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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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화. 합격
“얘들아, 줄다리기란 말이야……”
깐부할머니에 빙의한 연두.
소곤. 소곤.
5반 아이들은 연두 주위로 몰려들었다.
왜냐고?
승산이 없어 보이는 승부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걸 보는 6반 아이들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킥킥, 쟤네 뭐 함?”
“작전 짜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냥 귀엽죠? 큐트하죠?”
개의치 않고 연두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끼어든 건 재호였다.
“그건 말도 안 돼!”
“재호야…”
“뭐라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줄을 당기는 게 아니라…… 읍!”
우렁찬 목소리로 작전을 스포하려는 재호.
입을 틀어막은 건 성우였다.
그 모습을 보며 6반 아이들은 또다시 낄낄거렸다.
“벌써 싸우죠?”
“야, 야. 우리도 빨리 작전 짜자.”
“작전이 뭔데?”
“세게 당기셈. 그럼 이김.”
“푸핫!”
도를 넘는 약자멸시였다.
여전히 재호의 입을 틀어막은 성우는 이를 빠득 갈고서 말했다.
“해보자.”
“.. 뭐?”
“서연두 말대로 해보자고. 어차피 이대로면 못 이겨. 그리고……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성우의 눈이 총명하게 빛난다.
“우리가 한 명도 빠짐없이 작전대로 한다면.”
“…”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는 5반 아이들.
결의를 다진 듯했다.
어차피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과, 상대팀이 잔뜩 약 올려 준 탓에 모두 승부욕의 불씨가 살아난 탓이었다.
더군다나 작전을 말한 게 연두라는 것도 한몫했다.
“연두야..”
이렇게 연두가 무언가를 주도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였다.
연두의 작전이 묘한 설득력을 가진 건.
뒤늦게 입이 자유로워진 재호도 짤막하게 한 마디를 뱉었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이윽고 들려오는 선생님의 말.
“자, 좋습니다. 이제 모두 줄을 잡아주세요.”
작전명 언더독의 반란.
그 첫 번째는 바로 자리 배치였다.
중구난방하게 서서 줄을 잡은 6반과 달리 5반의 자리 배치는 질서정연했다.
그걸 본 주원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전달했구나.’
첫 단추는 완벽하게 끼운 셈이다.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가며 서는 것.
단순하지만 최대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배치였다.
‘끝이 아니지.’
최전선과 후방.
달리 말하면 맨 앞과 맨 뒤에 설 사람이 중요하다.
둘 다 힘이 세야 한다.
선봉장이 되어 팀원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역할과, 맨 뒤에서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니까.
그 요소 역시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뭐, 뭐야!”
“5반에 이런 애가 있었어?”
“무섭게 생겼다……”
5반 선봉장은 진수.
비교적 큰 덩치와 힘을 보유한 친구였다.
잔뜩 험상궂은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는 게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는 거 같았다.
본 경기 전 기선제압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으니까.
반대로 6반은 줄다리기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에이스인 승수를 선두에 세우지 않은 것만 봐도 그랬다.
‘궁금하네.’
과연 어느 쪽이 이길까.
5반 아이들이 전략으로 피지컬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마침내 자리를 다 잡은 아이들.
삐리릭!
대망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
중요한 경기였다.
마지막인 만큼 어쩌면 청팀과 백팀의 승부를 가를 수도 있는 매치업.
긴장감 속에 휘슬이 울렸다.
바로 그때였다.
앞선 두 경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장면이 펼쳐진 건.
“누워!!”
“으아아아!”
5반 아이들이 냅다 줄을 잡고 벌러덩 누워버린 거다.
발은 지면을 디딘 채로.
줄을 당기는 6반 아이들의 얼굴에는 당황이 떠올랐다.
“빨리 당겨!”
“야, 제대로 당기라고! 안 움직이잖아!”
“제대로 당기고 있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작과 동시에 끌려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까.
마치 커다란 바위를 당기기라도 하는 듯이.
“.. 이익!”
승수가 온 힘을 다하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코 힘이 약한 게 아니었다.
선두에 위치했다면 달랐겠지만 중간에서는 그리 큰 힘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같은 힘을 쓰더라도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해야 하나.
“절대 일어서면 안 돼! 누워서 버텨!”
“당겨어!!”
상반되는 목표.
한쪽은 버티기에 치중하고, 한쪽은 당기기에 치중한다.
당연하게도 힘을 쓰는 쪽은 후자였다.
“헥.. 헥…”
“뭐냐고.. 왜 안 끌려오는 건데.”
“히, 힘들어…”
힘이 빠진 6반 아이들.
게다가 성과도 없는 탓에 사기마저 꺾인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연두는 눈을 질끈 감고 누워있었다.
“..!”
상대의 상황을 포착한 건 다름 아닌 성우였다.
“지금이야! 당겨!”
작전의 하이라이트였다.
힘이 빠진 상대가 방심한 틈을 노려서 역으로 당기는 전략.
성우의 한 마디가 불씨였다.
편하게 누워있던 아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울려 퍼졌다.
“영~차! 영~차! 영~차..!”
응원부장답게 연두가 외치는 구호.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그 구호의 리듬에 맞춰 5반 아이들은 완벽한 호흡을 선보였으니까.
“어, 어어..?”
“안 돼!”
“끄, 끌려가잖아! 빨리 당겨! 와아악!”
뒤늦게 힘을 주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힘도 빠진 데다가 호흡도 흐트러진 상태에서 5반의 단결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으니까.
체급 차이가 난다고 해도 이제 여덟 살 된 아이들의 줄다리기다.
중요한 건 멘탈이었다.
삐릭!
울리는 휘슬.
5반의 승리를 알리는 휘슬이었다.
“와아아!”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고!!”
“얏호!”
기쁨을 만끽하는 아이들.
모두가 주인공이 된 현장이었다.
얼마 뒤 스포트라이트는 한 사람에게 집중됐다.
“서연두! 서연두! 서연두!”
“헤헤…”
수줍은 미소.
첫 운동회에서 역대급 이변을 만들어낸 연두였다.
***
운동회의 최종 승자는 백팀이었다.
근소한 차이긴 했지만.
‘뭐, 승패가 중요한 건 아니지.’
모두가 함께 즐겼다는 게 중요했다.
성우도 형이 왔고, 나 역시 학부모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운동회였으니까.
그래서인지 더 값진 시간이었다.
내년에는 계주로 활약하는 연두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분명히 그럴 거다.
“후후.”
보물도 많이 쌓였다.
운동회였기에 촬영할 수 있었던 갖가지 영상과 사진들.
그리고 간만의 우연 케미까지.
‘다 올려야지.’
연두튜브와 원스타그램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연두부를 위해서 말이다.
마침 타이밍도 좋았다.
어제를 끝으로 독일 시리즈 마지막 영상이 올라간 상태니까.
[독일 시리즈 7탄!(feat. 단비음악대 버스킹)]대망의 하이라이트인 버스킹이 담긴 영상이었다.
끝을 완벽하게 장식했지.
짧지 않은 시리즈였던 탓인지, 개인적으로 마지막 영상을 편집하며 묘하게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더군다나 나는 그 시간들을 함께하기도 했고.
‘다들 봤으려나.’
함께 다녀온 일행이라면 누구든 이런 내 심정에 공감할 거 같았다.
유리도 마찬가지고.
또 전화가 걸려오지는 않을지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여운 뭐냐…?
┖그니까.
┖독일 시리즈 통틀어 제일 밝은 영상이었는데 왜 이렇게 찡하지.
┖걍 너무 예뻐서 그런 듯.
┖기승전결 완벽했다, 진짜. 너무 잘했어, 얘들아 ㅠㅠ
┖뭔가 진짜 예쁜 동화 한 편 본 기분…
┖소환숲 생각나네 ㅋㅋ
┖와, 소환숲.. ㅠㅠ 생각난 김에 보러 가야겠다.
의외로 연두부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행이네.
편집자로서 나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연두부들을 볼 때만큼 뿌듯한 경우는 없으니.
-이 멤버 포에버♥
┖맨날 이 조합으로 여행 다니면 좋겠다.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경비는 언니가 다 대 줄게 ㅠㅠ
┖나 경호원 가능?
┖물 흐리지 마세요. 경호원은 초록님으로 충분합니다(단호).
┖배트맨이 돌아왔다 뭐 하냐. 연두랑 시은이랑 레나랑 유리 섭외 안 하고.
┖앜ㅋㅋㅋㅋㅋㅋ 그 정도면 거의 카르텔 아니냐.
-다음은 어떤 시리즈가 기다리고 있을까 ㅎㅎ
┖ㄷㄱㄷㄱㄷㄱㄷㄱ….
┖이렇게 된 거 단비음악대 전국 순회 한 번 가시죠, 초록님!
┖스트리밍도 또 켜 줬으면.
┖속보) 연두랑 초록님 방송 출연!
┖ㄹㅇ? 검색해보니까 그런 말 없는데 어디서 봄?
┖장난임 ㅋㅋ
┖님, 그런 장난치다가 잘못하면 죽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
살벌하다.
히읗을 저런 식으로도 사용이 가능했구나.
그나저나 나도 깜짝 놀랐다.
알다시피 마술사 이윤결과 함께 아는 형아 동반출연을 확정한 상태다.
예정된 촬영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고.
혹시나 알고 한 말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 댓글이 성지순례 장소가 될지도 모르겠네.’
그런 생각과 함께 빙긋 웃으며 댓글창을 닫았다.
***
정오 무렵에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안녕하세요, 한경우입니다!]클릭하자 떠오르는 내용.
-늦게 보내서 죄송합니다.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요.
-포트폴리오 보내드립니다!
-충성!
간결한 내용이다.
늦게 보냈다고 하지만 내가 얘기한 기한에 맞춰서 보내온 메일이었다.
더 늦어져도 상관없다고 얘기하기도 했고.
‘어디 볼까.’
첨부된 파일.
최근 듣게 된 얘기 때문에 기대감이 한껏 상승한 상태였다.
그야, 다른 누구도 아닌 우영이의 말이었으니까.
‘미대 입학하고 나서 본 사람 중에 제일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었거든요.’
흔치 않았다.
우영이가 누군가를 대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
심지어 수석인 서도연을 두고도 한경우를 뽑았다는 게 흥미로운 점이었다.
서도연의 실력을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고.
달칵.
떠오르는 파일.
생각보다 방대한 양의 포폴이다.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우영이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한경우의 그림은 자유로웠다.
틀을 벗어난 형식을 차용하는 거나, 색을 쓰는 데 있어서 거침이 없다.
일반적인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정반대야.’
확실히 서도연과는 스타일이 달랐다.
그녀는 정해진 틀 속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타입이었으니까.
어느 쪽이 더 낫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난해해 보이지 않는다는 거.’
그 의미는 간단했다.
보통 틀을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의도가 묻어나는 그림의 특징이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난해하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는 것.
이유가 뭘까.
피카소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흔히들 하는 오해가 있다.
피카소는 그림을 요상하게 그리는 화가였다고 생각하는 거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의 대표작을 생각해 보면 하나같이 평범함과는 거리가 머니까.
그러나 피카소가 최고의 화가로 추앙받는 건, 단지 그림의 독창성 때문이 아니다.
그는 천재였다.
어린 나이에 이미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기본기를 완성했다.
그 뒤에 새로움을 추구한 거다.
반대로 말하면 기본기가 완성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추구하는 새로움은 결코 난해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만큼 기본기를 다지는 게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고.
‘완성되어 있어.’
한경우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기본기가 엄청나다는 걸.
마치 깊게 뿌리 내린 나무처럼, 바람이 불거나 우박이 내려도 그 근간은 흔들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이해가 갔다.
왜 우영이가 서도연보다 한경우의 그림을 좋아하는지.
‘비슷해.’
딱 비슷한 스타일이다.
처음에 천재경 화백의 교육을 통해 탄탄한 기본기를 쌓은 것부터, 따분한 건 질색하는 성향까지.
둘은 일치하는 부면이 많아 보였다.
‘걱정이네.’
환상의 파트너.
함께 일하게 되면 그 호칭을 뺏기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 우스운 생각을 하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포폴을 차근차근 넘겼다.
마치 전시회의 그림을 감상하듯이.
탁.
마지막 페이지.
-감사합니다.
나름 포폴이랍시고 커다랗게 감사 인사를 적어놓은 게 재미있었다.
역시 유쾌한 캐릭터네.
마우스에서 손을 내려놓은 나는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합격.”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