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57
◈ 557. [Evil Side] 난공불락 (6)
검은 호수에서 크로스로드 본성까지는 말을 타고 3일.
하지만 타락기사단은 출정 첫날 자신들이 데려온 말들을 대부분 잡아 먹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데, 타락기사단 자체가 그리 빠른 자들은 아니다 보니, 이동은 꽤 더뎠다.
결국, 도보로 북상하는 데에 5일이나 소모하고 말았다. 그나마 밤낮없이 걸었는데도 아직 크로스로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5일이 걸렸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부하 타락기사들을 다섯 잡아먹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 조금만 더 걸으면 빌어먹을 인세가 보일 거다.》
선두에서 팬드래건이 말했다. 팬드래건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시체마를 타고 있었다.
그 뒤를 일곱 명의 타락기사가 걸어서 뒤따르고 있었다.
팬드래건까지 포함하면 여덟.
동료 다섯을 잡아먹고, 남은 여덟은 부지런히 북상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팬드래건은 아직 이 숫자면 충분히 인세를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기당천의 괴물들이니까.
싸우기만 한다면, 누구든 죽이고 삼킬 수 있는 괴물들이니까.
《거의 다 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놈들의 고기로 배터지게 먹을 수 있을 거다…….》
팬드래건의 독려에 타락기사들이 침을 질질 쏟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동료의 고기로 실컷 포식했는데도, 그들은 금세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팬드래건도 마찬가지였다. 타락왕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빨리, 빨리, 빨리……! 성벽이 나오란 말이다……! 뭐가 나오든 다 때려 부수고 먹어 치워줄 테니까, 우리 앞에 나오라고……!’
그러나.
종일 걸었음에도, 그들의 앞에는 인세의 성벽이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길이 끝나고, 그들의 앞에 펼쳐진 것은 널찍한 낭떠러지였다.
《음……?》
《어?》
《대왕, 이게 무슨……?》
의아해하는 부하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팬드래건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부릅뜬 채 정면의 낭떠러지를 노려보았다.
틀림없이 정북(正北) 방향으로 걸어왔는데. 태양을 방위기준으로 삼아 쭉 전진해왔는데.
어째서 길을 잃은 것인가?
《……!》
퍼뜩 무언가를 깨달은 팬드래건은 위를 가리켰다.
《태양.》
《예?》
《태양을 향해 공격을 쏴라! 어서!》
타락기사들은 자신들의 왕이 내리는 명령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충실하게 이행했다.
쐐애액! 후두두둑!
허공을 향해 각종 사악한 마법들이 쏘아졌다. 그러자.
촤아아악-
장막이 찢어지듯 환상 마법이 벗겨졌다.
하늘의 모양이 급변하며, 태양이 마침내 제위치를 찾았다. 증오스러운 태양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자신들을 내리쬐고 있었다.
《……언제부터?》
어처구니가 없어서 팬드래건이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우리를 농락한 거지? 이 정도 규모의 환술영역을…… 대체 언제부터……?》
하늘-정확히는 타락기사들의 머리 위-에는 환상 마법을 걸어두고.
검은 호수에서 크로스로드로 향하는 길은, 교묘하게 공사를 통해 길의 방향을 틀어두었다.
그 결과 방위를 완전히 오판한 타락기사단은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다.
당황한 타락기사단이 어쩔 줄 모르고 제자리에 멈춰있는 그때였다.
《……킁킁.》
한 타락기사가 코를 움찔거렸다.
《오렌지 냄새가…… 나는데.》
뒤이어 다른 타락기사들도 그 냄새를 감지하고 하나 둘 돌아섰다. 모두 입에 군침이 흥건한 상태였다.
오렌지 향이 난다.
저 뒤쪽에서.
《대왕, 과일향이 납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맛있을 것 같아…….》
《꿀꺽. 꿀꺽. 꿀꺽.》
타락기사들이 하나 둘 홀린 듯이 그쪽 방향으로 돌아섰다. 팬드래건이 짜증스레 일갈했다.
《이 멍청이들! 북쪽으로 가야 한다니까! 지금 어디로 가는…… 어이!》
타락기사들은 어기적거리며 뒤돌아서 남쪽으로 향했다.
남쪽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타락기사들은 고개를 길게 빼고 오렌지 향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휘휘 저었다.
자욱한 오렌지 향에도 불구하고 정작 오렌지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대, 대왕! 저기!》
까르르르-
어린아이들이.
저들끼리 손에 손을 잡고,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인간입니다! 그것도 어린 인간……!》
《마, 맛있을 거야! 부드러워 보여!》
《내가 먹을 거다! 저건 내가 먹을 거야!》
침을 쏟으며 달려가는 타락기사들의 뒤에 대고 팬드래건이 고함을 질렀다.
《쫓지 마! 척 봐도 함정이잖느냐! 건드리지 마!》
이런 곳에 어린아이들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하지만 타락기사들은 왕의 명령도 무시한 채 아이들을 쫓아 내달렸다. 식욕에 눈이 먼 그들의 귀에는 이미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헤헤, 헤헤헤헤! 잡았다, 잡았다앗! 요놈!》
까르르 웃으며 하늘하늘 멀어지는 아이의 뒤를 쫓아 내달린 한 타락기사가 기다란 팔을 뻗었다.
팔에서 흉측한 촉수가 쏟아져 나오며, 어린아이의 발목을 휘감아 넘어뜨렸다.
《어디부터 삼켜줄까, 요놈! 요놈!》
육식 짐승의 그것처럼 뾰족한 이빨을 세우고, 단숨에 아이의 멱을 물어뜯으려던 타락기사가 멈칫했다.
딱딱했다.
아이 특유의 부드러움이 전혀 없이, 손에 쥐인 촉감은 마치 나무의 그것처럼 딱딱했다.
정신을 차린 타락기사가 손에 쥐인 것을 내려다보자, 그것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목각인형?》
아이처럼 생동감을 가지고 움직이던, 하지만 지금은 그 정체를 드러낸, 목각인형에 불과했다.
까르르르-
하하하하-
천진한 웃음을 흘리며 사방으로 도망치는 아이들.
아니, 아이들인 체하는, 인형들.
《인형술사다! 놈들의 수작이다! 쫓으면 안 돼!》
상황을 알아챈 팬드래건이 외쳤지만, 타락기사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먹을 거야아아아!》
도망치던 목각인형 하나가 앞으로 홱 뛰어오르자, 그 뒤를 쫓아 달리던 타락기사 역시 뒤따라 몸을 던졌다.
들판 끝의 낭떠러지로.
쿠당탕! 쿵! 쾅! 콰지직……!
《…….》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부하를 팬드래건은 차가운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으윽, 대왕…….》
굴러떨어졌으나, 타락기사는 타락기사였다. 부서진 팔다리를 가까스로 휘두르며 그 타락기사는 겨우겨우 다시 절벽 위로 기어 올라왔다.
《목각인형이었습니, 다…… 으윽…… 맛있어 보였는데…….》
《…….》
《으윽, 대왕?》
피투성이로 숨을 가다듬는 튼튼한, 그리고 멍청한 자신의 기사를 내려다보다가. 팬드래건이 헛웃음을 흘렸다.
《오늘 저녁은 아무래도 정해진 것 같군.》
다음 순간, 검집에서 뽑혀 나온 팬드래건의 대검이 부하의 목을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
타닥, 타닥…….
불똥 튀는 소리가 적막한 어둠을 갈랐다.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은 타락기사들은 말없이 식사했다. 오늘의 식사는 낭떠러지에 떨어졌던 동료였다.
하지만 팬드래건은 입도 대지 않은 채 고민에 잠겨 있었다. 타락기사들이 흘끔흘끔 그의 눈치를 살폈다.
《입맛이 없으십니까, 대왕?》
《…….》
세상 만사 걱정 없다는 듯 속 편하게 처먹는 부하들을 보다가, 팬드래건은 한숨을 길게 뱉었다.
《놈들은 각종 환술을 동원해서 우리를 가지고 놀았다. 최소한 하루 정도는 손해를 봤어.》
계획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시간이 끌린다면, 허기를 견디지 못한 타락기사단은 계속해서 단원들을 잡아먹어야 하고, 결국 성벽에 도달했을 때 그만큼 전력이 줄어 있을 것이다.
《이게 끝이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진격이 늦어진다면…….》
팬드래건이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부하들은 눈치 없이 팬드래건 앞의 식사를 손으로 가리켰다.
《입맛이 없으시면 그거 제가 먹어도 됩니까?》
《나도, 나도, 나도.》
《키히. 키히히히. 맛있다, 맛있어.》
《…….》
팬드래건은 남은 숫자를 헤아렸다.
자신까지 포함해서, 일곱.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식사를 끝마치고, 다시 밤새 걸어서, 내일 안에 인세의 성벽에 도달하기만 한다면…….
그때였다.
“그래.”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네놈들을 가지고 놀았지.”
《……?!》
기함한 타락기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으며 그쪽을 보았다.
저벅. 저벅.
그쪽에 발소리를 내며 등장한 것은,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을 한 청년.
《인세의 수호자……?!》
틀림없이 그때 깃발을 들고 찾아왔던 적장, 인세 측 방어군 사령관 애쉬였다.
애쉬는 그때와는 달리 검과 방패를 착용한 상태였다.
애쉬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으나, 들려오는 목소리는 틀림없는 본인이었다.
“네놈들은 하나 하나가 강력한 전차다.”
《…….》
“성벽에 닿는 순간 성벽을 파괴하고, 주둔 중이던 병사들을 학살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병기지.”
명백한 조소가 담긴 목소리였다.
“그래. 그만큼 강력하지만, 보급이 필요하고, 느려터졌지.”
《네놈…….》
“타락왕. ‘라스푸티차’라는 말을 아나?”
느닷없는,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팬드래건은 눈만 끔뻑였다.
라스푸티차(Распутица).
지구의 동유럽과 서아시아, 그리고 러시아 일대 권역에서, 우기(雨期)에 늪지대로 변한 도로를 일컫는다.
땅이 굉장히 질척이는 곤죽 같은 상태가 되기에 사람도 차량도 이동하기 곤란해지지만, 역으로 이것을 전쟁에 이용하기도 한다.
적대 세력의 진군을 막는 것이다. 전차는 수렁에 빠지고, 진군은 느려지며, 보급선 또한 틀어막힌다.
“요컨대 지연전(遲延戰)을 벌이기에 특화된 지형…… 이라고 할 수 있겠군.”
시간을 끌수록 공격자는 전력이 깎여나가지만, 방어자는 발이 묶인 적군을 손쉽게 요리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괴수들을 상대하면서, 이 지연전 전략을 늘 사용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길을 뻘밭으로 만들어 네놈들의 진군을 느리게 하고 싶었어.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인지 아나?”
《…….》
“다른 대부분 괴수들에게는 ‘보급’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었거든.”
대부분의 괴수들은 식사조차 않는다. 마왕이 공급하는 악몽의 정수를 양분 삼아 움직일 뿐.
피를 동력원으로 삼는 흡혈귀나, 타인의 꿈을 삼키는 몽마, 그리고 허기의 저주에 걸린 이들 타락기사단 정도가 아니면, 보급 자체가 불필요하다.
“화력집중 구간이면 모를까, 그냥 길 전체를 느리게 만드는 건…… 효율적이지 못해. 작고 날렵하거나 하늘 날아다니는 다른 괴수들에게는 아예 별 의미가 없고.”
《…….》
“어차피 계속 밀려오고 싸워 죽여야 한다면, 굳이 지연전 펼치려고 자원 쓰느니 그 돈 아껴서 수성 시설 확충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혼자 계속해서 말을 내뱉던 애쉬는 이윽고 피식 웃으며 타락기사단을 향해 턱짓했다.
“하지만 네놈들은 다르지. 하나 하나가 무거운 전차에다가, 인육이 없으면 허기에 버티질 못하는…… 보급이 반드시 필요한 괴수들이니까.”
그래서.
애쉬는 이번 방어전을 지연전으로 계획했다.
“네놈들은 오늘, 우리 크로스로드의 환영술사 팀에게 고생했지. 내일은 또 어떤 함정이 너희를 기다릴지 기대되지 않나?”
애쉬는 그림자 속에서 입을 가린 채 조소를 머금었다.
그런 애쉬를 향해 타락기사들이 슬금슬금 거리를 좁혔다.
“이렇게 하루, 하루, 조금씩 시간이 경과하다 보면, 네놈들은 계속 서로를 잡아먹으며 알아서 숫자를 줄여주겠지.”
《…….》
“보급이 무한한 호수왕국 안에서는 너희만큼 무서운 놈들도 없지만, 이곳 인세에서는 간단한 보급 차단만으로도 자멸하는, 머저리 등신 새끼들이 바로 너희다.”
애쉬는 손가락을 들어 입술 위에 올리고, 싱긋 웃었다.
“너희는 이미 내가 만든 수렁에- 라스푸티차에 빠진 거야.”
《잘난 척은 좋다만, 인세의 수호자.》
팬드래건이 포효했다.
《승리 선언을 하기에는 아직 좀 위험한 것 같은데-!》
타앗-!
천천히 애쉬의 주위를 둘러싸던 타락기사들이 일제히 애쉬를 향해 달려들었다.
타락기사들의 합격(合擊)은 벼락과 같았다. 각자의 흉측한 무기가, 그리고 생자(生者)를 뜯어먹기 위한 이빨이 거칠게 날아들었다.
애쉬는 다급하게 검과 방패를 들어올렸지만,
챙그랑-!
검이 쪼개지고,
퍼억!
방패가 박살이 났다.
그리고-
콰직! 푹! 콰드득……!
온몸에, 타락기사단의 무기와 이빨이 빈틈없이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