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54
제155화
울릉도 게이트 앞은 분주했다.
각자 떨어져 있는 S급 헌터들.
그들을 보좌하는 각국의 스태프들.
각기 다른 나라의 언어가 어지럽게 이곳저곳을 나돌아다녔다.
아마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1년 6개월 전 이후 처음일 것이다.
A등급 길드 연합 원정.
그날 백운천에서는 태천이만 참여했었다.
원정대 수준에 해당할 실력자가 녀석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얀 성녀라고 불리는 지금이라면 도희도 참가했겠으나….
당시 도희는 아직 이름을 알리기 전이었다.
태천이가 참가했던 것도 협회가 기회를 준 것에 불과했다.
그것도 실력보다 사람들에게 기사라고 불릴 정도로 정직한 인성의 힘이 컸다.
그런 곳에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오게 됐다니….
정말이지 감개가 무량했다.
“…….”
물론, 잘 안다.
오늘 주인공이 우리 백운천이 아니라는 건.
S급 헌터들.
그들이 이곳의 주인공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뿐만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시청하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안다.
주인공인 4명을 제외한 다른 6명의 헌터는 그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걸.
하지만.
그래도.
그게 뭐 어쨌는가.
백도희, 이태천.
난 두 사람과 함께 게이트에 진입한다는 사실이 좋았다.
2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은 설렘을 느꼈다.
“왜 그래요?”
시선을 마주친 도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머리카락이 스르륵 늘어졌다.
절로 단발머리였던 때의 도희가 떠오른다.
그땐 머리 색깔도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는데….
“머리.”
“네?”
“머리 많이 자랐다 싶어서.”
“…갑자기요?”
도희가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하얀 머리카락을 만지는 흰 손에 굳은살이 배겨 있다.
2년 전엔 없었던 거다.
“…….”
“…어디 아픈 거 아니죠?”
“아냐, 멀쩡해.”
“그런데 왜-”
“긴장돼서 그러냐?”
옆에서 장비를 정비하던 태천이 대뜸 질문을 던져온다.
돌아보니, 태천이는 씩 웃고 있었다.
걱정돼서 물어본 게 아니라 날 놀리려고 물어본 것이었다.
자식.
꼭 좋아 죽겠는 티를 내요.
“그런 거예요? 긴장하지 마요, 오라버니.”
“긴장 안 했어.”
“정말요?”
“할 것도 없는데, 뭐. 우린 뒤에 서 있을 거잖아.”
“그렇긴 하죠.”
도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도희도 아는 거다.
울릉도 게이트에 함께 진입하긴 하지만, 우리가 할 일은 없다는 걸.
S급 헌터들이 어련히 할 것이다.
우린 들러리로서 뒤에서 묵묵히….
“아.”
그렇군.
그런 거였나.
스미르노프가 태천이와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다.
격차를 보여 주려던 거다.
그와 우리 사이엔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스미르노프를 찾는다.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외모의 소유자였으니까.
팔짱을 끼고 서서 우릴 바라보고 있기도 했고.
입가엔 미소가 지어져 있다.
가소로움이 느껴지는 미소다.
비릿한 미소가 내 생각이 옳다는 걸 입증했다.
빌어먹을 러시아 놈….
“괜찮아요.”
꼬옥.
속으로 욕을 내뱉는데, 도희가 손을 붙잡았다.
스마트폰을 들지 않은 왼손을.
도희의 손은 따스했다.
“괜찮아요.”
같은 말을 되뇌며 태천의 손도 붙잡는다.
태천이는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문을 모르겠는 듯 멍청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왜 그래? 나 긴장 안 했어.”
“후후….”
“도희야? 진짠데?”
그러거나 말거나.
도희는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내가 알아차린 사실을 우리 도희가 모를 리 없지.
그녀는 스미르노프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 스미르노프가 말을 꺼냈을 때부터 알아차렸을 거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딴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인다.
당연하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으니까.
2년 만에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
그게 훨씬 더 중요했다.
내가 설렘을 느꼈던 것처럼, 도희도 마음이 들떴으리라.
“…….”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왼팔로 도희의 어깨를 끌어안고 오른손으로 태천의 뒷덜미를 붙잡는다.
작고 큰 두 사람을 안으려다 보니 자세가 영 불편했다.
완벽하게 포옹하는 자세가 되지 못했다.
아무튼, 이태천 이놈은 쓸데없이 덩치만 크다.
“오라버니?”
“…뭐하냐?”
“고맙다.”
“네?”
“뭐?”
“기다려 줘서 고맙다고.”
“…….”
“…….”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고.”
“…….”
“…….”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워낙 얼굴이 가까워 보이진 않았지만, 당황해서는 멍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다.
그럴 게 뻔한 얼굴들을 떠올리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두 사람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지만.”
“…괜찮아요.”
“아직 내가 바랐던 만큼 강해지진 못했지만.”
“상관없어.”
“그래도.”
꽉.
두 사람을 한번 끌어안고선 뒤로 물러난다.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날 바라보는 둘은 살포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포근한 미소….
“지금이 적당할 것 같다.”
“응…!”
“음!”
“오늘부로, 나는 다시 백운천이야. 백운천의… 백도운.”
“응!”
“좋았어!”
꽝!
태천이 이마를 부딪쳤다.
자기 이마를 내 이마에.
오랜만이네.
[세계수 어린나무가 당황합니다.] [황당한 마음에 관리인의 친구를 바라봅니다.] [분명 방금까지 훈훈한 상황이 아니었는지 의문을 던집니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전합니다.]주춤….
나는 뒤로 물러났다.
오랜만이라 받아들이지 못했다.
공격이라….
그래, 다른 사람이 보면 그리 보이겠지.
비단 공격했다고 생각한 건 새싹이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왜 저러는지 묻고 싶은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다.
리롄제, 스미르노프, 밀러, 그위친.
그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희가 손을 뻗어 우리 옷소매를 잡아당긴다.
“…….”
그녀는 기대에 찬 얼굴로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옛날 일이 떠올라서다.
9살 때쯤이었나?
나랑 태천이가 이마를 맞부딪쳤을 때, 도희는 우리가 노는 줄 알고 자기도 끼어달라고 했었다.
재미있어 보인다나 뭐라나.
사실 우린 싸우려고 했었던 건데.
맥이 탁 풀려 흐지부지 넘어가게 됐지만.
그러므로 그 당시 우린 도희에게 단호하게 말했었다.
“안 돼.”
“너 이마 깨져.”
라고.
당연히 지금도 그렇게 말했다.
거부의 말을 들은 도희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치이….”
어렸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답지 않게 이런 걸 함께 하고 싶어 한다니까.
[어린나무는 생각하기를 포기합니다.] [관리인의 주변에는 관리인 같은 인간밖에 없는 것 같다고 전합니다.]하하.
우리 새싹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니까.
너도 내 주변에 있다구?
주변‘인(人)’이 아니라 주변‘목(木)’이지만.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생각을 부정하고 싶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서글픔을 느낍니다.]서글픔을 느끼긴.
즐겨, 새싹아.
그럼 편해진단다.
[ ]어허.
공란 보내는 거 아니야.
***
협회TV의 인터넷 방송 프로그램 헌터 투게더는 현재 유례없는 시청자들이 모여 있었다.
S급 헌터 전원이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모여 A+등급 게이트를 공략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짧은 머리의 공철이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헌터 투게더 시청자 여러분. 공철입니다!”
“안녕하세요! 정하설이에요.”
옆에 앉아 있는 정하설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요즘 한창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공철과의 케미가 좋아 사람들의 시선을 끈 덕분이었다.
– 공하!
– 정하!
– 공하 정하!
– ㄱㅎㅈㅎ
실시간으로 최다 시청자 수를 경신하고 있는 만큼 채팅창은 빠르게 올라갔다.
인사말이 대다수였으므로 공철은 채팅을 읽지 않고 그대로 방송을 진행했다.
“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23일 수요일 오늘! S급 헌터 분들이 울릉도 게이트에 진입합니다!”
– 드디어!
– 주님, 오늘 뱀 한 마리 하늘로 갑니다.
– 뱀 ㄴㄴ 이무기임
– 아, 제발. 설명충 aut!
– aut이 아니라 out.
– …씨바, 할 말을 잃었습니다.
– ㅋㅋㅋㅋㅋ
– 뭔 컨셉이야 저건 ㅋㅋㅋ
“…하하. 다들 아시네요. 그렇습니다. 오늘 실황 방송해드릴 울릉도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는 이무기입니다.”
“네, 우리나라가 두 번이나 공략에 실패한 것도 다 그 이무기 때문이었어요.”
“그렇죠.”
공철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차례차례 펼친다.
“A등급 길드 연합 원정의 실패. 우리나라의 자랑, 한진환 헌터 님의 실패.”
“정말… 한진환 선배님이 공략에 실패하셨을 땐 충격적이었죠.”
– 엄청나게 충격적이었지 ㅋㅋㅋ
– 공격했는데 서로 에너지가 충전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건에 대하여 ㅋㅋㅋㅋ
– 아 포켓x 모르냐고 ㅋㅋ
– 같은 속성이면 데미지 반감되는 게 국룰이라고 ㅋㅋ
– ㄹㅇㅋㅋ
“한진환 헌터와 같은 번개 속성인 만큼… 이무기는 엄청난 공격력을 자랑하죠?”
“네, 그런데 사실 이무기는 공격력보다는 방어력이 굉장히 대단한 몬스터예요.”
“방어력이요?”
공철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정하설은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어색한 연기 톤은 뭐지?
– 방어력? 공격력이 아니라?
– 몰랐냐? A등급 길드 연합 원정 실패가 이무기의 실드 마법을 못 뚫어서잖아.
– 헐, ㄹㅇ? 영상 어디서 봄?
– ㄴㄴ 영상 없음
– 영상이 없어?
– 있겠냐. 실패한 영상이?
– 있어야지. 그래야 실패에서 배우지.
– 꼰대 AUT!
– aut 아니라고. out이라고.
– ㄹㅇㅋㅋ
“네. 실드 마법을 웃도는 위력의 공격을 가하지 않는 한, 이무기는 쓰러뜨릴 수 없어요.”
“과연 그렇군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그런 위력을 낼 수 있는 건 한진환 선배님뿐이에요.”
“아…. 유일한 건가요?”
“으음, 아마… 현재 저 자리에 나가 있는 조주현 헌터가 소속된 마인 길드의 마스터, 윤건 님이라면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도요…?”
“그렇군요. 확실히 그렇겠습니다! 한진환 헌터의 유일한 라이벌이신 만큼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철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그는 울릉도 게이트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관련 방송을 진행해야 하니 정보를 숙지해야 했다.
또 마인 길드 마스터 윤건이 이무기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방송 진행 전 정하설과 이미 한번 대화를 나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가 하설의 설명을 들으며 놀라는 척을 한 건 방송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 연기 어색한 거 봐라 ㅋㅋ
– 우리 형 왜 연기가 안 늘까?
– 사람이 착해서 그래.
– ㅇㅈ 속이질 못하는 거지 ㅋㅋㅋ
시청자들은 아무도 속지 않았다.
말마따나 공철은 감탄하는 목소리도, 고개를 끄덕거리는 동작도 모두 어색했다.
지금부터 연기를 시작하겠으니, 연기하는 걸 봐주세요.
딱 그리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공철은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 속 S급 헌터들은 평소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곧 게이트에 진입할 텐데 갈아입지 않는 건, 평상복이 곧 그들의 전용 장비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옷은 평범한 옷으로 제작한 옷이 아니었다.
“그래 봐야 S급 헌터분들에겐 안 되죠!”
“…….”
정하설이 물끄러미 공철을 바라본다.
씩 웃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니 그녀는 왠지 모를 민망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 민망함을 지우고 싶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공철 씨가 잘난 척을 해요?”
– 그러게 ㅋㅋ
– 내 말이. 왜 형이 해?
– 누가 보면 형이 S급 헌터인 줄 ㅋㅋ
– 현실은 죽지 못해 돌아오는 공철일 뿐 ㅋㅋㅋ
“흠, 흠!”
공철이 헛기침을 해댔다.
살짝 뺨이 붉어져 있었다.
민망함을 느낀 게 분명했다.
그는 상황을 무마하고자 말을 돌렸다.
“참, 하설 씨. 새로운 상급 힐링 포션이 나왔다고요?”
“…….”
– 갑자기?
– 실화야?
– 이렇게 포션 홍보를 한다고?
– 맥락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형 ㅋㅋㅋ
– 하설 누나 표정 좀 봐 ㅋㅋ
– 당황한 눈나도 ㄱ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