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15)
715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내가 기자님한테 줄 소스가 하나 있는 거 같아서요.”
“소스라면……”
그 단어를 듣자마자 조현영 기자는 펜을 집어 들었다.
기자의 본분이었다.
직업 특성상 업계에서 ‘소스’라는 단어는 기삿거리, 더 나아가 특종으로 치환이 가능했으니까.
“딱히 비밀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제보한 게 나라는 사실은 익명으로 부탁할게요.”
“물론이죠.”
확답을 들은 탓일까.
조희나는 굳이 돌려서 얘기하지 않았다.
“연두라는 아이.. 알죠?”
두 유 노 연두.
사실상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현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두튜브에 나오는 연두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안다면 얘기가 빨랐다.
“그 애가 피아노를 치는 것도 알고 있어요?”
“네.”
“이번에 콩쿠르에 나간다더라구요.”
“콩쿠르라면.. 피아노 콩쿠르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조현영은 실시간으로 통화내용의 핵심 키워드를 기록하고 있었다.
몇 개의 단어.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기사를 쓸 수 있으니까.
아직 중요한 내용을 듣지는 못했지만.
“알다시피 내가 피아니스트 이은경이랑 친분이 좀 있잖아요. 누군지 알죠, 이은경?”
우스운 일이었다.
질투를 느끼는 대상임에도 있지도 않은 친분을 어필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실상은 고작 한 번 본 게 전부인데.
그와 별개로 적당히 이야기를 맞춰주는 건 유능한 기자의 덕목이었다.
“물론 알죠! 콩쿠르 이름은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우승해서 국위 선양했다고 엄청 난리였잖아요. 그분 말씀하시는 거 맞죠?”
“맞긴 한데.. 뭐, 국위 선양까지야……”
탐탁지 않은 반응에 조현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아닌가?
유능한 기자 입장에서도 조희나는 비위를 맞춰주기 까다로운 인간상이었다.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그분은 왜……”
“연두라는 애가 이은경 제자예요. 그런데 이번에 같이 콩쿠르 심사를 보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재밌는 사실이요?”
조희나는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 애가 출전하는 콩쿠르에 제 제자도 나간다는 사실이요.”
“교수님 제자요?”
“네.”
조희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혼자 시나리오를 다 써 놓은 상태였다.
이어지는 말.
“어때요. 잘 엮으면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요?”
“엮는다면……”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래요. 이은경 제자인 그 애랑, 대학교수인 저 조희나의 제자랑 대결 구도로 엮는 거죠.”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조희나는 묘한 쾌감에 젖어 있었다.
이은경과 조희나.
두 이름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스스로의 말이 꽤나 자연스럽게 느껴졌으니까.
막상 듣는 조현영의 감상은 달랐지만.
‘그런 거였나.’
이쯤 되니 이해가 갔다.
이 정보를 전달하는 의도부터 아까의 탐탁지 않은 반응까지.
사실상 조희나가 원하는 건, 제자 간의 대결 구도가 아닌 자신과 이은경의 대결 구도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써 줄 수 있죠? 기자님한테는 상당히 좋은 기삿거리일 거 같은데요.”
어딘가 뒤틀려도 단단히 뒤틀려있다는 생각에 느껴지는 불쾌함.
그와 별개로 부정할 수 없었다.
좋은 기삿거리라는 말은.
‘연두.’
유일무이한 키워드였다.
이제는 ‘연두’ 하면 색깔이 아닌 여자아이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니.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연두와 관련된 거라면 사소한 것도 끌고 와서 기사로 작성하곤 했다.
[산책하는 연두… 심하게 예쁘네 정말] [연두튜브에서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막상 기사를 누르면 연두가 너무 예뻐서 충격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 어그로성 제목의 기사들을 쓰는 이유는 하나였다.
조회수가 나오니까.
‘확실해.’
그런 마당에 연두의 콩쿠르 출연이 화제를 끌 거란 사실은 굳이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
조희나의 이름도, 제자 간의 대결 구도도.
단지 연두가 참가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건 특종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직접 전화까지 한 걸 보면,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정보일 테니까.
‘하지만, 부족하겠지.’
조희나는 원하는 바를 분명히 명시했다.
그게 조건이었다.
단순히 연두가 참가한다는 사실을 제보하려 연락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다행히 기사를 통해 누군가를 비방해달라는 요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였다.
“콩쿠르 이름이 뭔가요?”
조희나는 슥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일주일 뒤에 하는 중앙음악콩쿠르예요.”
얼마 후에 통화가 끝났다.
핸드폰을 바라보며 조희나는 혼자 웃음 지었다.
계획대로였다.
이제 기사가 올라갈 테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거다.
‘처음에는 그 애와 이은경을 향하겠지.’
허나 상관없었다.
콩쿠르가 끝난 뒤에는 그 관심의 방향이 자신을 향할 테니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 출신인 이은경을 상대로 이긴 대학교수 조희나.
그렇다.
‘네 차례야, 이은경…’
이번에 자신을 올려다보는 건 이은경이 될 터였다.
***
이른 오전.
연두를 데려다주고 출근한 나는 한동안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난데없이 떠오른 기사를 보고.
이런 기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실시간 검색어를 잠식한 건 굳이 말할 것도 없고.
타이틀만 보면 의아함 그 자체였다.
희대의 라이벌?
그게 대체 누군데?
그나마 꼽자면 유리 말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유리가 깜짝 출전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말이 되지 않았다.
콩쿠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애초에 신청도 안 했잖아.’
그리고 의문이었다.
연두가 콩쿠르에 참가한다는 게 어떻게 알려진 건지.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원래 계획으로는 콩쿠르가 전부 끝난 뒤에 오픈할 생각이었는데.
‘혹시 나 때문인가?’
주위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린 건 어제였다.
아마 그로 인해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달칵.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내용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내용.
-연두가 중앙음악콩쿠르에 참가한다.
-사제관계를 맺고 있는 연두의 피아노 선생님은 이은경으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다. 그런 만큼 연두가 콩쿠르에서 보여줄 연주에 관해서도 많은 기대감이……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이렇게 이은경에 관한 설명까지 나오는 건 조금 변수긴 했지만.
문제는 그 뒤였다.
아빠인 나도 모르는 연두의 ‘희대의 라이벌’에 대한 부분.
-또한 중앙음악콩쿠르에는 연두의 또래이자 라이벌인 안수호 피아니스트도 출전한다.
역시나 처음 듣는 이름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앞과 똑같은 구조인 스승에 대한 소개였다.
-안수호 피아니스트의 스승은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조희나로, 이은경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피아니스트이기도……”
심지어 인터뷰 내용까지 있었다.
-이은경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호호호,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실 일인지는 모르겠는데요. 같은 시기에 활동한 피아니스트이자 같은 또래의 제자를 둔 입장에서 선의의 경쟁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네요.”
왜일까.
특별한 건 없지만 기사 흐름이 무척이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스크롤을 내렸다.
이미 수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이 아줌마 누구임?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는 거 왤케 강조하냐. 이은경은 알아도 조희나는 첨 들어보는데.
┖그래도 대학교수면 대단한 거 아니냐?
┖그렇긴 하지. 근데 좀 기사 자체가 언플같지 않음?
┖ㅇㅈ
┖연두 콩쿠르 참가한대서 헐레벌떡 들어왔는데 웬 아줌마 인터뷰가 있냐고.
┖괜히 엮이려는 느낌…
-그래서 안수호가 누군데.
┖희대의 라이벌이라는데 연두튜브에 나온 적 있음?
┖ㄴㄴ 없음.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애기는 건드리지 마.
┖ㄹㅇ ㅋㅋ
┖정신 차려라, 얘들아. 연두 또래다…
┖난 모르겠고 연두 콩쿠르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중앙음악콩쿠르라는데 직관 못 하냐?
동감이었다.
수호라는 아이를 모르는 건 둘째치고 이런 구도의 기사를 보는 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한쪽은, 아니 어쩌면 양쪽 모두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근데 연두 못하면 어떡하지…
┖그니까. 이렇게 기사까지 떴는데 ㅠㅠ
┖냉정하게 말해서 전에 치던 실력으로는 광탈이긴 함.
┖중앙음악콩쿠르 꽤 규모 있는 콩쿠르임.
┖늘지 않았을까.
┖근데 많이 늘었을 거라 기대하기에는 그렇게 오래 지난 것도 아니라서……
머리가 복잡했다.
생각과는 다른 느낌으로 흘러가는 연두의 첫 콩쿠르였다.
***
한편 그 시각.
이은경도 같은 기사를 본 상태였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핸드폰을 타고 귀에 들어오는 건 은주아의 목소리였다.
“하, 뻔뻔하기는. 자기는 전혀 몰랐다는 뉘앙스로 인터뷰까지 한 거 봐. 딱 봐도 자기가 얘기한 게 뻔히 보이는데. 아무리 그래도 어른 욕심에 아이들을 엮는 건 선 넘은 거 아니니?”
가만히 듣고 있던 이은경이 입을 뗐다.
“그렇긴 하지.”
확실히 그랬다.
근거 없는 의심이라기에는 기사 내용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다른 사람이 알 턱이 없다.
안다고 해도 굳이 이은경과 조희나라는 이름을, 연두와 수호라는 아이의 이름을 엮을 이유가 없다.
정황상 짐작이 가는 건 하나였다.
‘뭐 때문에?’
그건 굳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유 없는 질투와 시선은 늘 따라왔다.
정작 더 열을 올리는 건 은주아였다.
“아오, 화나. 그냥 우리도 언플 해버려?”
“아니.”
“왜? 우리가 볼 때나 당연하지, 사람들은 그렇게 깊게 생각 안 한다니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지.”
은주아는 덧붙였다.
“그러다 연두가 지기라도 하면 조희나 그 인간, 옳다구나 하고 너 웃음거리 만들려고 그럴걸? 콩쿠르 시작 전부터 이러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무슨 짓을 못 하겠어.”
정론이었다.
그리고 은주아에게는 나름의 대처 방법이 있었다.
“그냥 유하게 대처하면 돼. 아이들인 만큼 경쟁에 관한 건 생각 안 했다, 연두가 콩쿠르가 처음인 만큼 경험을 쌓는 데만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런 식으로……”
“주아야.”
“응?”
“괜찮아.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아니, 그러면……”
“알잖아. 내가 그런 걸 깊게 신경 쓰는 게 상대가 바라는 거라는 거.”
이은경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그랬어.”
“응?”
“누구를 이기려고, 내 이미지를 신경 써서. 그래서 연두한테 콩쿠르에 나가라고 한 게 아니야.”
“그건……”
“그냥 연두가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피아니스트로서 무대 위에 서는 모습이 보고 싶었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연두가 지면, 그래서 내 이미지가 망가지면. 이런 걸 생각하는 건 그거랑은 아무 관계도 없는 거잖아.”
“.. 은경아.”
“그리고 고작 그런 거로 나 이미지에 타격 없어.”
눈을 깜빡이는 은주아의 귀에 들어온 건 짤막한 한 마디였다.
“나 차이코프스키 우승자야.”
“와…”
감탄사를 내뱉은 은주아는 말했다.
“방금 들은 말. 내가 들어본 말 중에 제일 재수 없으면서도 멋있고, 설득력 있는 한마디였다.”
“흐흥..”
“그래, 그게 너답긴 하지.”
자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속담이 있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그 속담대로였다.
그 속담을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이은경은 주위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제 갈 길을 갔다.
고작 개 짖는 소리 따위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실소와 함께 은주아는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내가 한 말도 개 짖는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네.”
“자학이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진심인데.”
“너처럼 귀여운 개가 어디 있다고 그래.”
“어머.. 뭐야…?”
그 뒤에는 찐친 간의 수다가 오갔다.
일주일은 빠르게 흘렀다.
통화에서 한 말대로 이은경은 주위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눈도 돌리지 않았고.
시선이 향한 곳은 오직 연두의 손끝이었다.
톡.
연주가 멈췄다.
그런 연두를 향해 이은경이 나지막이 입을 뗐다.
“연두야.”
“네, 선생님..”
“고생 많았어.”
마지막에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연두가 선생님 제자라서 다행이다.”
그 말에 연두는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연두도요..”
마지막 연습의 끝.
연두의 첫 콩쿠르는 이제 하루를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