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15
◈ 515. [Side Story] 서프라이즈 파티 (2)
애쉬는 기어코 초대장을 남겨놓고 사라졌다.
흑야는 얼떨떨하게 자리에 앉아서 그 초대장을 들여다보았다. 고급스러운 초대장에는 반듯한 글씨로 그녀를 파티에 초대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파티……?’
생각하지도 못한 초대에 식은땀이 솟았다.
아니, 여기서 자신을 인세의 파티에 초대한다고? 이게 제정신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인가? 애쉬 저거 진짜 미친 새낀가?
‘함정일 가능성은?’
당연히 먼저 이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흑야는 곧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선, 지금 애쉬는 마탑을 무력화하고 또 다른 자신을 해치워 주었다.
이제 자신은 한동안 애쉬에게 협력할 예정인데, 굳이 적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에 하나 함정이라 하더라도, 흑야에게는 자신이 있었다. 설혹 적진 한가운데에서 포위되더라도 자신의 마법으로 가뿐하게 헤치고 나올 자신이.
그럼. 만약 함정이 아니라면.
‘……정말로 나를 우군으로 생각하는 건가?’
자신을 향해 방싯방싯 웃던 애쉬를 떠올리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태연하게 초대장을 건네던 모습에서는 순수한 광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그렇다면 너무 순진하잖아. 애쉬.’
당장은 마왕을 상대해야 하니 손을 빌려주겠지만, 결국은 자신도 인세를 멸망시킬 셈인데. 인세가 불타고 물에 잠기는 것을 내려다보고 싶은 괴물일 뿐인데.
안마당 안으로 이렇게 쉽게 들이다니…….
‘……그나저나, 파티라.’
흑야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일생 단 한 번도 파티에 참석해본 적이 없었다.
살아 있던 시절에도 마탑에 틀어박혀서 고리타분한 연구만 계속했고, 언데드로 되살아난 뒤로는 파티 자체가 없었으니…….
생각지도 못한 초대였기에 도리어 흥미가 동했다.
‘……가볼까?’
어차피 머잖은 미래에 인세는 멸망한다.
그렇다면 세계가 끝나기 전에, 자신도 한 번 정도는 파티장이란 곳에 가보는 것도 재미 아니겠는가.
구도자로서의 삶을 놓고 끽연에 미식에 음주에 손을 댄 지도 한참이다. 파티 한 번 정도야…….
《……음!》
마음을 다잡은 흑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직후 깨달았다.
‘……입고 갈 옷이 있나?’
다급하게 거울을 소환해 전신을 살핀 흑야는 여러 문제를 깨달았다.
‘구두는? 화장은? 머리는 이걸로 괜찮나?’
아파오는 골머리를 누르던 흑야는 후, 숨을 들이켠 뒤.
《부관-!》
평소에는 찾지도 않던 리치 군단의 부관을 찾으며 외쳤다.
《근처에 좀 온전하게 남은 옷가게 있나-?!》
***
흑야의 본거지에서 나온 뒤.
‘계획대로 되어가는군.’
생각하며, 나는 호수왕국 내부를 성큼성큼 걸어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내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호수왕국 바깥.
‘말라붙은 배수로’를 통과하면 나오는, 호수왕국 성벽 밖의 외곽지대였다.
자욱한 어둠을 횃불로 헤치며 앞으로 걷자, 머잖아 보였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멍하니 앉아…… 자신의 왕국을 가만히 지켜보는, 몰락왕녀의 모습이.
“무명.”
부르며 다가가자, 이쪽을 돌아보는 무명의 흐릿한 시선에 놀라움의 빛이 스쳤다.
“……애쉬?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얼마 전에 너랑 헤어질 때. 네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방향을 눈여겨 봐뒀거든.”
그쪽 방위로 움직여서 갈 수 있는 호수왕국 모든 곳에 정찰을 보냈지만, 무명과는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무명은 호수왕국 바깥에 있다, 고.
맨 처음 나를 만났던 곳- 바로 이곳, 호수왕국 외곽에.
나는 무명의 옆에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무명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호수왕국 바깥을 순례하듯 돌아 걸으며, 고민에 잠겨 있었다던 무명은 잠자코 입을 열었다.
“이 나라의 국민들을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맞는 것인지.”
“네가 하고 있는 일이라면…….”
“……싸우는 것 말이다.”
무명의 입가에 쓴 미소가 맺혔다.
“이곳 호수왕국을 점거한 어둠에 대항해 싸우는 것.”
“…….”
“그동안 흔들린 적 없었는데…… 얼마 전에, 어린 국민 하나와 만났다. 이곳의 여느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숨은 붙었으되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상태였지.”
호수왕국의 국민들.
그 대부분은 검은 고치 같은 것에 감싸여 박제당해 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로, 마왕을 위해 악몽을 꾸면서…….”
“악몽…….”
“마왕은 우리 국민들의 악몽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거든. 그래서 사로잡힌 모두가 강제로 악몽 속에 갇혔지. 구원 없는 이 연옥에서, 평온하게 잠조차 들지 못하고.”
무명은 고개를 푹 숙였다.
“……오라버니의 말대로 차라리 내가 진작 저항을 포기했다면. 그래서 마왕에게 자비를 구걸했다면. 어쩌면 내 국민들은 지금 악몽이 아니라 평온한 꿈이라도 꿀 수 있지 않았을까.”
“…….”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 어린 아이의 악몽을, 강제로 뜯어냈다. 그리고 내게 옮겼다.”
무명이 처연하게 웃었다.
“그러자 고통스러워 하던 그 아이가…… 비로소 편안히 잠들더군.”
“…….”
“나는 그 아이의 악몽을 삼켰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지. 이런 고통을 안고 내 국민들은 지금까지 연명하고 있었구나. 너무 아파서, 잠조차 들지 못하는 채로, 이렇게…….”
“그래서.”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설마, 네 모든 국민들의 악몽을, 네가 대신 꾸기로 한 거야?”
“그래.”
무명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지난 오백 년간 내 국민들이 짊어지고 있던 고통이다. 우리 호수왕국 왕실이 저지른 과오다.”
“하지만……!”
“비록 내 손으로 나의 왕국을 구원할 수는 없을지언정, 모든 국민들이 꾸고 있는 악몽이라도…… 내가 대신 끌어안고자 한다.”
더듬거리던 나는 가까스로 물었다.
“그럼 너는 어떻게 되는데?”
“아직까지는, 괜찮다. 버틸 만하다.”
무명은 피로한 눈 아래를 손으로 쓸었다.
“……조금, 잠을 자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아아.
이것이었구나.
나는 드디어 알아챘다. 드디어 이해했다.
이 도시의,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의 악몽을 이 작은 몸에 스스로 욱여넣는 그 순간. 그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그 순간.
무명은 마침내 최종보스-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아직, 여전히, 어떻게 해야 이 여인을 구할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무명.”
오늘은, 준비해온 것이라도 건네주도록 하자.
“사실, 오늘은 너를 초대하러 왔어.”
“초대?”
“응. 호수왕국의 적법한 계승자이자 대변인으로서…… 세계수호전선의 새 우방 가입을 기념하는 파티에, 참석해주지 않겠어?”
나는 초대장과 함께, 그동안 모은 왕녀의 영혼 조각을 함께 건넸다.
“……파티?”
초대장을 받아든 무명이 허탈하게 웃었다.
“파티라니. 이것 참, 그리운 어감의 단어로군.”
무명은 천천히 무딘 손길로 초대장의 봉인을 뜯고 펼치더니 내용물을 읽었다.
동시에 내가 모아 온 그녀의 영혼 조각이 하얗게 빛나며 그녀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네가 영혼을 모아 와준 덕인지, 아니면 이 초대장의 덕인지.”
짧은 초대장 내용을 모두 읽어내린 무명이 다시 그 초대장을 곱게 접어 제 품에 넣었다.
“아주 오래 전의…… 내 왕국의 파티장 모습이, 떠오르는군.”
“너희 나라의 파티는 어떤 모습이었어?”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화려했지.”
무명은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했다.
“크리스탈로 세공된 샹들리에에는 눈부신 마법의 빛이 비치고…….”
수몰된 도시는 완전한 어둠에 잠겼고,
“온 왕성에는 악단의 연주와 노랫소리가 울리는데.”
살아 움직이는 생명은 없이, 적막만이 내려앉은 가운데.
“사람들은 손을 잡고 웃으며 춤을 추었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이들은, 검은 고치에 감싸여 악몽을 꾼다.
“화장하고 드레스를 차려입은 나는 한껏 멋을 부리며, 그 파티장의 가운데에 입장해.”
누더기 같은 로브를 걸치고, 녹슨 철검을 쥐고.
우리는 도시 외곽의 모래 언덕 위에 주저앉아 있다.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보며 고개를 조아리면, 그때 나는 말하곤 했어.”
무명은 꺼질 듯 바스락거리는 목소리로, 먼 과거를 추억하며 속삭였다.
“제게 예를 차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 부디 파티를 즐겨주세요…….”
“…….”
쓰게 침묵하던 나는 피식 웃으며 팔꿈치로 무명의 옆구리를 찔렀다.
“춤 신청도 많이 받았나?”
“일생 내내 받았지.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나, 꽤 인기 있었거든.”
“그중에 마음에 드는 상대도 있었어?”
“그때는 나 또한 한창 나이의 젊은이였으니. 당연히 교제에도 관심이 있었지. 하지만…….”
무명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호감을 품었던 상대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해낼 수가 없군.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어.”
“…….”
“모두 꿈결 같은 이야기로구나…….”
침묵이 흘렀다.
흠흠! 헛기침을 한 나는 무명의 손에 들린 내 초대장으로 턱짓했다.
“너희 왕국의 파티만큼 화려하진 못하겠지만. 우리 도시의 파티도 제법 즐거울 거야.”
“……하지만, 애쉬. 내 국민들은 고통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찌 파티를 즐기겠나.”
“너희 국민을 위해서이기도 해. 이거, 단순한 파티가 아니거든.”
나는 이번 백야 레이드 작전, ‘오퍼레이션 서프라이즈 파티’에 대해서 무명에게 설명해주었다.
계획을 모두 들은 무명이 작게 입을 벌렸다.
“잘도 그런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세웠군, 애쉬.”
“하하. 무슨 수를 써서든 적장을 거꾸러뜨리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실로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런 일이면 빠질 수 없겠군.”
잠시 고민하던 무명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참가하고 싶다. 다만…….”
“다만?”
쭈뼛거리던 무명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내게는 파티에서 입을 의관이 없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걱정마. 내가 준비해줄게.”
“왕관도, 드레스도, 구두도, 무엇도 없다.”
“화장부터 미용까지 전부 이쪽에서 해줄게. 호수왕국의 대표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무명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에버블랙 제국의 3황자이자, 크로스로드의 영주이며, 세계수호전선의 총사령관인 애쉬 ‘본헤이터’ 에버블랙이 요청드리오니.”
나는 무명에게 찡긋 눈웃음을 쳤다.
“부디 제가 준비한 파티에 참가해주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호수의 여인(Lady of the lake)이여.”
그러자 무명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조금은 어색하게 마주 예를 갖추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이름도 기품도 인사법도 잊은 지 오래인 이런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호수왕국의 계승자이자 대변인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초대를 받겠습니다.”
직후, 천천히 몸을 바로 세운 무명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드리웠다.
“고맙다, 애쉬. 즐거운 마음으로, 파티가 열리는 날을 기다리겠다.”
착각일까.
그녀의 초췌한 안색이, 팔다리와 눈 아래에까지 드리웠던 어둠이…….
그 미소와 함께, 조금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
그리고 며칠 뒤.
본래라면 한창 방어전이 치러져야 할 이른 저녁 시간.
근사하게 꾸며진 호텔 크로스로드의 파티홀.
파티장이라는 이름의 이 전쟁터로, 갑옷 대신 슈트와 드레스를 입은 영웅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스테이지 25.
정면승부로는 도저히 답이 없는 적측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서.
내가 꼼수에 꼼수에 꼼수를 쥐어짜내어 입안한 작전, 서프라이즈 파티가- 마침내 그 개막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