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72
제173화
“걔가 거기에 왜 가 있어?”
“그녀가 왜 거기에 있는가….”
내 질문에 한재임이 검지와 중기를 거뒀다.
손깍지를 끼고는 꼰 무릎 위에 올린다.
“그 이유도 타당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줘야 하나?”
“시답잖은 소린 됐고.”
“흠….”
한재임은 오른손 엄지로 왼손 엄지를 두드렸다.
천천히 서너 번 두드렸을까.
생각의 정리가 끝난 듯 설명을 이어나간다.
“크라우드가 네놈을 노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새삼? 거 더럽게 놀라운 정보네.”
“…‘전력을 다해’서 말이다.”
“전력을 다해서?”
“정보원은 필사적이라고까지 표현했다더군.”
“뭔 소리야.”
“너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크라우드라는 조직이 궤멸하는 것도 불사할 것이다. 그리 말했다고 하던데.”
조직이 궤멸한다고 해도…?
절로 눈이 찌푸려지는 소리다.
“그놈들은 뭘 또 그렇게까지 한대?”
“이유는 모르겠다, 만. 태천이와 백도희는 듣고 나서 수긍하더군.”
“두 사람이 수긍했다고?”
“그래.”
“흐음….”
크라우드가 그렇게까지 하려는 걸 수긍했다, 라….
어째서지?
[세계수 어린나무가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고 전합니다.]뭔데?
[어린나무는 마족의 권속들이 관리인의 정체를 알게 된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조직이 궤멸한다고 해도 살해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고 전합니다.]오, 그럴듯한데?
존재하는 것만으로 방해가 되는 세계수.
전대 세계수를 죽인 전적이 있는 마족.
세계수와 마족은 서로 천적 관계인 동시에 철천지원수 사이다.
그놈들이 세계수 관리인인 날 죽이고 싶은 건 당연하다.
“…너도 이해가 되나 보는군.”
“어, 되네.”
새싹이의 추측이 맞을 터.
두 사람이 수긍했다는 것도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한재임이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설명 안 할 거냐?”
녀석은 태천이에게 내 정체에 관해 듣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나에 관련된 것이니 말하지 않은 걸 테지.
도희하고는 사이가 별로 좋은 편은 아니니 당연히 못 들었을 테고.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을 넘어 나쁜 편인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재임을 바라봤다.
“할 것 같냐?”
“후우. 그래. 기대도 안 했다.”
내 대답에 한재임은 미간을 찌푸린다.
자기만 정보를 알지 못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말해줄 놈은 아니었기에 녀석은 더 묻지 않는다.
“아무튼.”
한숨을 내쉬고 눈썹을 찡그릴 뿐.
말하던 본론으로 되돌아왔다.
“크라우드. 비열한 놈들이잖아.”
“비열한 놈들이지. 비열함만으론 세계 제일일 거야?”
박쥐, 모기, 벌, 버섯, 뱀.
지금까지 만난 크라우드 놈들은 하나 같이 글러 먹은 놈들뿐이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영혼까지 팔아 놓고 타인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무지렁이들.
“그래. 그런 놈들이니, 너의 그녀를 노릴 거라고 판단했다. 울릉도로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지.”
“아까부터 왜 자꾸 너의 그녀라고 하는 건데. 그 소리 좀 그만해.”
“그러지.”
한재임은 어깨를 으쓱였다.
반응을 보니 나한테 장난치는 것 같지는 않다.
정말로 유재이와 내가 사랑하는 사이인 줄 아는 듯했다.
아마 태천이가 그런 식으로 설명한 게 분명하다.
옆에서 도희가 태천이를 노려보는 모습이 눈에 훤하다.
“…그런데 웬 울릉도? 지킬 거면 서울이 낫지 않아?”
“벌써 여러 번 말했듯이, 태천이와 이무기가 거기에 있으니까.”
“아.”
“현재 한국에서 그곳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다고 판단했다.”
“하긴….”
한재임의 말대로였다.
울릉도엔 A+등급 몬스터인 이무기와 한국 최고의 탱커인 태천이가 있었다.
그 둘이 유재이를 지키고 있다면, 크라우드는 감히 그 섬으로 쳐들어갈 수 없으리라.
설령 크라우드가 생각보다 더 미친놈들이라서 쳐들어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할까.
예상외로 놈들 전력이 강력하다고 한들 문제는 없다.
이무기가 유재이를 데리고 도망치면 그만이니까.
버스트 모드를 쓰면 놈들은 쫓아갈 수조차 없을 터였다.
그럴 수 있는 놈들이었으면, 지금까지 한진환이 살아있을 수도 없었겠지.
“잘했네.”
“음.”
“근데 난 왜 여기 있는 거냐?”
“뭐?”
“그렇잖아. 크라우드는 날 노리는 건데. 울릉도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
한재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의견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놀라웠다.
나와 녀석은 매번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반목했는데….
서로 반대를 위한 반대도 해서 멍청한 짓도 저지르곤 했다.
예를 들면, 김정철 때 내가 관리소장을 칼로 찌르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은 일이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널 울릉도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었다, 만.”
“만?”
“울릉도에 서울만큼 좋은 병원이 없다는 이유로 백도희가 허락하지 않았다.”
“병원….”
그 말과 함께 도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며칠 동안 일어나지 않는 나를 보며 걱정하는 얼굴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입에선 아무 소리나 튀어나왔다.
“입원할 필요도 없었는데.”
“그건 네가 백도희한테 직접 따져.”
“아니, 누가 따지고 싶대?”
“…….”
“도희 마음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야. 울릉도엔 병원이라고 해봐야 보건의료원이나 보건소가 다일 거잖아? 아하하.”
“…….”
한재임이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날 봤다.
그러다간 고개를 가로젓는다.
누가 보면 자기는 도희 안 무서워하는 줄 알겠네.
지도 도희 무서워서 앞에 있을 땐 별말도 못 하는 주제에.
내가 울릉도가 아니라 이곳 서울에 입원해 있는 게 그 증거다.
“아, 정보는 어떻게 입수한 거야? 연후 씨가 알아냈나?”
“설명해줄 것 같냐?”
“어. 해줄 것 같은데.”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녀석은 어깨를 으쓱였다.
답지 않게 튕기고 지랄이야.
“버섯…? 이라는 놈이 재이네 대장간으로 찾아와 가르쳐줬다더군.”
“뭐? 누가 어딜 찾아와?”
“버섯이 재이네 대장간에.”
“허, 이놈 봐라?”
“자신을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다던데. 듣기로는 너와 굉장히 친하다고?”
“친하기는 개뿔.”
“다행이군.”
“갑자기 뭐가?”
“너 같은 거랑 친하다기에 걱정하고 있었거든. 이상한 놈은 아닌 모양이야.”
“아, 새끼. 아까부터 자꾸 실없는 소리 할래?”
“…….”
한재임은 입을 다물고 나를 빤히 바라본다.
침묵의 힘이란 것일까.
마치 “실없는 소리 한 적 없다만”이라고 말하는 걸 넘어 온몸으로 주장하는 듯했다.
그래.
나를 진심으로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는 놈과 무슨 대화를 나누겠어.
고개를 돌려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톡, 톡톡….
조금 더 자란 어린나무가 된 새싹이를 두드리며 생각했다.
대체 버섯의 목적은 뭘까.
홍수정이 노려지고 있는 걸 경고해주고.
내 정체가 드러났다는 것도 경고해주고.
마족에게 영혼까지 판 놈이니 조직을 배신하려는 건 아닐 텐데….
“흠….”
“뭐, 자세한 건 유재이에게 직접 듣도록 하고.”
한재임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검지, 중지, 약지.
세 손가락을 펼친 채 말했다.
“마지막으로, 셋째.”
“셋째? 설마….”
이놈 이거 설명할 생각이었던 건가?
내가 깨어나자마자 자기를 봐야 했던 이유를 타당하고 논리적으로?
먹이는 방법도 가지가지네, 진짜.
“그만해.”
“음?”
“진짜 세 가지 다 말하려고?”
“해달라며.”
그리 말하는 한재임은 손가락을 접었다.
해달라고 해놓고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퉁명스러운 얼굴은 마치 그리 따지는 듯했다.
“아니, 그건 그냥 하는 소리지. 그걸 진짜로 일일이 다 설명하는 새끼가 어디 있어?”
“…….”
눈앞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손깍지를 낀 채 뻔뻔하게.
“…하, 진짜 이 새끼는 왜 농담이 안 통하지.”
“농담이었냐?”
“뭐?”
“네가 나한테 농담을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
“…….”
생각해보면, 한재임 말이 또 틀린 건 아니다.
나랑 녀석은 농담할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보육원 때부터 만나면 으르렁대기 바빴던 터라 서로 농담을 건넨 적은 없었다.
분명 ‘너의 그녀’라고 말한 것도 농담이 1%도 섞이지 않은 진심이었겠지.
“…야.”
“왜?”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세 번째는 뭐였냐?”
“셋째는….”
한재임은 날 쳐다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도 셋째에 관해 설명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 대리보다는 나와 연지가 있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성훈? 그놈이 갑자기 왜 나와? 아니. 그놈 얘긴 됐고. 연지가 있었어?”
주변을 돌아본다.
혹시 내가 못 봤던 건가 싶어서다.
연지는 안 보이고 사람들이 놓고 간 듯한 문병 선물꾸러미만 보였다.
과일주스, 고급 과일 세트, 중급 힐링 포션 등등.
요즘 같은 포션 부족 시국에 중급 힐링이라니….
아무래도 저건 우연후가 놓고 간 것 같다.
“둘이서 너를 지키고 있었거든. 공격받으면 바로 울릉도로 도망치는 게 계획이었지.”
“근데 왜 너 혼자야?”
“10시 넘어서.”
“아, 연지 미성년자지….”
“순간이동 마법은 나도 쓸 수 있으니…. 뭐, 그런 연유로, 너는 일어나자마자 나를 봐야 했던 거다.”
“진짜 타당하고 논리적이네…. 반박할 수가 없는걸.”
후, 인정할 수밖에.
한재임이 말한 대로 이성훈이 있는 것보단 나았다.
반박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한 순간.
딱!
한재임이 뭔가 떠오른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얇고 네모난 무언가를 꺼냈다.
“너 깨어나면 건네준다는 걸 깜빡했다.”
“……?”
내가 이놈한테 받을 만한 게 있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게 녀석이 내민 건 헌터 자격증이었다.
웬 헌터증?
“네 거다.”
“내 거?”
“그래.”
“갑자기 왜…. 아. A급 헌터 자격증이구나.”
건네받은 자격증엔 내 얼굴이 담겨 있었다.
생각해보니, 난 계속 B급 헌터 자격증을 갖고 다녔었다.
한진환이 전화 한 통으로 등급을 올렸었던 탓이다.
무주 개미굴에 가기 위해서 워프 게이트를 사용했을 때도 B급 자격증을 제출했었다.
시스템상 등록은 A급으로 돼 있었지만….
나중에 발급받아야지 생각했던 게 그만 지금까지 이어졌다.
“하아….”
한숨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녀석을 바라보자, 오늘만 벌써 두 번은 본 것 같은 얼굴과 자세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마를 짚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는 뜻이다.
“뭔데, 그 한숨은.”
“말하기도 귀찮다. 직접 확인해.”
“……?”
한재임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건네받은 자격증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머리를 묶은 내가 씩 웃고 있다.
얘는 어쩜 이렇게 제 동생을 하나도 못 닮았을까.
내 사진 맞고.
[백도운]내 이름도 맞고.
이어 옆의 등급을 확인했다.
“…응?”
등급엔 ‘A’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A‘만’ 쓰여 있지 않았다.
[백도운, A+급 헌터]“이거 뭐야? 왜 A+급이야?”
“네가 이무기를 길들였으니까.”
“뭐?”
“A+등급 몬스터를 길들였으니, 당연히 너도 오른 거라고.”
“아니. 나 이무기 길들인 거 아닌데?”
“태천이한테 들었다. 이무기와 친구가 됐다고?”
“뭐야, 들었으면서 왜 그렇게 말하냐?”
한재임은 어깨를 으쓱였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한다.
“세상이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
“세상…?”
“그위친 때문에 묻히긴 했지만, 그래도 온 세상이 이무기의 실드를 없애는 널 보고 있었어.”
“아….”
한진환….
그 양반 안 어울리게 열심히 촬영했었지.
쓸데없이 유능한 카메라맨 같으니라고….
“당연히 열에 한 번 정돈 네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무기의 주인’으로서.”
“뭐? 뭔 주인?”
“이무기의 주인.”
“…….”
[어린나무가 분개합니다.] [관리인은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소리칩니다.] [월광의 검사도 싫은데] [이무기의 주인이라는 말은 더더욱 싫다고 토로합니다.] [관리인에게 온 세상에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주장하길 요청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토라질 거라고 경고합니다!]그건 좀 참아주라….
세계수 관리인을 들키기 싫어서 그위친한테 그런 부탁도 한 건데.
그게 알려지면 귀찮아지는 것 정도로는 안 끝날 거라고.
아마 우리나라 정부는 즐거운 마음으로 전국 던전 소탕 계획을 수립할걸?
심하면 평양 던전을 건드릴 생각까지 할지도….
[ ]공란이라니.
벌써 토라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