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81
제182화
도운이 그위친에게 말했다.
카메라 속 도운의 얼굴엔 피가 묻어나 있다.
붉은 피는 본인의 것이었다.
오른 어깨가 폭발하면서 피를 뿜어낸 거다.
고통이 상당할 텐데도 도운은 그위친만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쟤가… 대체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유재이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도운이 지칭한 ‘저들’은 S급 헌터들이었다.
세상에 어떤 누가 감히 그들을 내쫓을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부탁이었다.
그위친은 그러나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괜찮습니다. 그저 쉽지 않을 뿐이니.]그위친은 세계수의 뿌리에서 내려와서는 S급 헌터들을 바라봤다.
카메라는 그의 시선을 따라 그들을 촬영했다.
그걸 보면서 유재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백도운. 백도운은?”
그녀의 바람과 달리 카메라는 이후 도운을 보여주지 않았다.
S급 헌터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하는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유재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에게 S급 헌터들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백도운이나 보여줄-”
“잠깐만요!”
심윤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다들 TV에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조용히 하라는 듯 손을 입술 앞에 갖다 댄 채였다.
“…누가 찾아왔어요.”
“……!”
그녀의 말에 시선과 시선이 빠르게 교차했다.
오늘은 S급 헌터들이 A+등급인 울릉도 게이트를 공략하는 날이었다.
모든 이들이 TV를 보기 위해 바깥으로 나오지 않아 강남의 8차선대로조차 텅텅 비는, 그런 날이었다.
그런 날에 대장간을 찾아오는 사람은 절대로 식칼 따위를 사러 오는 사람이 아닐 터였다.
“그런데….”
“왜 그래?”
“혼자예요.”
“혼자?”
“네. 주변에 다른 마나는 느껴지지 않아요.”
“…….”
김지연이 눈을 찌푸렸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조직의 일원이라고 하더라도, 유재이는 A급 헌터 두 명에게 보호를 받고 있었다.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더라도 혼자서 찾아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였다.
“먼저 확인부터 할게요.”
그러고는 심윤진은 스태프에 마나를 모았다.
스태프에 박힌 붉은 보석이 빛나자마자 가로로 휘두른다.
우웅, 우웅…!
허공에 대장간 바깥 모습이 떠올랐다.
검은 로브를 두른 사람이 홀로 서 있었다.
세 여자가 우물을 들여다보듯 둥글게 떠오른 그것을 바라봤다.
“어…?”
“왜 그래?”
“나, 이 사람 알아.”
“안다고?”
세 여자가 홍수정을 바라봤다.
시선이 모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크라우드야.”
“……!”
“예전에 우리 공방에 도운 씨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찾아왔던 사람이야.”
“확실해?”
“확실해. 예전에 찾아왔을 때도 저 브로치를 달고 있었어.”
“그럼 결정 났네요. 도망치죠.”
김지연이 결정을 내렸다.
유재이와 홍수정은 바로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심윤진은 이동 마법 주문을 외우지 않았다.
“윤진아?”
“잠깐, 잠깐만요.”
“왜 그래?”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하다니?”
“저 사람, 싸울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심윤진이 검은 로브를 두른 사람을 가리켰다.
그는 두 손을 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윤진이 말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그렇죠? 수정 언니도 그렇게 보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문 열고 환영해줄 수도 없잖아.”
김지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이 옳았으므로 두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바로 그때였다.
– 저기요?
관찰 마법 속의 사람이 주의를 끌었다.
– 저 보고 있는 거 알고 있거든요?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만족할까요? 저 지금 꼭 벌서고 있는 것 같은데.
이 태평한 놈은 뭐야?
네 여자의 머릿속에 공통된 생각이 떠올랐다.
태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 뭐, 듣기만 하셔도 상관은 없지만요. 전 어차피 경고하러 온 거거든요.
경고?
그녀들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녀들에게 크라우드는 비겁하고 비열한 조직이었다.
그런 크라우드가 경고를 하러 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이를테면, 크라우드가 도운 씨의 정체를 알아냈으니 앞으로 더 조심해야 할 거라는 거?
그 말에 세 여자가 한 여자를 바라봤다.
도운과 긴밀한 사이인 유재이라면 크라우드가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알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유재이의 굳은 얼굴은 그녀들의 생각이 옳았음을 인정해주는 듯했다.
유재이가 심윤진을 불렀다.
“윤진 씨.”
“네.”
“문 열어도 안전하죠?”
“물론이죠. 내 실드는 스미르노프가 짓밟아도 버틸 거예요.”
심윤진은 진지하게 허풍을 떨었다.
스미르노프가 전력을 다해 짓밟는다면, 그녀가 친 실드 따위는 버텨내지 못할 터였다.
그런데도 버틸 거라고 말한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걸 알기에 유재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닫이문을 열었다.
드르륵.
동시에 검은 후드에 가려진 입이 문처럼 활짝 열렸다.
“오! 안녕하세요. 재이 씨. 처음 뵙겠습니다. 전 버섯이라고 합니다.”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아, 물론 버섯이 본명은 아니죠. 가명이에요.”
“누가 그딴 거 물은 줄 알아?”
“네? 그럼 뭐를…. 아, 알았다. 재이 씨라고 부른 거 때문이죠? 처음 봤으면서 너무 친근하게 굴었나요?”
유재이는 눈을 찌푸렸다.
최선을 다해 찡그리며 버섯을 노려보았다.
버섯은 그러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하하. 두 사람 참 닮았네요. 도운 씨나 재이 씨나 농담이 안 통해.”
“계속 그렇게 헛소리만 해댈 거야?”
“그럼 진짜 말해요?”
“뭐?”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도운 씨가 세계수-”
“그만.”
“거봐요. 말 못 하게 할 거면서. 그럴 줄 알고 일부러 말을 돌린 거였는데.”
“…….”
유재이는 미간을 짚었다.
이어 천(川)자가 그려진 미간을 피려는 듯 문질렀다.
사실, 그녀는 도운에게 그의 정체를 듣지 못했다.
그저 추측할 뿐이다.
매번 세계수 재료를 갖고 오는 남자니, 그와 관련된 능력을 지니고 있으리라.
그렇게 판단한 것이었다.
“…알겠으니까, 할 얘기나 하고 꺼져줄래?”
“그러죠, 뭐. 크라우드가 도운 씨를 노리고 있어요.”
“새삼 놀라운 정보 정말 고마워.”
“이런. 아무래도 와닿지 않았나 보네요.”
“뭐?”
“크라우드는 도운 씨를 ‘전력으로’ 노리고 있습니다.”
“전력…?”
“필사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도운 씨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크라우드라는 조직을 궤멸시키는 것도 불사할 정도예요.”
“…….”
“이제 좀 사태의 심각성을 알겠나요?”
“…너는 이걸 왜 경고해주는 거지?”
“도운 씨가 마음에 들어서요.”
“마음에…?”
“네. 도운 씨는 내게 영감을 줬거든요.”
그리 말하고는 버섯은 “우히히” 웃었다.
시종일관 웃는 낯을 하는 모습이 멍청하게 보였었다.
원숭이 같은 소릴 내며 웃음을 흘리는 지금은 보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더 바보 같아 보였다.
그 때문일까.
유재이는 버섯이 도운에게 느꼈다는 ‘영감(靈感)’이란 것도 제대로 된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물어볼 게 있어.”
“하세요. 가르쳐줄 수 있는 거면 가르쳐 드릴게요. 솔직하게.”
“너, ‘유지성’이라고 알지.”
“유지성…. 당연히 알죠. 재이 씨 아버님이잖아요.”
“…….”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다음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하나.
그것을 고민하는 듯했다.
“혹시… 크라우드였어?”
“네?”
“그 사람. 크라우드였냐고.”
“재이야….”
홍수정이 유재이를 불렀다.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으나 유재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직 버섯만을 바라봤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침묵 끝에,
“푸하하…!”
버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크라우드였냐고요? 재이 씨.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
“걱정하지 말아요. 재이 씨 아버님은 크라우드가 아니었어요.”
“그래….”
그녀는 안도감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혹시라도 자신의 아빠가 크라우드의 일원인 것은 아닐까.
그 걱정이 해갈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깐 함께 일하긴 했지만요.”
버섯은 그 한마디로 간단히 그녀의 안도감을 없앴다.
유재이가 자신도 모르게 발을 한 발자국 내디뎠다.
대장간을 보호하고 있는 실드 안이었으므로 문제는 없었으나 심윤진은 혹시 몰라 스태프를 들어 마나를 모았다.
“그 사람이 너희와 함께 일했다고?”
“네. 재이 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8년 전 그한테도 스카우트를 제안했거든요. 재이 씨랑 다르게, 아버님은 그걸 받아들였고요.”
“……!”
“재이야!”
유재이의 몸이 휘청였다.
홍수정이 빠르게 달려가 그녀를 붙들었다.
덕분에 쓰러지지 않은 그녀는 버섯을 노려보았다.
부릅뜬 눈은 마음 같아선 멱살을 쥐고 마구 흔들고 싶은 듯했다.
“그 사람….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요?”
“그래! 어서 말해, 지금 당장 봐야겠으니까!”
“흐음….”
버섯이 입을 마구 비틀었다.
이어 항복을 표하듯 위로 올라가 있던 팔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긁적긁적….
얼굴을 가린 후드의 정수리 부분을 긁는다.
“모르는 척하고 싶은 거예요? 멍청한 거예요?”
“뭐?”
“에이, 뻔하잖아요. 어떻게 됐을지. 이쪽 세계 말로가 다 그런 건데.”
“말, 말로(末路)…?”
“당연히 죽였죠. 쓸모가 없어졌으니까.”
“너…!”
“재이야!”
유재이는 한 발자국 더 내디디려다 멈췄다.
따스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귓가에 닿은 목소리.
허리를 감은 팔의 체온.
그 따스함에 유재이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자 머리끝까지 솟구쳤던 분노는 차갑게 식었다.
지금 그녀가 해야 할 것은 분노를 표출하는 것 따위가 아니다.
질문(質問).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묻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만든 건 대체 뭐지?”
“흐음?”
“그게 데려간 이유잖아. 무언가를 만들게 하려고.”
“네, 뭐. 그렇죠?”
“그게 뭐였냐고.”
“무엇이냐….”
히죽….
버섯이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는 현재 상황을 제삼자로서 구경하는 사람의 것이었다.
“숙원이에요.”
“뭐?”
“우리 크라우드가 수백 년 동안 꿈에 그리던 숙원. 재이 씨 아버님은 그걸 만들어 줬어요.”
“숙원…. 그게 뭔데?”
버섯은 어깨를 으쓱였다.
말해 주겠냐?
그 행동은 그리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깜빡했네요. 죄송해요.”
“뭐…?”
“제가 예의가 없었네요.”
버섯은 두 손을 배꼽 위에 모았다.
그러고는 장난기 없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이 개새끼-”
뚝.
유재이의 목소리는 끊겼다.
재이네 대장간에서 그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나머지 세 여자도 함께 사라졌다.
버섯만이 덩그러니 홀로 남았다.
“아무튼, 요즘 사람들 정이 없다니까. 어떻게 인사도 안 하고 가?”
중얼거림이 허공에 퍼지는 것과 동시에 버섯은 사라졌다.
***
“미안….”
유재이가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숙이며 대뜸 사과를 해왔다.
“…뭐가?”
진심으로,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방금 해준 얘기에서 그녀가 나한테 미안해할 일이 뭐가 있담?
놈의 주둥아리를 후려갈기지 못한 거?
정강이를 걷어차지 못했던 거?
“그 사람이 뭘 만들었는지 알아냈어야 했는데. 내가 화를 내는 바람에….”
“엥?”
뭘 그런 걸 사과하지?
나였으면 죽였다고 했을 때 이미 면상을 후려쳤을 텐데.
홍수정도 착한 성격이라 그녀를 말렸지만, 거기에 도희나 태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도희는 자기가 쓸 수 있는 모든 디버프를 걸며 놈을 저주했을 거다.
태천이는 이무기마저 떨어뜨린 그 힘을 사용해 도망치지 못하도록 사로잡았겠지.
질문은 그다음에 했을 터.
“괜찮아. 네가 무사하면 됐어.”
“하지만-”
“뭣보다 그놈들 그 숙원이라는 거, 사실 못 만들었을 거야.”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널 찾아왔잖아.”
“으응?”
유재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을 찾아온 것이 왜 숙원이란 걸 만들지 못한 게 되는 건지 모르겠는 듯하다.
“놈들은 굳이 너를 찾았어. 그 이유가 뭘까. 네가 대단한 대장장이라서?”
“…….”
“그치. 맞지.”
유재이는 물론 대단한 대장장이다.
세계수 관련 재료들을 다룰 수 있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다른 대장장이가 그것들을 다뤘다면….
나뭇가지는 아르카가 될 수 있었을까.
솔방울은 멘테가 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못 됐을 거라는 거에 얼마 없는 전 재산을 걸 수 있다.
하지만.
“근데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는 또 아니잖아?”
“…언제는 내가 최고라더니?”
“단언컨대, 그 말에 거짓은 없었어.”
“뭐?”
“너는 내가 아는 한 최고의 대장장이가 맞으니까. 너 말고 아는 대장장이가 없거든.”
“…….”
부르르.
유재이의 주먹이 떨렸다.
음. 한 마디 덧붙였다간 한 대 맞겠는걸.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야겠다.
“그런데, 놈들은 너를 고집했지. 너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그게 뭘까?”
“…유지성?”
“아마도.”
하난 알게 됐군.
크라우드가 대장장이로 유재이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 유지성 때문이라는 것.
이것도 버섯이 한 말을 믿을 수 있다면.
-이라는 전제가 붙어야겠지만….
“그리고.”
“응?”
“크라우드가 한 말이잖아. 그딴 놈이 한 말을 마냥 믿을 수 있어?”
“……!”
아뿔싸.
유재이는 그런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귀여워라.
“아.”
귀여운 걸 봤더니 깜빡했던 게 떠올랐다.
“맞다.”
“응?”
“나 원래 너랑 수정 씨 데리러 온 거였는데.”
“우리를? 왜?”
“태천이가 밥 먹재. 미노타우로스 고기 사 왔다네.”
“이 새벽에? 소고기를?”
“태천이잖아.”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유재이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게 이유가 돼?”
“태천이니까.”
“되는구나.”
“먹을 거야?”
“미쳤어?”
“아, 역시. 아침부터 소고기는 좀-”
“당연히 먹어야지.”
“……음.”
그래, 먹는구나.
이 새벽에 소고기를.
어딘가의 엘프들이 굉장히 좋아할 식단이네, 그려.
아, 맞다.
엘프들 만나러 가야 하는데.
고기 먹고 성역에 좀 다녀와야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