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89
◈ 489. [STAGE 23] 먹구름 (2)
다음날. 오후.
짙은 먹구름이 태양을 모조리 가려 버리는 바람에 날씨는 어둑어둑했다.
쿠궁……! 쿠구궁……!
이 어두운 시간 속에서, 고르곤의 둥지는 다시금 개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둥지 전체가 가늘게 진동하며 모래가루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곧 자매포식을 끝낸 메두사가 나타날 터였다.
그 둥지 앞에 인간 측 영웅들이 집결했다.
만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애썼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영웅들은 피곤한 얼굴로 붕대에 감싸인 부자유스러운 몸을 풀었다.
이런 영웅들의 중심에 선 5인 파티.
루카스, 토르켈, 제니스, 흑마법사, 맹인 검객으로 이뤄진 급조 파티는 오늘도 자연스럽게 한데 뭉쳐 있었다.
곧 재개될 전투를 준비하며 자세를 가다듬다가, 제니스가 툭 내뱉었다.
“그런데 우리 파티명은 ‘아저씨들’ 이라고 하면 되려나요?”
“뭐여, 그 쿰쿰한 냄새가 날 것 같은 파티명은……?”
흑마법사는 진저리 쳤다.
하지만 맹인 검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구성원 전부 다 아저씨네? 이야, 갑자기 동질감이 확 느껴져?”
“어제 릴리님도 우리를 보고 그렇게 말씀하셨죠, ‘아저씨들’…… 직관적이군요.”
토르켈이 덤덤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충격으로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아니, 어제부터 계속 아저씨라는 소리 듣고 있는데. 저는 아저씨가 아닙니다. 아직 파릇파릇한 20대 초반이란 말입니다.”
안 그래도 에반젤린이 나이 차이 좀 있다고 아저씨, 아저씨 거려서 묘하게 상처 받는 중인데.
이젠 기어코 이 진짜 아저씨들의 틈바구니에서 한 카테고리로 묶여야 한단 말인가?
그런 루카스에게 맹인 검객이 혀를 끌끌 찼다.
“이봐. 잘 들어, 잘 생긴 청년. 세상의 남자는 둘 중 하나야. 아저씨거나, 아저씨가 될 예정이거나.”
“그, 그럴 리 없어요……! 저는 영원히 아저씨가 되지 않을 겁니다!”
헛된 저항을 선포하는 루카스를 보며 나머지 아저씨 넷이 낄낄 웃었다. 자신들도 한때는 저렇게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쿠구구구궁!
그때 둥지가 한 번 크게 진동했다.
곧 적 괴수가 등장하리라는 신호였다. 주고받던 농담도 멈추고 영웅들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루카스는 옆을 보았다. 나머지 영웅들을 지휘하는 에반젤린이 루카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됐어요!”
“좋아…….”
루카스는 목소리를 돋워 외쳤다.
“다들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괴수를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도시 안으로 흩어져서, 어디까지나 시간만 끄는 겁니다……!”
영웅들이 차례로 고개를 끄덕였다.
투구를 눌러쓴 루카스가 재차 외쳤다.
“좋아, 작전 시작! 산개…….”
하지만 ‘산개하라’는 명령은 채 전달되지 못했다.
키이이이이이잉!
무너지는 둥지 안, 자욱한 먼지구름 속에서- 무시무시한 기세의 마안이 총알처럼 쏘아졌기 때문이었다.
콰드득! 콰드드드득!
“뭣, 석화의 마안……?!”
“너무 빠르-”
“으악!”
“아아아아악?!”
기습처럼 쏘아진 석화의 마안은 그동안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발동이 빨랐고, 범위는 배는 넓었다.
간발의 차로 거울 방패를 들어 올린 몇몇 영웅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그 마안에 휩쓸렸다. 영웅들은 돌로 굳으며 비명을 질렀다.
“이런, 망할…….”
석상이 된 아군 사이에서 루카스는 치를 떨었다.
고오오오…….
먼지구름을 헤치고, 메두사가…… 완전체 고르곤이 등장했다.
지면으로부터 살짝 떠오른 채 날아오는 메두사는 한층 거대하고, 한층 흉측하고, 한층 끔찍한 생김새였다.
머리에 매달린 뱀은 서로 얽혀 거대한 한 마리처럼 뒤로 묶였고, 통나무처럼 굵어진 팔다리에는 암석 갑각이 빈틈없이 붙었다.
등에 달린 한 쌍의 날개 아래에는 짐승의 털을 외피처럼 덮은 꼬리가 한 쌍 꿈틀거리고 있었다.
부릅 뜨인 거대한 회색 눈 아래로는 끊임없이 잿빛 모래가 휘날렸다.
길게 찢어진 입은 귀 아래에 닿을 지경이었는데, 입 안에는 기다란 혀 세 개가 날름거렸다.
거울을 통해서 비쳐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오염될 것 같은 사악함이 넘쳐흘렀다.
루카스는 지끈거리는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검을 뽑아들었다.
“작전은 변하지 않는다……! 전원 산개! 시간을 끌어-”
《아니.》
그때 메두사가 짧게 읊조렸다.
《술래잡기 놀이는 이제 끝.》
메두사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쿠구구구구궁!
그러자 일대를 둥글게 둘러싸고 암석이 벽처럼 솟아올랐다.
루카스는 말문을 잃었다. 도시 안으로 흩어져 펼치려던 유인작전이 기본 전제부터 틀어 막혀 버렸다.
《이곳에서 너희는 죽는다.》
쿵……!
육중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으며, 메두사가 비통하게 외쳤다.
《너희의 죽음을, 아니, 인세의 멸망을……! 내 가여운 언니들을 진혼하기 위해 바치겠다!》
***
크로스로드 최후의 영웅들은 전멸했다.
그동안 이들이 고르곤 자매에 대항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석화의 마안을 수월하게 피할 수 있는 시가전이라는 공간 덕이었다.
하지만 메두사가 공간을 제한해 버렸고,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 안에서 압도적 범위와 속도를 가진 마안으로 공격해 오자 버틸 재간이 없었다.
영웅들은 하나 둘 석화당해 쓰러졌고…… 결국 두 발로 버티고 선 것은 루카스와 에반젤린 뿐이었다.
“하아……! 하아……!”
에반젤린이 거칠게 숨을 토해 냈다.
궁극기 [최후의 요새] 사용은 물론이고, 전투 내내 다른 영웅들을 지키기 위해 방패를 들고 앞장서 메두사의 공격을 받아 냈다.
그 결과,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힘을 소진해 버렸다. 에반젤린은 자신이 앞으로 몇 번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라고 직감했다.
《더는 못 뛰어다니나 보네, 인간?》
그런 에반젤린을 향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 메두사가 하늘 위에서 내리꽂혔다.
캬아아아아아-!
쩍 벌려진 괴수의 입에서 거센 음파가 쏟아져 나왔고,
쩌적, 쩌저적……!
그 음파는 에반젤린의 방패에 붙은 얼음 거울을 모조리 깨어 버렸다.
“윽?!”
석화의 마안을 상쇄할 방어수단을 잃은 에반젤린이 신음했다. 그리고 메두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키이이이잉!
폭격기처럼 덮쳐온 메두사가 석화의 마안을 번뜩였다. 에반젤린은 이를 악물었다.
파악-!
그리고 그런 에반젤린을, 옆에서 달려든 루카스가 발로 밀어냈다.
루카스가 다급하게 내지른 킥은 에반젤린의 방패에 닿았고, 에반젤린은 뒤로 홱 밀려나며 가까스로 메두사의 석화 범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루카스는 정확하게 메두사의 두 눈 앞에 놓였다. 그리고 루카스의 거울 방패 또한 진작 박살 난 상태였다.
“루카스 아저씨-!”
에반젤린의 비명을 들으며 루카스는 피식 웃었다.
“……기회는 한 번이다, 아가씨.”
콰드드득……!
루카스는 그대로 돌로 굳었다.
나동그라져 있던 에반젤린은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두사는 재차 하늘로 솟아올라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대신 석화되어 주다니, 거 참 눈물겨운 동료애구나.》
메두사가 조소하자, 에반젤린은 송곳니를 번뜩이며 마주 비웃어 주었다.
“언니들 시체를 파먹는 네 자매애만 하겠어?”
《……이 건방진 핏덩이가…….》
부들부들 떨던 메두사는 포효하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우리 자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마-!》
에반젤린은 건방진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방패에 다시 얼음을 씌우고,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땅에 박아 단단히 고정시켰다.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멸망시키려 드는 건, 너희도 마찬가지잖아……!”
《모르기는 왜 몰라! 너희 인간에 대해서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잘 알아!》
캬아아아아아-!
메두사는 조금 전과 같은 전술을 사용했다. 먼저 강력한 음파를 쏘아 냈다.
쩌적, 챙그랑……!
에반젤린의 방패에 맺혀 있던 얼음들이 일제히 깨져나갔다. 산산이 터져나간 얼음들이 일순 허공에 흐릿한 무지개를 드리웠다.
키이이이이잉!
메두사는 다시금 석화의 마안을 발동하며 에반젤린에게 바짝 접근했다.
무용지물이 된 방패부터 돌덩어리로 만든 뒤, 그 뒤에 숨은 이 조그만 인간마저 끝장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
없었다.
삽시간에 돌로 굳어 버리는 방패의 뒤에는 누구도 없었다.
《뭣?》
당혹한 메두사는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고-
발견했다.
타앗-!
자신의 측면으로 파고들어오는 인간 기사를.
에반젤린은 미끼용으로 땅에 방패를 박아 두고, 음파에 얼음이 깨져 시선이 흐려진 틈에 바로 옆으로 빠져나온 것이었다.
“이 때를…… 기다렸다!”
에반젤린의 녹색 눈이 선명하게 번뜩였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거대한 기병창은 눈부시게 백열하고 있었다.
[대미지 페이백]이었다.적이 가하는 대미지를 방패로 막아 저장하는 [대미지 세이브], 저장된 대미지를 창을 통해 내뿜는 [대미지 페이백].
이것이 에반젤린이라는 방패창기사가 지닌 공방일체의 전투법.
지난 며칠간의 전투 동안, 에반젤린은 [대미지 세이브]를 통해 적의 공격을 받아 내고 대미지를 저장하면서도 한 번도 [대미지 페이백]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미 각성을 통해 한계까지 저장용량이 늘어났고, [최후의 요새]를 사용해 아군의 대미지까지 대신 받아내며 그 용량을 가득 채웠음에도.
단 한 번도 이 에너지를 적에게 쏘아내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이 한 순간을 위해……!
‘한계의 한계까지 쥐어짜내 그러모은 한 방을!’
그야말로 필살(必殺)의 일격을!
“먹여- 주마아아아아!”
거대한 기병창의 뒤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기병창에 인챈트된 불꽃의 정령이 화염을 분사해 추진력을 가해 준 것이다.
에반젤린은 확신했다. 이 공격은- 먹힌다!
미끌.
“어?”
그리고 그 순간.
에반젤린의 자세가 무너졌다.
에반젤린은 황급히 아래를 보았다. 얼음 방패에서 깨어져 나온 얼음 조각 하나가 발아래에 깔려 있었다. 이것 때문에 미끄러진 것이다.
발목이 꺾였다. 자세가 무너졌다. 에반젤린은 어처구니없게도 휘청거리며……
“내가- 이런 실수를 할 것 같아?!”
……넘어지지 않았다.
촤아아아악!
얼음을 밟아 부수고, 에반젤린은 강맹하게 걸음을 안으로 내딛었다.
이미 2년차 후반.
에반젤린은 실수투성이였던 애송이 시절을 진작 벗어났고, 만개한 기량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에반젤린은 무너진 자세를 기적처럼 복구해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창을 내질렀다.
《크흑?!》
메두사는 다급하게 날개를 펼치고 공격 사거리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푸우우욱!
유도미사일처럼 따라붙은 에반젤린의 기병창이 메두사의 복부를 쑤시고 들어왔다.
그리고,
콰과과과과광!
폭발했다.
문자 그대로 터져나갔다. 이번 전투 내내 [대미지 세이브]로 한계용량까지 모은 모든 대미지가 한 번의 [대미지 페이백]으로 작렬했다.
폭발과 함께 메두사의 복부가 가루가 되었다. 금이 쩍쩍 간 상반신과 하반신은 아예 서로 떨어져 나갔다.
에반젤린은 압도적인 손맛과 함께 확신했다.
‘해치웠다!’
……일반적인 생명체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즉사시키고도 남을 위력이었고 상처였다. 하지만,
“……?!”
완전체 고르곤이 된 메두사는 전신이 암석으로 이루어진 괴수였다.
금이 쩍쩍 간 상반신에서 피처럼 흙가루를 쏟으며 메두사는 허공에 떠 있었다.
내장을 쏟지도, 뼈가 부서지지도 않았다.
그저 구멍이 났을 뿐이다.
“이게 무슨…….”
《정말로 제법이었어, 인간.》
메두사는 긴 입가를 틀어올려 웃었다.
《두 언니를 먹어치우지 않았다면 방금 그 공격에 나도 죽었겠는걸.》
“이 괴물 자식이-”
《새삼스러운 소리를.》
키이이이이이잉!
메두사는 석화의 마안을 사용했다. 그리고 에반젤린에게는 회피할 수단이 더 이상 없었다.
허탈한 웃음을 머금은 채, 에반젤린까지 돌로 굳어 버렸다.
《……전부 쓰러뜨린 건가.》
메두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 이상 움직이는 인간은 없었다.
《인류의 최전선도 여기까진가.》
메두사는 너부러진 자신의 하반신을 주워 상반신과의 사이에 붙였다.
주위에서 돌과 모래가 날아와 상처 부위에 접합하며 상반신과 하반신을 연결했다.
얼추 회복이 끝났다. 메두사는 사납게 눈을 치떴다.
《내가 겪은 고통을, 너희 모두가 겪게 해 주겠어.》
인류의 성벽을 무너뜨렸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인세를 멸망시킬 시간이었다.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이런 저주를 받고 태어나야 했던 나의 원한을…… 너희 모두, 돌이 되어 느끼는 거야…….》
이 전선의 북쪽으로. 모든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그렇게 마음먹은 메두사가 미련 없이 돌아서려는 그때였다.
“어이, 괴물.”
목소리가 들려왔다.
“떠나기엔 이르다. 여기 살아남은 인간이 있으니.”
《……?!》
당황한 메두사가 그쪽을 보았다.
머잖은 곳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인간이 보였다.
월계관이 조각된 챔피언 투구에, 커다란 직각 사각방패. 그리고 메이스를 쥔.
나병척살대의 유일한 생존자.
토르켈이었다.
“내가…… 이곳 전선의 최후미다.”
반쯤 석화된 몸으로, 돌가루를 들이마시는 바람에 퍽퍽한 목소리를 쥐어짜서.
토르켈은 선언했다.
“아직 크로스로드는…… 네놈과 대적하고 있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