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55
155
불청객 (2)
* * *
“내 이름 함부로 입 밖에 꺼내지 마라.”
듣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목소리에 릭은 얼른 입을 닫아버렸다.
여기서 저자가 조금이라도 화난다면 자신은 이제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하메론이라?”
브레디는 하메론의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소문만큼은 이미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프로드의 마법사라면 신의 재능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니 영광이군.”
“이것 봐, 이미 알아 버렸잖아.”
하메론은 과장되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러면 한 놈 또 죽여야 한다고. 이러면 그놈이 알아차릴 확률이 높아지는데.”
브레디는 하메론의 혼잣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불청객이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신의 재능이니 뭐니 해도 이곳에 들어오려면 정당한 절차를 밟고 오도록.”
“내가 그 절차를 밟고 들어올 거였다면 이렇게 미리 방문할 일도 없었겠지?”
하메론의 말에 브레디는 즉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렇다면 제지할 수밖에 없겠군.”
스스스.
마나하트 속에 있는 마나를 재빨리 순환시켰다.
언제라도 마법을 구현시킬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는 수초도 걸리지 않았다.
“절단해라. 윈드 커터.”
선공은 브레디였다.
그가 스태프를 휘두르자 생명의 빛을 잃어버린 것 같은 회색의 마나가 하메론을 향해 날아갔다.
“사라져라.”
하메론의 입에서는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웅.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났을 때, 브레디가 날린 윈드 커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자신의 마나를 매개로 구성되어 있던 마법이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기에 경험 많은 브레디조차도 당황했다.
“묶어라.”
두 개의 존재가 한 번에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 결과만큼은 확실하게 다가왔다.
촤르르륵.
마나로 된 끈이 브레디의 몸을 완전히 구속하고 말았다.
어떠한 주문도, 마법도 말하지 않았음에도 마법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무슨 짓을……?”
브레디는 깜짝 놀라며 마법을 해제시키려 했지만, 하메론의 마나 끈은 도무지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뚜벅.
하메론은 온몸이 묶인 채 버둥거리고 있는 브레디를 향해 다가왔다.
“저 쓸모없는 도련님이 괜한 소리만 하지 않았다면 너를 죽일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가 오른쪽 팔을 브레디를 향해 뻗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나를 원망하지 말란 말이야.”
브레디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틈도 없었다. 자신이 불과 1분 만에 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려야 한다.’
이곳에서 죽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범인이 누구인지 만큼은 엘런에게 알려야 했다.
엘런의 예상이 맞았다고, 그리고 그가 말도 안 되는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야만 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매한가지다.’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가 떠올린 생각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모든 물질의 원천인 마나여, 나 그대의 힘을 빌려 공간마저 무너뜨리고 나를 위한 통로를 마련할지어다. 마이너 텔레포트.”
자신의 스승이 그렇게도 연구하던 마법.
그리고 그는 결국 낮은 서클에서도 사용하기 위한 마이너 텔레포트를 만들었다.
브레디는 언젠가 훔쳐본 적이 있던 개량식에 따라 마법을 사용했다.
‘이대로 공간의 틈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엘런 님께 알려야 한다.’
기이잉.
브레디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나가 그를 감쌌다.
지금까지는 스승이 만든 식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점점 의식이 흐려지며 주변의 소리도 점점 멀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성공이다.’
“도망갈 생각하지 마.”
그때 자신의 귓가로 하메론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바로 옆에서 말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선명한 소리였다.
“어떻게?”
“닫아라.”
쿵.
브레디가 모든 걸 걸고 사용한 마법을 캔슬시키는 데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렇게 주문이 길어서야 도망칠 수 있겠어? 하긴, 설령 엘런이었다고 해도 도망치지 못하게 잡을 수 있었겠지만 말이야.”
하메론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브레디는 무기력함에 눈을 감아버렸다.
“그냥 조용히 죽어라.”
덜컹.
“이런 젠장! 잠가라.”
하메론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갑작스럽게 주문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사실의 문고리가 돌아갔다.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마나 반응이…….”
철컥.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바로 엘런의 것이었다.
하메론은 엘런의 목소리를 듣고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이봐, 하메론. 왜 그러는 거야. 너 정도면 저런 녀석쯤은 쉽게 이길 수 있잖아?”
그런 하메론을 보고 릭은 뒤에서 투덜거렸다.
탑주와 가주를 마법 한 번으로 제압할 수 있는 하메론이었다.
아무리 엘런이 괴물이라 한들, 하메론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전에 전쟁에서 왜 참가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만 있었다면 우린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넌 좀 닥쳐라.”
이번에는 릭이 자의적으로 입을 다문 것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 때문에 자신의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콰앙.
문이 잠겨서 열리지 않자 엘런은 문을 단숨에 부숴 버렸다. 안에서는 브레디와 릭의 마나 반응만이 느껴졌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시간을 끌면 안 됐다고.”
브레디는 입을 틀어 막힌 채로 자신에게 불만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 릭을 둘러업었다.
‘여기서 엘런을 만나면 그놈이 분명히 알아차릴 것이다. 이놈 때문에 무슨 고생인지 원.’
피윳.
하메론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마나줄기가 브레디의 몸을 관통했다.
“커억.”
브레디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마나 하트에 구멍이 생기면서 마나가 역류해 버린 것이다.
“귀환.”
하메론은 그 말만 남겨 둔 채,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투명화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한 것처럼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이 모든 게 문이 부서짐과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 엘런은 누군가 릭을 데리고 사라지는 장면만을 목격할 수 있었다.
“브레디!”
엘런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모두 인지하기도 전에 브레디에게 먼저 달려갔다.
“이런.”
그는 피를 토하고 있는 브레디에게 치료 마법을 사용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릭의 마나를 따라 그들을 추적할 수도 있었지만, 엘런에게는 브레디가 먼저였다.
그의 상처는 당장 치료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저들……부터 쫓으십시오.”
“누군지는 브레디가 보지 않았나요? 어차피 저들을 놓쳤으니 그대라도 살려야겠습니다.”
엘런은 곧바로 그를 데리고 왕실 의무대로 달려갔다.
* * *
“끄윽.”
브레디는 계속해서 감기는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렸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데다가, 특히 가슴 쪽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몸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정신이 듭니까?”
그는 이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에, 엘런 님.”
“말을 하지 않아도 돼요.”
엘런은 억지로 말을 하려는 브레디를 제지했다.
“제가 얼마나…….”
“3일은 누워 있었습니다. 마나 하트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하더군요.”
브레디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마나 하트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며 마나가 그곳을 통해 모두 빠져나갔다.
이것만으로도 몸에 큰 무리가 갈 터였는데, 브레디의 마나 수집법은 흑마법식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 공격적인 마나가 주인의 몸에 상처를 내 버린 것이다.
“이제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될 수도 있겠군요.”
브레디는 자신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마나 하트가 삐그덕거리는 것이, 조금의 마나라도 담게 된다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버릴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니, 내가 미안해요. 그대에게 릭의 수비를 맡기다니. 이용가치가 떨어진 릭을 구하겠다고 하메론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엘런의 눈에서는 미안함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핏발이 선 것이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향해 폭발할 것 같은 화산 같았다.
‘지금까지는 나만 가지고 일을 꾸미더니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치는군.’
이번 내전 역시도 하메론 때문에 일어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까지 했다.
“엘런 님의 예상대로 체들턴 가의 배후에 있는 자는 하메론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드 역시 하메론이었습니다.”
꽈득.
엘런은 자신의 주먹에 힘을 가득 주었다.
“당장 그놈을 죽여야겠습니다.”
자신의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 소중히 대했고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엘런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자신 때문에 브레디가 다친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제 평생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부상. 마법사에게는 목숨을 내놓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엘런은 당장이라도 하메론의 소재지를 파악해 그곳을 치겠노라고 다짐했다.
브레디 역시 그런 엘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 말을 더욱 전해야만 했다.
“엘런 님, 주의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그 역시 엘런 님처럼 이상한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이상한 마법이라니요?”
엘런은 브레디를 쳐다보았다.
“그가 사용하는 마법은 마치 드래곤의 그것 같았습니다.”
“드래곤의 그것이라면 설마…….”
지상 최대의 종족이자 전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드래곤.
그들은 가히 마법의 종족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마법에 능통했다.
그들의 신체적인 능력이나 드래곤 하트라고 불리는 마나 저장고도 그 명성을 뒷받침하는 요소였다.
그러나 그들이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 그것은 마법사들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마법이었다.
“용언(龍言), 그는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언어로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그저 내용을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인 드래곤.
그들의 용언을 모방한 것이 바로 고대어를 사용하는 고대 마법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고대어는 단어 자체에 계산이 담겨 있기에 서술만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고, 용언은 그저 말 자체에 힘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마나의 축복을 받은 존재인 드래곤에게만 허락된 권능이었다.
“고대어 마법과는 달랐단 말입니까?”
“저 역시도 고대어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인간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브레디가 고통을 무릅쓰고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엘런 님께는 정말 죄송한 이야기지만, 그를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괜히 저 때문이라면 부디 결정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지만 브레디, 그대가 나 때문에 다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평생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그때, 브레디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흑마법사를 위해서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엘런 님께서는 무사하셔야 합니다. 그러니 제발 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터져 나오는 분노를 이성이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브레디의 말에 엘런은 머리가 조금은 식어 가면서 냉정한 판단이 섰다.
자신의 힘과 상대의 힘을 저울질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을 계산했다.
엘런이 늘 해 오던 계산법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엘런을 승승장구의 길로 끌어 주었던 그 계산도구는 엘런의 패배를 가리켰다.
몇 번을 해 보아도, 어떤 수를 써 보아도 엘런의 패배는 바뀌지 않았다.
‘그놈이 정말 용언을 사용한다면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큭.”
그러던 그의 눈에 브레디의 모습이 들어왔다.
온몸에 둘둘 붕대를 감고 있는 그. 그에게서는 이제 예전의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 하트에 담겨있는 마나가 없다는 뜻이었다.
‘무엇을 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피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릭을 데려갔다. 또 다른 비극을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그의 행적으로 본다면 분명 또다시 자신의 앞에 나타날 것이었다.
‘이대로 둔다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도 다치게 할 수 있다. 내가 성장해야만 하고 내가 강해져야만 한다.’
엘런은 지금까지 자신이 발전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떠올렸다.
고대어까지 배운 이후로 그에게는 딱히 성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정국을 돌본다며 소홀히 했던 성장이 이렇게 독이 되었다.’
엘런의 표정에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지금까지 멈추었던 성장의 동력을 다시금 돌려야 한다. 하메론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 이른 시일 내에 찾아올 것이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브레디도 함께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엘런이 그의 몸을 다시 눕혀 주었다.
“브레디, 미안합니다. 여기서 푹 쉬세요. 다음 일은 내가 처리하겠습니다.”
“엘런 님, 제발…….”
뒤돌아섰던 엘런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 역시 현재 나의 위치를 깨달았습니다. 무작정 덤벼들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반드시 그놈을 처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