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73
제174화
새싹이는 삐졌다고 말하고 싶은 듯 공란을 보내왔다.
그 모습이 오히려 귀엽게 느껴진다는 걸 알까.
분명 모르겠지.
자격증을 옆으로 치우고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린다.
“백도운.”
톡, 톡톡.
한재임이 화면을 두드리는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녀석은 난생처음 보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시기와 질투가 전혀 없는 얼굴.
오로지 ‘나’를 향한 호기심만이 담긴 얼굴이었다.
“…왜?”
“하나만 묻자.”
싫은데.
평소라면 그리 대답했을 거다.
그런데 한재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럴 수가 없었다.
해서, 한발 뒤로 물러난 대답을 했다.
“들어보고.”
“너, 대체 뭐냐…?”
역시 그 질문인가.
한재임으로서는 당연히 느낄 의문이었다.
백도운은 어떻게 이무기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증표가 된 따스한 손길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왜 그위친에게 다른 이들을 모두 내쫓아달라는 부탁을 했을까.
그위친은 어째서 밀러를 저버리고 그 이상한 부탁을 들어주었을까.
아마 녀석의 머릿속엔 이런 의문들이 마구 소용돌이치고 있을 거다.
그리고 그 의문들은 나의 정체로 답을 낼 수 있는 것들이다.
“흠….”
고민이 되는걸.
평소라면 당연히 대답하지 않았을 거다.
대답하더라도 대충 넘겼겠지.
평범하디 평범한 헌터라느니, 잘난 동생을 둔 오빠라느니.
뭐, 한재임이니까 “나는 태천이의 가장 친한 친구 A지”라고 약을 올렸으리라.
하지만….
난생처음 녀석의 진지한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자니 실없는 소리로 넘길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해서일까?
[세계수 관리인] [세계수 관리인] [세계수 관리인] [세계수 관리인] [세계수 어린나무는 어서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말하기를 요청합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왔다.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것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세계수 관리인] [세계수 관리인] [세계수 관리인]……
중복 도배 그만해, 새싹아.
형 슬슬 무서워지려고 한다.
뭣보다 그렇게 메시지 보내면 형 오기 생겨서 안 돼.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관리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전합니다.]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강요받으면 따르고 싶지가 않달까.
그 반대로 행동하고 싶어진달까….
지금도 딱 그러네?
자꾸 세계수 관리인을 보내오니까 오기로라도 밝히고 싶지가 않아.
[어린나무는 순순히 인정합니다.] [지금까지 관리인의 그런 점을 잘 봐왔다고 전합니다.] [더는 강요하지 않겠다고 전합니다.]그래, 그래.
잘 생각했어, 새싹아.
“…….”
“…….”
새싹이의 메시지에서 시선을 돌려 한재임을 바라본다.
이 녀석과 이렇게 마주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 속에 마주 보던 얼굴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있기는 한 듯하다.
대부분 표정이 좋지 못한 걸 보니,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뭐, 매번 만나면 투덕거리기만 했으니 당연한 걸 테지.
개인적인 호불호를 제외한다면.
한재임은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걸 말해도 괜찮은 놈이다.
태천이가 제 오른팔처럼 의지하는 점도 그렇고.
깐깐한 도희가 날 지킬 사람으로 믿고 맡겼다는 점도 그렇다.
좋아.
한재임, 아니, 백운천 사람들에겐 말하자.
앞으로 크라우드와 한탕 크게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내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다.
대답해주고자 천천히 입을 연다.
“나는….”
끼익.
문 열리는 소리가 내 말을 끊는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도희가 살금살금 들어오고 있었다.
기절한 놈 병실에 들어오는데 뭘 그리 조심하는 걸까.
도희가 마음 써주는 게 고맙지만, 한편으론 웃겼다.
그래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하이.”
“……!”
도희는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닫다 말고 서서서는 날 빤히 바라봤다.
아무래도 내가 깨어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많이 놀란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이…라고요.”
“방금 한재임한테 들었어. 나 대신 그위친 마중 나갔다 왔다며. 수고 많았어.”
“하아….”
도희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내게 다가오는 그녀의 발걸음엔 힘이 없었다.
피곤함? 고단함?
그런 게 느껴졌다.
이해한다.
도희는 요 며칠 동안 내가 해야 했을 일들을 대신해주었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근데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뭐? 하이?”
“그럼 뭐라고 해?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라도 할까.”
도희가 눈을 부릅떴다.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릴 하냐는 듯 따지는 듯하다.
이럴 때 보면 여타 여동생이랑 똑같은데 말이야.
곧 도희는 내 앞에 섰다.
“왜 전화 안 했어요.”
“우문을 묻는구나.”
“뭐라고요?”
“이무기 흉내 내봤어. 어때?”
“…….”
“전화 안 한 이유는, 이거.”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화면이 보이도록 들고는 좌우로 흔들었다.
“보시다시피 우리 새싹이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느라.”
“…….”
“…과도 빌려줄까?”
한재임이 과도를 가리키며 끼어들었다.
과도는 여전히 냉기를 내뿜으며 쟁반 위에 놓여 있었다.
도희는 시선을 돌려 한재임이 뻗은 손끝을 싸늘하게 바라봤다.
얼음으로 조형한 그릇과 과도, 토끼 모양으로 깎은 사과,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담긴 쟁반이 보였다.
“마음 같아선 쟁반 쪽을 빌리고 싶은데요.”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녀석은 쟁반 위에 있는 것들을 치웠다.
그러고는 텅 빈 쟁반을 부드럽게 내밀었다.
도희는 한재임이 내민 쟁반을 빤히 쳐다봤다.
뭐랄까.
눈을 떼지 못하는 걸 보니 정말로 쟁반으로 나를 때리고 싶은 듯이 보였다.
스윽….
도희가 손을 들어 올렸다.
“……!”
와, 씨.
깜짝이야.
진짜 쟁반 집어 들고 나 때리는 줄 알았네.
각인된 공포 때문인지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후우….”
다행히 도희는 쟁반을 집지 않았다.
양손을 들어 올린 건 자기 얼굴을 덮기 위해서였다.
흰 얼굴을 덮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말 쥐어박고 싶어…!”
“음,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도희보다 옆에서 한 마디 한 마디 덧붙이는 한재임이 더 거슬렸다.
스윽….
도희는 손가락을 살짝 벌리고는 그 사이로 한재임을 노려봤다.
그래, 도희야. 그거야.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 줘!
“뭘 잘했다고 떠들어요?”
“뭐…?”
“오빠는 왜 전화 안 했는데요? 오라버니가 일어났으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서 알렸어야죠.”
“너한테? 전화를?”
“네!”
“아직 태천이한테도 안 했는데?”
“아…, 그래요?”
도희는 눈에 힘을 풀었다.
녀석의 말에 그럴 수 있다고 수긍한 것이다.
심지어 미안하다는 듯 고개까지 살짝 숙였다.
아니,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태천이에게도 연락하지 않은 게 용서하는 이유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 도희에게 미안함까지 끌어낼 줄이야….
이게 한재임이 태천이에게 그만큼 미쳐있다는 방증이겠지.
미친놈.
“다시는….”
도희가 운을 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찰싹, 왼손을 뻗어 내 가슴 윗부분을 때린다.
“다시는 그거 하지 마요.”
“그거? 가지치기 말하는 거야?”
“네. 그거요.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하하….”
놀랄 만도 했다.
오빠 몸이 터져 나가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또 그뿐인가?
가지치기는 말 그대로 온몸이 폭발한다.
내 머리까지 터져 나간다는 소리다.
“웃지 마요! 그날 오라버니 머리, 머리가….”
그날 모습이 떠오른 걸까?
부르르.
도희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몸서리를 쳤다.
입에 담기도 싫은 듯 보였다.
이럴 거 같아서 태천이에게 눈을 가려달라고 한 건데….
반응을 보면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다.
뭐, 태천이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도희는 태천이의 손을 치우고자 무슨 짓이라도 했을 테니까.
그렇다고 용서해줄 생각은 없지만.
“못 볼 꼴 보여 줘서 미안해.”
“괜찮아서 다행이에요…. 그래도 그거 다신 하지 말아요. 알았죠?”
“나도 그러고 싶기는 한데…. 이게 불가항력이라서….”
“아…, 그렇겠네요.”
도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안 쓸 수 있었다면, 오라버니가 게이트 안에서 그러지도 않았겠죠. 그위친한테 그런 부탁을 하지도 않았을 테고….”
역시 우리 도희다.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
나와는 달리 머리가 비상해.
“참. 그위친이 안부 전해달래요.”
“오.”
“만나고 가지 못해서 미안하대요.”
“미안하기는…. 미안한 건 오히려 내 쪽이구만.”
“아쉽기는 해요. 그위친은 미국에서 빨리 돌아오라는 걸 오늘까지 버티다가 돌아간 거였거든요.”
“어, 그랬어?”
“네. 반나절만 빨리 깨어났어도 만날 수 있었을 거예요.”
“저런…. 그건 정말 아쉽게 됐는걸.”
“그리고.”
“응?”
“시간 될 때 미국에 한 번 들러달라고 했어요. 그날? 못했던 일을 마무리하자고 말하던데요.”
그날? 못했던 일?
나와 그위친 사이에 마무리할 일이란 게 있었나?
생각하는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어린나무는 손을 맞잡는 일을 말하는 것 같다고 추측합니다.] [관리인에게 거인 때문에 그위친과 손을 맞잡지 못했었다고 설명합니다.]아아.
그 일 말하는 거구나.
서로 마나를 교류하려고 했던 거.
“그러고 보니….”
“…….”
도희는 날 빤히 바라봤다.
아마도 ‘그날 일’이 무엇인지 궁금한 것이리라.
가르쳐주고 싶긴 한데, 나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와 그위친이 유사한 점이 있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으니까.
그래서 어깨만 으쓱여 보였다.
“…이제 몸은 괜찮은 거죠?”
“어, 괜찮은 것 같아.”
“것, 같아?”
“몸살기가 있는 것처럼 조금 쑤신, 달까…. 음….”
눈 좀 희번득 뜨지 말아 주라, 좀.
무서워서 침이 절로 삼켜지잖아.
[어린나무는 이따금 관리인의 동생이 무섭다고 고백합니다.]괜찮아, 새싹아.
지극히 정상이니까.
나랑 태천이는 매일 무서워하고 있어.
“대체 일어나서 몸 체크도 안 하고 뭘…!”
도희는 말을 하다 입을 다문다.
눈을 질끈 감고 화난 기색을 참으려는 듯 숨을 길게 내쉰다.
후유증이 아직 남은 나를 배려해주려는 것이리라.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보기가 싫었는지 한재임이 끼어들었다.
“게임 하던데. 인사까지 하는 꼴이 정말 미친놈 같았다.”
“…진짜 지금이라도 쟁반으로 후려쳐버릴까.”
“건네줘?”
“…….”
한재임이 아까처럼 네모난 쟁반을 내민다.
이번에야말로 도희가 쟁반을 집어 들고 후려칠 것 같아서 끼어들었다.
피할 수 있는 고통은 피하고 봐야지.
“당장 확인할 테니 조금만 참아보는 게 어떨까? 응?”
“…서둘러요.”
“응.”
“서두르지 않으면-”
“알았어, 알았어. 서두르면 되잖아, 서두르면.”
도희의 말을 끊으며,
“캐릭터 창.”
캐릭터 창을 열었다.
내 스마트폰에 세계수가 자라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재임이 입을 쩍 벌렸다.
백도운,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딱 그리 말하고 싶은 얼굴로 날 바라본다.
한 마디 내뱉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끝난 건 도희가 가만히 날 보고 있어서다.
도희가 두통이라도 느낀 듯 이마를 짚고 있지 않았더라면, 한재임은 분명 한소리 했으리라.
아니면 모르는 사람인 척하고 싶어 시선을 돌려 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캐릭터 창을 확인했다.
[캐릭터 창] [백도운 – 세계수 관리인] [타이틀 – 세계수의 동반자] [HP – 95%(페널티)] [MP – 2000만260] [SP – ∞] [상태 – 광합성 모드 후유증]……응?
이게 뭐지?
버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