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a job as a fantasy Hero RAW novel - Chapter 98
098화
회사와는 별개로 지훈이 은정을 주목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리치를 퇴치하기 며칠 전 시영과 적당한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지훈은 익숙한 기운의 불개를 마주쳤다.
“넌?”
자세히 보니 시영이 지훈의 제안을 승낙했던 날 지훈이 구해주었던 새끼 불개였다.
그 짧은 사이에 제법 덩치가 커진 것 같았다.
그래봤자 아직 조그만 강아지 같았지만.
기감으로 주위를 살펴보니 어미도 근처에 있는 듯싶었다.
“아무래도 내가 불어 넣어준 기운 때문인가 보구나. 그런데 갑자기 여기에는 무슨 일로… 응?”
지훈에게로 쫄래쫄래 다가오는 새끼 불개의 입에 무언가가 물려있었다.
지훈이 손을 내밀자 불개가 자신이 물고 있던 것을 손 위에 내려놓았다.
“머리끈?”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머리끈을 왜 이 녀석이 물고 있을까? 하지만 녀석은 지훈의 반응을 살펴볼 생각도 안 하고 꼬리를 흔들며 사라졌다.
“흐음…….”
지훈은 머리끈에서 미약하게 느껴지는 타인의 기운을 감지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돌아와 담을 호출했다.
담에게 요청하여 머리끈에 있는 기운을 보여주고 새끼 불개의 뒤를 밟게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담은 새끼 불개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 홍은정을 찾아내 지훈에게 보여주었다.
* * *
“이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절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라구요.”
“그게 저였다는 건가요. 흠… 의외긴 하네요. 과연 저의 무얼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걸까요?”
지훈이 웃으며 불개, 그러니까 노을이를 쓰다듬었다.
아직 성견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웬만한 애완견보다는 큰 덩치의 노을이가 쓰다듬는 지훈의 손을 할짝 핥았다.
“신기하네요. 이렇게 누구한테 친근함을 보여주는 게 처음이에요.”
“그때도 팀장님을 경계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맞죠?”
시영의 물음에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의 기운을 지닌 녀석이어서 그런지 그때 지훈이 넣어준 화행의 기운이 아마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녀석이 사람을 죽인 놈입니까?”
시후의 한마디에 잠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은정과 시영이 시후를 째려보았고, 노을이는 작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 상관없이 시후는 계속 말을 이었다.
“사람을 죽인 개는 안락사를 당하는 게 원칙입니다만.”
“해볼 수 있으시면 한번 해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노을이를 쓰다듬었다.
지금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지훈은 저 산속에 있는 불개 무리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지금 노을이에게 무언가 위해를 가한다면 저기 있는 불개 무리가 뛰쳐나올 것이다.
물론 지금의 지훈이라면 아무 무리 없이 녀석들을 잡을 수 있겠지만.
“억지로라도 하려면 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저도 굳이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하아, 아닙니다. 더 말해봤자 별 소용이 없겠군요.”
시후가 그렇게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윤 경위가 보이지 않았는데 차까지 없는 걸로 보아 아까 경찰을 따라간 듯싶었다.
그래서 팔짱을 낀 채 멀뚱멀뚱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후를 무시한 채 지훈은 시영에게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저는 은정 씨와 대화를 좀 해야 할 것 같군요. 시영 씨는 선사님께 먼저 가서 말씀을 전달해주셨으면 합니다. 아까 했던 이야기 기억하시죠?”
노을이를 통해 머리끈을 전달받은 이후 지훈은 그녀를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했었다.
관찰결과 지훈은 그녀를 세 번째 용사후보 제1순위로 삼았다.
그녀가 체포되면서 다른 이를 용사로 삼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결국 이렇게 일이 잘 풀렸다.
그래서 이후 진행에 대해서 내려오는 길에 미리 이야기를 해둔 지훈이었다.
“알겠습니다.”
시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현사로 향했다.
시후가 잠시 눈치를 보더니 시영을 따라갔다.
아마 자신보다는 시영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더 편할 거라고 판단한 듯싶었다.
하지만 시후는 시영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예전의 그녀가 아닐 텐데. 뭐 알아서 하겠지. 은정 씨는 여기 머무시는 건가요?”
“아, 네. 원래 시내 모텔에 살다가 이번에 잠깐.”
아마 홍수용을 죽이기 위해서 잠깐 온 것일 테다.
지훈이 여관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잠시 들어가서 이야기하실까요?”
“아, 안에요? 저희 둘이요?”
“조금 부담스러우실려나요? 그러면 은정 씨가 마음 편한 곳도 상관없습니다. 아, 요 녀석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볼까요?”
지훈이 벌떡 일어나더니 불개 무리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은정과 노을이 그런 지훈의 뒤를 쫓았다.
노을이 같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지훈의 기운을 느껴서인지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다들 어둠 속에 숨어 지훈을 바라볼 뿐이었다.
대충 깔끔한 곳에 주저앉은 지훈이 자신을 은정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죠. 할 이야기가 조금 많거든요.”
“네.”
은정은 베이지색 면 반바지에 노란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별 상관없다는 듯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은정을 보며 지훈이 미소를 지었다.
“일단 이거 먼저 물어봐야겠네요. 이제 후련한가요?”
“네.”
은정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아주요. 복수는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는 말은 거짓말이에요. 아주 통쾌하더라구요. 특히나 살려달라고 저를 향해 손을 뻗을 때 그걸 뿌리치는 기분이 아주 끝내줬어요.”
“죄책감은 없었나요?”
“죄책감이요? 제가요? 설마요.”
그렇게 대답하는 은정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아마 시후가 보았다면 은정에게 뭐라고 한마디 했을 테지만 지훈은 달랐다.
“실망하셨나요?”
“아뇨. 마음에 드네요.”
“마음에… 드신다구요?”
“네. 농담이 아니에요. 그 정도의 멘탈을 가지신 분이 필요하긴 하거든요.”
사람들이 농담이든 진담이든 누군가를 죽인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 그걸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큰 용기가 따른다.
특히나 어릴 적부터 살인에 대한 혐오감을 교육받아온 현대인에게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굉장히 큰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은정 씨는 그걸 4번이나 하셨죠. 그 에너지의 원동력은 아마 복수심이었겠죠?”
은정은 셋의 성적 노리개에서 벗어난 건 성인이 된 이후니 꽤나 길었다.
그것도 홍수용이 다른 범죄의 용의자가 되면서 은정을 버리고 도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듯한 은정이었지만 이미 그녀의 생활은 무너진 상태였다.
교우 관계는 물론이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던 그녀였다.
다행히 복지사의 도움을 통해 생활을 유지할 수는 있었고,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들에 대한 복수심을 키웠다.
“그러던 중 본인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던 거구요.”
“맞아요. 예전부터 저는 특이한 걸 보았었어요. 하지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는 않았어요. 혼자 보고 느끼면서 제 외로움을 달랠 뿐이었죠.”
“…….”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들의 의지가 저한테 전달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거구요. 그런데 그들 중 하나가 제 바람을 들어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녀가 처음 사람을 죽인 건 8월 15일이었다.
그리고 1주일 만에 나머지 둘까지 죽였다.
그때 지훈은 강릉에서 보현선사와 수련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아마 지훈이 있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은정으로서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의 원흉. 그 새끼를 찾았어요. 어디로 도망쳤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다 유달리 저랑 말이 잘 통하는 녀석을 만나게 되었죠.”
은정이 노을이를 바라보았다.
노을이가 그런 그녀에게 폭하고 안겼다.
순진한 소녀처럼 붉은 털이 복슬복슬한 개를 안고 미소를 지으며 은정이 말을 이었다.
“노을이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꽤 진한 교류를 나눴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노을이가 자신이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며칠 후 정말로 알아냈죠. 그리고 다른 존재를 통해 유치장에 있는 저에게 알려준 거예요. 보현사에 있다고.”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었고, 거기에는 지훈의 의도가 살짝 가미되어있었다.
그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지훈이 잠시 고민하고 있는 사이 은정은 노을이를 안고 폭하고 바닥에 누웠다.
“이제 전 다 이뤘어요. 사실은 제가 죽였다고 자백할까도 생각했어요. 아까 오셨던 그 경찰 아저씨 있죠? 그분한테 조금 설득당했거든요.”
“의외긴 하네요. 그런 일을 당하셨으니 남자나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후 씨에게는 조금 마음을 여셨나 보군요.”
“혐오감이요? 없는 건 아니죠.”
“숨기고 있는 건가요?”
“맞아요. 그게 제가 살아가는데 유리하니까요.”
은정의 말은 일리 있었다.
혐오감을 겉으로 드러내는 건 통쾌할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적절하게 숨기고 가면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게다가 은정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보호자가 없는 상황.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그녀에게는 굳이 그걸 표현함으로써 적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꽤나 영민하셨네요.”
“몸으로 직접 체감했거든요.”
그녀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그녀가 그걸 어떻게 체감하게 되었는지 짐작한 지훈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삶의 목적이 사라지셨을 것 같은데요.”
“그러… 네요. 저는 이제 뭘 목표로 삼아야 하죠?”
은정은 만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삶의 목표를 이뤘다.
그 삶의 목표라는 게 복수라는 아주 단순하고 강렬한 것이 문제였지만.
“그림 좋아하시죠?”
“네?”
“틈틈이 그림을 그리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별걸… 다 아시네요.”
홍은정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던 그녀에게도 나름의 배출구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림.
처음에는 종이와 연필로만 시작했지만 점차 그 범위를 넓혔고 그들에게서 벗어난 이후에는 복지사에게 부탁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받기도 했다.
“당분간 그림 연습이나 하고 계시죠.”
“갑자기 그게 무슨?”
난데없는 말에 은정의 의문을 표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걸 연습하라고 하는 지훈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노을이… 의 정확한 정체는 아시나요?”
“일반적인 개가 아니라는 건 알아요.”
“당신이 보는 것은 사람들이 모르는 존재, 바로 요괴들입니다. 당신은 그런 존재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재주가 있는 겁니다.”
지훈의 말에 은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것들이 아니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두 귀로 들으니 믿기지가 않았다.
“믿을 수 없다고 하기엔… 제가 본 게 너무 많네요.”
“아마 은정 씨가 소통이 되었던 놈들은 대부분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중에는 요괴도 있고, 영물도 있지만 영물들은 웬만해서 인간사회에 나타나질 않으니 대부분 요괴들이겠죠. 여기 노을이도 불개라는 요괴입니다.”
지훈이 노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아듣는 것인지 노을이가 꼬리를 흔들며 지훈에게 엉겨 붙었다.
그런 노을이를 보고 미소를 지은 은정이 지훈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거랑 그림이랑은 무슨 관계가?”
“흠… 강릉 내려오신 김에 강릉에서 지내셔도 될 것 같아서 말이죠.”
“네?”
“여기 스님이 또 그쪽으로는 전문가시거든요.”
지금쯤 시영에게 이쪽의 상황을 전해 듣고 있는 보현선사를 떠올리며 지훈이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은정을 바라보았다.
“은정 씨가 본 그 동물들을 한번 그려보세요. 마치 녀석들이 금방이라도 그림에서 뛰쳐나와 움직일 정도로 똑같이 말이에요. 그러면 또 다른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