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30)
430화. 진짜 피아노 콩쿠르
덜컥.
뚜껑이 열림에 따라 드러난 소환숲 굿즈.
자연스레 입이 벌어졌다.
하나같이 내가 디자인한 건데도 놀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누구든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터였다.
옷이든 뭐든 정말 예쁘다고 생각해서 주문했는데, 막상 실물을 보고 나니 생각했던 것과 달라 실망하는 경우.
나 역시 그런 적이 꽤 있었다.
‘감안하고 있었는데.’
따라서 어느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었다.
화면상으로 디자인한 것과 실물이 다를 수 있는 가능성도.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일지에 따라 다시 만들어달라고 요청을 하거나 수정 작업을 할 생각이었지.
그런데 필요 없을 듯했다.
‘그대로야.’
정확히 내가 원하는 대로 제작되어 있었다.
사실 작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머릿속에 굿즈의 디자인은 거의 확립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걸 노트에 옮겨 연두에게 보여주기도 했고.
실제로 제작에 들어갔을 때, 디자인에 있어서 크게 고민한 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괜히 보름 만에 끝낸 게 아니지.’
나도 놀랐을 정도니 말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디자인이 확립되어 있었던 게 컸다.
사실 디자인보다도 많이 고민했던 건 다른 요소였다.
‘틀.’
그건 바로 틀이었다.
컵이라고 한다면 어떤 재질의 컵을 사용할 건지, 가방이라고 한다면 어떤 원단을 사용할 건지 등.
굿즈별로 알맞은 틀을 결정하는 게 관건이었다.
‘알아봤지.’
그 수단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인터넷 서치와 지인 찬스.
여기서 지인은 다름 아닌 이 자리에 있는 범재 아버지, 오준석이었다.
옷 제작에 종사하는 만큼 도움이 되는 많은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가장 많이 걱정한 부분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틀과 만나서 겉도는 느낌이 들지는 않을까 하고.
적어도 그런 게 하나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와.. 미친.”
허나 눈앞의 결과물에 더해 범재의 다소 거친 표현이 말해주고 있었다.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너무 예쁜데?”
옆에서 예림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그니까.”
조은서는 말도 못 하고 굿즈를 바라보며 얼어붙어 있다.
누가 땡 쳐줘야 할 거 같은데.
다행히 옆에 앉은 편집자 서하늘이 그 역할을 대신해줬다.
“작가님?”
톡.
서하늘이 빙긋 웃으며 팔을 가볍게 건드리자 어깨를 들썩이는 조은서.
정신을 차린 듯 입을 뗀다.
“진짜.. 너무 예쁘다…”
이어서 나를 보며 말한다.
“초록님.”
“네.”
“이걸 진짜 이 주 만에 만드신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이주는 아니고 하루 더한 보름이긴 한데.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터였다.
그녀가 나한테 메일을 전해준 뒤, 거의 바로 나는 디자인을 시작했으니까.
“하하.. 저는 디자인만 한 거니까요. 그대로 만들어준 건 회사 쪽이고……”
멋쩍어진 나는 살며시 회사 쪽으로 공을 돌려 넘기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곧바로 범재의 말이 이어졌다.
“형. 이건 진짜 저희 같은 고딩들도 쓰겠는데요?”
옆에서 예림이가 말을 받는다.
“고딩이 뭐야.”
“응?”
“이런 디자인이면 나이가 의미가 없지. 진짜.. 너무 예쁘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예림이의 시선은 어느 한 곳에 꽂혀있다.
액세서리를 좋아해서일까.
강력한 소유욕이 느껴지는 눈빛이다.
그나저나 뿌듯한 마음이 일었다.
굿즈를 디자인하며 목표로 했던 것 중 하나였다.
최대한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모두가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굿즈를 만들어보자는 것.
‘전부는 불가능했지만.’
아이들을 주요 타깃으로 만들어야 하는 일부의 굿즈가 존재하긴 했다.
허나 말 그대로 일부였다.
대부분의 굿즈는 충분히 성인 대상으로도 활용도 높게 제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원작과 비슷했다.
소녀와 환상의 숲.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책이었지만 성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야기와 그 속의 캐릭터들까지.
‘그 캐릭터를 활용한 만큼.’
어떻게 디자인하는지에 따라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성인들이 애용하는 굿즈를 만드는 것도.
가장 늦게 목소리를 낸 건 연두였다.
“아빠..”
살며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응, 연두야.”
“구쯔. 만져바도 대요..?”
“그럼.”
이 정도는 허락해줘도 될 거 같았다.
담당자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걸 보니 상관없는 거겠지.
연두가 손을 뻗는다.
스윽.
박스 안에는 다양한 굿즈가 있었다.
메모지 표지, 스티커, 핸드폰 케이스, 머그컵, 쿠션 등.
그 안에서도 디자인은 같아도 색깔별로 캐릭터별로 여러 종류가 있었고.
‘뭘 집으려나.’
궁금했다.
저 많은 굿즈 중에서 연두는 어떤 걸 가장 먼저 집을지.
이윽고 귀에 들어오는 소리.
짤랑.
동전 소리와 흡사했다.
손에 들었을 때 이런 소리를 낼 만한 굿즈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 굿즈를 손에 든 연두가 속삭이듯 말한다.
“진짜 예쁘다.. 귀거리…”
“푸흣.”
나 말고도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두는 굳게 믿고 있는 거 같지만 저건 귀걸이가 아니었다.
“연두는 귀거리 하기엔 아직 마니 어린데…”
아쉬움이 담긴 혼잣말을 하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그건 귀걸이가 아니야, 연두야.”
크나큰 반전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연두가 묻는다.
“그럼요?”
“키링이라는 거야.”
“.. 키링?”
“응. 열쇠고리라고도 하고.”
연두가 집어 든 건 굿즈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키링이었다.
예림이가 연두를 꼬옥 안으며 말했다.
“꺄! 우리 연두, 언니랑 통했다.”
“으응..?”
“언니도 그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거든. 너무 예뻐서.”
옆에서 범재가 태클을 건다.
“너 열쇠 쓸 일 없지 않냐?”
“꼭 그래야만 키링을 쓰는 건 아니지, 바보야.”
“바, 바보?”
졸지에 바보가 되어 벙찐 범재를 향해 예림이가 말했다.
“요즘 키링은 그냥 아이템으로 쓰는 거지. 이거 봐.”
예림이가 박스 속에서 핸드폰 케이스를 꺼내서 흔들었다.
눈에 들어오는 조그마한 구멍.
“여기 구멍도 있잖아. 키링 걸어서 다니라구.”
예림이 말대로였다.
굿즈를 만들며 알아본 결과 키링은 무척 활용도 높은 아이템이었다.
대부분 핸드폰 케이스와 같이 활용하는 경우가 많고.
납득은 한 거 같은데 범재의 표정이 뚱하다.
“.. 야, 오예림.”
“응?”
“너 뭔가.. 점점 하주연처럼 변하는 거 같다?”
바보라는 말 때문인가.
막상 예림이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거 칭찬이지?”
“칭찬이겠냐?”
“후후, 범재 너도 변하는 거 같아.”
“내가 뭘.”
“동건이처럼.”
“야! 그건 선 넘었지!”
진심으로 발끈한 범재를 보며 쿡쿡 웃는 예림이.
조금 느낌이 다르긴 한데, 이 녀석들도 그 두 녀석처럼 투닥이기 시작했다.
좋은 징조라 봐야 되나.
‘뭐, 모르겠고.’
오늘 이곳을 찾은 목적은 확실히 달성한 거 같았다.
확인했으니 말이다.
소환숲 굿즈를 보고 연두가 지은 표정을.
***
만장일치로 굿즈 출시가 결정되고 여러 나날이 흘렀다.
어느새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그 굿즈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도.
사실 극히 일부는 이미 나와 있었다.
샘플을 보러 간 날, 마지막에 담당자 최지철이 얘기했다.
“여기 있는 굿즈는 전부 가져가셔도 됩니다.”
샘플인 만큼 가져가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대로 디자인해서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고.
그 말에 우리는 나눠 가졌다.
‘충분했지.’
색깔과 디자인이 다양해 충분히 각자가 원하는 굿즈를 가져갈 수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연두가 손에 들고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홀짝.
착각이 아니라면 최근 들어 연두가 물을 마시는 빈도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연두 목 말라여, 아빠..!”
틈만 나면 그렇게 말하고 부엌으로 달려가서 컵을 손에 든다.
재미있는 건 항상 똑같은 컵을 손에 쥔다는 거고.
그게 어떤 컵이냐고?
나비가 새겨진 머그컵.
내가 디자인한 소환숲 굿즈 중 하나이다.
“연두야.”
“네에.”
물을 마시던 연두가 컵을 손에 들고 대답한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궁금해서 그런데.. 그 컵에 물을 마시면 더 맛있어?”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네! 그리고..”
“그리고?”
“더 시워내요!”
물맛을 올려주는 데다가 냉각 효과까지 담겨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컵인가.
이거 참, 가격을 대폭 올려서 팔아야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장난이고.’
그런 효과 따위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컵을 향한 연두의 애정이 크다는 거겠지.
잠깐. 디자인한 게 나니까 나에 대한 애정이라 바꿔 말해도 되는 건가.
“흐흐.”
절로 입밖에 흘러나오는 웃음.
참고로 출시될 내일을 위해 틈틈이 연두의 모습을 카메라 안에 담고 있었다.
정확히는 소환숲 굿즈를 사용하는 연두의 모습을.
‘올릴 생각이니까.’
출시에 맞춰 연두튜브에 올릴 생각이었다.
소환숲 굿즈 소개영상을.
실생활에서 굿즈를 사용하는 연두의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소환숲 굿즈 열풍이 불지도 모르겠다는.
***
“헤헤..”
방음실 내부.
배시시 웃는 연두를 보며 이은경은 물었다.
“기분 좋은 일 있니?”
“네.”
“뭔데?”
“오늘.. 아빠가 만든 구쯔가 나오는 날이에요..!”
“구쯔?”
“네! 소녀와 환상으 숲 구쯔..”
그제야 알아들은 이은경이 미소를 띠며 답했다.
“굿즈 말이구나.”
“네.”
“선생님도 기대되는데?”
“아!”
가방 앞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연두는 무언가를 꺼냈다.
짤랑.
“응? 그건……”
레나와 함께 소환숲을 읽었기에 이은경 역시 알고 있었다.
소환숲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눈앞에 보이는 건 소녀의 조력자 나비였다.
생긋 웃으며 연두는 말했다.
“나비 키링이에요. 열쇠고리라고도 해요..!”
그 말에 이은경은 풋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빠가 그렇게 얘기해줬구나?”
“.. 네에.”
그럼 그렇지.
연두가 구사할 만한 말투는 아니었다.
유심히 키링을 들여다본 이은경은 짤막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예쁘구나.”
뿌듯한 미소를 머금고 연두는 말했다.
“원래 키링은 핸드폰에 끼우는 건데요..”
“응. 그런데?”
“연두는 핸드폰이 업써서 가방에 너코 다녀요. 일어버릴까 봐..”
키링을 손에 꼭 쥐고 연두는 얘기했다.
“그래서 핸드폰 생기면 끼울 꺼에요..!”
“그렇구나.”
그때까지 고이 간직할 생각인가 보네.
조금 장난기가 발동한 이은경은 넌지시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은 필요 없는 거네?”
옆에 놓인 핸드폰을 손에 들고서 그녀는 말했다.
“선생님은 핸드폰 있는데, 그거 선물로 줄 수 있니?”
진짜 선물로 주길 원하는 게 아니었다.
궁금했을 뿐이다.
저렇게 아끼는 티를 냈는데 선물로 달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든 안 주든 어느 쪽이든 귀여울 거 같은데.
“…”
역시 굳는다. 잔뜩 당황하는 표정.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려는 찰나.
다시 가방을 든 연두가 이번에는 커다란 주머니를 열었다.
토도도.
가방 속 물건들을 본 이은경의 눈이 흠칫 벌어진다.
전부 굿즈들이다.
캐릭터들이 전부 들어간 스티커, 주드 핸드폰 케이스, 소환숲 배경이 활용된 에코백 등등.
특히나 에코백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는다.
‘아니, 잠깐.’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잖아.
왠지 가방이 꽉 차 보인다 했더니 이걸 다 매고 다닌 거야?
다행히 무거워 보이는 물건은 없지만, 이 정도면 거의 돗자리 깔고 팔아도 될 수준이다.
‘그건 그렇고.’
왜 갑자기 연두는 이 굿즈들을 꺼낸 걸까.
자랑하고 싶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만한 타이밍은 아니었는데.
그때 연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선무리에요.”
“.. 응?”
“선생님 선물. 스티커랑 핸드포니랑, 가방이랑……”
줄줄이 읊는 연두를 향해 이은경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만, 연두야.”
“으응?”
“이걸 선생님한테 선물로 준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몰라 한 번 더 물었다.
“전부 다?”
“네에.”
“…”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이건 뭐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안 주고 말로 받는 격이잖아.
그 사이 연두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런데.. 키링은 선물 안 대요…”
“응?”
“아빠가 연두한테 선물한 거라서.. 핸드폰 생기면 끼우기로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해서…”
그제야 이은경은 깨달았다.
연두가 한 말과 행동의 의미를.
선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아빠한테 선물 받아 약속까지 한 물건을 선물할 수 없어서 보인 반응이었던 거다.
“하하..”
흘러나오는 실소.
딱히 전자였더라도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돌아올 줄이야.
심지어 떨리는 눈동자로 묻는다.
“선생님.. 화나써요..?”
이은경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연두야.”
“네에.”
“전부 집어넣어도 돼.”
고개를 갸웃하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선물은 이미 받은 거나 마찬가지야. 이걸 다 선물로 주려는 연두 따뜻한 마음을 봤으니까.”
애초에 선물같은 건 받을 생각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저 에코백은 가지고 싶긴 하지만, 굳이 지금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곧 출시될 테니 구매하면 될 일이니까.
“선생님..”
이은경은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그건 가져왔니, 연두야?”
“어떤 거요..?”
“선생님이 준 소중한 물건.”
“아!”
찰떡같이 알아듣고서 연두는 다시 가방을 열었다.
이중 지퍼로 밀봉이 되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가방 속 공간.
조심스레 연두는 그 안에서 꺼냈다.
“여기여..!”
다름 아닌 이은경의 과거 모습이 들어있는 CD였다.
건네받으며 그녀는 말했다.
“CD를 봤니, 연두야?”
“네.”
“보니까 어땠어?”
연두는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아써요..”
“뭘?”
“아름다은 경쟁이 먼지.. 그리고……”
“그리고?”
“연두도 하고 시퍼져써요. 아름다은 경쟁…”
이은경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넘치도록 충분한 답이었다.
뿌듯한 미소를 머금고 그녀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
“.. 네!”
“선생님이 알려준 손가락 연습 방법 기억하고 있니?”
잊었을지도 모른다.
저번 수업 때 이은경은 CD를 보라는 것 외에 따로 과제를 내주지 않았으니까.
텀이 꽤 길었기에 잊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따란. 딴. 딴.
흠칫하게 만드는 피아노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한 치의 어색함 없이 움직이는 손.
세상 환한 미소와 함께 연두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춤추고 있다.
‘완벽해.’
놀라운 건 그 소리가 듣기 좋다는 점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저번 수업 때만 해도 미숙함이 느껴지던 소리였다.
한두 번의 연습으로는 쉽게 개선되기 어려운 꽤나 난도 높은 연습법인데.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잠시 후 소리가 멎은 뒤, 이은경이 입을 뗐다.
“연두야.”
“네, 선생님.”
“집에서 연습했니?”
사실 물으면서도 확신하고 있었다.
잊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그러기는커녕 그 연습 방법이 완전히 손에 익은 상태였으니까.
심지어 소리까지 좋아졌고.
‘연습이야 할 수 있다고 쳐도.’
소리가 좋아진 건 가볍게 넘길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연두의 아버지는 피아노는 물론이고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점을 집어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즉.’
스스로 했다는 거다.
혼자 연습하며 문제점을 깨우치고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해 준 말들이 이정표 역할을 하긴 했겠지만, 그것만으로 쉽게 설명되는 수준이 아니다.
이은경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전공자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재능.’
우습지만 그 단어 말고는 설명할 길이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
“네. 연습해써요..”
“혼자 연습한 거야?”
“네에.”
칭찬 대신 이은경은 물었다.
“왜? 선생님은 CD만 봐도 된다고 했는데.”
소리를 들었을 때 한두 번 연습한 게 아니란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궁금해졌다.
시키지도 않은 손가락 연습을 한 이유가 뭘지.
뭔가 잘못을 했다고 생각한 건지, 연두가 조금 움츠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 가타서요.”
“응?”
“열씨미 연습해야.. 아름다은 경쟁 할 수 있을 거 가타서요…”
“.. 허.”
짤막한 탄성.
실제로 그녀가 CD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 중 하나였다.
전력으로 모든 걸 쏟아부어야, 지더라도 아름다운 경쟁을 할 수 있다는 걸.
‘다만.’
그걸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될 거라 여겨서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그저 CD 속 경쟁이 아름답게 느껴졌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 안 거구나.’
허나 말해주지 않아도 연두는 깨달은 모양이었다.
CD 속 연주.
그 아름다운 연주를 하기 위해 연주자가 쏟아부었을 보이지 않는 시간들을 말이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런 벅차오르는 기분이 드는 건.
아직 이은경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자신이 연주자로서가 아닌 새로운 즐거움에 눈을 떴다는 사실을.
“.. 연두야.”
“네.”
“연두가 선생님한테 선물을 줬으니까, 선생님도 연두한테 선물을 하나 줄게.”
막상 연두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 거 같았다.
선생님이 어떤 선물을 받았다는 건지.
“보고 싶지 않았어, 연두야?”
“.. 네?”
“CD를 보고 나서.. 직접 가서 두 눈으로 보고 싶지 않았어?”
이은경은 입꼬리를 올리며 주어를 뱉었다.
“진짜 피아노 콩쿠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