마는 처음이네…… 꽉 잡아! 요람만큼 편하진 않을 테니까!”
쿵! 쿵! 쿵!
골렘이 바삐 도망치기 시작했다.
콰직-!
《캬아아아아아!》
벽을 부수고 튀어나온 스테노가 그 방향을 보며 포효하더니, 뒤를 쫓기 위해 다리에 힘을 모았다.
바로 그때였다.
번쩍-!
일섬(一閃)이 내리꽂혔다.
신전 2층에 숨어서 기다리던 맹인 검객이었다. 칼집에서 빠져나온 장도가 매끄러운 참격을 그었고, 공격은 정확하게 스테노의 두 눈을 찢어 놓았다.
《캬으아, 아아아아악?!》
핏물이 치솟는 두 눈을 손으로 감싸고 스테노가 괴로워했다.
“아이고, 이런. 이번에도 목을 노렸는데, 눈깔을 베어 버렸네.”
뛰어내리며 참격을 갈긴 탓에 바닥에 흉하게 나자빠진 맹인 검객이 히죽 웃었다.
“뭐, 빗나간 것보단 낫지.”
그때 복도 쪽에서 토르켈이 달려 나왔다.
“헉……! 헉, 다들 무사하십니까?! 죄송합니다, 잠깐 기절하는 바람에…….”
한 대 세게 맞은 듯 투구의 턱 부분이 너덜거렸지만, 토르켈은 여전히 눈빛만은 형형했다.
그리고 뒤이어.
타앗……!
신전 입구를 통해, 날듯이 달려온 루카스가 검을 뽑으며 합류했다.
괴수 앞에 선 사람들을 살피며 루카스가 고개를 숙였다.
“이거 면목 없습니다. 제가 막았어야 할 괴수인데. 제 실수로 신전이…….”
“사령관 대리! 죽은 줄 알았네요! 살아서 만나니 다행입니다!”
아예 박살이 난 벽을 통해 사제장실에서 밖으로 나오며 제니스가 넉살 좋게 손을 흔들었다.
“이 미친 괴수는 아까부터 릴리님과 태어난 아이를 노리고 있어요. 우리가 최대한 막아 내야 합니다.”
“그럴 겁니다.”
괴수의 앞에 다섯 명이 차례로 섰다.
루카스. 토르켈. 제니스. 그리고 블랙리스트 소속 흑마법사와, 맹인 검객.
소속도 구성도 엉망진창이었지만, 어쨌든 1개 파티. 5인이었다.
주위를 둘러본 루카스가 흐릿하게 웃었다.
“괴수 사냥하기에 좋은 숫자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