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56
◈ 556. [Evil Side] 난공불락 (5)
“미안하다, 데미안.”
호수왕국 8구역에서 크로스로드로 돌아가던 와중.
멀리서 대기하던 저격수 데미안이 합류하자 애쉬가 사과했다.
“또 네게 험한 일을 맡겼구나.”
쟈칼이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애쉬는 데미안에게 저격을 지시했다. 그리고 데미안은 망설이지 않고 그 명령을 이행했다.
“저는 괜찮아요. 황자님.”
데미안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쟈칼님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한 거였잖아요.”
“…….”
“그리고, 앞으로…… 저들을 저격하는 임무를 맡기셔도 괜찮아요.”
데미안은 또렷한 눈으로 적들을 노려보았다. 머잖은 곳에서 타락기사들은 이쪽을 보며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한때는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저들은, 틀림없는 괴물이니까.”
“…….”
숨을 후, 들이쉰 애쉬는 강한 어조로 내뱉었다.
“돌아가자.”
깃대를 쥔 손에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를 까득 갈며 애쉬가 씹어 뱉었다.
“철저하게, 한 놈도 남겨두지 않고, 저놈들을 전멸시키기 위해서. 준비하자.”
***
며칠 뒤.
검은 호수.
쏴아아아아!
수면을 가르고 타락기사단 13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래라면 이름 잃은 자에게 출진을 저지당해야 했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타락기사단의 앞에 나타나지조차 않았다.
흑룡 군단과 악마수호병단 사이의 전투가 확대되어 호수왕국은 현재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이름 잃은 자는 그쪽 전투에 휘말려 있는 것이 아닐까, 타락기사단은 짐작할 뿐이었다.
타락기사단이 이번에 받은 다크 이벤트는 ‘강화(强化)’.
효과는 심플하다. 모든 능력치를 일괄적으로 증폭시킨다.
안 그래도 소수정예 군단인 타락기사단인데, 그들 개개의 힘을 더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다크 이벤트였다.
이름 잃은 자에게 한 명도 잃지 않고 출진하기 위해 권한대행이 고심을 거듭한 끝에 걸어준 것인데, 정작 이름 잃은 자는 나타나지조차 않았다.
상황은 의뭉스러웠지만, 어쨌든 막아서지 않는다면 고마운 일이었다.
결국 13인 모두 온전하게 바깥세상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타닥-
뼈와 썩은 살점으로 이뤄진 말, 시체마(屍體馬)를 타고서 지상에 올라선 뒤.
《태양인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며, 타락왕 팬드래건은 투구 속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여전히 증오스러운 빛을 뿌려대는군.》
이곳은 대륙 남부.
여름 오후의 태양은 이글거리며 타락기사단을 똑바로 내리비췄다. 뜨겁고, 환했다. 어둠에 파묻혀 있던 괴물들로서는 썩 달가운 환경은 아니었다.
《그 겨울에는 우리를 향해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인세를 멸망시키고 나면 저 태양도 떨어뜨려버립시다. 대왕.》
《키히, 키히히히, 태양은 무슨 맛이 날까…….》
농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던 타락기사 중 하나가 갑자기 정색하며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그나저나, 대왕, 배가 고픕니다만…….》
《식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그러느냐.》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픈 걸 어쩝니까…….》
호수왕국에서 되살아난 뒤 타락기사단은 식량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수왕국의 인간들은 모두 영생의 저주에 걸려, 아무리 먹어치워도 곧 되살아났으니까.
완전히 넋을 놓아버린 탓에, 산 채로 씹어 먹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밋밋하고 재미없는 사냥감들이긴 했지만. 덕분에 타락기사단은 늘 풍족했다.
하지만 본진을 벗어나 출진하자마자 이들은 공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허기가 지는 것은 팬드래건 또한 마찬가지였다.
팬드래건은 헛헛한 자신의 배 위를 손으로 쓸었다.
《……시장하긴 하군.》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참지 못하고 한 기사가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혀를 찬 팬드래건은 머잖은 곳에 보이는 인세 측 전진기지를 향해 턱짓했다.
《좋다. 얼른 저곳을 침탈하자꾸나. 규모를 보아하니 먹을 것이 한가득 있겠지.》
《키히, 키히히힛! 어서, 어서요!》
《꿀꺽. 꿀꺼억.》
《살아서 펄떡거리는 심장을 씹고 싶어……!》
투구 틈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타락기사 13인은 서둘러 전진기지를 향해 접근했다.
이들 13기사는 그들 스스로의 무용(武勇)에 대한 자신은 넘치도록 있었지만, 인세 측 방어군의 압도적인 전적(戰績)에 대해서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거미여왕에, 흡혈왕에, 늑대왕에, 고블린 신왕에, 유령해적함장에, 마술대제까지. 여기에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역병주와 몽마의 딸까지.
자그마치 여덟이나 되는 악몽 군단장을 모조리 물리쳤다고 하는 막강한 방어전선. 인세의 최종방어선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 바로 이곳, 크로스로드.
팬드래건은 자신을 제외하고는 호수왕국에서 스스로 왕이라 칭하는 이들을 모두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이 약한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괴수들을, 인세의 지휘관과 방어군은 모조리 물리쳐낸 것이다.
‘인정한다. 인세의 방어군은 강하다.’
그러니 방심 따위는 않는다.
전심전력을 다해서 박살을 내고, 전리품으로 적들의 고기를 씹을 것이다. 팬드래건의 벌어진 투구 틈으로 사악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두 무기를 뽑아라!》
전진기지가 충분히 가까워지고, 적들의 요격 사거리에 들어왔다고 판단하자.
팬드래건은 자신의 대검- 식인검 엑스카니발을 뽑아들었다. 그러자 뒤이어 부하 기사들이 일제히 각자의 끔찍한 무기들을 뽑아들었다.
거대한 대낫, 촉수가 휘감긴 장창, 인간의 기름으로 불을 지피는 불꽃 장검, 손가락 뼈로만 만든 도리깨…….
그런 부하들을 휙 돌아본 뒤, 팬드래건은 자신의 대검을 앞으로 겨누며 외쳤다.
《만찬의 시간이다! 돌격-!》
《돌겨어어어억-!》
《먹을래, 먹을래, 먹을래, 먹을래, 먹을래애애!》
13기사가 일제히 각자의 시체마를 내달려, 전진기지를 향해 질주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
시시각각 타락기사들이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전진기지에서는 아무런 요격도 않았다.
‘뭐지?’
괴물로 전락하기 전에는 정복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팬드래건은 이상을 느꼈다. 그는 생전 숱한 전쟁을 겪어본 남자였다.
어째서 요격이 날아오지 않는가?
혹시 자신들을 더 끌어들인 뒤에 일망타진하려는 함정인가?
아니, 하지만…….
‘아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전진기지에서는 요격 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날아오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없이 텅 빈 것처럼…….
이윽고 다른 타락기사들 또한 이상을 눈치챘다. 모든 기사들은 점차 속도를 떨어뜨리며 천천히 전진기지의 성문 앞에 멈춰 섰다.
《대왕!》
그때 성문에 다가선 장발의 타락기사가 당황한 어조로 팬드래건을 불렀다.
《문이 열려 있습니다, 대왕!》
《무어라……?》
놀란 팬드래건이 보자 정말이었다.
전진기지의 두터운 성문은 잠겨 있지 않고, 마음대로 들어오라는 듯 슬쩍 열려 있었다.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장발의 타락기사가 선두에 서서 성문을 열었고, 나머지 타락기사들은 언제라도 안쪽에 공격을 퍼부을 준비를 하며 바짝 따랐다.
그러나- 없었다.
요격도. 적군도. 아니, 그 무엇도.
적군이 없음을 확인한 타락기사들은 우르르 전진기지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휑한 전진기지 내부를 살피며 당황했다.
깨끗하고 완벽하게 정비된 전진기지는 텅 비어 있었다. 팬드래건이 침음했다.
《이런 시설을 방어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그냥 비워둬……?》
《대왕. 아무도 없습니다.》
전진기지 내부를 모두 둘러본 타락기사들이 이윽고 돌아와 보고했다.
《생활감은 있는 것으로 보아,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사용된 시설 같습니다만…… 우리가 오는 걸 알고 내뺀 모양입니다.》
《…….》
팬드래건은 무언가 석연찮았지만, 그렇다고 없는 적군을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다. 우선 이곳의 창고를 털어 식료를 찾아라. 식사부터 하자.》
《에엣, 대왕! 인육이 아니면 먹기 싫습니다.》
《되살아난 뒤로 인육 말고 다른 건 먹은 적도 없는데…….》
《칭얼거리지 마라, 욘석들아. 지금은 전시(戰時)지 않느냐.》
구시렁대는 부하들을 팬드래건이 달래는데, 창고를 확인하고 온 장발의 타락기사가 식은땀을 흘렸다.
《저, 대왕, 그것이…… 식량도 보이질 않습니다.》
《뭐?》
《창고가 깨끗하게 비어 있습니다. 먼지 한 톨 없습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팬드래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이 정도 규모의 기지에, 어제까지 사용된 시설인데…… 창고가 텅 비어 있어?》
하지만 사실이었다.
팬드래건이 확인하자 정말이었다. 전진기지의 모든 창고는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텔레포트 게이트로 빼낸 건가…….》
무너져 있는 마법석 무더기를 발로 차며 팬드래건이 혀를 찼다.
짜증이 났지만 그렇다고 없는 창고를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다른 타락기사들이 칭얼거렸다.
《대왕…….》
《배가, 고픕니다…… 미칠 것 같습니다…….》
《쯧.》
팬드래건은 인근의 숲 쪽으로 턱짓했다.
《사냥이라도 해오자. 저기 숲에 동물이 있겠지. 가자.》
그리하여 전진기지를 빠져나온 타락기사들은 숲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사냥을 시작하고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타락기사들은 또 다른 이상을 눈치챘다.
《뭔가 이상합니다, 대왕.》
《…….》
《사람은커녕…… 동물도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사아아아-
적막한 숲에는 더운 바람만 스쳤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어떻게 숲에 다람쥐 한 마리 보이질 않는 거냐?》
팬드래건을 뒤따르던 장발의 타락기사가 대답했다.
《전생에서, 요정왕국에 쳐들어갔을 때 기억 나십니까, 대왕? 그때도 엘프 놈들이 수작을 부려서 숲의 동물들이 모조리 도망가는 바람에, 숲이 텅 비어 있었잖습니까.》
《그건 요정왕국에 정령사들이 넘쳐나던 시대의 이야기 아니냐. 지금 인간 측 방어선에 엘프와 정령사가 모두 있다는 이야기냐?》
팬드래건이 이를 갈았다.
《설마 하니 이것들, 청야(淸野) 전술이라도 쓰는 거냐……?》
타락기사들은 버섯이며 열매 따위를 주워 왔지만.
한입에 해치우고 나서도, 허기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대왕! 이런 걸론 배가 안 찬단 말입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먹을 걸…… 먹을 걸 줘요, 대왕…….》
《입 닥치고 조금만 참아, 머저리들아.》
다시 전진기지로 돌아오자 어느새 밤이었다. 야영지를 꾸린 뒤, 팬드래건이 부하들에게 핀잔을 주었다.
《사흘만 북상하면 인세의 방어선이 있다지 않냐. 그곳에서 실컷 고기를 먹자.》
《으으…….》
《배고파서 죽을 것 같아…….》
타락기사들의 허기는 사실상 저주에 가깝다.
수백 년 동안 호수왕국의 어둠 속에서, 죽어도 죽어도 살아나는 호수왕국 국민들을 먹어치우며 풍족하게 살아왔기에 그들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조금만 공복 상태여도 광증이 심각해진다.
그리하여, 그날밤.
우득. 우득. 우드득.
까드득. 으적. 으적.
《……?》
한밤중. 보급 문제를 고심하는 팬드래건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뜯어먹는 소리였다.
기함한 팬드래건이 달려가서 보자,
《이 미친 새끼들이…….》
허기를 참지 못한 타락기사들이, 자신들이 타고 온 시체마를 뜯어먹고 있었다.
허겁지겁 썩은 고기를 삼키던 타락기사들은 왕이 온 것을 알아채고 그 앞에 무릎 꿇었다.
《대왕, 대왕…….》
《이런 걸로는 배가 안 찹니다, 대왕…….》
《먹을 걸…… 먹을 걸 주십시오…….》
굶주린 배를 붙잡은 채 자신의 발 아래를 기는 타락기사들을 보다가, 문득 팬드래건도 깨달았다.
배고프다.
미칠 듯이, 배가 고프다.
《……흐.》
투구 속에서 팬드래건의 입이 크게 미소를 지었다.
《나 진짜 13 좋아하는데.》
《……?》
《하지만 나의 기사들아. 너희를 위해서는 그것도 깰 수 있단다.》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을 희번덕이며 팬드래건이 뒤로 돌아섰다.
《보급이 왜 필요해. 이미 가지고 왔는데.》
***
《이러지 마십시오, 대왕.》
전진기지 구석에 몰린 장발의 타락기사가 앞으로 장검을 겨눈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한테 이러면 안 됩니다.》
나머지 열두 명의 타락기사는 그런 장발의 타락기사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겨누고, 입가로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우리 열세 명의 숫자가 하나 주는 건 정말 슬프지만.》
팬드래건이 대검을 까닥이며 속삭였다.
《무사히 적의 성벽까지 진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그 겨울산에서 그랬듯이 하루에 한 명씩 먹어치울 수밖에.》
《대왕, 제발……! 제가 얼마나 충정으로 당신을 모셨는데…….》
《고맙다, 내 친구. 잘 먹으마.》
《이러지 말라고오오오오!》
나머지 타락기사들이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장발의 타락기사는 검을 휘두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날 밤. 타락기사단은 풍족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