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72
◈ 672. [STAGE 40] 흑화
눈이 쏟아지는 크로스로드는 혼란스러웠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지난 브레스 직격의 피해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동쪽 벌판은 불타고 있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아리안 왕국 사람들의 주도 아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북쪽으로 도망쳤다.
“…….”
브링어 공국 군영.
이렇게 혼비백산한 도시를 가만히 살피며, 더스크 브링어는 사제들에게 둘러싸여 치유 마법을 투여받고 있었다.
사제들은 상의를 탈의한 용혈공작의 뒤에 붙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신성력을 투여했다. 하지만 부상은 쉬이 낫지 않았다.
황제가 황도에서 직접 데려왔다는 고위 사제가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등의 부상이 심각하십니다.”
“…….”
더스크 브링어의 등 상태는 참혹했다.
마치 용암이 끓어오르는 화산처럼, 새카맣게 타버린 피부 아래로 갈라진 붉은 상처가 열기를 뿜어냈다.
나이트 브링어의 맏아들- 아이피안의 브레스에 직격당했다. 이 정도 부상으로 끝난 것이 기적이었다. 또한 이런 부상을 입고도 움직일 수 있는 더스크 브링어의 정신력 또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 정도 기적으로는 나이트 브링어를 막아낼 수 없었다.
“쉽게 나을 수 없는 부상인데, 흑룡과 전투까지 벌이셨으니…… 상처가 더 벌어졌고, 상처를 통해 흑룡의 사기(邪氣)가 침투했습니다.”
“결론만 말하게, 사제. 그래서? 어떤가?”
“…….”
“그대의 황제가 바라는 대로, 내가 전력을 다하면…… 흑룡의 다음 브레스를 받아낼 수 있을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대공.”
사제는 자신이 모시는 상대가 황제가 아니라 여신임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려다 멈춘 뒤, 간결하게 진단을 내렸다.
“또 전장에 나서신다면 목숨을 잃으실 겁니다.”
“…….”
“지금 몸 상태로는 브레스를 막기는커녕, 함께 휩쓸려 돌아가실 겁니다.”
“그렇군.”
역시 간결하게 답한 더스크 브링어는 자리에서 일어나 셔츠를 걸치고 단추를 잠갔다.
“치료해주어 고맙네. 가보게.”
“대공…….”
“흑룡을 막을 방법은 내가 강구해 보겠다고 트라하에게 전해주게.”
사제는 무어라 더 말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고 인사한 뒤, 다른 사제들을 이끌고 천막을 빠져나갔다.
“…….”
셔츠 위의 어깨에 두툼한 숄을 걸친 뒤.
불타는 듯한 등의 고통을 참고, 더스크 브링어는 자신의 천막을 나섰다.
브링어 공국군 군영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국군은 괴수전선 직속으로 적(籍)을 옮겨두었기에 이번 토벌대에 동원되지 않았고 전멸을 피했으나, 어차피 다가오는 흑룡 앞에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도시 내부 복구를 위해 동원되어 바쁘게 흩어지는 자신의 병사들을 보다가, 더스크 브링어는 옆의 천막으로 들어섰다.
그 천막은 용기사들이 사용하는 장소였다. 입구의 천을 걷고 안으로 들어선 더스크 브링어가 안을 둘러보았다.
“앤디미온.”
“각하……!”
창백한 안색으로 침대에 누워 있던 노기사가 주인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뒤이어 다른 용기사들까지 다급히 드래곤 레이디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모두 온몸이 붕대에 휘감긴 부상자였다.
더스크 브링어는 나머지 용기사들의 이름도 차례로 읊었다.
“베를린. 시은. 제트.”
“부르셨습니까, 각하!”
일생 자신을 모시며 충의로 따라온 기사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살핀 뒤.
더스크 브링어는 눈을 꾹 감았다.
“……미안하다.”
갑작스러운 사과였으나, 네 명의 용기사는 즉시 주인의 뜻을 알아차렸다.
“결국 이런 때가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각하.”
용기사들 중 최연장자이자 필두인 노기사 앤디미온이 가장 앞에서 빙그레 웃어 보였다.
“각하께서 주신 힘이고 목숨입니다. 바라시는 대로 거둬가소서.”
“…….”
“다만, 승리를.”
앤디미온이 바닥에 이마를 붙였다. 그의 성성한 백발이 바닥에 흐트러졌다.
“꼭…… 바라시는 대업을 성취하소서.”
“……그러겠다.”
더스크 브링어는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니…… 조금만 쉬도록 하라.”
네 명의 용기사는 각자의 가슴 앞에 손을 올린 뒤, 자신의 가슴에서 붉은 마력 통로를 뽑아냈다. 그 마력 통로는 더스크 브링어에게 연결되었다.
이윽고 그 마력 통로를 통해, 붉게 빛나는 보석 같은 마력원이 용기사들의 몸에서 빠져나와 더스크 브링어에게로 회수되었다.
더스크 브링어가 이들에게 하사했던 용혈이었다.
이들을 용기사일 수 있게 해준, 일반적인 인간의 몇 배나 되는 수명을 주고 괴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던 그 힘의 근원. 바로 그 용혈을 이들은 망설임 없이 도로 돌려냈다.
용혈을 돌려받으며, 더스크 브링어의 커다란 호박색 눈에서 참지 못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아아…….
회수 과정이 끝났다.
용혈이 제공하는 생명력이 사라지자, 청년의 외모였던 시은과 제트는 중년의 모습으로, 중년의 외모였던 베를린은 노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본래도 노년의 외모였던 앤디미온은…… 자신의 주인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 모습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런 노기사의 앞에 마주 무릎을 꿇은 더스크 브링어는 눈물범벅인 얼굴을 손등으로 닦아낸 뒤, 노기사의 차게 굳은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그대들의 충의를 내 잊지 않으마.”
죽은 앤디미온을 제외한 나머지 세 기사가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며 속삭였다.
“각하의 앞길에 무궁한 무운 있기를 빌겠나이다.”
그런 기사들의 머리를 한 번씩 끌어안고 쓰다듬어준 뒤.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킨 더스크 브링어는 천막을 벗어나, 브링어 공국군 군영을 빠져나왔다.
두 눈에는 여전히 슬픔이 가득했지만, 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아직이다…… 아직, 이 정도로는 부족해.”
친애하는 부하들에게서 회수한 용혈만으로도, 출력이 눈에 띄게 회복되었지만…….
이 정도로는 그 흑룡에게 대적하기에 까마득하게 부족함을 알고 있었다. 더스크 브링어는 이를 악물고 앞을 노려보았다.
어차피 정면 힘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사도(邪道)라도 뒤섞는 수밖에.
“……되찾을 시간이군.”
그녀는 비틀거리며 크로스로드 시내로 들어섰다.
“오래전에 뿌렸던 저주를…….”
***
나이트 브링어의 첫 브레스 때, 브레스의 범위에 휩쓸린 여관 ‘에티의 벌꿀’은 폭삭 무너져 버렸다.
숙소를 잃은 여관 거주자들은 함께 병영으로 숙소를 옮겼다. 여관 붕괴 당시 신전에 있었던 글로리 나이츠도, 마법사 쥬니어도 마찬가지로 숙소를 옮겨야 했다.
“…….”
쥬니어의 방.
열 오른 얼굴로 쓰러진 쥬니어는 달뜬 숨을 연신 뱉어내며 앓았다. 그리고 헤카테는 그런 쥬니어의 침대 옆에 앉아 그녀의 머리에 적신 수건을 갈아주고 있었다.
쥬니어는 지난 전투 때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마법을 난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장비 [지나간 미래]를 이용해 미래의 마력까지 가불해서 사용했다.
전투 종료 후 극심한 마력 고갈 상태에 빠져 쓰러졌고, 이렇게 끙끙 앓게 되었다.
헤카테는 어차피 자신도 휴식을 취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또 같은 숙소를 사용한 인연도 있었기에 겸사겸사 쥬니어의 간호를 맡게 되었다.
“…….”
쥬니어의 땀에 젖은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왼쪽 얼굴에 새겨진 화상이 보였다.
그 화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헤카테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러려고 당신 앞방에 숙소를 잡은 건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헤카테는 턱을 괴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때였다. 방문에 노크 소리가 울리더니, 다른 글로리 나이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카테 경, 손님이 오셨습니다.”
“어느 분이시죠?”
“더스크 브링어 대공이십니다.”
놀란 헤카테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문이 홱 열리더니, 더스크 브링어가 굳은 걸음걸이로 안으로 들어섰다.
갑작스러운 대공의 방문에 나머지 글로리 나이츠 기사들도 놀라서 그 뒤로 우르르 달려왔다.
더스크 브링어는 쓰러진 쥬니어와 지쳐 보이는 기사들을 쭉 둘러본 뒤 쓰게 웃었다.
“다들 고생이 많군.”
“대공. 어쩐 일로…….”
내심 짐작하고 있었지만 헤카테가 조심스레 물었다. 더스크 브링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꺼내지. 그때 과인이 주었던 제안, 생각해 보았나?”
“……네.”
아이피안과의 전투를 앞두고, 헤카테를 찾아온 더스크 브링어가 제안했었다.
글로리 나이츠에게 예정된 최후- 산 채로 묻히거나, 괴물이 되어 참수되는 결말. 이것을 대신해 세 번째 길을 걷지 않겠느냐고.
그 세 번째 길이란 바로-
“그럼 결심이 섰나? 과인에게 너희의 ‘저주’를 환원하고, 너희는 앞으로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길 말이다.”
이것이었다.
글로리 나이츠에게 걸린 저주를, 그 저주의 술자인 더스크 브링어가 도로 가져가는 대신…… 글로리 나이츠는 앞으로 영영 기사로 살 수 없게 된다.
더스크 브링어로서는 매우 합리적인 제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헤카테는,
“……역시 안 되겠습니다.”
거절했다.
더스크 브링어의 눈이 가늘어졌다. 헤카테는 자신의 가슴 앞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글로리 나이츠는 황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기사단…… 그리고 지금은 애쉬 황태자 전하를 지키기 위한 기사단입니다.”
“애쉬는 실종되었잖느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여기서 검을 내려둘 수 없습니다. 황태자 전하를 지키지 못했으니, 하다못해 복수라도 해야지요.”
헤카테는 굳은 결심을 토해냈고, 나머지 글로리 나이츠 또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흑룡에게 검을 들이밀고, 그 자리에서 죽어, 저주가 폭주해 악령이 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
“저희가 죽지 않는 괴물이 된다면, 그 흑룡을 쓰러뜨리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헤카테는 더스크 브링어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했다.
“죽어도 검을 쥐고 죽는 것이 저희 같은 기사들의 마지막에 어울립니다. 그러니, 대공. 저희를 인간으로 살게 해주신다는 그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
“검을 놓고 도망쳐 살아남느니, 검을 쥐고 싸우다 죽겠습니다. 이것이 저희의 뜻입니다.”
“……아니.”
더스크 브링어는 작게 고개를 젓더니, 감았던 호박색 두 눈을 홱 치켜떴다.
“미안하지만 나는 거절을 들으려고 온 게 아니야.”
“네? 무슨-”
“도로 가져가마.”
다음 순간.
투학-!
갑작스럽게 더스크 브링어의 주위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쏟아져 나왔다.
헤카테와 글로리 나이츠 기사들은 다급하게 대응하려 했지만, 애초에 더스크 브링어가 갑자기 실력행사로 나올 줄 짐작하지 못했던 데다가-
자신의 용기사들에게 나눠주었던 용혈을 모두 회수한 더스크 브링어의 힘은 예상보다 훨씬 강대했다.
퍽! 퍼억! 콰직-!
휘몰아친 마력에 침실이 박살 나며 가구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어? 어어? 뭐, 뭐야?!”
쥬니어는 아파서 쓰러져 있었지만, 이 정도 격렬한 마력의 움직임에는 깰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쥬니어가 더듬더듬 몸을 일으켜, 부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커, 크윽…… 크흑……!”
글로리 나이츠는 전원, 더스크 브링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실체화된 마력에 목이 붙잡혀 있었다.
그중 헤카테는 더스크 브링어의 손에 직접 목이 붙잡힌 채 허공으로 번쩍 치켜들려 있었다.
완전히 제압된 채 헤카테는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저항했다.
“대, 대공……! 이러지 마십시오. 우리는 같은 편입니다……!”
“…….”
“우리는 당신께서 만든 기사단입니다, 당신께서 만든 대로, 죽을 때까지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입니다……! 하다못해 마지막까지 함께-”
“아니.”
더스크 브링어는 차갑게 뇌까렸다.
“너희의 싸움은 여기까지다.”
쿵-!
직후, 글로리 나이츠를 붙잡은 더스크 브링어의 실체화된 마력이 눈부신 붉은 빛을 뿜어냈다.
글로리 나이츠 5인의 몸이 고통으로 뒤틀렸다. 기사들은 영혼이 찢어지는 듯 무시무시한 비명을 토해냈으나, 더스크 브링어는 냉정했다.
“돌려받으마.”
다섯 기사의 가슴팍에서 붉은 마력원이 뽑혀나오는 것과 동시에-
“너희에게 계승된, 내가 내린 ‘저주’.”
다섯 기사의 몸을 휘감고 있던 오래된, 고대 문자가 빽빽이 쓰인 붕대가 풀려나왔다.
빽빽하게 허공을 메우며 풀려나온 붕대는 그대로 더스크 브링어의 옷 아래로 뱀처럼 파고들더니,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붕대는 더스크 브링어의 조그마한 손가락 끝부터, 부상을 입은 등까지- 온몸을 빈틈없이 감쌌다.
촤륵!
붕대가 완전히 더스크 브링어의 몸에 일체화되는 것과 동시에, 다섯 기사의 몸에서 뽑혀 나온 붉은 마력원 또한 더스크 브링어의 가슴팍으로 흡수되었다.
“안 돼…….”
헤카테가 허망하게 중얼거렸고,
“……후우.”
더스크 브링어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까마득한 옛날에 자신이 직접 만든 저주를 스스로 뒤집어쓴 채, 붉은색이 뒤섞인 호박색 눈을 내리깔고…… 드래곤 레이디는 웃었다.
“지옥에는 내가 떨어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