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93)
693화. 정리대상
“역시 너는 최고로 멋진 녀석이다!”
얼마나 될까.
이런 얘기를 듣고 멋지다는 말을 가장 먼저 할 부모가.
“그래. 그 정도는 돼야 이 오대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아무리 선동이라도 이런 반응은 예상 못했는지 눈을 끔뻑였다.
곧 웃음이 번지긴 했지만.
그렇게 둘은 본격적인 부자간의 대화를 시작했다.
‘아니, 이게 맞아?’
심각한 분위기의 대화가 오갈 줄 알았는데 그 정반대였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듯 이야기하는 선동이, 오대수는 껄껄 웃으며 말 하나하나에 반응했다.
그나마 물어본다는 게 이런 거였다.
“그래. 박치기할 때 머리는 아팠고?”
“아니.”
“맞을 때는?”
“하나도 안 아팠어. 오히려 그 할머니 손이 아팠을 걸?”
그 말에 오대수는 또 이야기한다.
“역시 이 오대수의 아들이다!”
이쯤 되니 실소가 나왔다.
아니, 방금의 대화 속에 어떤 포인트가 자랑스러웠던 건데.
머리가 안 아팠다는 거?
그런 와중에 선동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근데 아빠 나한테 박치기 대결 졌잖아.”
“이 녀석아, 그건 일부러 져 준 거고. 아빠가 진지하게 하면 너 머리 나빠질까 봐.”
“.. 진짜?”
“그럼, 진짜지. 아빠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보니 많이 본 모양이다.
들려오는 멋쩍은 목소리.
“안 되겠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한 판 붙어야지.”
“.. 괜찮겠어?”
이렇게 물을 만도 했다.
통화 이전에 선동이가 들려준 썰에 따르면, 박치기를 하고 나서 아빠가 보인 반응을 생생하게 표현했으니까.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내더니 얘기했다고 했지.
‘.. 끄윽. 이따가 다시 하자, 아들.’
그 뒤로 대결하자는 말을 듣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아마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선동이가 눈앞에 없어서 가능한 거 아닐까.
재미있는 사람이다.
“어허, 아들이야말로 괜찮겠어?”
“응?”
“아빠 기술 중에서 지구박치기라고 있는데, 그 기술을 써도 감당할 자신 있냐는 말이야.”
“.. 지구박치기?”
“아빠가 마음먹고 땅에 박치기하면 지구가 울려서 지진이 일어나거든. 그래서 지구박치기인데……”
미치겠군.
나는 발끝에도 못 미칠 수준의 허풍이다.
그렇게 한참 이런저런 대화가 오간 후에 선동이는 입가에 웃음을 띤 채로 얘기했다.
“.. 고마워, 아빠.”
“엉?”
“나는 혼날 줄 알았어. 박치기한 거.”
그 말에는 또 생각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혼나야지!”
잘못 들은 듯이 선동이가 답했다.
“응?”
“혼나야 한다고!”
인지부조화가 온 선동이의 표정.
혼란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뗀다.
“나 최고로 멋진 녀석이라며.”
“멋진 녀석이지!”
“오대수의 아들이라며.”
“암, 오대수의 하나뿐인 아들이지!”
“근데 혼나야 돼?”
“혼나야지!”
이쯤 되니 나도 혼란스러웠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오대수는 입을 열었다.
“아들아.”
“응.”
“아들 마음은 이해하지만 박치기를 한 건 잘못이야. 나이가 든 할머니한테 박치기를 한 건 더더욱 그렇고.”
차분한 음성이었다.
그런 목소리로 오대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 응.”
“아홉살의 오대수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했을 거야.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도 또 하려고 했어.”
“그런데?”
“노엘이 말려서……”
이미 들은 얘기였다.
2차 박치기를 가동하려는 선동이를 제지한 게 노엘이었다는 건.
오대수는 웃으며 말했다.
“좋은 친구구나.”
친구.
그 단어에 선동이는 조금 주춤하다가 자그맣게 대답했다.
“.. 응.”
그렇다.
다툰 직후였지만, 둘은 서로를 위해 움직였다.
그 사실만으로도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빠가 말했지.”
“뭘?”
“자고로 멋진 사람은 머리를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그리고 선동이 너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머리를 썼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뒤늦게 선동이도 이상함을 느낀 건지 반문했다.
“그 머리가 그 머리가 아니지 않아, 아빠?”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떤 머리든간에 무엇을 위해 쓰느냐가 중요한 거니까.”
“무엇을 위해?”
“그래. 선동이 너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머리를 쓴 거니까,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박치기라는 거지.”
처음 들어보는 논리였다.
그러나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잘못한 거라며.”
“반성해라!”
지극히 단순명료했다.
끝으로 들려온 건 선동이를 질색하게 만드는 이야기했다.
“벌로 껴안기 형벌 10회다!”
“.. 아악!”
머리를 쥐어뜯는 선동이.
그것만 봐도 껴안기라는 게 어떤 건지 상상이 갔다.
그 사이를 틈타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안녕하세요, 선동이 아버님.”
이미 충분히 듣긴 했지만 더 듣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전할 말도 있었고.
“.. 어? 누구시죠?”
“연두 아빠입니다.”
“아!”
놀란 목소리의 그를 향해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동이가 그런 일을 겪게 만들어서.”
“죄송하긴요.”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야말로 부끄럽네요.”
“네?”
“박치기를 하고 온 아들녀석한테 멋지다는 얘기나 하고 있고. 듣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선동이가 잘못한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나무라지도 않았으니까.
허나 확실한 한 가지.
‘부정 못하겠어.’
오늘 내가 본 선동이는 지금껏 본 녀석의 모습 중에 가장 멋졌다.
오대수의 말처럼.
그리고 그런 부면이 아빠를 똑 빼닮았다는 것도 알게 된 통화였다.
***
집으로 돌아온 노엘.
이미 촬영이 중단된 경위는 레나 부모님에게 전달된 상태였다.
“레나.”
노엘이 레나를 방으로 불렀다.
“.. 응?”
방 안에는 줄리가 앉아있었다.
그렇게 셋이 된 방.
레나를 부른 건 묻고 싶은 게 있어서였다.
“알고 있어? 선동이 나한테 화를 낸 이유.”
이유가 없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우물쭈물하던 레나는 입을 열었다.
“그게……”
결국 레나는 털어놨다.
노엘의 웃음이 남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
아무리 노엘이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울을 보며 수없이 연마한 웃음이 그렇게 보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으니까.
레나는 얘기했다.
“미안해! 미리 얘기했어야 하는데……”
줄리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마음의 짐이 컸다.
웃음도 웃음이지만 일부러 선동과 노엘이 서로에게 하는 말을 유하게 순화해서 통역해줬으니까.
그 영향이 없다고는 못했다.
의도는 그 통역으로 인해 둘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 미안해, 노엘.”
둘의 사과에 노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제야 이해가 갔다.
웃을 때마다 선동의 반응이 과하게 느껴졌던 게.
그건 친근감을 표현한 게 아니라, 웃음 때문에 열이 받은 제스처였다는 걸.
“누나.”
“응?”
“그럼 선동이 했던 말들은? 그리고……”
처음에는 얘기해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노엘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디테일하게 질문이 들어왔으니까.
“괜찮으니까 얘기해줘.”
더군다나 앞선 일로 깨달은 교훈도 있었다.
제대로 얘기해주지 않으면 그로 인한 오해가 어떤 방식으로든 발생할지 모른다는 교훈.
그래서였다.
레나와 줄리는 모든 걸 얘기해줬다.
‘적당히 무시하라고. 내가 입은 옷이 너보다 훨씬 잘 팔린 건 알고 그러는 거냐?’
그 멘트도 결국 노엘의 귀에 닿았다.
생각과는 달리 노엘은 무미건조한 표정이었지만.
그럴 만도 했다.
선동이 입은 옷이 더 잘 팔린 건 노엘의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보다 궁금했던 건 따로 있었다.
‘왜 박치기를 한 건지.’
눈 깜빡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지만, 갑작스레 선동이 그 여자에게 달려든 건.
그리고 짐작이 갔다.
그 이유가 자신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
여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과 목소리가 어떤 색을 띠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어두웠다.
그녀의 눈 안에서는 어떠한 빛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연두의 눈과 달리.
“.. 꼭 들어야겠어, 노엘?”
“응.”
아니나 다를까.
생각보다 노골적이긴 했지만, 예상한 그대로의 말이었다.
놀랍지는 않았다.
그보다 놀라운 건 선동이 보인 반응이었다.
‘.. 없었어.’
눈을 감으면 아까 있었던 장면이 마치 영화를 보듯이 재생됐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여자를 향해 달려드는 선동의 모습에는.
그래서였을까.
그때 선동의 모습이 그렇게 빛나 보였던 건.
“고마워.”
그 모습은 머릿속을 한참이나 맴돌았다.
***
할머니를 따라간 시은이.
‘괜찮겠어, 시은아?’
‘네.’
아무리 그런 일이 있었다지만 윤인주는 시은이의 할머니였다.
혈육이라는 뜻이다.
그런 그녀가 시은이를 데려가려는데 주원이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예외는 존재했다.
만약에 그녀가 손녀인 시은이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주원은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막았을 거다.
허나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난동을 부리던 와중에도 손녀가 나타나자 한층 수그러드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이어지는 시은이의 말에도 그저 당황할 뿐이었고.
다른 사람이 뱉었다면 눈에 핏대를 세웠을 텐데 말이다.
끼익.
“우리 시은이, 지금도 삐졌니?”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윤인주는 손녀와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잘못짚은 게 있었다.
“아니요.”
시은이는 삐진 게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머니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실망했다는 표현이 옳았다.
아까 한 말 그대로였다.
‘알았어요. 엄마가 할머니를 왜 싫어하게 됐는지.’
사과했으면 했다.
뒤늦게라도 좋으니 선동이오빠와 모두에게 한 마디라도 사과의 말을 건넸으면 했다.
미안하다고.
하지만 바람일 뿐이었다.
할머니가 보인 반응은 시은이의 손을 잡고 스튜디오를 나가는 것뿐이었다.
아저씨와 친구들을 노려보며.
더는 할머니 집에 오기 싫었다.
심심해서가 아니었다. 더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게 됐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싫어졌다.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싫어하게 된 건.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민우와 다툰 적이 여러번 있지만, 그렇다고 민우를 싫어하게 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신기했다.
단 한순간만으로 사람을 싫어하게 될 수 있다는 게.
‘.. 싫어.’
그리고 싫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렇게 쉽게 할머니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놓아버리고 싶지 않았다.
울컥하는 감정을 누르며 시은이는 말했다.
“할머니.”
“응?”
“.. 사과해주시면 안 돼요?”
흠칫하는 윤인주.
떨리는 목소리로 시은이는 덧붙였다.
“선동이오빠한테..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 주시면 안 돼요?”
시은이는 몰랐다.
할머니가 노엘을 향해 한 말에 대해서는.
그런 자신의 치부에 대해 손녀에게 말할 윤인주가 아니었으니까.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이 정도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시은이는 생각했다.
많이 늦었지만 아직은 돌이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할머니를 싫어하지 않게 해 주세요.’
사실상 그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시은이의 귀에 들려온 말은 세상 차가운 한 마디였다.
“사랑하는 손녀의 부탁이지만 그건 안 되겠구나.”
“…”
따뜻함을 가장한 목소리였지만 시은이에게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한 마디였다.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드는.
할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까지.
“왜냐하면.. 잘못한 게 없잖니?”
말 하나하나가 가시가 돼서 심장에 꽂혔다.
“사과는 잘못한 게 있어야 하는 건데, 할머니를 먼저 때린 건 그 애란다. 시은이 너도 다리에 멍든 거 보지 않았니? 할머니는 사과를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사과를 하라는 건 어불성설이지.”
그 말에 의지를 잃은 시은이는 고개를 푹 늘어트렸다.
바로 그때였다.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 건.
점점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열린 문틈 사이로 들어왔다.
엄마의 얼굴이.
“어머, 깜짝이야!”
충혈된 눈.
그런 딸의 모습을 본 윤인주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지금이 몇 시야? 아직 올 시간 아니지 않니?”
“대체……”
몸까지 부들부들 떨며 신세연은 말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시은이조차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딸이 있는 자리에서는 쉽게 언성조차 높이지 않는 그녀였으니까.
그런데도 윤인주는 별다른 동요 없이 입을 뗐다.
“무슨 짓은. 아까 있었던 일 말하는 거니?”
세상 태연한 목소리였다.
“나도 놀랐다, 얘. 손녀 촬영 구경 한 번 갔다가 그런 꼴을 당할 줄 누가 알았겠니?”
“.. 뭐?”
“특히 그 남자! 그런 몰상식한 인간은 또 처음 봤다니까? 넌 무슨 정신으로 그런 인간이랑 어울려다니는 거니? 이 기회에 정리해!”
윤인주는 몰랐다.
방금 멘트로 인해 시은이의 미움 스택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는 걸.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건, 신세연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 엄마가 뭔데.”
“뭐라고? 너 지금……”
“소중한 사람들이야. 함부로 정리하라 마라 하지 마.”
감정을 억누른 목소리.
아무리 윤인주라고 해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딸의 반응이었다.
신세연은 시은이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정리할 사람은 따로 있어.”
“그게 무슨……”
“엄마를 정리할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신세연은 방을 나섰다.
벙찐 윤인주의 눈에 보이는 건 돌아설 기색이 없는 딸과 손녀의 뒷모습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