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35
너의 초식이 보여 35화
순검사를 도와서(3)
도진청 현령은 구치웅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그를 위로하듯 말했다.
“자자. 순검사님. 벌써 스무날이나 지났습니다. 단서를 못 찾았으니, 이제 마무리하셔야죠. 위에서는 빨리 사건을 끝내라고 난리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순검사님 요청대로, 백의문에서 도와주러 왔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전체 수색을 할 겁니다. 물론 증거가 나오면 좋겠지만, 혹여나 아무것도 못 찾으면 마무리하는 겁니다. 집단자살 사건으로요. 동의하시죠?”
“네에.”
구치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초명기를 살폈다.
그는 무척 여유로웠다. 백의문에서 현장을 도와주고 있으니, 증거를 찾기는커녕 증거를 인멸하려 할 것이다.
고민 끝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저도 이번 일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모두 나를 보았고, 나는 당당히 신분을 밝혔다.
근래에 무적문의 규모가 커졌고, 내 이름 역시 조금은 알려졌다.
구치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반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초명기는 생각 자체가 달랐다.
시기와 질투가 느껴졌다.
‘저놈이 하운평이라는 놈이구나. 우연히 권왕 대협의 제자가 된 재수 좋은 새끼.’
이놈 봐라?
단순히 영약에 환장한 못된 놈이라 생각했는데, 뼛속까지 삐뚤어진 놈이구나.
겉으로 보이는 초명기는 아주 친절했다.
“하하. 좋군요. 권왕 대협의 제자 분께서 이렇게 도움을 주시면 금방이라도 해결될 것 같습니다.”
‘흥. 할 수 있으면 해봐라. 권왕이 직접 와도 이번 사건은 해결할 수 없다. 이건 완전범죄야.’
그동안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은 많이 봐왔다. 하지만 이 정도로 비뚤어진 인간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나는 웃음으로 넘겼다.
구치웅도 나를 한번 노려봤지만, 더 이상은 반박하지 않았다.
구치웅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럼 대규모 수색을 진행하겠습니다. 사건이 벌어졌던 곳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팔방으로 전진할 것이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이 보이면 즉시 저를 불러주십시오.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조금은 무식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수색 방향을 지정해주었고, 고맙게도 나는 건너뛰었다. 무시하려는 의도 같았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자유롭게 초명기의 뒤를 쫓을 수 있으니까.
* * *
수색이 시작되었다.
나는 수색하는 척하면서 초명기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계속 읽었다.
‘흥. 모든 건 그놈들 때문이야. 얌전히 천년백령초를 내놨으면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을 텐데. 귀찮게 뭐하는 짓인지.’
다행히 초명기는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떠올리면서, 실수한 것은 없는지 하나씩 점검하고 있었다.
화전민이란,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뜻한다.
하지만 이곳의 화전민들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특정한 무속신앙을 믿었고, 나라의 체계와 조직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깊숙한 산골에 들어와서 폐쇄적인 생활을 선택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산속에서 천년백령초란 약초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게 우연히 초명기의 귀에 들어갔다.
당시 초명기는 소림사에 속가제자로 들어가려 했다가 거절당한 상태였다. 뛰어난 무재인 건 맞지만, 인성에 결점이 있다는 이유였다.
초명기는 부끄럽고 화가 났다.
무슨 짓을 하든, 그들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 천년백령초의 소식을 들었고, 이것만 있으면 젊은 나이에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 잘난 소림사의 콧대를 꺾고, 가문을 빛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화전민을 몰래 찾아갔다.
천년백령초를 팔라고 설득했지만, 그들은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이렇게 귀한 약초는 산신령이 보호하는 물건이라 손대면 안 된다고 잘난 척을 했다.
‘겨우 이따위 것들도 나를 무시해?’
그는 순간 분노했고, 결국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그들이 제사를 지내는 시간에 맞추어 올라와, 향로로 그들의 정신을 홀린 뒤, 자살시켰다.
그때 나는 의문이 생겼다.
향로? 무슨 향로를 말하는 거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것 덕분에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우 사부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이렇게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어서. 크크큭.’
우 사부는 또 누구야?
좋아. 일단 여기까지 정리해 보면, 초명기는 천년백령초를 뺏기 위해 화전민 백서른두명을 몰살시켰다. 방법은 우 사부란 자의 도움으로 향로를 이용했고, 자살을 명령했다.
우 사부가 누군지, 어떤 향로인지 모르지만, 그것들을 찾으면 저놈의 죄를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구치웅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여기서 뭐 하는 거냐?]놀라서 돌아보니, 내 뒤에서 구치웅이 전음을 보내고 있었다. 그에게 대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둘러보면서, 증거를 찾고 있습니다.] [아니던데……. 아까부터 초명기의 뒤만 따라다니는 걸 봤다.]아까부터? 나는 그의 말투에서 이상함을 느꼈고, 그의 마음을 읽었다.
의외의 것을 발견했고,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은 초명기가 수상해서 쫓아다녔습니다.] [그가 수상하다고? 왜?] [화전민들을 언급할 때 그의 표정이 과장되고, 인위적인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열심히 증거를 찾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지역만 맴돌고 있습니다. 마치 거기만 찾으면 된다는 식으로요. 범인이 아니면 그럴 수 없죠.] [제법이구나. 그걸 걸, 어떻게 아는 거냐?] [‘행동관찰학’이란 책을 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사람의 행동이나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유추할 수 있는 책이죠.]사실, 나는 정말로 행동관찰학을 읽었다. 과거 포목점에서 글을 가르쳐 준 강희언이 언급한 책이 그것이었다.
재밌는 건, 구치웅 역시 이 책을 알고 있었고 좋아했다. 그래서 일부러 책을 언급한 것이다. 과연 그는 내 주장을 납득했다.
[그래. 좋은 책이지.]나는 놀라는 척 물었다.
[그러고 보니 순검사님도 초명기를 용의자로 생각하고 있었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제가 따라다닌 걸 아까부터 봤다고 했습니다. 그건 순검사님도 계속 따라왔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런 대규모 수색을 벌이는 것 자체가 이상했습니다. 스무날이나 지난 지금은 쓸데없는 짓이니까요. 더구나 이런 일을 순검사님께서 직접 요청했다? 뭔가 다른 것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실제로 구치웅은 다른 것을 노리고 있었다.
[순검사님은 이미 초명기를 용의자로 지목해 놓은 겁니다. 그래서 이런 수색 작전을 만들고, 그를 관찰하고 있었고요.]구치웅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처음부터 초명기를 의심했었다. 하지만 상황적 증거만 있을 뿐,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또 아직도 그가 어떻게 화전민들을 죽였는지 풀지 못했다.]우 사부라는 자가 향로를 줬다고 합니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그걸 연결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잠깐 생각한 후에 물었다.
[그의 범행 동기는 찾았습니까?] [탐문 수색 결과, 화전민 사람들이 아주 귀중한 약초를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약초는 어느새 사라졌지. 그리고 초명기는 최근에 소림사의 입관을 거절당했다고 하니, 무공에 대한 욕망이 강했겠지. 아마도 그가 강해지고 싶은 욕심에 회전민 사람들을 죽이고, 약초를 빼앗은 것으로 추정된다.]놀라운 추리였다. 세부적인 것만 제외하고, 대체로 정확했다. 문제는 역시 증거 부족이었다.
[그럼 간단하네요. 초명기의 집에서 그 약초를 찾아보죠. 그리고 사람들을 죽였던 방법도 찾으면 더 좋고요.] [무단침입을 하자는 거냐? 마치 도둑처럼.]쯧쯧.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스무날이 넘도록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가?
[그러니까 순검사님은 어떤 이유에서도 범법행위는 할 수 없다. 이 말이군요.] [당연하다. 죄를 지은 자를 잡아야 하는 자가 죄를 지을 순 없으니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대답 대신 사라졌다. 경공을 이용해서 빠르게 산에서 내려갔다.
구치웅이 궁금해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따로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 * *
결국, 수색은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도진청 현령은 사건을 이대로 마무리하겠다고 공고했고, 구치웅은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백의문 사람들은 다 돌아가고, 산에는 관졸 몇몇만 남았다. 그리고 고생한 포쾌와 관졸들을 위해 조촐한 고기와 술이 지급되었다.
하지만 구치웅은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는 관청의 임시 숙소에 들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시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툭. 투툭.
창에서 나는 소리에 구치웅은 눈을 떴다.
무적문의 소년무사일 거란 생각에 창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대신 멀리 보이는 담벼락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검은 복면을 썼지만, 체구로 보아 낮의 그 소년일 거라 생각했다.
‘뭐 하자는 거지?’
의문도 잠시, 갑자기 현령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도, 도둑이야! 도둑이 내 관복을 훔쳐갔다. 잡아라!!”
동시에 복면인은 친절하게 훔친 관복을 구치웅에게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담을 넘어 사라졌다.
구치웅은 피식 웃었다.
그는 하운평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본인이 직접 도둑이 되어 백의문으로 들어갔겠다. 그러니 도둑을 잡는다는 핑계로 백의문으로 따라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사실 이것도 편법이다. 하지만…….’
이대로 초명기가 도망치는 걸, 볼 수 없었다. 백서른두 명의 화전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초명기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구치웅은 자신의 검을 들고, 오랏줄을 팔에 감았다. 그리고 숙소를 나섰다.
하운평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었다.
구치웅은 백의문으로 달려갔다.
* * *
구치웅이 고지식한 면이 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따라올 거라 확신했고, 나는 그보다 먼저 백의문 안으로 들어갔다.
곳곳에 보초들이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비잔신투의 잠행술 잠보가 있었다. 쉽게 내전까지 들어갔다.
사실 낮에도 한 번 들어왔었다.
그때는 백의문의 무인들이 산을 수색하느라 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수색하기 편했다.
이미 대략적인 구조는 파악했었고, 초명기의 방이나 서재 등 중요한 곳도 다 봤었다. 하지만 향로나 약초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 사부의 숙소를 둘러 볼 생각이었다.
그의 숙소 앞에 도착했다.
낮에 하인과 하녀들의 마음속을 읽었고 우 사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름은 우익편이었고, 초명기가 어릴 때, 글 선생으로 초빙한 학자라고 했다. 의술이 뛰어나서 지금까지 십 년이 넘게 살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평이 좋았다.
다만 몇몇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밤중에 외출한다든지, 며칠이고 지하창고에만 머문다든지 이상한 짓을 했고, 가끔 뜬금없이 우익편의 몸에서 혈향이 날 때가 있었다. 또, 한 번씩 그의 처소에 초대받고 기억을 잃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분명 수상한 인간이었다.
좋아. 낮에 왔을 때는 그가 없었는데, 지금은 있을까?
이번에도 숙소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인기척도 없었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이대로는 구치웅이 와봤자 허탕을 칠 게 뻔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우익편의 숙소로 들어갔다. 음침한 기분이 들지만, 여느 방과 다름없었다.
딱 딱 하나 수상한 것이 있었다. 벽에 작은 문이 있는데,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그리고 기분 나쁜 기운이 풍겨 나왔다.
내가 이 자물쇠를 부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후웃. 어쩌긴 뭘 어째? 모 아니면 도겠지.
나는 스스로 답변하면서 자물쇠를 뜯어냈다. 그리고 문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강렬한 잔념이 밀려왔다.
우웃.
‘이제 마지막 주문만 남았다.’
‘안 돼요. 살려주세요.’
‘으아아악.’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내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 이제 너희들은 영문도 모르고 내 수족이 된 거야. 이걸로 난 천하를 집어삼킬 테고.’
콰직. 콰앙.
더 이상 보지 못해 문을 깨부쉈다.
우익편……. 이 녀석은 나쁜 놈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