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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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배부른 거
태어나서 이런 식당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곳을 식당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냥 잔디밭이니까.’
신세연이 가리킨 곳은 넓은 연두색 잔디밭이었다.
잔디밭 곳곳에는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 먹고 있는 거 같았다.
잠깐.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니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설마…’
나는 설마 하는 눈빛으로 신세연을 바라봤다.
어느새 그녀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에 들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한 후에야, 나는 실소를 내뱉었다.
이번에야말로 착각이 아닌 확신이었다.
그녀가 꺼낸 건 다름 아닌 예쁘게 접힌 돗자리였으니까.
“.. 뭐예요?”
내 물음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식당이에요. 셰프는 저구요.”
자연스레 오늘 아침에 그녀와 한 통화가 떠올랐다.
‘점심은 어떡할 생각이세요?’
‘가서 사 먹으면 되지 않나요?’
‘뭐, 그렇죠. 그럼 따로 준비 안 하시는 거죠?’
아까 그녀가 입장권을 냈을 때의 대화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럼 주원 씨가 밥 사면 되겠다!’
‘.. 네?’
‘신나게 놀고 나면 배고플 거 아니에요! 그때 밥 사는 걸로. 어때요?’
‘그럼 티켓값만큼 비싼 거 드셔야 해요. 김밥 같은 거 말고.’
‘.. 혹시 김밥 싫어하세요?’
‘아뇨. 그냥 너무 싼 거 드시면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까 하는 말인데······’
생각해 보면 굉장히 티 나는 대화였는데.
지금껏 내가 눈치 못 챈 게 신기할 정도였다.
자연히 그녀가 어떤 음식을 싸 왔을지도 예상이 갔다.
‘김밥이겠지.’
불안한 표정으로 김밥을 싫어하냐고 물었던 이유.
그건 김밥을 싸 왔는데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돼서 한 말이었던 거다.
나름 서프라이즈 같은데, 만약 그랬다고 하면 분위기가 싸해졌을 테니까.
“짜잔!”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처음으로 꺼낸 용기에는 김밥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난감하네요.”
그 말에 신세연이 깜짝 놀란 듯 반응했다.
“호, 혹시.. 김밥 안 좋아하시는 건가요? 아까 싫어하냐고 물어봤을 때 아니라고 하셔서..”
“그런 게 아니고요.”
“그럼요..?”
“이러면 더더욱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거 같아서요.”
입장권에 이어서 점심까지. 집에서 차도 두 번이나 대접받았고.
주는 거 없이 받기만 하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게 싫어서 외할머니의 금전적 지원도 거절한 나였으니까.
그때 신세연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저는 맞는 거 같은데..”
“뭐가요?”
“수지타산이요. 사진 보내주기로 하셨잖아요.”
“하하..”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를 보니, 자연스레 내 입가에도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이렇게 넘어가는 건 역시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나중에 꼭 근사한 식사 한 번 대접할게요. 보답으로.”
그러자 그녀가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무 근사하면 또 수지타산이 안 맞을 거 같은데. 그럼 제가 또 사야 하나요?”
“적당히 근사한 곳에서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네?”
“아, 아니에요.”
또 의미심장하게 대화가 끝났다.
이상하게 신세연과 얘기할 때는 이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김빠비다!!”
한편, 연두는 메뉴가 마음에 드는지 제자리에서 통통 튀고 있었다.
시은이도 연두와 하이파이브를 치며 배시시 웃었다.
저렇게 밝은 시은이의 모습은 연두 옆에 있을 때만 볼 수 있는 드문 장면이었다.
하여튼,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다섯 살 듀오이다.
나와 연두의 케미를 앞질러 버릴까 걱정이 될 정도로.
‘그나저나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냐고?
놀이터 때처럼 연두의 입에서 ‘김빠비 모에요..?’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은 거 말이다.
오늘을 위해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저번에 연두와 함께 김밥을 사서 먹은 덕택이었다.
국민음식 김밥을 모르는 건 아무래도 확실히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까.
‘솔직히 나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연두는 저번에 무척이나 잘 먹었던 음식이었다.
다 똑같은 김밥이 아닌, 종류별로 한 줄 한 줄 나뉜 것에서 정성이 느껴졌다.
“언제 만드신 거예요?”
“새벽에 일어나서요.”
“.. 이러면 너무 근사한 곳에서 사도 맞을 거 같은데요? 수지타산.”
“으음… 그럼 안 되는데..”
왜냐고 묻기도 전에 그녀는 또 하나의 용기를 꺼냈다.
이번에도 연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우아.. 예뿌다..”
연두의 말처럼 예쁜 음식이었다.
붉은 빛깔의 딸기 조각이 올려져 있는 샌드위치가 식감을 자극했다.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각종 과일이 담긴 용기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함이 느껴질 정도로 퀄리티 높은 도시락이었다.
그야, 나는 따로 준비해 온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으읏.. 아빠!”
그러는 사이, 연두가 돗자리를 들어 내게 내밀었다.
펼치는 걸 도와달라는 듯한 몸짓으로 보였다.
나는 연두가 내민 돗자리 끝을 잡으며 말했다.
“연두 돗자리 펼 줄 알아?”
“네! 소풍 갔을 때 연두랑 시으니랑 가치 돗자리 펴써요..!”
“아, 그랬구나.”
저번에 어린이집에서 근처로 나들이를 갔던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때 돗자리를 펴 본 모양이었다.
“여기랑.. 여기를 잡고오….”
어린이집에서 가르쳐준 돗자리 펴는 공식인가?
연두는 잔뜩 집중한 표정으로 모서리 양 끝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그 혼잣말이 귀여워 나는 돗자리를 잡은 채로 가만히 바라봤다.
“그다음 팔을 이러케 뻐더서…”
이어서 연두는 팔을 양옆으로 힘껏 뻗었다.
그러나 모든 게 공식대로 한다고 술술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지금의 방법으로 이렇게 큰 사이즈의 돗자리를 활짝 펴기에는 연두의 팔이 너무 짧았으니까.
어린이집에서 편 돗자리는 아무래도 초소형 사이즈였던 모양이다.
결국 돗자리는 의도와는 반대로 더 구겨져 버리고 말았다.
“으응..?”
그러자 연두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빤히 나를 바라봤다.
무언가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항상 연두는 저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해결을 바라는 눈빛으로. 달리 말하면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게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잘 봐, 연두야.”
“네에..”
간단히 이불 펴듯 펼칠 수도 있지만, 그건 연두에게 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다.
나는 돗자리를 놓고 차근차근 잔디 위에 펼쳤다.
“우아..”
점점 넓게 펴지는 돗자리를 연두는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아마 이런 걸 보며 신기해하는 아이는 연두밖에 없을 거다.
지금이야 연두가 부탁하는 이런 사소한 문제들은 내 힘으로 전부 해결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연두의 앞에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칠지 모르니까.
그러니 나도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연두가 지금보다 더 자란 후에도, 고민 없이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그런 아빠로.
***
“주원 씨. 먼저 드셔 보실래요?”
“아. 저부터요?”
“네.”
신세연이 김밥 하나를 포크로 찍어서 내게 내밀었다.
나로서는 아주 조금 난처한 상황이었다.
예전에 차를 마실 때 시은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으니까.
‘나는 맛없는 거 싫거든.’
‘엄마는 맨날 몸에 좋은 거만 주잖아.’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하며 엄마의 요리를 비판하던 시은이였다.
물론 이 김밥. 겉보기에는 엄청 맛있어 보인다.
허나 겉과 속이 일치하리란 법은 없었다.
더군다나 김밥은 내가 그리 좋아하는 음식도 아니고.
‘좋아.’
나는 솔직한 편이긴 해도 타인에게 상처 주는 걸 즐기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김밥을 입에 넣기 전, 미리 리액션을 생각해 두기로 했다.
무조건 맛있다 하기로. 맛이 없더라도 입가에 미소를 띠기로.
준비한 정성을 생각할 때 그 정도 착한 거짓말은 허용범위 내였다.
쏙.
김밥을 입에 넣은 후, 나는 살며시 한입 베어 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맛이 입안에 맴돌고 자동으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맛있다..”
동공이 확장되는 게 느껴졌다.
리액션을 생각해 둬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김밥은 맛있었으니까. 그것도 엄청나게.
신세연이 확인하듯 물었다.
“지, 진짜 맛있나요..?”
“네.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휴우.. 다행이다. 얘기도 안 하고 멋대로 싸 온 건데 입에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장난 아니고 김밥 전문점을 차려도 될 수준이었다.
저번에 연두와 사 먹은 김밥보다 훨씬 맛있었으니까.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비주얼이 예뻐서 그런데 먹기 전에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카메라를 꺼내 음식들을 사진 한 장에 담았다.
그런 나를 보며 신세연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내 반응 때문인지, 김밥을 바라보는 연두의 눈도 초롱초롱 빛났다.
이대로 가만히 두면 침이라도 흘릴 거 같은 표정이다.
이런 모습을 놓칠 순 없지.
나는 카메라 속에 연두의 모습을 담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다 같이 식사할까요?”
내 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점심 식사가 시작됐다.
“잘 먹게씁니다..!”
오물. 오물.
연두는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입안을 가득 채워 부풀어 오른 볼이 마치 햄스터를 연상케 했다.
이윽고 연두의 볼이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마시써어…”
역시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맛있는 음식은 통하는 법이다.
앉은 채로 발을 동동 구르는 연두의 모습이 음식의 맛을 증명했다.
시은이도 그 옆에서 말없이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엄마 김밥 맛있어, 시은아?”
그제야 시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맛있어요. 집에서 해주는 건 맛없지만.”
“아..”
괜히 물어봤네.
시은이가 돌직구 마스터라는 걸 까먹고 있었다.
얼떨결에 딸에게 디스를 당한 신세연이 반응했다.
“시은이 너..! 김밥 물어본 건데 맛있다고만 하면 되지, 굳이 뒤에 말을 왜 하는 거야!”
“맛없는 거 맞잖아.”
“얘가 또!”
“그럼 맨날 이렇게 맛있는 거 해주면 되잖아!”
“엄마가 말했지. 건강을 위한 거라고!”
“나 완전 건강하거든?”
“…”
오늘도 평화로운 모녀. 둘 중 먼저 말문이 막힌 건 신세연이었다.
몇 번이고 느끼는 거지만, 다섯 살인데 말주변이 상당한 아이다.
신세연은 분한 표정을 짓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보온병?’
그걸 힐끗 본 시은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겁에 질린 표정 같기도 했다. 뭐가 들었길래 그러지?
신세연이 밝지만 조금은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식사 끝나고 후식으로 차도 준비했거든요.”
“아, 정말요?”
“네. 봄에 먹는 인삼이라고도 불리는 냉이차인데 쌉쌀하긴 한데 맛이 좋아요. 기력도 되찾아 주고요. 가득 담아 왔으니까 다 같이 많이 마셔요.”
‘쌉쌀’과 ‘많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발음하는 게 느껴졌다.
왜 시은이가 방금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가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은이 쪽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못했어요, 엄마.”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말로는 이겨도 맛없는 걸 이길 수는 없었나 보다.
***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났다.
김밥만큼은 아니었지만 딸기 샌드위치도 무척 맛있었다.
딸기와 빵의 전혀 다른 식감이 의외로 조화롭게 맞물렸으니까.
달칵. 달칵.
남김없이 비어버린 용기의 뚜껑을 닫으며 신세연이 옅게 웃음을 지었다.
옅은데도 뿌듯함은 짙게 묻어나는 그런 웃음이었다.
하긴,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다면 당연히 기쁘겠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연두를 볼 때, 상당한 즐거움을 느끼니까.
‘.. 물론 이거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허접하긴 하지만.’
나는 돗자리를 접으며 신세연을 향해 말했다.
“고마워요, 덕분에 진짜 잘 먹었어요.”
“아니에요.”
그런데 조금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음식이 맛있어서인지, 평소에 비해 과식을 한 연두였다.
지금도 배가 많이 부른지 저쪽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배불러어…”
앉은 채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걸 보면, 얼마나 배부른지 알 거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중간에 말릴 걸 그랬네.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가만히 뒀는데.
걱정이 된 나는 다가가서 작게 입을 열었다.
“괜찮아, 연두야? 배 아프면 아빠랑 화장실 갈래?”
연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대답했다.
“배 안 아파여. 화장실 안 가도 대요…”
“그럼?”
그러자 연두는 두 손을 뻗어 내 손을 가져갔다.
정확히는 평소에 비해 볼록 튀어나온 자신의 배로.
그리고는 말했다.
“아푸지는 않은데 배가 불러여.. 연두 살 쪄써요…”
“푸흡.”
웃을 상황은 아닌데 웃음이 터져 버렸다.
많이 먹어서 배가 나온 걸 살쪘다고 표현하는 게.
아마 이렇게 많이 먹은 게 처음이라 스스로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나는 간신히 입꼬리를 제어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 배는 좀만 지나면 다시 들어가거든.”
“배가 드러가요..?”
“응. 근데 계속 이렇게 많이 먹으면 배가 나와서 안 들어가. 그러니까 너무 자주 이렇게 많이 먹는 건 피해야 해.”
“아..”
내 말을 들은 연두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불렀다.
“아빠!”
“응, 연두야.”
“그래도 연두는.. 배부른 거 좋아요!”
“그래? 배부르면 숨쉬기도 힘들고, 아빠가 얘기한 것처럼 살찔 수도 있는데?”
누구나 한 번쯤은 어떤 이유에서든 과식을 하곤 한다.
그리고 배부름이 주는 괴로움에 후회하게 된다.
과하게 먹었을 때의 포만감은 그리 즐거운 느낌이 아니니까.
‘연두라고 다를 리는 없을 텐데.’
왜 배부른 게 좋다는 건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분명히 연두만 생각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유가 아닐까.
그런 기대감 속에 연두의 대답이 이어졌다.
“배부른 건……”
그리고 대답을 들은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