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52
제153화
크라우드는 평소처럼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둥근 원탁에 담긴 의미는 ‘누구든 평등하다’였으나, 평등이라는 단어는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발언권을 가진 이들과 가지지 못한 이들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이 모임에서 마음대로 발언할 수 있는 건 단 두 사람.
원과 해골뿐이었다.
따라서 평소 회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도 그들이었다.
하지만.
“…….”
“…….”
지금 두 사람은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의자에 축 늘어진 몸은 지치고 피로해 보였다.
후드에 가려진 눈은 감겨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미동도 없었다.
“…….”
“…….”
“…….”
원탁엔 침묵만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러한 상태는 5분 정도가 더 지난 후에야 깨졌다.
“…그놈은 왜 오지 않은 것이냐?”
원이 대뜸 질문을 던졌다.
준비된 자리는 총 12자리였으나 현재 원탁에 앉아 있는 인원은 11명이었다.
1명이 부족한 것이었다.
빈자리의 주인은 뱀이었다.
오래 살고 싶다는 이유로 마족의 권속이 된 이로, 지금은 도운의 빌딩에서 에너지를 생성해 식물에 제공하는 엔진 같은 신세가 됐다.
그가 바라던 삶은 아니었지만, 그가 원했던 불멸의 존재가 되기는 한 것이다.
당연히 크라우드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러므로,
“그게,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대답을 한 사람은 가슴팍에 늑대 머리 모양 브로치를 단 사람이었다.
원이 바로 늑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뭐라?”
“…죄송합니다.”
“하…. 쓸모 있는 놈일 줄 알았더니….”
“바로 단죄하겠습니다.”
원은 탐탁지 않게 빈자리를 바라봤다.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고 싶은 듯 혀까지 찼다.
늑대는 원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두 분께서는, 그분을 뵙고 오신 겁니까?”
“그래. 뵙고 왔다.”
원이 대답하자 원탁의 분위기가 살짝 변했다.
아무 말도 없이 잠잠하던 분위기에서 들뜬 분위기가 됐다.
해골이 그 분위기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백도운의 정체에 관해서도 듣고 왔지.”
“무엇…이었습니까?”
백도운의 정체.
그것은 원탁에 모인 이들이 모두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늑대가 기다리지 못하고 질문을 던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해골은 원을 돌아봤다.
대답해 줄 사람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원이 고개를 끄덕였고, 해골은 늑대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세계수 관리인.”
“네…?”
“백도운은 세계수 관리인이었다.”
“세계수라니…. 그 세계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세계수를 말한 게다.”
해골이 대답해 주는 걸 들은 원이 이마를 짚었다.
세계수.
그것은 현존하는 것만으로 크라우드의 적이었다.
존재할 때 발산하는 에너지만으로 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이.
그러니 그것과 그것의 관리인이 지구에 있는 것을 알게 된 원은 떠올린 것만으로 심기가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늑대가 공손하게 질문했다.
“그런데…. 관리인이라는 건 무얼 의미하는 것입니까?”
“으응? 관리인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송구합니다.”
해골의 말에 늑대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다른 크라우드 간부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세계수 관리인.
무엇인지 아느냐고 무언으로 질문하고 대답한 것이다.
모든 이들의 고개가 미세하게 좌우로 움직였다.
다들 모르는 눈치였다.
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골. 이 녀석들은 우리처럼 그분을 영접하러 가본 적이 없다.”
“아!”
원의 말을 듣고 나서야 해골은 제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네 말이 옳군.”
“…….”
“그래. 네놈들은 당연히 모르겠어.”
“…….”
원탁에 불편한 분위기가 피어올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시하는 태도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그들은 불편한 기색을 대놓고 내비치지 못했다.
두 사람을 향해 조금이라도 불만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등의 만용을 부릴 바보는 없었다.
그랬다간 좋지 못한 일을 겪게 되리라는 걸 그동안의 일들로 잘 알았다.
바로 방금까지만 해도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단죄받게 된 이가 있지 않았던가.
“세계수 관리인은….”
해골은 말끝을 흐렸다.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듯했다.
10초 정도 흘렀을까?
머릿속 생각이 정리된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세계수를 보호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존재다.”
“주로 하는 건 지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긴 하지. 세계수는 한 존재가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니까.”
해골이 설명하자 원이 덧붙였다.
그 설명을 듣고 나서 늑대가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백도운은 세계수를 지키기 위한 존재겠군요?”
“음.”
원이 늑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분께 그 사실을 듣고 나서 깨달았지.”
“무엇을 말입니까…?”
늑대는 자신이 질문하는 기계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질문했다.
다른 이들도 궁금했던 것이었으나 그처럼 질문할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원탁에서 발언권을 가진 사람은 세 명뿐인 듯 느껴졌다.
총 11명이 앉아 있었는데도.
“포션 재료의 유통을 막았는데, 백도운은 어떻게 A등급 힐링 포션 재료를 구할 수 있었을까.”
“아….”
“그 이상한 맛이 나는 포션들….”
“솔잎 맛과 민트초코 맛입니다.”
“그래. 그것들…. 그것들의 재료는 분명 세계수 나뭇잎이었을 게다.”
“그러니.”
해골이 원의 말을 받았다.
원탁의 시선들이 원의 반대편에 앉은 해골에게로 향했다.
“우리가 유통을 막아봤자 포션은 꾸준히 생산되겠지.”
“아…!”
“바이올렛 바이올런스의 판매량도 줄어들 것이고.”
“아쉬운 일이지. 만족스러울 만큼 뿌리지 못했거늘.”
“그래. 괴물화를 진행하기엔 조금 부족하지.”
해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탁엔 또다시 침묵이 무겁게 눌러앉았다.
그들의 과업이 실패한 데에 따른 것이었다.
그것도 한 사람에 의해서.
원은 내려앉은 침묵을 치워버리고자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의 목적은 하나다.”
원탁의 시선들이 원에게로 모여들었다.
모인 시선이 마음에 든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백도운을 죽이고 세계수를 죽이는 것.”
“……!”
실망감을 없애는 가장 좋은 특효약은 무엇일까.
바로 새로운 과업을 제시하는 것이다.
원은 그것을 알았다.
또 새로운 과업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제가 하겠습니다!”
“저에게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새로운 과업이 제시되자 간부들은 저마다 손을 들어 올렸다.
너나 할 것 없이 거수하며 시켜달라고 열망했다.
개미, 거미, 말, 토끼 등등….
그들은 원과 해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정적이었다.
단 두 사람.
원과 해골 바로 옆에 앉은 늑대와 풍뎅이만 그러지 않았다.
“후우….”
열정적으로 손을 들어 올린 이들을 보며 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해골은 ‘쯧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한심스러운 것이었다.
“내 분명 우리의 목적이라고 했을 텐데. 그 말을 이해하기가 그리도 어려웠나?”
“……?”
“백도운. 그놈은 우리 크라우드가 전력을 다해야만 죽일 수 있다.”
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이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크라우드가 전력을 다해야만 죽일 수 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백도운 따위를요?”
그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태도로 되물었다.
로브 밑에는 얼빠진 얼굴들이 있으리라.
백도운.
이제 갓 A급으로 올라온 헌터.
협회에서 파악한 수준으로는 A급 헌터 수준에도 해당하지 못했다.
분명 한진환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B급 헌터였으리라.
세계수 관리인라는 특이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간부들은 원의 크라우드가 전력을 다해야만 죽일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계수와 관리인은 마법으로 계약돼있다.”
“마법…입니까?”
“그래. 이른바 ‘명제 마법’.”
“명제 마법…?”
늑대는 처음 듣는 말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탁의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처럼 서로 무엇인지 아느냐고 질문하고 대답했다.
무언으로 이어진 질문과 답변은 방금과 마찬가지로 모든 이들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고대 마법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새로운 논리를 창조하는 마법’이지.”
“죄송합니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후우….”
늑대가 고개를 숙였다.
원은 한숨을 내쉬었고, 해골은 킥킥 웃었다.
늑대처럼 이해하지 못했던 다른 간부들은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원은 설명을 계속했다.
“이를테면…. ‘세계수 관리인을 죽이기 전까지 세계수를 공격할 수 없다’. 그런 절대적인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네?”
“세계수 관리인이 존재하는 한 세계수는 나무껍질 하나 건드릴 수 없는 무적의 존재란 것이다.”
“그게 무슨….”
“자.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킥킥 웃던 해골이 끼어들었다.
“우리가 세계수 관리인을 죽이려고 할 때, 세계수는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
“세계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관리인을 지키고자 애쓸 것이다.”
“그럼, 그 말씀은….”
“이제야 깨달았구나. 그래. 우리는 백도운을 상대하는 게 아니다. 백도운과 세계수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이지.”
“과연…. 어려운 일이겠군요…. 두 분의 말씀대로, 우리 크라우드가 전력을 다해야 할 일이 분명합니다.”
늑대가 참담함을 느낀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간부들도 그처럼 할 말을 잃은 듯 보였으나, 사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늑대와는 달랐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세계수와 관리인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것도 모르고 자신들에게 맡겨 달라고 한 것이 창피했던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해골은 입을 비틀며 원을 쳐다봤다.
“우린 그분의 권속이다. 역대 최강의 세계수 관리인으로 평가받던 디싱 나 토르를 죽인 분의 권속.”
“아….”
“그분의 권속인 만큼 우리도 해낼 수 있을 터.”
“그 말씀이 옳습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함께한다면 못해낼 리 없습니다!”
원탁에 깔렸던 침묵이 치워졌다.
대신 들뜬 분위기가 다시 피어올랐다.
“좋아. 우린 지금 당장 백도운을 죽이는 일에 착수한다.”
“죄송하지만, 당장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뭐라?”
“허?”
늑대의 말에 원과 해골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아무래도 늑대에게서 부정적인 의견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송구합니다. 허나,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시기가 좋지 않다…?”
“그렇습니다.”
늑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 S급 헌터들이 한국에 와 있습니다.”
“뭣…?”
“S급 헌터들?”
“네.”
“설마, 에디탓 그위친도 와 있나?”
“그렇습니다.”
“호오.”
해골이 흥미로운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면 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놈까지 와 있다면 시기가 좋지 않군.”
시기가 좋지 않다.
원이 그 말을 중얼거린 것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S급 헌터 네 명이 있는 지금 전면에 나서는 것은 그저 자살 행위에 불과했다.
아무리 마족에게 영혼을 팔아 힘을 받은 그들이라고 해도, S급 헌터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특히, 세계 최강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에디탓 그위친이 있다면 더더욱.
“이 나라에 온 것도 전부 그놈이 모르게 하기 위해서였거늘….”
“그런데 그놈들이 왜 이런 작은 나라에 온 거지?”
“서울 월드컵 경기장 때문입니다.”
“아하. 올 만하군. 던전이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해골이 재미있는 듯 웃었다.
까드득.
원이 웃는 해골을 보며 이를 갈았다.
“웃지 마라, 해골.”
“음? 내가 웃었나? 이거, 미안한데그래.”
킥킥.
해골은 끝까지 짧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말을 덧붙였다.
“옛날 일이 떠올랐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