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55
◈ 555. [Evil Side] 난공불락 (4)
골목길에 드리운 어둠의 곳곳에서 타락기사들이 하나 둘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냥감들을 완전히 포위한 채, 타락하고 미쳐버린 기사였던 것들이 일제히 군침을 꿀꺽 삼켰다.
타락왕 팬드래건이 오염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 13등분의 시간이다!》
그리고는, 가장 가까이 묶여 있던 붙잡힌 인간 마법사의 가슴팍에 대검을 박아넣었다.
“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산 채로 가슴팍에 칼이 꽂힌 마법사는 격렬하게 몸을 사방으로 떨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 움직임도 서서히 멎었다.
죽은 마법사의 몸을 마저 동강내려는 팬드래건에게 다른 타락기사가 뭉개진 발음으로 물었다.
《그런데, 대왕……. 생포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응? 아, 맞노라. 그랬었지, 참.》
피칠갑을 한 몸으로 대검을 치켜든 채 팬드래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만 마저 썰고 나머지는 생포하도록 하자.》
《키히, 키히히히! 눈알은 저 주십시오!》
《저는, 그럼 귀를…….》
《손가락! 손가락! 손가락! 손가락! 손가락!》
《어허, 이 버릇없는 녀석들. 13등분이라니까, 13등분?》
인간이 아니게 된 괴수들의 미친 대화를 들으며 제압당한 영웅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때였다.
휙! 휘리릭!
벼락처럼 단검이 날아들었고,
푸푸푹!
묶여 있던 나머지 영웅 넷의 목에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미안하다. 이 자들에게 잡힌 이상, 평화로운 최후는 기대할 수 없다.”
단검을 던진 것은 선두에서 이들 파티와 함께 움직이던 쟈칼이었다. 유일하게 제압당하지 않은 쟈칼이 자신의 단검을 투척해 동료들을 죽인 것이었다.
“차라리 내가 보내주겠다…… 평화롭게 잠들도록 해라.”
네 명의 영웅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러나 감사해하며 절명했다.
자신의 손으로 동료들을 죽인 쟈칼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감상에 빠질 시간은 없었다.
《호오, 이게 누구신가.》
타락왕 팬드래건이 핏물이 질질 흐르는 대검을 어깨 위로 치켜들며 턱짓했다.
《변두리 콜로세움에서 떵떵거리던 자칭 검투왕 쟈칼이시군.》
“…….”
《개나 소나 칭왕을 하더니, 콜로세움이 작살 난 지금은 스스로를 뭐라 부르오?》
“뭐라 부르든 상관없다.”
쟈칼은 손에 들린 단검을 고쳐 쥐었다.
“지금 나는 내가 따르는 분…… 애쉬 황자 전하의 수하일 뿐이니까.”
《어처구니가 없도다. 한때 왕을 자처했던 자가 누군가의 가랑이 아래로 개처럼 기어 들어간 꼴이라니.》
“멋대로 지껄여라, 괴물.”
《괴물인 건 그쪽도 마찬가지잖소. 이제 와서 인간 행세 하지 마시게.》
차갑게 내뱉은 타락왕은 혀를 끌끌 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생포를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다 죽여버리다니. 어떻게 책임질 셈이오, 쟈칼?》
“책임?”
쟈칼은 피식 비웃었다.
“나는 네놈들의 계획을 망쳐서 기쁠 뿐이다.”
《아니지. 그게 아니지.》
팬드래건이 큭큭 웃었다.
《나는 지금, 네놈이라도 생포해야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잖소.》
“……!”
《동료들을 죽여서 자유롭게 만들어준 그 결단, 훌륭했소. 그런데 이거 어쩌나.》
팬드래건의 투구가 옆으로 까닥, 젖혀졌다.
《그럼 혼자 남은 네놈은 누가 죽여줄 거지?》
쟈칼은 기민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열세 명의 괴수들이 자신을 완전히 포위한 상황이었다.
쟈칼은 잘 알고 있었다. 이들 13 타락기사를 상대로 혼자서는 승산이 없다.
이들은 모두 대인전의 스페셜리스트이며, 인육에 환장한 타락귀들이다. 반면 자신은 검투왕일 때의 힘을 대부분 잃은 상태.
‘이놈들의 목적대로 생포당해 이용당하느니, 차라리……!’
쟈칼은 자결하려고 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오른팔에 들린 단검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미 오른팔이 없었다.
“……!”
뎅겅-!
어느새 뒤에서 기습해온 타락기사의 거대한 낫이 쟈칼의 오른팔을 토막 냈다.
쟈칼은 왼손으로 다른 단검을 뽑아들려고 했지만, 이미 날아온 쇠사슬 달린 추가 그의 왼손을 찢고 관통하고 있었다.
콰직!
쟈칼의 왼손을 관통한 추가 바닥에 박혔고, 쇠사슬에 꿰인 쟈칼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큭-!”
쟈칼은 다급하게 다른 자결할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혀를……!’
혀를 깨물려고 하는데, 즉시 촉수가 휘감겨 오더니 쟈칼의 목을 거세게 졸랐다. 쟈칼은 숨이 막혀 컥컥거렸다.
그 앞에서 팬드래건이 혀를 찼다.
《거 참. 혀 끊는 정도로는 못 죽는 거 알 텐데. 뭣보다 네놈 꽤 튼튼하잖소.》
“끄으, 큭……!”
쟈칼이 사용하려 한 방법은 혀에 마력을 응축한 뒤 깨물어 터뜨려, 그 충격으로 자신의 뇌를 파괴하는 것이었지만.
촉수가 입을 재갈처럼 막아 그 방법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온몸이 쇠사슬과 촉수 따위에 속박된 쟈칼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약해졌도다, 검투왕이었던 사내여. 그러니 죽을 때 죽더라도 왕관은 쓰고 있었어야지.》
탄식한 팬드래건은 버둥거리는 쟈칼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했다.
《흠. 그나저나 생포라는 게 말이지. 아무튼 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는 뜻이렷다?》
팬드래건은 가뿐하게 자신의 대검을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푸욱!
쟈칼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
핏물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쟈칼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파도 좀 참으시오. 오랜만에 내 검에도 피 맛을 좀 보여줘야겠으니.》
팬드래건의 대검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약동하며 쟈칼의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팬드래건은 그제야 흡족하게 웃었다.
《어쨌든 왕이었던 몸이잖나. 버텨보라고.》
***
크로스로드에서 구원군이 찾아온 것은 불과 몇 시간 뒤의 일이었다.
8구역. 무너져가는 예배당.
타락기사들의 본거지 바로 앞까지 찾아온 것은 크로스로드의 최정예 영웅들. 그리고.
탁-
낡고 헤진 깃발을 휘날리는 기수(旗手), 지휘관 애쉬.
인세의 수호자 본인이었다.
“…….”
예배당 입구에 선 애쉬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입구에 서서, 안쪽의 광경을 멀거니 응시할 뿐.
예배당 안쪽의 각탁 위에는 정찰대 영웅 5인의 시체가 뼈만 남아 있었고, 타락기사들은 부른 배를 만지며 트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 묶여 매달린 쟈칼.
가슴팍에는 팬드래건의 대검이 꽂힌 채, 비쩍 말라 미라처럼 변해버린 쟈칼은 겨우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이미 저항할 힘을 모두 잃었기에 촉수며 쇠사슬은 다 치워진 상태였다.
《어서 오시오, 인세의 수호자.》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던 팬드래건이 가뿐하게 몸을 일으켰다.
《설마 하니 본인이 직접 올 줄은 몰랐군. 만나서 반갑소.》
“타락 13기사. 그리고 그 리더 타락왕 팬드래건.”
애쉬는 차가운 목소리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읊었다.
“본래는 고대 왕국의 전설적인 왕과 기사들이었다지. 하지만 어느 겨울, 북방 원정을 떠났다가 설산에 고립되고, 식량이 바닥나자.”
팬드래건이 몸을 움찔 떨었다.
“왕과 기사인 네놈들은 매일 한 명씩 병사를 잡아 식인했지. 숙소로 사용하던 예배당의 각탁 위에 올려두고. 피울 불도 없어 생식(生食)을 했다지.”
《…….》
“그리하여 겨울이 끝나고, 눈보라가 멎었을 때에는…… 병사들은 모두 네놈들의 먹이가 된 뒤였고, 네놈들은 인육에 맛들린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하는.”
애쉬가 사납게 씹어 뱉었다.
“그래서 고국으로 돌아와 자국민들까지 모조리 잡아먹었다고 하는, 그런 끔찍한 전설 속의 괴물.”
《……하하. 이거 역사에 아주 조예가 깊은 분이셨구먼. 이렇게 우리에 대해 잘 알다니 조금 부끄럽기까지 한걸.》
팬드래건이 입맛을 다셨다.
《나는 똑똑한 사람을 좋아해. 그도 그럴 게.》
“…….”
《고기가 아주 야들야들 맛있거든.》
침묵하는 애쉬에게 팬드래건은 위쪽을 손짓했다. 묶인 쟈칼을 향해서였다.
《듣자하니 부하들을 꽤 아낀다던데, 자. 와서 데려가 보시오.》
“…….”
애쉬는 각탁 위에 올려진 뼈의 숫자를 헤아렸다. 빠득, 하고 그의 이가 꽉 맞물리는 소리를 냈다.
“정찰대 전원의 죽음을 확인했다.”
애쉬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적의 준비된 본진 안에서 싸울 필요는 없다. 퇴각한다.”
《너무한 말이로군.》
팬드래건이 쟈칼의 가슴팍을 손으로 툭툭 쳤다.
《이 자는 그대의 부하도 아닌가? 아직 살아 있는데?》
“이미 알고 있다, 팬드래건.”
애쉬는 차갑게 내뱉었다.
“네놈의 식인검(食人劍) 엑스카니발(Excannibal)에 ‘먹힌’ 시점에서, 검을 뽑는 즉시 쟈칼은 죽는다는 것 정도는.”
《…….》
“어울리지도 않는 인질극 따위 하지 마라. 안 그래도 요즘 인질극 많이 당해서 피곤하니까. 이 X같은 식인종 새끼야.”
《입이 험하군, 인세의 수호자.》
“피 빨아먹는 새끼도 엿같았지만, 너도 만만찮아. 이 씨발새끼야. 입 열지 마. 냄새 맡기 싫으니까.”
애쉬는 팬드래건을 더 상대하지 않고 묶인 쟈칼을 마주보았다.
“쟈칼.”
“…….”
허공에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쟈칼은 힘겹게 웅얼댔다.
“죄송합, 니다…… 전하…… 제가 좀 더 제대로 대처했다면…….”
“너는 할 만큼 해줬다.”
애쉬는 팬드래건에게 쏟아내던 적의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더없이 자상하고 온화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진심으로, 너의 헌신에 감사한다.”
“…….”
“에버블랙은 너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 말에 쟈칼의 눈이 흐릿한 생기를 되찾았다.
희미하게 웃은 쟈칼이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전하…….”
애쉬가 팔을 휘저었다. 그러자.
타앙-!
어디선가 총성이 울리더니, 날아온 마탄 저격이 쟈칼의 머리를 관통했다.
쟈칼은 웃는 채로 죽었다.
홱!
애쉬는 그대로 뒤돌아섰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 예배당으로부터 멀어졌다.
《보내줄 것 같은가!》
팬드래건이 소리쳤고, 타락기사 중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손을 뻗었다.
촤아아악!
피와 뼈, 독과 저주로 이뤄진 각종 사악한 마법이 애쉬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애쉬는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가볍게 깃대로 바닥을 쳤다.
촤르르륵-!
그러자 깃발 아래에서 마력의 성벽이 솟구쳐 오르더니, 꽃처럼 겹겹이 피어오르며 사악한 마법을 모조리 막아냈다.
애쉬는 계속해서 걸어갔고, 애쉬의 부하들 또한 타락기사들을 사납게 노려본 뒤 자신들의 주인을 뒤따라 물러났다.
팬드래건이 고함을 질렀다.
《이 참혹한 네 부하들의 시체가 보이지 않느냐!》
“보았다. 충분히 뇌리에 새겼다.”
《그런데도 내빼느냐! 원수를 갚지 않을 셈이냐! 이 비겁한 자식, 네가 그러고도 지휘관인가!》
“지휘관이기 때문이다.”
새카만 눈을 증오로 불태우며, 애쉬는 씹어 뱉었다.
“그러니까,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하겠다.”
《…….》
“네놈들이 티끌만큼이라도 유리한 전장에서는, 상대하지 않겠다. 싸우고 싶다면 내 성벽으로 와라.”
깃대를 쥔 손에 핏대를 세운 채, 애쉬는 맹수처럼 으르렁댔다.
“걱정하지 마라, 타락왕. 내 약속하지.”
《…….》
“네놈은 마지막 세포 하나까지 내가 짓이기고 불태워주마.”
그리고 애쉬는 걸어서 사라졌다.
팬드래건은 추격하려 했으나, 이윽고 그만두었다. 저 남자라면 추격을 뿌리칠 방법 정도는 준비해왔을 게 분명했다.
《왕이로구나.》
투구 속에서 팬드래건의 피로 물든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 지옥에서 무수한 자칭 왕들을 만났지만, 저놈은 진짜다. 저놈은, 진정 왕자(王者)로다……!》
팬드래건은 투구를 쩍 벌려 미친 듯이 광소를 시작했다.
《저놈은 내 먹이다! 내가 먹어치울 테다! 아암, 그렇고 말고! 마지막 살점 하나, 손톱 한 조각까지! 전부! 모조리! 내가 먹어버릴 테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구석에 숨어서, 로우는 지켜보고 있었다.
멀어지고 사라지는 애쉬의 뒷모습을, 로우는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저 인간이…… 인세의 수호자.’
소악마의 주먹이 꾹 쥐어졌다.
‘내가 상대해야 할…… 최강의 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