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95
◈ 595. [STAGE 35] 발버둥
쩌적…… 쩌저적…….
존재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영핵에 겨울을- 얼음의 정령 수십 마리를 모조리 때려 넣었다.
파리대왕의 가슴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놈의 못 곳곳에서 날뛰던 촉수들도, 다시금 재생성을 마치고 날아오르려던 날개도, 모두가 하얗게 얼어 움직임을 멈췄다.
“후우우…….”
나는 희다 못해 푸른 기운까지 도는 입김을 길게 내뿜으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놈의 영핵에 깊게 박힌 나의 깃대와, 그 깃대에 휘날리는 모습으로 얼어붙은 나의 깃발이 보였다.
그 아래에 얼어붙어 죽어가는 파리대왕의 모습까지도.
명백한 손맛이 있었다. 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이겼다.”
보스킬에 성공했다.
운이든 우연이든 요행이든 무엇이든 간에 어떻게든 이 망할 괴물을 죽이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몸을 떨며 깃대를 붙잡고 앞으로 휘청 몸을 숙였다. 끔찍한 한기가 온몸으로 파고들었지만, 일순 몰려든 탈력감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눈을 꾹 감았다가, 눈꺼풀이 얼어붙는 바람에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자.
“……?”
이상한 것이 보였다.
영핵부터 온몸이 얼어붙었음에도, 놈의 몸 말단에서 시작된 도화선의 불꽃은 계속해서 영핵을 향해 타들어오고 있었다.
“무슨…….”
놈의 자폭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다.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괴수를 노려보았다.
“설마, 이건……!”
《네.》
파랗게 얼어붙은 채로 파리대왕이 웃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
《전투 개시 후 15분 뒤에 제가 자폭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제가 패배하면이 아니라, 제가 승리하면 자폭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파리대왕은 흡족한 듯한 목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저는 패배했고, 이제 자폭은 멈출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죽을 겁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파리라는 괴수는, 인류를 상대로 승리한 것이 되겠지요.》
“…….”
《인류를 멸망시킨 것은, 결국 파리라고. 세상은 알게 될 겁니다.》
괴수의 헛소리를 들으며 나는 스스로의 멍청함에 개탄했다.
대체 괴수의 말을, 무엇 때문에 그대로 믿은 건가?
나를 보는 놈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간절함이 느껴져서? 나와 싸우기 위해 태어났다는 놈의 진실된 적의에 감응해서?
‘아니, 아니다.’
나에게도 그것밖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 15분. 그 뒤에 자폭해서 크로스로드 전체를 날려버릴 괴수.
이놈을 어떻게든 하려면 우선 쓰러뜨려야 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 승리하는 데에 성공했다.
다만, 이 뒤의 수가 없을 뿐이다.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15분 안에 저를 쓰러뜨리다니…… 당신은 대단합니다. 적이지만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파리대왕의 말이 느려졌다. 이제 완전히 얼어붙은 놈의 겹눈에는 더 이상 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나의 모든 것을 바쳐, 당신을 쓰러뜨릴 뿐…….》
“…….”
《체크메이트입니다, 인세의 수호자…….》
괴수가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저의 승리입니다.》
사아아아아…….
휘몰아치는 눈가루를 맞으며, 파리대왕은 죽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시간은 이제 5분도 남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다……!’
시간이 남았고, 아직 팔다리는 움직인다.
그렇다면 싸운다. 싸워야 한다.
싸워야 하는데…….
고개를 돌리자, 파리대왕의 위에서, 아래에서, 옆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지친 안색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맥이 탁 풀렸다.
이 모든 장대한 전투에 10분밖에 소모하지 않았다. 전선의 모든 영웅들이 죽을힘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하얗게 불태운 결과였다.
그리고 이제 모두 힘이 다했다. 더는 싸울 힘도 방법도 없다.
‘파리대왕의 자폭을 어떻게 막아야 하지?’
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의 자폭이다. 허장성세가 아니라, 놈의 체내에서 들끓는 마력의 양을 보면 당연한 결과다.
애초에 놈은 전투에 사용할 마력까지 그러모아 자폭에 투자했다. 느껴지는 마력량으로는 크로스로드를 넘어 일대 권역을 모조리 불태우고도 남을 정도다.
‘막는 건 불가능해. 그렇다면 가능한 도시에서 멀리 떼어 놓아야…….’
하지만, 놈은 어지간한 비공함보다 더 거대한 괴수다.
이런 괴수를, 대체 누가 어떻게 옮긴다는 말인가…….
‘끝인가?’
도저히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 게임 오버인가.
“…….”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나는.
나의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입안에서 말을 굴리다가, 천천히 눈을 뜨고. 힘겹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5분 뒤면…….”
나를 보는 사람들에게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5분 뒤면 파리대왕의 시체가 폭발할 것이고, 그 위력과 범위는 도시 전체를 뒤덮고도 남는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죽겠지.”
나는 말을 골랐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포기하고, 이제 쉬자.
눈을 감고 죽음을 받아들이자.
너희 모두 정말로 고생 많았다.
잘 싸웠다. 너희가 자랑스럽다, 함께할 수 있어 기뻤다, 비록 우리는 패배하지만 우리의 분투를 세상은 잊지 않을 것이다…….
“…….”
목 끝까지 나온 언어가, 멈췄다.
대신.
“……지랄하지 마.”
그딴 미사여구를 씹어 삼키고.
그 대신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지랄하지 말라고, 씨발!”
얼어붙은 깃대를 맨손으로 움켜쥐고 나는 호통을 쳤다.
“나는 포기 안 해!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싸울 테다!”
아직.
아직 게임 오버가 아니다. 여전히 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나도, 너희도-
“5분 안에, 이 괴수의 시체를 도시 밖으로 빼내야 한다……!”
싸우자.
“모두, 힘을 모아! 시체를 도시 밖으로 밀어내라!”
싸워야 한다.
“삶이 다할 때까지, 세상이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마! 발버둥 쳐라!”
나는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싸워……!”
이것은 명령이었고,
“예-!”
내 부하들은 충실하게 따랐다.
쓰러져 있던 모든 영웅과 병사들이,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피투성이 몸을 일으켜, 파리대왕의 시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밀어!”
“도시 밖으로-!”
“가능한 멀리, 멀리……!”
전위 영웅들이 팔로, 등으로, 어깨로 괴수의 시체를 밀고. 마법사들이 각종 마법으로 그 과정을 도왔다.
무너진 건물에서 가져온 통나무 기둥을 괴수의 시체 아래에 깔고, 얼어붙은 빙판으로 괴수의 시체를 끌어내며…….
온갖 방법을 동원하자, 파리대왕의 거구가 천천히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나 또한 파리대왕의 시체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온 뒤, 이를 악물고 부하들과 함께 시체를 밀어냈다.
그러나- 느리다.
괴수는 무겁고 거대하다. 변변한 도구나 장비도 없이 놈을 바깥으로 멀리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앞으로 자폭까지는 고작 몇 분.
도구도, 장비도, 공수해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무의미한 발버둥이다.
‘알아, 안다고!’
시체를 밀어내며, 나는 모두와 함께 비명을 지르고 악을 썼다.
‘알고 있지만……!’
이 엿같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발버둥뿐이라면.
추하고, 바보같고, 어리석어도…… 할 수밖에 없잖아……!
“으아아아아아!”
고함을 내지르며, 없는 힘까지 쥐어짜 파리대왕을 밀어내던 바로 그때.
휙.
-갑자기 시체가 들렸다.
“어?”
모두가 당황했다.
이 자리의 전원이 죽을 힘을 다해 밀고 있던 괴수의 시체가 허공으로 훌쩍 들어 올려졌다.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쿵, 쿠구궁…….
그것은 골렘이었다.
무너지고 박살 난 남쪽 성벽의 파편이, 거대한 사람의 형체로 합쳐진 뒤…… 두 팔을 파리대왕의 시체 아래에 밀어넣고, 천천히 들어 올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디서 골렘이……?”
“이런 크기의 골렘은, 본 적도 없는데…….”
나는 숨을 삼켰다. 이 자리에서 오직 나만이 저 골렘의 정체를 알고 있다.
파티 블랙리스트 소속.
SR등급 골렘술사, 캔들러의 궁극기.
[거신병(巨神兵) 소환].“캔들러?!”
그 골렘의 어깨 위에 캔들러가 서 있었다.
산발한 머리를 눈바람에 휘날리며, 머리 위에는 예의 촛대 왕관을 쓴 차림새로.
“으으윽…….”
그동안 그녀와 그녀의 골렘이 나른 건설 자재와는 무게의 단위가 달랐다.
골렘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굽혀진 다리가 펴질 줄을 몰랐다. 막대한 괴수의 무게를 들어 올리느라, 골렘의 몸 곳곳에는 금이 쩍쩍 벌어지고 있었다.
캔들러는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아!”
명백한 무리였다. 캔들러는 코 뿐만 아니라 눈과 귀, 입- 모든 곳에서 핏물을 쏟으며 골렘을 컨트롤했다.
“그만둬, 캔들러! 더는…….”
나는 말을 맺지 못했다.
한쪽 다리를 땅에서 뗀 골렘이 그 다리를 힘겹게 앞으로 뻗더니,
-쿵.
땅을 짚었다.
다음 다리도, 땅을 훌쩍 박차고는, 앞으로 움직여- 땅을 짚었다.
두 동작을 반복한다.
달린다.
쿵! 쿵! 쿵!
골렘이, 달린다.
다리를 절던 주인과 마찬가지로, 휘청거리고 자세를 잡지 못하던 골렘이, 이윽고 반듯하고 규칙적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성벽 바깥으로.
남쪽 벌판으로.
“사실은 나, 머리 다치지 않았어요.”
핏물이 말라붙은, 하지만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골렘 위에 선 채 캔들러가 중얼거렸다.
“다리를 절지도 않고, 거동도 불편하지 않아요. 다 거짓말.”
“캔들러……!”
“괴수가 너무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은데, 비겁하다는 욕을 먹기 싫어서, 도망치는 명분이 필요해서, 그래서 다쳤다고, 모두에게 거짓말을 했어.”
픽-
캔들러의 머리 위에서 흔들거리던 촛대 왕관 중 초 하나가 꺼졌다.
“다시는 저 괴수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두려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전선에서 도망쳤어.”
픽-
다음 초가 또 꺼지고,
픽-
그 다음 초도 꺼졌다.
“그런데, 깨달았어요. 이런 비겁한 나를 구하려고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을 보고 깨달은 거야.”
이제 켜진 초가 많이 남지 않았다.
코와 입으로 피를 토해내면서도 캔들러는 웃었다.
“비겁하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하다는 걸.”
“캔들러……!”
“지금도 무서워요. 무서워서 숨을 못 쉬겠어요. 너무 심장이 뛰어서, 당장 쓰러져 죽어버릴 것 같은데.”
픽-
이제 촛불은 하나만 남았다.
“그래도…… 나도 이 도시에서, 이 세상에서 행복했으니까.”
남은 생을 연료로 불태워 골렘을 내달리게 하며, 캔들러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조금 정도는…….”
***
도시를 벗어난 골렘이 남쪽 벌판을 내달린다.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
진작 한계를 벗어나고 의식마저 거의 잃은 채, 캔들러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골렘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리고.
픽-
캔들러의 머리 위에서 흔들리던 마지막 촛불이 마침내 꺼졌다.
‘한 걸음만…… 더…….’
쓰러지면서도 기어코 골렘이 한 걸음을 더 내딛게 한 뒤.
완전히 의식을 잃은 캔들러가 골렘의 어깨 위에서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쿠구궁…….
남쪽 벌판의 중앙에서, 골렘이 천천히 무너졌다.
동력을 상실하고 다리를 헛디딘 골렘의 자세가 무너졌고, 하반신부터 붕괴하며 골렘은 앞으로 쓰러졌다.
본래의 모습인 벽돌과 철골 파편으로 변해가는 골렘의 손에서, 미끄러진 파리대왕의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두두두두두-
타앗!
받아냈다.
삽시간에 저공비행하며 날아든 제로니모가, 선체의 등 부분으로 파리대왕의 시체를 받아냈다.
상징과도 같던 두 프로펠러는 진작 멈췄고, 폭주시킨 선체 하단의 쓰러스터가 시커먼 연기와 불길을 아래로 토해내며 가까스로 무게를 버텨냈다.
해치 밖을 내다보던 켈리베이가 캔들러를 향해 소리쳤다.
“확실하게 전달 받았다……!”
캔들러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거대한 골렘이 완전히 분해되어 무너져 내렸고, 그 골렘을 뒤로하고 파리대왕을 짊어진 제로니모가 쏘아졌다.
남쪽으로.
조금이라도 더, 남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