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80
제181화
톡, 톡톡.
톡톡, 톡톡톡….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린다.
얼마나 이러고 있었더라?
제법 오랫동안 이러고 있었던 거 같은데….
화면 상단의 시계를 확인했다.
[AM 5:06]5시 6분…?
어쩐지 세상이 좀 밝아졌다 싶더라.
화면을 두드리고 있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어 있었다.
「하아품….」
등 뒤에서 무기의 하품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무기는 하품한 입을 쩝쩝거리고 있었다.
졸린 것보다는 지루한 것 같다.
하긴….
나야 새싹이라도 두드리고 있었지만, 무기는 피해가 갈까 봐 똬리를 튼 몸을 뒤척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기만 했다.
「관리인.」
“응?”
「마족의 부하 놈들. 오기는 하는 건가?」
“어…. 아무래도 튼 것 같은데? 해 떴잖아. 게네들이 바보도 아니고 이제 올 리가 없지?”
「관리인….」
“그래, 안 그래도 그만하려고 했어.”
그리 말하고는 옆을 돌아봤다.
백운천의 중심에 서 있는 도희가 보였다.
그녀는 크라우드가 오지 않으리란 걸 인지한 듯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도희야.”
“……네.”
동쪽을 가리켰다.
얼핏 보이는 독도와 함께 태양이 떠올랐다.
“동 텄다.”
“…….”
딱 세 글자만 말했지만, 도희는 그 안에 담긴 뜻을 읽었다.
해 떴으니 크라우드 안 올 거 같은데?
그러니까 이만 해산하자.
“쯧….”
도희가 혀를 찼다.
이어 손에 쥔 스태프로 거칠게 땅을 찍었다.
그럴 때마다 스태프 끝에서 흰빛이 뿜어졌다.
“왜 안 쳐들어오지? 바본가? 시간이 지날수록 기회가 사라진다는 걸 모르나?”
도희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구시렁댔다.
누가 들으면 크라우드 편인 줄 알겠네.
안 쳐들어오면 좋은 거지.
뭘 또 저렇게 답답해하는 걸까.
좋은 게 좋은 건데 말이다.
그치, 새싹아?
[세계수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다만, 마족의 권속이 쳐들어오지 않은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고 지적합니다.] [관리인의 정체를 알아냈으니 하루라도 빨리 제거하고 싶을 텐데.] [그러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전합니다.]그야 어떤 이유가 있어서겠지?
[그렇다면]이유야 있겠지만.
[……?]그건 크라우드 사정이야.
지금 우리가 생각해봐야 알 수 없는 일이란 거지.
고민한다고 해서 알아낼 수 없는 일이라면, 생각하지 않는 게 더 낫고.
[…….] […….]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전합니다.]그럴듯한 게 아니라, 그런 거야.
굳이 쳐들어오지 않은 이유를 알아내고 싶다면, 정보를 수집하는 게 맞지.
지금 이곳에서 고민이나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생각도 동의합니다.] [더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좋아, 잘 생각했어.
화면을 살살 문지르며 도희를 바라봤다.
도희는 이제 크라우드를 욕하고 있었다.
바보 같은 놈들이라느니 멍청한 놈들이라느니.
그 욕에 동의하는 바였다.
“도희야. 이만 해산하자.”
“…….”
“다들 쉬어야지. 언제까지고 계속 이럴 수는 없어.”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만.”
한재임이 끼어들었다.
태천이 옆에 있던 녀석이 어느새 도희 앞까지 걸어왔다.
“백도운 말이 맞아. 계속 이러고 있는 건 시간 낭비고 인력 낭비다, 백도희.”
“알아요. 아는데….”
“주변을 돌아봐라.”
“…….”
도희는 주변을 돌아봤다.
나도 그녀를 따라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피로감이 묻어난 얼굴들이 우릴 보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피로감은 정신적인 것이었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을 대비하고 경계하고 있었기에 느끼는 피로다.
몇 시간 전과 똑같은 얼굴인 건 태천이뿐이다.
태천이는 정신적인 피로보다는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한 따분함이 더 버거워 보였다.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선 무기와 같아 보였다.
새삼 느끼는 건데, 둘이 참 잘 맞는 듯하다.
“…그러네요. 이만 쉬는 게 좋겠어요.”
“걱정하지 마. 다들 쉬면서도 경계는 꾸준히 할 거다.”
“네, 그렇겠죠….”
도희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후 한재임은 주변에서 경계하고 있던 이들에게 소리쳤다.
크라우드는 오지 않을 테니 쉬어도 좋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퍼지자마자 백운천은 하나같이 무기를 내려놓았다.
태천이도 장비를 집어넣고는 기지개를 켰다.
그 모습은 마치 지루함을 떨쳐내려는 듯했다.
“좋아. 그럼 이제 파티를 열어볼까?”
“파티? 뭔 파티?”
“아, 너한테 말 안 했나?”
“……?”
“다 끝나면 파티할 예정이었어. 미노타우로스 고기 잔뜩 사서 왔거든.”
그리 말하면서 태천이는 오른손을 뻗었다.
고기 사서 왔다면서 손은 왜 뻗어?
라는 내 의문에 대답한 건 태천이 아니라 한재임이다.
도희에게서 다시 태천이 앞으로 간 녀석이 품에서 마법 주머니를 꺼내고는 내민 손에 올려놓았다.
분명 저 마법 주머니에 미노타우로스 고기가 담겨 있을 테지….
태천이 빙긋 웃는다.
“자, 어서 제수씨랑 친구분 모시고 와.”
“아니, 무슨 이 시간에 고기를 굽, 우왓!”
「미노타우로스라. 문지기가 먹을 줄 아는군.」
무기가 구불거리며 태천이 앞으로 날아갔다.
자연스럽게 무기의 몸에 등을 기대고 있던 나도 그쪽으로 가게 됐다.
근데 내가 지금 올라타게 된 곳이 목이야, 등이야?
“오, 무기 씨도 이거 좋아해?”
「좋아한다. 한입에 서너 마리쯤 삼키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지.」
“엇, 서너 마리?”
「부족한가…?」
“한두 마리 정도는 되긴 할 텐데….”
한두 마리 정도는 될 거라니.
무슨 미노타우로스가 닭도 아니고….
대체 어느 정도를 사 온 거야?
돈이 썩어 남아도나.
“너흰 뭐하냐…?”
“…….”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녀석들에게 물었다.
무기의 목인지 등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내려오는 동안 녀석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힐끔 바라볼 뿐, 제 할 일을 해나갔다.
박건영만이 유일하게 일을 잠깐 멈추고 대답해주었다.
“도운아. 네가 더 잘 알면서 왜 그래.”
“뭐를…요?”
“우리가 태천이를 말릴 수 있을 것 같아?”
“아.”
이런 바보 같은.
왜 그런 간단한 생각을 못 했지?
박건영의 말이 옳다.
이곳에서 태천이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세 사람뿐이다.
나, 도희, 한재임.
태천이가 고기 파티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기절해 있었고 도희는 그위친을 만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말릴 수 있는 건 한재임인데….
녀석은 태천이가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다면 웬만해선 의견에 따라주는 놈이었다.
“흐….”
박건영이 옅은 웃음을 흘렸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그 떨림에서 그가 태천이를 말리고 싶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생…이 많았네, 박건영, 이 형….”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러고는 박건영은 되돌아갔다.
고기 파티를 하기 위해서….
한 남자를 말리지 못해 아침부터 고기 파티를 하게 된 이들을 향해 동정심이 피어오를 때였다.
“도운아.”
그 범인이 나를 불렀다.
범인의 목소리에서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너 뭐해?”
“뭘?”
“제수씨 안 데려오고 뭐 하고 서 있냐고.”
“…….”
“얼른 데리고 와, 얼른.”
“후우….”
“제발, 정신 좀-”
「음, 음. 기대되는군.」
차려라.
라고, 말하려던 입을 다문다.
무기의 목소리가 기대에 차 있어서다.
본인이 말한 대로 미노타우로스 고기를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다.
“…지금 다녀올게.”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
혼자서 갤러리로 되돌아왔다.
무기는 태천이가 미노타우로스를 굽는 모습을 지켜보겠다고 남았다.
이쪽 인간들이 어떻게 조리해 먹는지 궁금하다나?
뭐, 고기 구워 먹는 게 어디든 다 똑같지.
세상 다르다고 고기를 다르게 굽나….
엘프들도 불판이랑 스텐 석쇠에 잘 구워 먹더구만.
“쩝….”
입맛을 다시며 갤러리 문을 열었다.
전등이 꺼져 있어 최대한 조심하며 들어갔다.
차분한 숨소리들만이 나를 반겼다.
이제 해가 뜨기 시작한 새벽이었으니, 사람들은 잠을 청하고 있었다.
유재이와 김지연만이 뜬 눈이었다.
“……!”
팔 자로 내려가 있던 유재이의 눈썹이 위로 올라간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가 걱정돼서 잠을 청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김지연은 그녀의 경호를 위해서 자지 않은 거겠지.
두 여자 앞으로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걸어갔다.
톡, 톡톡….
물론, 내 오른손은 멈추지 않았다.
“…….”
김지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재이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몸을 뒤척이는 심윤진에게로 떠났다.
나와 유재이가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준 거다.
시선이 닿았을 때 고개를 끄덕여 고마움을 전했다.
“이무기 씨, 흠냐….”
홍수정을 지나칠 때 중얼거림이 들렸다.
아마도 꿈속에서 꿈에 그리던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허공에 두 팔을 뻗어 둥글게 말고는 뺨을 비비적거려댄다.
그나마 혀는 안 내밀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전투는?”
앞에 서자 유재이가 조용히 속삭였다.
잠에서 자는 이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김지연이 앉아 있던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몰라. 안 쳐들어올 건가 봐.”
“왜?”
“나한테 왜라고 물어봐도….”
“이상하네. 지금 당장 쳐들어올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뭐, 예상해보자면 크라우드라서 그런 걸 테지.”
“응?”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놈들이잖아. 나 말고도 적들 많지 않겠어?”
“아…. 다른 적한테 공격당했을 거라는…?”
“그냥 추측 같은 거긴 하지만.”
“추측으로 치부하기엔 그럴듯한-”
“으응! 주세요, 비늘…! 제발 한 조각만….”
그녀의 말을 뚫고 홍수정의 잠꼬대가 들려왔다.
달라고 사정하는 비늘 한 조각은 분명 무기의 것을 뜻하리라.
꿈에서도 무기의 비늘을 탐하다니, 정말 잠꼬대도 참 본인답게 하는구만.
유재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가자.”
“응?”
“당신한테 할 얘기가 있어. 여기에서 하긴 좀 그래….”
이무기를 향한 지나친 관심으로 꿈을 꾸고 있는 홍수정.
반대로 이무기를 향한 두려움으로 자꾸 “한 번만 봐줘요, 이무기님…! 뒤에서 욕 안 할게요!”라고 중얼거리는 심윤진.
자는 척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는 김지연.
아직 소개받지 못한 세 남녀까지.
확실히 밖에 나가서 대화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응?”
팔짱을 낀 채로 자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번에 봤을 땐 부드러운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무표정인 걸 보니 그리 부드럽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입이 굳게 다물어져 있어서 그런가?
오히려 험상궂게 보일 정도다.
아. 그래서 계속 미소를 지은 채로 있었던 건가?
“케이오스 사람들이야.”
카디건을 대충 걸치며 유재이가 설명했다.
이제 7월이었지만, 울릉도의 새벽은 그리 따듯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면 오히려 서늘하기까지 하다.
“무기 씨 때문에 협회가 보냈대.”
“케이오스?”
“몰라?”
“아니, 거길 모를 리가.”
“하긴….”
케이오스는 우리나라 10대 길드 중 하나다.
이것저것 안 가리고 다 하는 거로 유명하지, 아마.
개중에는 왓쳐 캐스트에서 방송을 하는 헌터들도 있는 거로….
“…어라?”
“떠올랐어?”
“저 사람, 혹시…?”
“맞아, 그 사람이야. ‘곽형원’.”
곽형원….
무기 때문에 보냈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테이머다.
왓쳐 캐스트에서 방송을 하고 있기도 하다.
제목이 아마 ‘세상에 나쁜 몬스터는 없다’였던가.
반려 몬스터의 문제행동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송이다.
“유명인을 보게 되니 엄청 반가운데. 내적 친밀감이 막 끌어올라.”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할 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난 별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았어.”
“귀찮아지니까?”
“정답.”
“후후….”
유재이는 짧게 웃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바깥은 햇볕이 내려앉은 덕분에 안보다 밝았다.
바닷바람 탓에 따뜻함을 느낄 새는 없었다.
“…….”
“……?”
유재이와 시선이 맞닿았다.
그녀는 날 지그시 바라보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을 한 채로.
그래서일까?
[어린나무가 두근거리며 지켜봅니다!]새싹이가 주책을 떨었다.
김칫국 마시지 말아 줄래.
네가 바라는 종류의 말을 꺼내려는 거 아닐 테니까.
그런 거면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이 아니라 상기한 얼굴이었겠지.
“아빠….”
“아빠?”
“우리 아빠 말이야.”
“아, 응.”
“…죽었대.”
“…….”
화면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내가 알기로, 유재이의 아빠는 그녀가 어릴 적 실종됐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서 지금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유재이는 방금 “죽었대”라고 확신했다.
‘대’라고 말하는 걸 보면, 누구한테 전해 들은 것이 분명했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
그녀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버섯.
즉.
유재이의 아빠를 죽인 건….
“크라우드….”
“응…. 크라우드가, 그 사람을 죽였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