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29)
529화. 화해의 장
활활 타는 화로.
옆에는 캠프파이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들이 쭉 전시됐다.
단연 눈에 띄는 건 물론 소시지였다.
“와아…”
세상 황홀한 표정이다.
아까 내가 봉투 속 내용물을 꺼내놓은 순간부터, 연두는 한순간도 소시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연두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주신 건지, 독일이 워낙 소시지가 유명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음식들 중에 소시지의 비중은 상당히 컸으니까.
‘양도 양인데.’
종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녀석들이 곧 철판 위에서 익어갈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나도 이런데 연두는 어떻겠는가.
타닷. 탓.
철판을 올려두고 장작을 추가로 투입했다.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
드디어 하파엘의 입에서 기다리던 멘트가 흘러나왔다.
“그럼 구워 봅시다!”
첫 메뉴로 간택된 녀석들은 바로 감자와 고구마였다.
비등비등한 두 메뉴이다.
사람들한테 감자가 좋냐 고구마가 좋냐 물으면 거의 반반으로 갈리지 않을까.
참고로 나는 둘 다 좋아한다.
굳이 한 쪽을 고르라면 감자 쪽으로 살짝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연두는 고구마가 좋아, 감자가 좋아?”
질문하면서도 예상이 가는 답변이 있긴 했다.
“둘 다 좋은데……”
“좋은데?”
“고구마가 조금, 조금 더 좋아여!”
역시나.
연두는 이렇게 대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계기가 있었다.
예전에 집에서 오븐으로 고구마를 구워주며 알려준 적이 있으니까.
‘연두야.’
‘네에.’
‘고구마는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어.’
눈을 반짝이며 연두는 물었다.
‘그게 뭔데여…?’
‘짠!’
비결은 우유였다.
컵에 우유를 가득 따라주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이제 아빠가 말하는 대로 한 번 먹어 봐.’
‘.. 어떻게요?’
‘고구마를 호호 불어서 한입 가득 베어 무는 거야. 입이 가득 찰 정도로.’
‘그리고요?’
‘그건 베어문 다음에 알려줄게.’
못 미더울 법도 한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연두는 내 말대로 호호 불어서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그 뒤에 어눌한 목소리가 새어 나오긴 했지만.
‘아바.. 퍼퍼애요…’
퍽퍽하다는 뜻이었다.
그게 노림수였다.
입안이 퍽퍽함으로 가득 찼을 때가 우유 한 모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니까.
‘이제 우유를 한 모금 마셔 봐, 연두야.’
그때 마법이 일어난다.
퍽퍽함 속에 우유가 스며들면서 입안에 달콤함이 가득 퍼지는 순간이.
별거 아니긴 하지만 이것도 아빠가 알려준 꿀 조합이다.
‘…!’
바로 그때였다.
연두가 고구마에 반한 건. 그리고 남은 고구마들을 단 며칠 만에 박살 내 버린 건.
따라서 예상하고 있었다. 감자보다는 고구마를 선호할 거라고.
감자소년 선동이가 들으면 슬퍼할지도 모르겠네.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말했다.
“연두야.”
“네, 아빠.”
“짜잔. 이게 뭘까요?”
내가 가리킨 걸 본 연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 우유다!”
그렇다.
누구의 센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유가 놓여 있었다.
그런 연두를 향해 시은이가 묻는다.
“우유가 그렇게 좋아, 연두야?”
의아한 표정이다.
그럴 만도 하다.
평소 연두의 우유 사랑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까.
연두는 생긋 웃으며 얘기했다.
“우유는.. 고구마랑 같이 먹으면 최고야!”
“고구마랑 같이?”
“으응! 연두가 알려줄께. 고구마 맛있게 먹는 방법. 레나랑 유리, 그리고 노엘도!”
친구들에게 비법을 전수하려는 모양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어서 연두는 나를 향해 말했다.
“아빠.”
“응, 연두야.”
“아빠는 고구마가 좋아여, 감자가 좋아여?”
사실대로 답했다.
연두처럼 둘 다 좋지만 감자 쪽이 조금 더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를 향해 덧붙였다.
“그러니까 연두는 고구마, 아빠는 감자를 들고 같이 나눠 먹으면 되겠다.”
“아!”
타탓.
보기 좋게 익어간다.
호일에 싼 고구마와 감자가.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하파엘의 아버지 파비안이 입을 열었다.
“꺼내도 되겠어.”
그 말이 신호였다.
드디어 개봉박두였다.
캠프파이어의 첫 번째 음식을 영접할 시간이었다.
***
차작.
호일을 벗긴다.
모양으로 구분되는 동그란 감자와 길쭉한 고구마.
껍질을 살금살금 벗기자 그 자태를 드러낸다.
‘비주얼 보게.’
장난이 아니다.
가시지 않은 열기를 뿜어내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고구마, 새하얀 속살을 지닌 감자.
아까 말한 대로 연두와 나는 각각 고구마와 감자를 집어 들었다.
“어서 먹으렴.”
인자한 목소리로 소피아가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식사.
“뜨거우니까 호호 불어서 먹어야 돼, 연두야.”
“네에.”
모든 배경은 갖춰졌다.
야외의 선선한 공기 속에 따뜻한 화로, 그리고 앞에 놓인 우유 한 잔까지.
고구마의 맛을 극한까지 느끼기에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호오. 호오.”
열심히 식히고서 한 입 베어 무는 연두.
알려준 방법 그대로였다.
꽉 차서 입안이 퍽퍽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우유를 한 모금 들이킨다.
“후아…”
고구마와 함께 연두도 녹아내리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호호 분다.
“이번엔.. 아빠 차례!”
사양하지는 않았다.
와암.
크게 베어 물었다.
이후 들이켠 우유가 곳곳에 스며드는 순간 결정을 번복할 뻔했다.
맛있다를 넘어 아찔한 맛이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거 같네.’
어느새 다들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은이는 고구마의 새로운 맛을 깨우친 표정이고, 유리는 담요 속에 숨어서 쉬지 않고 오물거리고 있고, 노엘도 차분하게 식사에 몰두하고 있다.
왠지 모르겠지만 레나는 쿡쿡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고.
‘.. 뭐지?’
내 입에 뭐라도 묻었나.
괜히 신경이 쓰여서 입 주위를 한 번 닦고는 다시 감자에 집중했다.
그 사이 본격적으로 철판 위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기, 소시지.’
사실상 주인공에 속하는 녀석들이었다.
방금이 에피타이저라면.
주인공이 등장하자 함께 등장한 것도 있었다.
“한잔해야죠, 연두 아버님.”
바로 맥주였다.
아까 와인도 먹은 마당에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연두한테 허락을 받기도 했고.
“좋습니다.”
마침 음료가 필요하던 차였다.
우유도 좋긴 하지만 시원한 목 넘김에는 맥주만 한 게 없지.
맥주를 마시는 건 총 네 명이었다.
‘파비안, 하파엘, 나, 줄리.’
당연하지만 모두 성인이다.
소피아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파엘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버지가 건배사 한 번 하시죠.”
건배사.
독일에도 그런 문화가 있는 건가.
익숙한 듯이 파비안은 잔을 위로 들고서 이야기했다.
“남은 여행에 즐거움이 가득하길, 그리고……”
짓궂은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본 그는 덧붙였다.
“내 그림을 위해서.”
“하하..”
실소가 나왔다.
여기서 이렇게 부담을 주실 줄이야.
물론 잊지 않은 상태였다.
‘그림을 그려주기로 약속했으니까.’
아직 그린 건 없었다.
뭐, 그래도 그리고 싶은 게 떠올랐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빙긋 웃으며 나도 잔을 들었다.
“프로스트!”
아마 건배를 뜻하는 말일 거 같았다.
촤랑!
잔이 부딪쳤다.
***
예상은 했지만 맥주 맛은 기가 막혔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시원함이 몸 안에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자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우리도 하자!”
연두의 목소리였다.
뭘 하자는 건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방금의 우리처럼 음료수가 든 잔을 연두가 공중에 들었으니까.
가장 먼저 호응한 건 레나였다.
“그래!”
꼬꼬마들이 하나둘 잔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리도 마지못해 어정쩡하게 잔을 들었다.
레나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건배사는 누가 할래?”
“.. 건배사?”
“응, 방금 할아버지가 한 것처럼. 미뉴리 너가 할래?”
화들짝 놀란 유리가 되물었다.
“뭐? 내가?”
“응.”
유리에게 집중되는 시선.
그래서인지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유리는 말했다.
“시, 싫거든? 나는 그런 거 안 해.”
“으휴.”
“그럼 네가 하든가!”
옆에서 시은이가 중재했다.
“나는 연두가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왜?”
“연두가 단비음악대 리더니까.”
또 나왔다, 리더.
연두의 얼굴에 수줍음이 떠오른다.
아무튼 그렇게 건배사를 하는 건 연두로 정해졌다.
고민하던 연두는 입을 뗐다.
“버스킹.. 잘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풋.”
건배사라기보다는 소원을 비는 듯한 멘트인데.
그래도 취지는 좋았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소망이었으니까.
“프로스트..!”
잔이 부딪쳤다.
동시에 음료수를 꼴깍꼴깍 마시는 꼬꼬마들을 보고 또 한 번 웃음이 나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화로.
어느새 철판 위에는 노릇노릇 익은 소시지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
소시지의 맛은 극락 그 자체였다.
“매, 매워요..!”
중간에 매콤한 소시지가 섞여 있어서 연두가 한차례 입에서 불을 뿜긴 했지만.
옆에서 노엘이 물을 챙겨줬다.
못 알아들었을 텐데 바로 챙겨준 걸 보니 눈치가 빠른 거 같았다.
“고마워, 노엘..”
“그래.”
“아, 그런데.. 노엘은 몇 살이야..?”
자연스레 둘의 대화가 이어졌다.
대부분 연두가 질문하고 노엘이 답하는 형식이긴 했지만.
노엘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여덟 살.”
동갑이었다.
허나 여기에는 맹점이 있었다. 한국 나이와 외국 나이는 다르니까.
한국 나이로 치면 노엘은 한 살 오빠였다.
그 사실을 알고서 토끼 눈이 된 연두.
“그, 그럼……”
동갑이라 확신했던 모양이다.
노엘은 말했다.
“상관없어.”
“응? 아니, 네..?”
“친구도 상관없어. 한 살 가지고 따지는 건 귀찮으니까.”
오픈 마인드다.
선동이라면 결코 용납하지 못했을 텐데.
지금은 반말을 허용한 상태긴 하지만 말이다.
“맞아. 나도 노엘이랑 친구니까 괜찮아.”
레나의 말에 그제야 연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연두도 반말할게..”
“그래.”
그러더니 레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유리를 향해 말했다.
“미뉴리.”
“응.”
“노엘이 미뉴리 너는 오빠라고 부르래.”
진짜인가?
노엘이 그런 말을 했을 거 같지는 않은데.
“뭐? 왜 나만 그래야 되는데!”
“뻥이야~”
“야! 너 진짜 죽을래!”
역시 레나의 자작극이었다.
가만 보면 제일 장난기가 많은 거 같기도 하고.
그때 노엘이 입을 열었다.
“레나.”
레나를 부른 노엘은 독일어로 꽤나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말은 레나를 통해 전해졌다.
“미뉴리 너한테 하는 말이야.”
“.. 또 뻥이지.”
“아니, 이번엔 진짜야.”
“뭔데.”
까칠하게 받는 유리에게 노엘이 건넨 말.
“미안.”
그건 사과였다.
이번에도 통역 부가기능은 적용된 상태였다.
노엘의 무미건조한 표정과 말투를 흉내 내며 레나는 그대로 말을 전달했다.
“아까는 내가 심했서. 그렇게까지 말할 건 아니었는데.”
갑작스러운 사과에 놀란 듯한 유리.
계속해서 말은 이어졌다.
“더 좋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심하게 말한 건 미안하게 생각해.”
“…”
“그리고.. 조금은 유치하기도 했으니까.”
그게 끝이었다.
유리만큼은 아니지만 노엘도 사과 같은 건 하지 않을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생각 이상으로 어른스럽구나.
레나는 마지막 말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뭐가 유치했다는 건데, 노엘?”
“몰라도 돼.”
비밀이 많구나.
레나도 그렇고, 노엘도 그렇고.
한편 유리는 갈등에 빠진 표정이었다.
‘고민하는 건가.’
어떤 고민인지는 감이 왔다.
아까 아이들에게 사과할 때, 노엘은 쏙 빼놓고 사과를 한 유리였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먼저 노엘이 화해의 손길을 건넸으니까.
‘그래서겠지.’
자신도 사과를 건네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걸 고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리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과연 어떨까.
흥미가 동한 나는 가만히 유리를 응시했다.
곧이어 벌어지는 유리의 입.
“…… 안.”
“응?”
“.. 아도 이안.”
결국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사과가 어렵다 해도, 발음을 뭉개도 너무 뭉갰잖아.
그래도 용기가 느껴졌다.
‘나도 미안.’
그 말을 한 게 분명하다.
레나도 얼마간 웃음을 참는가 싶더니 노엘에게 전해줬다.
아마 유리의 말과 달리 명확하게 전해줬겠지.
끄덕. 끄덕.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노엘.
어색한 표정의 유리.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띠며 바라보는 연두와 시은이까지.
‘분위기 좋구먼.’
화해의 장이 펼쳐진 캠프파이어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