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a job as a fantasy Hero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느낌이 좋다고요?”
지훈의 뜬금없는 말에 시영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리고 은정도 지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지훈이 툴툴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둘 다… 잘 모르겠군요. 공감대가 있는 사람으로 용사를 한 명 더 뽑아야 하려나.
“용사가 그렇게 쉽게 되는 거였었나요?”
— 요즘에는 공감 타령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고블린들은 대충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은정이 소환한 불개들은 고블린을 꽤나 능숙하게 상대했다.
지훈이 뒤쪽에서 불개들을 지원해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블린을 상대하는 불개들의 수준이 괜찮았다.
‘소환자의 넋의 양에 따라 그 수준이 정해지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소환수들의 수준에 따라 소모되는 기운의 양이 달라질 이유가 있나?’
잠시 샷을 날리는 것을 멈추고 전황을 바라보며 지훈이 생각에 잠겼다.
대한민국 내에 소환을 전문적으로 하는 자경단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보현선사가 소환술을 부릴 수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수단에 가깝다.
‘한번 연구를 해볼 필요가 있겠어. 은정이와 비슷한 길을 갈 자경단을 위해서도 말이야.’
— 지부장님, 이제 어느 정도 정리되지 않았나요?
이어폰에서 들리는 시영의 목소리 덕분에 생각에서 깨어난 지훈은 전장을 한번 둘러보고는 라켓을 원래대로 돌리면서 시영에게 대답했다.
“네. 아직 조금 남긴 했는데 저 정도는 괜찮을 것 같네요. 저도 이제 내려가겠습니다”
— 수고하셨어요. 아, 잠시만요, 지부장님. 정훈 씨가 올라오는데요?
시영의 시야에 산 아래쪽에서 신정훈이 걸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차분한 걸음으로 걸어오는 것으로 보아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은 듯했다.
“방금 전 목사님한테 이쪽 일은 잘 해결되었냐고 연락이 와서 올라와봤습니다. 어떻게 고블린들은 다 처리되었습니까?”
“네. 다 해결되었으니 목사님께는 걱정 마시라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혹시 저도 이만 가봐도 괜찮겠습니까? 제가 오늘 이 근처의 치안 활동을 담당해서요.”
“잠시만요. 지부장님께 여쭤볼게요.”
시영은 지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지훈은 흔쾌히 허락했다.
정훈이 감사 인사를 한 후 산을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훈이 불개 무리와 함께 내려왔다.
“오늘 사냥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보고서도 제가 작성할 테니 이 녀석들 역소환하고 가면 될 것 같은데요?”
“네, 알겠어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오랜만이야. 반가웠어. 특히 노을이는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여기가 학교 안이라서 조금 무리일 것 같아. 이해하지?”
은정이 노을이를 껴안고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시영이나 지훈과 함께 있을 때도 좋지만 확실히 은정은 소환수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했다.
지훈과 시영은 눈짓을 한번 주고받은 후 불개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은정을 뒤로한 채 먼저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걸로 업무 완료입니다. 이제 바로 집에 가면 되겠네요.”
“알겠어요. 근데 이건 어쩌죠?”
시영이 가죽 주머니를 지훈에게 내밀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꽤나 값진 물건들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시영이 건네는 가죽 주머니를 받아든 지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진짜 말 그대로 황금고블린이었네. 운이 좋았구만, 오늘.”
“그러니까 황금고블린이 뭔데요.”
“그런 게 있어.”
“그러니까 그걸 설명을 해달라고요.”
시영과 지훈은 투닥거리면서 산을 내려왔다.
아까는 학생들이 좀 있었는데 다들 공부하러 갔는지 공원은 조용했다.
“뭐 마시면서 은정이 기다리면 되겠네. 어차피 지금 기운을 많이 써서 조금 쉬었다 가긴 해야 할 테니까.”
“저는 따뜻한 캔커피 두 개요.”
시영은 자판기 앞 벤치에 털썩 주저앉으며 지훈에게 그렇게 말했다.
지훈은 그런 시영을 지나쳐 자판기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말만 공손하지, 완전 삥 뜯는 거 아냐?”
“억울하면 제가 상사할까요?”
“아닙니다. 제가 뽑아서 가져다 드.려.야.죠.”
지훈과 시영이 다시 한번 투닥거리는 사이 은정이 산에서 내려왔다.
시영에게 다가오는 은정의 입가에는 짓궂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보기 좋네요, 아주?”
“뭐가 보기 좋다는 거야? 존댓말로 상사 먹이는 이 하극상이 보기 좋다는 건 아니지?”
“그거 맞는데요? 아, 감사해요.”
은정은 지훈이 건네준 캔커피를 딴 후 한 모금 마신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이 깔린 캠퍼스는 조금 무섭기도, 운치 있기도 했다.
“사실 이전까지는 별생각 없었거든요?”
“아, 대학교?”
“네. 그런데 조금 욕심이 생겼어요. 아까 올라오면서 본 학생들이 좀 부럽더라구요.”
아까 정문을 통해 들어오면서부터 은정은 주변 학생들과 캠퍼스를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렸었다.
지훈과 시영 모두 그런 은정의 모습을 이미 보았기에 어느 정도 그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그거에 관해서도 다음에 한번 이야기해 보자고. 나는 화장실 좀 다녀올게.”
빈 캔은 쓰레기통에 버린 지훈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시영이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해주려는 것 같은데?”
“그냥 제가 하면 되는데요.”
“그래도 회사 차원에서 도와주면 좋잖아. 예를 들면 회사 돈으로 학원으로 보내준다던가. 요즘에는 회사에서 직원 학원비를 대주는 경우도 있다는 것 같던데.”
“그래요? 뭐 그래주면 저야 좋긴 한데…….”
“저… 기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시영과 은정이 자판기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공부하려고 온 사람치고는 꽤나 단정하게 입은 남학생이 방금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 캔을 든 채 쭈뼛거리며 시영과 은정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아, 언니 부르시는… 거예요?”
은정이 살짝 경계하며 남자에게 그렇게 물었다.
캐주얼하게 입고 있어서인지 지금 시영은 얼핏 보면 대학생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지훈&시영 커플을 원하는 은정이기에 이 남자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요. 저는 그쪽…….”
“저요?”
하지만 은정의 예상은 틀렸다.
남학생은 은정에게 다가오더니 슬쩍 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를 건네며 물었다.
“혹시 어디과 학생이세요?”
“어… 저는 여기 학생이 아닌데… 요?”
“어, 그래요? 이 시간에 여기 계셔서 여기 학생인 줄 알았는데. 그럼 다른 학교? U여대? 아니면 N대?”
표정이 구겨지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남학생이 건넨 음료수를 받은 은정이 슬쩍 시영을 바라봤다.
무언가 도움을 주기를 바랬지만 시영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상황을 재밌어하는 듯했다.
“아. 대학생은 아니고요. 저는 그냥 이 근처 살고 있어서.”
일반적으로 대학교에는 이곳처럼 쉴 수 있거나 걸을 수 있는 곳이 조성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캠퍼스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남학생은 은정이 그런 경우라 생각했는지 혼자 고개를 작게 끄덕이더니 은정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제가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혹시 번호 좀 주실 수 있을까요?”
* * *
“그냥 번호 주지 그랬어. 뭐 괜찮아 보이던데.”
“그래요? 저는 그냥 그렇던데.”
“뭐 본인이 싫다면 어쩔 수 없긴 하지. 그래도 처음 아니야? 누가 번호 물어보는 건?”
시영이 은정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은정은 전혀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니도 없이 자라기도 했지만 한참 그런 것을 배우고 즐길 나이에 여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최악의 시간을 보냈었으니까.
은정은 시영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시영도 사춘기 시절 평범한 여학생이 배울법한 것들을 알려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즐거워했었다.
그래서일까?
어제 남학생이 은정에게 번호를 물어보았을 때 시영은 무언가 뿌듯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어요. 당연히 언니한테 용건이 있는 줄 알았는데 저한테 그래서요.”
“내가 말했잖아. 옷도 깔끔하게 입고 꾸미면 너 이쁜 얼굴이라니까? 나는 은정이 너가 그걸 좀 알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아직… 좀 거부감이 있긴 한 것 같아요.”
은정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 은정은 확실히 성인 남자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졌다.
하지만 거부감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인지 어제 남학생이 불쑥 다가왔을 때 마음속에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던 은정이다.
“저도 알아요. 굳이 그럴 이유나 필요가 없다는 걸요.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는 거구나?”
“네, 맞아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부장님이나 시후 오빠가 특별한 경우인가? 그 두 사람한테는 너가 별다른 거부감을 안 느끼는 것 같은데?”
“저도 그게 신기하긴 해요.”
은정이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어떻게 보면 남자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어도 무방할 정도의 사연을 갖고 있는 은정이다.
시영은 그런 은정이 대견스러워 씨익 웃는 은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해장 라면을 먹다 말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뜬금없을 수 있었을 텐데 은정은 소리 내어 웃으며 그런 시영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 둘은 제가 뭔 짓을 해도 넘어오지 않겠다는 확신이 든 사람들이라고요. 그런 확신을 갖게 되니 그 두 분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들지 않더군요. 오히려 강한 호감이 생겼죠.”
“호감? 지부장님은 몰라도 오빠는 좀 위험한데?”
“결혼하셨다고 했죠? 여기서 아쉽다고 하면 좀 그러려나요? 헤헤.”
은정이 그렇게 말하며 헤헤 웃었다.
은정의 웃는 모습을 보며 시영은 웃는 모습이 이쁜 여자가 바로 은정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은정은 웃을 때 살짝 해맑은 표정을 짓는데 그 모습이 참 매력적이었다.
저런 은정이 자신들을 만나기 전까지 웃음을 잃었었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영은 더더욱 은정을 웃게 해주고 싶었다.
“밥 먹고 어제 이야기한 대로 쇼핑가자.”
“근데 저 진짜 괜찮은데. 저번에 충분히 샀어요.”
“그건 그냥 대충 입는 옷들이잖아. 옷 말고 다른 것들 사도 되고. 그리고 뭐 사지 않더라도 이것저것 구경하고 놀면 되지. 이제 11시니까 이거 다 먹고 씻고 1시 전에는 나가자. 그래서 아예 저녁까지 먹고 들어오자고. 오케이?”
“네…….”
자신보다 더 신나 보이는 시영에게 싫다는 말을 할 수 없던 은정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은정도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살면서 누군가와 함께 놀러 다니고 한 적이 없었기에 해보고 싶기도 했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와주는 시영이 고맙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하며 놀지? 요새 영화는 마땅한 게 없는데… 놀이공원에나 갈까?”
“놀이공원이요?”
“응. 가장 마지막으로 놀이공원 간 게 언제야?”
“한 번도… 없는데요?”
“그럼 놀이공원으로 결정이네! 오케이!”
갈 곳이 정해져서 기쁜지 시영이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영은 설거지를 하기 위해 그릇을 싱크대에 내려놓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은정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괜찮으면 지부장님도 같이 가도 되니? 왠지 우리끼리만 가면 따돌리는 것 같잖아.”
“아, 지부장님이요? 네, 좋아요. 제가 전화해 볼게요.”
“응. 부탁해.”
시영이 설거지를 시작한 사이 은정이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응. 웬일이니?
“혹시 오늘 바쁘세요?”
— 뭐 바쁘다고 하면 바쁘고 아니라면 아닌데 왜?
은정이 설거지를 하며 통화하는 자신을 힐끔거리는 시영에게 묘한 미소를 지으며 지훈에게 물었다.
“시영 언니가 지부장님이랑 놀이공원에서 데이트하고 싶다는데요?”
“야, 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