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66)
466화. 자뻑(?) 연두
“아, 안녕하세여..”
유준이 뒤로 빼꼼 고개를 내민 아이.
아는 얼굴이었다.
선화초 재학생이라면 어지간해서는 모를 수가 없는 유명인사였으니까.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
인사를 받는 것도 잊고 예나는 잠시 넋을 놓고 응시했다.
자그마한 얼굴에 새하얀 피부, 반짝이는 눈망울과 얇고 오똑한 코, 마지막으로 앵두 같은 입술까지.
한마디로 표현하면 비현실적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우와.. 음악실이다!”
역시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시은이와 레나.
그 뒤에는 수줍은 듯 서 있는 두 여자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우하하!”
커다랗게 웃으며 한 남자아이가 따라 들어온다.
얼굴만 봐도 장난기가 많은 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와 별개로 예나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저번 동아리 시간에 유준이가 한 말.
‘나 피아노 잘 치는 애 아는 거야, 킁! 피아노도 잘 치고 얼굴도 엄청 예쁜 거야!’
데려올 수 있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을 때 솔직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유준이가 신입 부원 영입에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밑져야 본전이었지.’
누구 하나라도 데려오면 다행이었다.
꼭 음악을 잘하는 게 아니라도 음악에 관심이 있는 친구라면 받을 마음이 있었으니까.
물론 아무도 데려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그 대상이 연두일 줄이야.
“.. 들어가도 돼요?”
정신을 차린 예나는 답했다.
“아, 응! 다들 어서 들어와!”
“네에.”
음악실에 있던 몇몇 부원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이 부원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예나는 유준이를 향해 말했다.
“.. 유준아.”
“응, 회장 누나!”
“연두는 어떻게 데려온 거야? 원래부터 알고 있었어?”
납득이 안 가는 친분이었다.
워낙 유준이가 사차원이기도 하고, 곰곰이 생각해봐도 연두랑 친분이 있을 만한 게 없었으니까.
학년도 다르지 않은가.
그런 예나의 물음에는 더 생각지 못한 대답이 이어졌다.
“같이 연주한 적 있는 거야!”
“여, 연두랑?”
“응!”
“…”
이러면 안 되는데.
갑자기 유준이가 달리 보인다.
애당초 이렇게나 많이 데려왔다는 것부터 예나의 눈에는 복덩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입 밖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흐흥, 잘했어, 유준아.”
“킁!”
“일로 와.”
대견한 마음에 예나는 유준이를 와락 껴안았다.
6학년인 예나가 보기에 3학년인 유준이는 완전 꼬꼬마였다.
정작 예나도 대부분의 눈에는 꼬꼬마긴 했지만.
“부, 부끄러운 거야..!”
돌처럼 굳은 채로 얼굴이 빨개진 유준이.
예나는 쿡쿡 웃으며 품에서 유준이를 놓아줬다.
그리고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지금부터가 중요해.’
음악실에 왔다고 해서 동아리에 들어오는 게 확정은 아니다.
이건 견학인 셈이다.
최종적으로는 아이들이 입부를 결정하게 될 테고.
그렇다면 예나의 역할은 간단했다.
음악 동아리 회장으로서 가능한 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환하게 웃으며 예나는 말했다.
“음악실 어때, 얘들아? 음악 동아리에 들어오면 활동하게 될 장소야.”
나름의 어필이었다.
선화초등학교 음악실 시설은 상당히 좋은 편에 속했으니까.
그리고 그 어필은 꽤나 먹혀들었다.
“엄청 좋아요. 연주하고 싶다..”
눈을 반짝이며 레나가 말했다.
연두는 전에 와 본 적이 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처음 오는 장소였다.
음악 수업이 있긴 하지만 음악실에 오는 경우는 한정적이었으니까.
‘필요한 경우.’
음악실 시설이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였다.
그 외의 수업은 거의 교실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한 번도 없었다.
음악 수업을 위해 음악실에 가야 하는 경우는.
“레나는 바이올린 켜지?”
“네.”
이미 알고 있는 사전지식이었다.
마음속으로 예나가 더 기뻐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연두튜브를 통해 연두와 레나가 각각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잘 다룬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꼭 필요해.’
음악 동아리에 꼭 있어야 할 인재였다.
다행히 표정을 보니 음악실에 대한 아이들의 첫인상은 좋은 거 같았다.
예나는 이어서 말했다.
“연주해 봐도 되는데.”
그 말에 레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답했다.
“안 가져왔서요..”
“뭘?”
“리베.”
고개를 갸웃하고 있으니 옆에서 시은이가 덧붙였다.
“레나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이름이에요.”
“아.”
역시 다르구나.
실력을 알고 있으니 사소한 것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예나의 시선이 시은이를 향했다.
“시은이는 노래를 잘하지?”
“.. 네?”
“봤거든. 단비음악대 공연이랑 축가 부르는 거.”
붉어진 시은이의 볼.
본격적으로 예나는 음악 동아리 어필을 시작했다.
“음악 동아리에 들어오면 음악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우와..”
“선생님도 정말 착하시고……”
장점이 쭉 나열됐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설명을 듣는 연두.
연두에게도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조심스러워.’
연두튜브 구독자로서 예나는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피아노와 관련된 영상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걸.
어쩌면 그만둔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예나로서는 그 얘기를 꺼내는 게 다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음악실에 왔다는 건, 음악을 하고 싶다는 거 아닐까?’
지금은 그 정도로 추측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자그마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 저기……”
수줍음 많던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지우라고 했지.
“응, 지우야.”
“저, 저는.. 악기도 잘 못 다루고.. 노래도 잘 못 하는데……”
어렵게 꺼낸 이야기였다.
음악에 자신은 없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으니까.
지우의 말이 이어졌다.
“…… 그, 그래도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도 될까요?”
하연이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친구들과 달리 자신은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지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 두 아이의 귓가에 들어왔다.
“당연하지.”
예나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음악 동아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어. 실력은 상관없어.”
“.. 정말요?”
“응. 같이 즐겁게 음악을 할 생각만 있다면 환영이야!”
환해지는 아이들의 표정.
어디선가 나타난 유준이가 말을 받았다.
“맞다, 킁!”
“으응..?”
“회장 누나도 노래 엄청 못하는데 음악 동아리인 거야!”
빠직!
“.. 서유준!”
따뜻한 선화초 음악 동아리였다.
***
뒤늦게 합류한 선재.
“Yo~ 도착했어, 음악실! 날씨는 맑아…”
끝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음악실 내부에 손님들이 와 있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초등래퍼 김선재.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가사가 수정됐다.
“Yo.. 내 앞에 천사가 있어, Yo…”
예나가 내심 감탄했다.
이 사차원 녀석도 연두를 보면 굳어버리는구나.
그나저나.. 어떻게 말할까.
물어보고는 싶은데 계속 망설임이 일어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입을 연 건 유준이였다.
“연두야!”
“.. 네에.”
“피아노 쳐 줘! 연두 피아노 연두 듣고 싶은 거야!”
헉 소리가 나왔다.
저렇게 돌직구를 던져버린다고?
놀라운 건 그 말에 연두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거다.
‘불편해할 줄 알았는데……’
그 순간 예나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 얼마나 친한 거야.
둘이 마지막으로 만난 게 2년 전 이 장소라는 건 꿈에도 모른 채 예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사이 연두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스윽.
피아노 앞에 사뿐히 앉는다.
건반 위에 손가락이 내려앉고 바로 연주가 시작된다.
피아노를 그만둔 게 아니었던 걸까?
그 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릴 수 있었다.
꽃의 왈츠(Nutcracker Suite ‘Waltz of Flowers’)
차이코프스키 모음곡에 수록된 곡이었다.
건반 위를 우아하게 춤추는 손가락.
그에 따라 귀에 들어오는 음률마저 아름다운 춤을 추는 듯하다.
‘저렇게.. 잘 쳤었나…?’
아니었다.
잘 치긴 했어도 결코 저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아니, 차원이 달랐다.
영상으로 본 것과 지금 들려오는 연주는.
굳이 공통점을 꼽자면 그때나 지금이나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 보인다는 것뿐이었다.
‘.. 그만둔 게 아니었어.’
오히려 그 반대였다.
지금 연두의 모습은 피아니스트였다.
그 누가 봐도 말이다.
실제로 예나뿐 아니라 음악실에 있는 모두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막 도착해서 피아노 소리를 듣고 멈춘 문 앞의 여자까지도.
딴. 따란.
이후에도 꽤나 긴 시간 동안 음악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경쾌하고 신비로운 음률이.
***
음악 교사 유신애.
음악실에 다가갈수록 커지는 피아노 소리에 멈칫하고선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문 앞에서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지금 교실에 들어가면 연주를 멈출 텐데, 그러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연주였으니까.
눈을 감고 그녀는 연주를 감상했다.
딴.
연주가 끝나고 나서야 교실 안으로 들어간 그녀.
“얘들아, 안녕?”
일부러 태연하게 인사했다.
가장 먼저 인사를 받은 건 동아리 회장인 예나였다.
잔뜩 상기된 눈이다.
“.. 신애쌤!”
“응, 예나야.”
“방금 피아노 연주 들으셨어요?”
괜스레 시치미를 뗐다.
“아니? 지금 막 도착했는데.”
“안 돼…”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과 함께 예나는 말했다.
“들었어야 하는데……”
“왜?”
“진짜.. 진짜 예쁜 연주였어요.”
유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나 감동한 거야!”
“Yo.. 받았다, 영감.. 떠오르는 가사… Yo…”
선재는 아직 흠뻑 취해있는 거 같았다.
방금 들은 연주에.
유신애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궁금한데? 나중에 선생님한테도 들려줄 수 있니, 연두야?”
“네!”
나름의 큰 그림이었다.
한 번만 듣기에는 아까운 연주였으니까.
인사를 나눈 뒤,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됐다.
“안녕히 계세요..!”
꾸벅 인사하는 연두를 향해 예나는 어색하게 말했다.
“저기.. 연두야.”
“네!”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구, 음악 동아리에 들어올 마음이 조금은 생겼어?”
그 말에 연두는 의아한 표정을 머금고 답했다.
“들어갈 건데..”
“.. 응?”
“음악 동아리 들어갈 꺼에요..!”
그러더니 불안한 듯 묻는다.
“들어가면.. 안 돼요..?”
“아, 아니!”
몰랐다.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을 줄은.
예나는 쾌재를 부르며 말했다.
“왜 음악 동아리에 들어오기로 결심한 건지 물어봐도 돼?”
“약속했어요..”
“약속?”
“유주니오빠랑.. 초등학교 가면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기로 약속했어요..!”
이쯤 되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회장의 권리로 오늘부로 유준이를 새로운 직책에 임명해야 할 듯했다.
음악 동아리의 복덩이로.
***
음악실을 나선 아이들.
들뜬 분위기였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지우의 표정은 어두웠다.
“지우야.. 괜찮아..?”
그 표정을 본 연두가 물었다.
지우가 처져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누구든 환영이야!’
아까 회장 언니의 말을 들었을 때 무척 기뻤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뒤이어 떠올랐다.
가정통신문을 보며 엄마가 했던 말이.
‘동아리.. 동아리는 학습 관련 동아리를 들어가는 게 좋겠구나.’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엄마는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길 바라지 않을 테니까.
결국 지우는 털어놨다.
“어, 엄마는 허락 안 할 거야.. 내가 음악 동아리 들어가는 거……”
침체된 분위기.
그걸 감지한 지우는 말했다.
“미, 미안해! 나 때문에……”
그때였다.
허공을 젓는 지우의 손을 누군가가 움켜잡았다.
“여, 연두야.”
연두는 지우의 손을 꼬옥 쥐고선 말했다.
“걱정하지 마, 지우야.”
“.. 으, 응?”
“연두가 같이 말해줄께. 지우랑 같이 음악 동아리 하고 싶다고..!”
옆에서 시은이와 레나도 동참했다.
“나도.”
“레나도!”
그렇게 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까지 하고 네 아이는 헤어졌다.
어느새 찾아온 하교 시간.
교문 앞으로 나가니 정말 친구들이 서 있었다.
“여, 연두야, 시은아, 레나야..”
똘똘 뭉친 네 아이.
기다리는 사람은 지우의 어머니였다.
모두 긴장한 상태였다.
어리다고는 해도 지우의 어머니가 엄격하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괜찮았다.
두려운 마음보다는 지우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연두도, 시은이도, 그리고 레나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우의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왜 그렇게 모여 있니?”
늘 그렇듯 무심한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공손히 인사하는 연시레.
지우는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꺼냈다.
“어, 엄마..”
두렵기는 했다.
그래도 친구들이 자신을 위해 나서줬다.
전부 의지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말을 꺼내는 것만큼은 스스로 해야 했다.
“도, 동아리 있잖아..”
“동아리가 왜?”
“나.. 음악 동아리가 하고 싶어!”
그 말에 이희영의 눈매가 가늘게 휘었다.
“.. 음악 동아리?”
“으, 응! 친구들이랑 같이.”
옆에서 연두가 지원사격을 했다.
“.. 연두도요!”
“뭐?”
“연두도.. 지우랑 같이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어요..!”
“저도요.”
눈치를 보던 겁 많은 레나도 눈을 질끈 감고 덧붙였다.
“레, 레나도요!”
“…”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긴 했으나 이희영은 말했다.
“지우를 생각해주는 건 고맙구나.”
조금은 긍정적인 뉘앙스의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지기도 전에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우는 이미 들어가기로 한 동아리가 있단다. 그러니까 음악 동아리는 너희들끼리 해야 할 거 같구나.”
그 말에 반응한 건 시은이였다.
조금 버릇없을 수 있다고 자각은 했지만 이미 목소리는 나간 후였다.
“.. 지우는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어 해요.”
이희영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생겼다.
물론 그녀는 어린아이의 말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만큼 어리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여전히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녀는 입을 뗐다.
“지우는 이미 악기를 배우고 있단다.”
“.. 네?”
“최근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거든. 그런데 음악 동아리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겠니? 도움이 되는 다른 동아리가 많은데.”
여기까지였다.
아이들을 향해 건넬 만한 말은.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고 납득을 시킬 이유도 없었다.
자포자기한 지우의 표정.
그런 지우를 이희영이 불렀다.
“가자, 지우야.”
그때였다.
지우의 손을 꼭 잡은 연두가 목소리를 낸 건.
“…… 가르쳐줄께요.”
“응?”
“음악 동아리에서.. 연두가 지우 피아노 가르쳐줄께요.”
눈에 꾹 힘을 주고 연두는 이희영을 바라보며 외쳤다.
“연두가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어요! 피아노 선생님보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자뻑(?)도 불사하는 연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