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09)
화. 순둥이
“부, 부끄러워여..”
정말이지 쉽지 않은 결과지 읽기였다.
빙긋 웃으며 나는 말했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연두야.”
“.. 으응?”
“오지랖이 꼭 나쁜 건 아니니까. 누군가한테는 그 오지랖이 큰 힘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오지랖이 넓다는 것.
보통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좋게 말하면 타인의 일에 발 벗고 나설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연두가 가지고 있는 좋은 특성이었다.
“맞아.”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시은이도 맞장구친다.
이런 모습 보기 쉽지 않은데.
그제야 연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흐뭇한 얼굴로 그 미소를 바라보다가 나는 다음 특성으로 눈을 돌렸다.
-감정이입에 뛰어나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것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평소 연두의 모습을 생각하면 주위 사람과 환경에 영향을 받을 때가 많았다.
항상 주위를 살핀다고 해야 할까.
‘나만 해도 그래.’
단언할 수 있다.
지금 내 인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행복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인지라, 아주 가끔은 힘에 부치거나 지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연두는 물어오곤 했다.
‘아빠, 괜찮아여..?’
기본적으로 나는 주위에 내 감정을 드러내는 유형이 아니다.
연두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게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그 감정을 연두에게는 전가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연두는 항상 내 감정을 알아차렸다.
신기할 정도로.
‘내가 그렇게 읽기 쉬운 사람인가.’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다.
여덟 살 딸에게 감정을 훤히 읽힐 정도로 표정을 못 숨기는 사람인가 하고.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게 전부인 건 아니다.
하굣길에 나누는 대화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연두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친구들에 대해 얘기할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그만큼 주위를 세심하게 살핀다는 뜻이었다.
‘친구들만이 아니야.’
누렁이도 그랬다.
상태가 평소와 조금 다른 느낌이 들거나 밥을 거르기라도 하면 자기 일처럼 걱정하곤 했다.
뭐, 그건 이해가 간다.
대식가인 누렁이가 밥을 거르는 건 진짜 문제가 있는 거니까.
어쨌거나……
‘이건 도움이 되겠어.’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는 건 연두의 커다란 장점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커다란 스트레스에 자주 직면한다면 마냥 장점으로 볼 수만은 없었다.
부모로서의 내 역할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자기반성과 자책을 자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모범이 되는 학생회장 유형이다.
삼촌도 옆에서 한 마디를 건넸다.
“연두는 2학년 때는 회장선거에 나가보는 것도 좋겠네.”
“회장선거요?”
“응.”
삼촌은 덧붙였다.
“멋진 회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알다시피 삼촌은 빈말을 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상대가 누구든간에.
말을 아낄지는 몰라도 입 밖에 뱉는 말은 모두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으니까.
지금도 그랬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시은이를 향해 물었다.
“시은이가 보기에는 어때?”
“네?”
“시은이는 부회장을 해 봤으니까. 연두가 회장을 하면 어떨 거 같아?”
시은이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삼촌과 가장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시은이라고 생각한다.
‘MBTI’는 서로 다르지만.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고 느껴지는 이미지는 가장 유사했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멋진 회장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연두가 회장인 반은 웃음이 가장 많은 반이 될 거니까요.”
웃음이 가장 많은 반. 글을 써서인지 표현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단번에 머릿속에 그려진다.
시은이가 말하는 웃음이 가장 많은 반의 이미지가.
“그리고 옆에서 연두는 도와주는 좋은 부회장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 시은이처럼?”
“꼭 제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조금 뒤에 시은이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면 좋겠지만, 2학년 때는 연두랑 같은 반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새삼 실감이 갔다.
늘 붙어있는 연시레가 2학년 때는 모두 다른 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사실상 1학년 때 뭉친 것도 무척 낮은 확률이었고.
‘뭔가 슬퍼지네.’
그래서인지 연두도 조금은 슬픈 표정이다.
그런 분위기를 단번에 전환시키는 레나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응?”
“나는 회장 하면 어떤데? 훗.”
동시에 굉장히 있어 보이는 표정을 취하는 레나.
비주얼만 보면 확실히 국제학교의 학생회장 느낌이긴 하다.
그러나 시은이는 단호했다.
“회장은 아니야.”
충격받은 표정의 레나.
“.. 왜?”
“레나는 나처럼 부회장을 하면 좋을 거 같아.”
“부회장?”
“응.”
그러자 옆에서 유리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회장을 할 수준은 아니라는 거지. 그 말에는 나도 동의해.”
“.. 뭐라구?”
짐짓 모르는 척 반응하는 유리.
또 불이 붙기 직전이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선동이가 입을 뗐다.
“그럼 얘는?”
시은이를 향한 물음이었다.
“얘는 어떨 거 같은데?”
그걸 물어 뭐 하냐는 듯 유리는 기고만장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들려오는 대답.
“회장도 부회장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
팩트폭력이 대단한 시은이였다.
***
한바탕 또 충돌이 일었다.
“야! 너도거든! 너도 회장 부회장 안 어울려!”
“나는 이미 부회장을 했어.”
“한 거랑 어울리는 거랑 같니?”
“회장은 내가 부회장이라 다행이라고 했어.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너……”
시종일관 침착한 시은이의 스탠스에 말문이 막힌 유리.
시은이가 유리를 공격하려 한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한 걸 테니까.
‘이런 거구나.’
시은이 결과지에 적혀있던 내용이었다.
언쟁 시 평범한 공격이 아닌 상대의 논리적 흠결을 지적하고 끝까지 굽히지 않는 경향이 있음.
너무 정확해서 실소가 나왔다.
“자, 자, 그만!”
둘 사이에 끼어든 건 우습게도 선동이였다.
“그렇게 싸워봐야 의미 없어요! 어차피 회장에 제일 잘 어울리는 건 나니까! 으하하!”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할 수 없었다.
녀석의 결과지에 가장 많이 나온 단어를 꼽으라면 바로 생각나는 게 리더(Leader)니까.
실제로 잘 어울리기도 하고.
“응. 오빠는 잘 어울려.”
그런 와중에 또 동의하는 시은이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나는 넌지시 입을 뗐다.
“얘들아. 근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있어.”
“.. 응?”
“아직 검사하지 않은 사람이 있잖아.”
그렇다.
이 자리에는 없지만 아직 검사를 진행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할머니였다.
바로 우리는 행동을 개시했다.
“할머니!”
“뭐, 뭐야!”
예상했지만 1차 시도는 실패였다.
“안 해, 이놈의 시끼야!”
그러나 사방을 에워싸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결국 핸드폰을 손에 쥔 할머니.
“염병.. 글자가 보이지도 않네.”
“괜찮아요, 할머니.”
음성 서비스가 있었다.
핸드폰에 있는 건 아니고 내 입이었다.
“주기적으로 친구를 만든다!”
“친구는 무슨.. 이 나이에 그런 거 만들어봐야 뭐 한다고.”
“하하..”
다른 의미로 쉽지 않은 검사 과정이었다.
나는 설명을 덧붙였다.
“할머니 성격을 생각해서 고르시면 돼요. 친구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동의, 그렇지 않으면 비동의인 거죠.”
“중간으로 해.”
“중립은 웬만하면 고르지 말라고 적혀있는데…”
“뭐가 그렇게 까다로워!”
이런 느낌이었다.
왠지 민망해서 역정을 내시는 거 같기도 했다.
“솔직하게 답변하셔야 해요. 그래야 제대로 된 검사 결과가 나오거든요.”
“어쭈? 내가 그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야?”
“그건 아니고요.”
어찌어찌 진행되는 검사.
그래도 할머니는 솔직하게 검사에 응하시는 거 같았다.
‘의외인 부분이 많으니까.’
당연히 동의할 거라 생각하는 질문에 비동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고.
이를테면 이런 질문이었다.
-다른 사람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울고 싶어질 때가 많다.
나는 예상했다. 할머니는 비동의를 할 거라고.
쓰잘데기없이 울긴 왜 울어, 같은 얘기를 덧붙이며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완전 동의는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동의를 선택했다.
‘그래. 내가 아는 할머니의 모습이 전부는 아니니까.’
어쩌면 이걸로 할머니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검사.
-일이 잘못될까 봐 자주 걱정하는 편이다.
-감정이 매우 빠르게 변하곤 한다.
할머니의 선택들.
그건 나로 하여금 몰랐던 할머니의 생각들을 알 수 있게 해 줬다.
강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예민하고 연약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 와중에 나온 질문.
-오래전의 실수를 후회할 때가 많다.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할머니는 잠깐 동안 정지했다.
솔직히 조금은 후회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괜히 할머니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 건 아닌가 하고.
그리고 할머니의 선택은 동의였다.
그 뒤로도 몇 개의 질문이 더 이어지고 마지막 페이지였다.
“다 된 거 같아요. 그럼……”
톡.
화면에 결과가 떠올랐다.
***
[ISFJ]-용감한 수호자, 실용적인 조력가
떠오른 MBTI.
‘ISFJ’도 지금껏 나오지 않은 새로운 성격유형이었다.
이번에도 결과지를 읽어주는 건 내 몫이었다.
장난스레 운을 뗐다.
“할머니가 용감한 수호자라는데요? 실용적인 조력가고.”
잘 들어맞긴 한다.
수호자.
사전적 의미로는 지키고 보호해주는 사람이다.
할머니가 나서서 나와 연두를 보호해줬던 건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였다.
실용적인 조력가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힘들었던 순간이나 현재에도 항상 나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할머니니까.
‘너무 정확한 거 아니냐고.’
이러다 ‘MBTI’에 과몰입하게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막상 할머니는 코웃음을 쳤지만.
“오버하고 있네.”
나는 웃으며 특성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표현하는 데는 서툴기 때문에 관계에 있어서 걱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가지며 꾸준하고 헌신적이다.
-타인을 향한 연민이나 동정심이 있지만, 가족이나 친구를 보호해야 할 때는 가차 없는 모습을 보인다.
놀라울 정도였다.
성격유형이 아닌 할머니의 특성을 그대로 늘어놓은 거 같았으니까.
가장 츤데레를 연상케 하는 유형이 아닐까 싶었다.
‘가족이 엄청 많이 나오네.’
가족에 대한 깊은 헌신.
그만큼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유형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다.
-가족이나 친구를 보호해야 할 때는 가차 없는 모습을 보인다.
보자마자 떠오른 건 나와 연두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던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할머니의 가족이었다.
그렇다.
할머니는 가족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나선 거다.
“멋있다…”
자그마한 연두의 혼잣말, 그 말이 모든 걸 압축해서 얘기해주는 거 같았다.
그때였다.
나를 흠칫하게 만드는 부분이 화면에 떠오른 건.
-부모로서
가장 내가 흥미로워했던 항목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읽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에게는 아픈 부분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헌신적이고 전통적이며 책임감이 있다.
-규율주의자이며 자녀들에게 올바른 일을 하고 사회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가르치기를 원한다.
-자녀를 키울 때 의무감과 책임감에 사로잡혀 자식을 키운다.
부모가 돼서일까.
차마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할머니의 아득한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홀몸으로 하나도 아닌 여러 아이들을 키우며, 어떻게든 모나지 않게 키우려 자신을 채찍질했을 그 시간들이.
-자녀가 경험하는 문제에 대해 좋은 부모가 되어주지 못했다고 느껴 자신을 탓할 수 있다.
그리고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혼자 자책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감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긴 시간이었을 거라는 것 말고는.
말해주고 싶었다.
자책할 필요 없다고. 할머니의 교육은 헛되지 않았다고.
‘삼촌이 있어.’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울 막내아들이 있었다.
비록 친자식은 아닐지라도 할머니의 보호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와 연두가 있었다.
그러니 할머니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 치열했을 삶은.
“하하하!”
“뭐야. 왜 갑자기 웃어?”
“재밌는 특징이 보여서요. 읽어드릴게요.”
부모로서의 항목 대신 다른 특징을 입에 담았다.
-겉보기에는 차가워보이지만 알고 보면 꽤나 순둥이다.
“할머니, 꽤나 순둥이셨군요?”
“이 놈의 조대새끼가 할미를 놀려!”
짜악-
할머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