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53
제154화
“웃지 마라, 해골.”
“음? 내가 웃었나? 이거, 미안한데그래. 옛날 일이 떠올랐거든….”
옛날 일.
그 말이 나오자 원이 이를 갈며 해골을 바라본다.
마치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턱을 날리고 싶은 듯이 보였다.
하지만 해골은 원의 사나운 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짧은 웃음까지 흘려 댔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원은 한동안 해골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자연히 원탁의 분위기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싸늘함만이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가라앉자 원탁에 앉은 이들의 고개도 점점 내려갔다.
그러다,
“후우…. 정말이지, 못 말리겠군.”
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해골을 향했던 사나운 기세도 사그라들었다.
싸늘하기만 했던 원탁의 분위기도 조금 나아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원탁의 간부들을 바라봤다.
“…늑대의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간부들은 고개를 들고 원을 바라봤다.
원은 그에게로 시선이 모인 것을 확인한 후 말을 이었다.
“S급 헌터 놈들이 전부 떠났을 때. 그때 백도운을 죽인다.”
“네!”
“세계수의 관리인을 죽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태천 백도희도 상대해야 할 테니 각오 단단히 하도록.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저….”
개미가 대답은 하지 않고 손을 들며 원을 불렀다.
원탁에 앉은 이들은 깜짝 놀라서 개미를 바라봤다.
하나 같이 입이 떡 벌린 채였다.
발언권을 받지 못한 이가 함부로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뭐냐?”
쯧!
원은 물으면서 혀를 찼다.
그 탓에 개미는 몸을 움츠러뜨렸다.
벌을 받게 될까.
그런 두려움 때문에 말을 쉬이 잇지 못했다.
“그, 그게….”
“뭐냐니까.”
원이 다시 물었다.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으나 어조는 조금 달랐다.
괜찮으니 말해보라고 말하는 듯한 따듯함이 느껴졌다.
힘을 얻은 개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백도운을 죽일 때 말입니다.”
“음?”
“한, 한진환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개미의 말에 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골도 입꼬리를 내리고 질문을 던졌다.
“한진환? 그놈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두 분께서는 그분을 뵙고 오느라 모르셨겠지만…. 요즘 한진환과 백도운이 같이 다니고 있습니다.”
“뭐라?”
“그게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개미는 바로 대답했다.
원과 해골이 자신에게 집중하자 들뜬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둘은 같이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제법 친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백도운을 공격한다면 한진환도 나설 것이 분명합니다.”
“허….”
“한진환이 최희석이 아닌 타인에게 관심을 가졌다, 라…. 백도운, 그놈이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것을 밝힌 건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개미가 고개를 숙였다.
해골은 “괜찮다”라고 말하며 손을 휘저었다.
애초에 대답을 바라고 질문을 한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떠들어 댔을 뿐이었다.
“둘은 정부와 협회가 의뢰한 퀘스트를 깨기도 했습니다.”
조용히 앉아 있던 늑대가 끼어들었다.
“뭐라?”
“협회 퀘스트?”
자연히 원과 해골의 시선이 늑대에게로 옮겨갔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개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물론, 그 불만스러움은 금세 사라졌다.
원과 해골 앞에서 불만이란 감정을 오랫동안 내비칠 수는 없었다.
“바이올렛 바이올런스와 바이올렛 파우더의 유통을 막는 내용의 퀘스트였습니다. 이름은… 두 손가락 프로젝트…? 그런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두 손가락…. 미국이건 한국이건 정부 놈들 이름 짓는 것 하곤….”
“그 퀘스트를 진행한 것이 바로 한진환과 백도운이었습니다.”
늑대의 대답에 원은 혀를 끌끌 찼다.
그러고는 불쾌한 듯 뇌까렸다.
“이거 원…. 세상 도움 안 되는 놈들끼리 쌍으로….”
“뭐, 뭐. 잘 됐지 않나.”
“잘 되긴 뭐가 잘 됐단 말인가. 한진환 놈이 끼어들면 여기에 있는 삼분지 이가 죽어 나갈 텐데.”
“……!”
원탁에 둘러앉은 이들 대부분이 숨을 들이켰다.
삼분지 이가 죽을 수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럴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원은 입을 꾹 닫았다.
“…….”
한진환을 상대하는데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놈들을 보자 속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넘쳐흐르는 힘에 의한 자만과 오만.
그 때문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않는 멍청이들.
그분의 힘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운 머저리들.
원은 원탁에 앉은 이들을 보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마음에 피어난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서였으나, 안타깝게도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사사건건 방해하던 놈들을 한꺼번에 치워버릴 수 있게 됐으니 잘된 것이지.”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원은 아주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개미가 공손히 손을 들었다.
“저… 질문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해라.”
“세계수를… 어디서 찾아야 하겠습니까?”
“음?”
“허?”
원과 해골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개미는 당황했다.
당황스러움은 ‘질문에 잘못이 있었나?’하고 돌이켜 보게 했다.
“백도운을 죽이기 전에 물어보면 될 일이다, 개미.”
늑대가 개미를 나무랐다.
개미는 그 나무람에 동의했다.
물론, 100%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지만…. 말하지 않고 죽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또, 어느 산에 있다고만 말할 경우도 있을 테고요.”
“아.”
늑대는 그제야 개미의 말을 이해했다.
백도운이 세계수의 정확한 위치를 말하지 않을 경우.
그때 그들은 산에 수두룩하게 자라난 나무들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리라.
산에 자라난 나무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관리인을 죽이면 자연히 세계수의 위치가 드러날 테니까.”
“앗…. 그렇군요. 괜한 걸 여쭈어서 죄송합니다.”
“됐다. 혹시 또 질문이 있는 사람 있나?”
원이 원탁을 돌아봤다.
로브를 둘러쓴 이들은 아무도 손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더는 질문이 없었다.
“없다면 이번 모임은 이만-”
원은 도중에 말을 멈췄다.
맞은편에 앉은 해골이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눈에 띄었다.
“……뭔가?”
“최동훈은?”
“누구?”
“아이가이온 마스터 말이다. 그 후로 어떻게 됐지?”
“아! 그러고 보니….”
원은 대답하는 대신 늑대 옆에 앉아 있던 이를 바라봤다.
가슴께에는 ‘토끼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시선이 닿자 토끼는 바로 입을 열었다.
“아직 변태 중이에요. 며칠 전 ‘완전한 번데기 상태’가 된 것을 확인했거든요. 또….”
토끼는 손목을 들어 전자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것에는 현재 시각 대신 ‘D+14’라는 글자만 떠 있었다.
“네. 지금쯤이면 한창 몸이 녹아내리고 있겠어요.”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으음…. 신체 분해는 곧 끝날 테고…. 재구성은 대개 5일 정도…. 세뇌 작업이 진행돼야 하니까….”
“…….”
“얼추… 일주일 정도? 네. 그 정도는 더 걸릴 것으로 보여요.”
해골의 질문을 받은 토끼는 중얼거리며 시간을 계산했다.
계산을 들은 원과 해골은 빙긋 웃었다.
“딱 적절하군.”
“그래. 써먹을 수 있겠어.”
“좋아.”
원이 원탁을 돌아봤다.
“아까 말한 대로다. S급 헌터들이 돌아가는 날, 백도운을 죽이기로 한다.”
“네!”
우렁찬 대답이 나왔다.
그 대답을 듣고, 해골이 말했다.
“아, 그래. 개미 말대로라면, 한진환 그놈과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이 있으면 꼭 하고 오도록.”
“네…?”
“죽기 전에 못해본 일이 떠오르면 속상하잖아? 갈 땐 가더라도 아쉬움 없이 가야지.”
“…….”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해골이 킥킥 웃었다.
맞은편에 앉은 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불이 꺼진 방에는 커다란 번데기만 놓여 있었다.
번데기는 심장이 박동하듯 커졌다가 작아지는 것을 반복했다.
그것에 맞춰 지글거리는 소리도 울려댔다.
지글… 지글… 지글….
끼이익.
지글거리는 소리 사이에 녹슨 철 소리가 끼어든다.
방의 녹슨 철문이 열린 것이다.
“…….”
가슴께에 토끼 브로치를 단 사람이 들어왔다.
일명 ‘토끼’라고 불리는 크라우드의 간부였다.
토끼는 머리를 푹 눌러 썼던 후드를 뒤로 벗었다.
긴 머리카락이 그림자처럼 내려앉는다.
그녀는 지글거리는 번데기 앞에 가 앉았다.
“최동훈….”
천천히 손을 내밀어 번데기에 갖다 댄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으나, 그녀의 입가엔 화사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당신은 모르겠지?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당연하게도, 그녀의 질문에 대답은 없었다.
대답 대신 지글거리는 소리만 꾸준하게 울렸다.
인간의 몸이 녹아내리고 있음을 가르쳐주는 소리만이.
“이렇게 당신이 내 앞에 있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감히 말하건대, 신조차 몰랐을 거야.”
그녀는 번데기를 쓰다듬었다.
손은 갓난아기의 뺨을 어루만지는 듯 조심스럽다.
바라보는 눈길은 사랑스러운 연인을 보는 듯하다.
“아쉬워라….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당신이 느꼈어야 했는데. 나는….”
토끼는 갑자기 몸을 떨어댔다.
그 떨림은 두려움에 의한 것이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경험한 데 따른 공포이리라.
그녀는 천천히 번데기에서 손을 뗐다.
손바닥은 뜨거운 것과 접촉해 데인 것처럼 벌게져 있었다.
꼬옥….
그녀는 열기를 붙잡고 싶은 듯이 주먹을 쥐었다.
“정말 안타까워…. 당신이 그분을 직접 느꼈더라면 좋았을 텐데….”
또다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아까처럼 화사한 미소는 아니다.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웃음을 실실 흘려 댔다.
눈빛 또한 몽롱해 제정신인 사람 같지 않았다.
“몸이 전부 녹아내리고 나면… 그분의 에너지가 고깃덩어리가 된 몸을 감싸지. 그분의 에너지가 녹아내린 몸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거야. 그건….”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희열에 의한 떨림이었다.
살면서 가져본 적이 없는 충만한 힘을 얻은 데 따른 것이었다.
“그건…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었어…. 쾌락이었어…. 그래.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극치감…!”
중얼거림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희열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이내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무표정으로 번데기를 바라봤다.
주먹을 쥐었던 손을 다시 펴고 번데기에 갖다 댄다.
꾸욱….
그녀는 아까처럼 어루만지는 대신 힘을 주어 누르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느껴지는 힘 때문일까?
번데기는 보호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마구 꿈틀거렸다.
지글거리던 소리도 꿈틀거릴 때마다 큰 소리로 울려댔다.
“후, 후후후….”
그것을 보고, 그녀는 웃음을 흘렸다.
눈앞에 있는 것을 업신여기는 미소….
완연한 비웃음이었다.
“당신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정말 딱해…. 하지만… 할 수 없지. 당신은 우리처럼 그분의 권속이 되는 게 아니니까.”
힘을 주어 누르던 손을 뗀다.
잠시 후 보호 반응으로 인해 꿈틀거리던 번데기는 평온을 되찾았다.
다시 반복적으로 지글거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그녀는 열기를 지우려는 듯 손을 휘휘 털어댄다.
“정말… 변태가 끝났을 때가 기대돼. 우리의 권속이 된 당신은 과연 어떤 눈으로 날 쳐다볼까?”
우후후….
그녀의 조소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순간,
쿵!
번데기가 아주 조금 커졌다가 작아졌다.
토끼는 그러나 웃느라 원래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그 현상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