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706
◈ 706. [Side Story] 황제관
“상대가 누구든, 어떤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든, 끌어안겠습니다.”
나는 선언했다.
“과거에 어떤 어둠, 어떤 추악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지금 내 깃발 아래에서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봐준다면, 나는 그와 대화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려 노력하겠습니다.”
묵묵한 시선으로 나를 보는 황제에게 나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면죄부를 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면?”
“저는 명징하게 기억하겠습니다. 상대의 어둠도, 추악도, 과오도. 있는 그대로.”
황제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하겠다’고?”
“예를 들어, 아바마마.”
나는 황제를 지그시 응시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지금 저와 같은 방향을 봐주고 계시지요. 저의 이해자이시며, 조력자이시며, 후원자이십니다.”
황제는 계속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나는 히죽, 입가를 말아 올렸다.
“하지만 아바마마께서는 그간 제국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숱한 이들을 죽이셨지요. 심지어는 제국 안에서까지. 목적을 위해서라면 눈 하나 깜짝 않으시고 사람들을 학살하고, 공양하고, 불태우셨습니다.”
“……그랬지. 그래서?”
숨을 들이켠 뒤.나는 본론을 꺼냈다.
“저는 그 모든 역사를 기록하고, 또 공개할 겁니다.”
“……뭐?”
“아버님이 죽인 무고한 사람들의 이름을 역사서에 하나하나 모두 새겨둘 것입니다.”
황제는 내게 당혹한 시선을 보냈다. 나는 거침없었다.
“아바마마께서 저지르신 악행을. 제국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저지른 그 잔학한 패도(霸道)를.”
“…….”
“저는 가감 없이 기록하겠습니다. 사람의 역사가 이어지는 한, 일천 년 뒤에도, 일만 년 뒤에도…… 세계는 똑똑히 기억할 것입니다.”
나는 조곤조곤 속삭였다.
“사람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지탄받으십시오. 이것이 아바마마께서 받으실 벌입니다.”
“……하. 어처구니가 없구나.”
황제는 코웃음을 쳤다.
“그런 것은 어떤 벌도 되지 않는다!”
“…….”
“역사에 내 악행을 남기고, 후세인들이 내 무덤에 돌을 던지게 하겠다고? 고작 그것뿐이냐? 나는 남은 일생 권좌에 앉아 호의호식하며 어떤 죄책감도 없이 태평하게 살 것인데. 후세에 지탄받는다 한들 그것이 나 개인에게 어떤 벌이 된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가장 약한 벌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벌이기도 합니다.”
황제가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너…….”
“아바마마뿐만이 아닙니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선대 모든 황제, 그리고 이웃한 모든 나라까지. 숨기고 감춰두었던 모든 악행을 파헤치고 끄집어내어 조망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먹기 좋게 편집된 역사가 아니라, 부끄럽고 불편한 진실들을 백일하(白日下)에, 만천하(滿天下)에 드러낼 것입니다.”
점차 내 의도가 명확해지자, 황제는 하나뿐인 손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치를 떨었다.
“네 아비의, 그리고 대대손손 이어진 조상의 치부를, 네 손으로 드러내겠다는 것이냐? 너 스스로 이 나라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칼부림을 하겠다고? 그게 네 목적이냐?”
“예.”
“다음 황제는 너다. 결국 선대의 그 모든 흠결을 네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가 너를 욕하고, 과거의 원한에 대해 네게 계산서를 청구할 것이다. 그런데도!”
“각오한 바입니다.”
“정말이지 세계와 정치를 모르는 천치(天癡) 같은 헛소리로다! 아니, 잘 알면서도 이런 헛된 이상을 주창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정신 나간 짓거리로군!”
황제는 내게 삿대질했다.
“황제라는 자가 스스로 약점을 드러내고 찔러달라 애걸하겠다니! 전 세계가 칼을 쥐고 달려들 것이다. 너와 이 나라는 갈기갈기 찢어져 파멸하고야 말 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옛 잘못을 인정하는 정도로 파멸하는 나라라면, 차라리 파멸하는 게 맞겠지요.”
“뭐…….”
나는 물러서지 않았고, 황제의 얼굴에는 선명한 감정이 하나 스쳐갔다.
그것은 공포였다.
자신이 황위를 물려주기로 마음먹은 아들이, 진정으로- 스스로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제 나라 정도는 무너뜨릴 수 있는 미치광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그런 공포.
“이 나라가 저지른 모든 잘못을 인정하겠습니다. 사과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면 사과하고, 보상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보상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니.”
나는 씩 웃었다.
“그런 다음에야, 진정한 신시대가 열릴 겁니다.”
“애쉬……!”
“이것이 제 황제관입니다.”
끌어안겠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내 깃발 아래에서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봐준다면.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나는 그를 포용하겠다.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면죄부를 발급한다는 뜻이 아니다.
상대의 모든 잘못과 죄악을 낱낱이 명시하겠다. 결코 그의 죄를 대신 청산해주지 않겠다.
용서도, 복수도, 내 몫이 아니다. 나는 신이 아니니까. 그런 일은 대행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다만 나는 기억하겠다.
결단코 잊지 않고 써내려 가며 이어가겠다.
역사를.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의 세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믿기 때문에.
‘이것이 황제로서의 내가 기저에 깔아둘 기본 원칙이다.’
직시(直視)한다.
세계로부터, 과거로부터, 미래로부터.
눈 돌리지 않는다. 외면하지 않는다. 감춰두지 않는다.
포용하되 그 아픔까지 함께 끌어안는다. 필요하다면 가감 없는 상벌을 내린다.
시민들을 학살하고, 이웃 나라를 짓밟고, 이종족을 땔감 다루듯 불태운 이 제국의, 그리고 이 야만을 묵인해온 세계의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작업.
이것이 선행되어야 다음 단계로…… 진정으로 이 나라 사람들과, 타국의 사람들과, 그리고 종족이 다른 이들과 함께 다음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 이 나라의 모든 잘못과 악행을, 스스로 통렬하게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뭐, 그리고 가만히 맞아주고만 있겠다는 것도 아니고.’
에버블랙 제국이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로 가장 많은 악행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라고 그러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른 종족이라고 그러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제국이 사과해야 할 일을 파헤치면, 이해가 얽힌 다른 나라들 또한 잘잘못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계산서를 발행해보면 상호 간에 무마할 수 있는 과오가 있을 것이고, 최종적으로 갚아야 할 청구가 있다 한들 추후의 상생적인 협약과 조약으로 대신할 수 있을 터.
‘내가 방점을 두고자 하는 것은 이런 너저분한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황제가 두려워하는 것도, 이런 계산 가능한 금액적 손실이 아니겠지.
위신(威信).
대륙의 패자(霸者)로서 전 세계를 힘으로 찍어누른 에버블랙 제국이, 패권국가로서의 위용을 잃는 것.
황제 즉위 전부터 스스로의 약점을 온 세상에 드러내 보이겠다고 하는 나의 선언이 사실상 정치적 자살로 보이기에 우려하는 것이리라.
“너를 흠결 없는 황제로 만들고자,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데…….”
황제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스스로 약점을 드러내 보이고, 돌을 던져달라 간청하는…… 그런 상처투성이 황제가 되겠다고?”
“예.”
“그 모든 잘못을 인정하겠다고? 그 모든 추악한 과거를, 그 모든 어둠을, 이 나라가…… 네가 짊어지겠다고?”
“예.”
나는 확언했다.
“저는 숨지 않겠습니다. 고통스럽더라도 마주하겠습니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어둠을. 내가 다스려야 할 나라의 추악을. 이 세상의 오욕으로 얼룩진 역사를- 모두 끌어안고서 똑바로 살펴보겠어요.”
황제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사람의 역사를,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까지도. 전부.”
침묵이 흘렀다.
한참 뒤, 창가에서 오후의 햇살을 등지고 한참 숨을 고르던 황제가 겨우 입을 열었다.
“……먼지와 검댕이 묻은 세계는 잘라내고, 먹기 좋은 부분만 떠먹여 주려 했더니.”
잔뜩 늙고 지친 목소리였다.
“기어코 세계 전체를 모조리 다 입안에 욱여넣고, 배탈이 나더라도 소화를 시켜보겠다니…… 정말이지, 도량이 넓은 것인지 단순히 무모한 것인지 알 수가 없구나.”
“…….”
“너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너의 이상이 얼마나 나약한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훨씬 더 잔혹하며, 모두가 승냥이처럼 너를 물어뜯으려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황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아무리 희고 깨끗한 깃발을 들었다 한들, 결국 전장을 통과하는 순간 그 깃발은 피와 재로 범벅이 되리라는 것도. 이미 잘 알 터.”
“…….”
“그래, 알면서도 그 길을 가보려는 것이겠지.”
내가 굳건하게 서 있자, 황제는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역사란 승자의 것이다. 결코 온전할 수 없다. 현재 제국에 남은 역사서를 보았으면 알 테지만, 제국에 누가 되는 부분은 거의 없다. 모두 황실을 찬양하고 위업을 칭송하는 내용뿐이지.”
“…….”
“너는 공정한 관점에서 역사를 쓰고자 할 것이나, 결국 너는 황제의 아들로 태어난 자.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자다. 네가 새로이 쓰려는 역사 또한 승자의 관점일 수밖에 없을 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정하려는 노력은 할 수 있겠지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에 다다르려는 노력은 존재하니까.
“안 그래도 마침, 적임자가 있거든요.”
“적임자……?”
황제가 의아하게 눈썹을 치떴다. 나는 말을 이었다.
“아바마마께 항명한 유일한 제국 군인. 제국군이 저지른 학살을 공식적으로 처음 인정하게 한 장본인.”
제국 마법병단 2번대 대장을 지냈던 나의 전격술사.
“쥬피터. 그녀가 거둔 양녀가 있습니다.”
“……쥬피터 쥬니어, 인가.”
“예. 쥬니어는 제국인이지만, 카밀라 왕국인이기도 합니다. 제국의 폭격에 가족과 고향을 잃었지만, 제국의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지금까지도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주변인이기도 하지요.”
쥬니어가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또 매일 일기를 쓰고 자신의 삶에 대해 기록해왔음도. 나는 알고 있었다.
시한부였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심 그녀를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처음부터 점찍어둔 상태였다.
“그녀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학자들을 모아, 가능한 중립적인 시선으로 세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재단을 설립할 겁니다. 첫 프로젝트는 멸망한 카밀라 왕국의 역사가 되겠군요.”
그리고 카밀라 왕국에 대한 제국 침공의 역사이기도 할 것이다.
“진영별로 사건을 교차 검증하여, 가능한 한 중립적인 진실만을 가감 없이 기록하는 역사 재단. 그 이름은.”
제국 역사상 최초로 황제에게 항명했던 장교의 이름을 따서…….
“‘쥬피터 재단’이라 짓겠습니다.”
“…….”
“괴수 침공이라는 세계 공동의 위기를 이겨낸 뒤, 모두가 함께 신시대로 가기 위해서. 제가 황제가 된 뒤 가장 먼저 벌일 사업. 바로 세계 역사 편찬 및 사관 육성 사업입니다.”
내 티배깅 아닌 티배깅에 아찔해진 것인지, 황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니, 아바마마. 미리 경고드리겠습니다. 저는 선대 모든 황제의 얼굴에 먹칠을 할 겁니다. 물론, 거듭 말씀드렸듯이, 아바마마도 예외가 아닙니다.”
“…….”
“그런 미래를 감당할 자신이 없으시거든, 저를 속히 황태자 자리에서 폐(廢)하십시오. 혹은, 남은 열 번의 방어전 중에 제가 쓰러져 죽기를 기도하시거나요.”
그러자 황제는 정말이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해냈다.
“짐이 어찌 그러겠느냐, 이 망할 아들 녀석아…….”
하나만 남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몇 번이고 쓸어낸 황제가 힘겹게 중얼거렸다.
“……너를 낳기 전에 수호수 에버블랙으로부터 예언을 하나 받았는데. 그중 절반은 확실히 맞겠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황제는 한탄했다.
“나머지 절반도 맞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그 예언의 내용이 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상관없으니까.
어차피 내가 정한 길을 내 뜻대로 걸어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뭐, 다 나중의 일이지만.’
잘난 듯 허세 섞인 이상론을 떠들어댔지만, 이것도 마지막 남은 괴수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다음의 일.
하지만 만약, 이 겨울이 끝나고, 세계가 멸망하지 않고, 내가 살아서 황제가 된다면…… 세상이 놀랄 일들이 많이 펼쳐질 것이다.
죽다 살아나는데, 무슨 일이든 못 하겠어?
‘진성 망나니 황태자의 신나는 조상모독 트롤쇼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남은 괴수와의 전쟁을 이겨 나가고 싶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