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82
제183화
타닥, 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가 허공에 울린다.
그 주위로 백운천 간부들이 앉아 있다.
마스터인 이태천과 부마스터인 백도희는 그들과 떨어져 있었다.
이태천은 이무기와 함께 미노타우로스 고기를 구웠고, 백도희는 다가오지 말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허공을 의자 삼아 앉아 있었다.
타닥, 타닥…!
간부들은 상념에 빠진 듯 불꽃이 튀는 모닥불만을 바라봤다.
그 침묵을 최희주가 깨뜨렸다.
“1년 동안 [세계수 키우기]라는 게임을 했는데, 그 게임에서 자라난 세계수가 진짜 세계수였다….”
슬쩍.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렸다.
간부들은 그녀를 바라봤다.
“이 말 믿을 수 있는 사람, 손.”
“…….”
“…….”
손을 들어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중 덩치가 가장 큰 남자, 박건영이 고민이 되는 듯 손을 몇 번 올렸다가 내렸다.
끝내 그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세계수가 자라났다.
-라던 도운의 말을 믿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머리가 짧은 남자가 말했다.
남자는 목소리가 중후했다.
“안 믿을 수가 없지 않나.”
“무슨 소리야, ‘이현욱’?”
“기억 안 나? 어젯밤에 그놈 스마트폰에서….”
이현욱은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도운이 그들에게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을 때의 일이었다.
***
도운이 스마트폰을 내밀며 말했다.
“이 귀여우면서 늠름한 아이가 세계수야.”
귀여우면서 늠름한 아이.
화면엔 그 표현과 어울리는 어린나무가 자라나 있었다.
어린나무는 세계수라는 설명처럼 푸르스름한 기운을 뿜어냈다.
또 주변에 귀여운 캐릭터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귀가 긴 것을 보니, 캐릭터들은 엘프가 분명했다.
왜인지 엘프들의 얼굴은 침울해 보였다.
“나는 세계수 관리인이고.”
“……??”
그들은 멍하니 도운을 바라봤다.
게임 화면을 보여주더니 나무를 세계수라고 하고 자신을 그 관리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몇몇은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이태천과 백도희를 바라봤다.
두 사람은 답할 생각이 없는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뭐하냐, 새싹이가 인사하잖아. 너희도 인사해.”
“…….”
그 순간, 그들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들의 머릿속엔 공통된 생각이 떠올랐다.
이 미친놈을 어떡하면 좋지?
그들이 그 말을 머릿속에서 중얼거렸을 때,
“안, 안 돼!”
도운이 갑자기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느닷없이 뭐가 안 된다는 걸까.
그들의 머릿속에 또 다른 의문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도운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위로 높이 올렸다.
위로 올려진 스마트폰은 가로로 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푸하악!
스마트폰 화면에서 흙이 뿜어져 나왔다.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 흙은 이내 중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흙으로 만든 무지개처럼 보였다.
***
“그래. 그거 때문에 지금….”
믿을 수 있냐고 물어본 거야.
최희주는 말끝을 흐렸지만, 다들 그녀의 뒷말을 알 수 있었다.
본인들이 그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였다면 그들은 도운이 한 말을 믿지 않았을 거다.
사실대로 말하기 싫어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는 거라고 치부해버렸을 거다.
지금 그러지 못하는 건, 도운이 한 말이 사실이라는 듯 스마트폰에서 흙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지개처럼 뿜어진 흙은 평범한 흙이 아니었다.
바티칸에서 축성한 성수(聖水)처럼 성스러움이 느껴졌다.
몸으로 튄 흙은 짜증을 일으키긴커녕 안도감을 피어오르게 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격려하듯 어깨를 두드려주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흙을 모아 마법 주머니에 담을 땐 어처구니가 없었지….”
최희주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머릿속엔 흙을 조심스럽게 모으는 도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이가 없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 보통 흙 아니었잖아, 그거.”
“응. 스켈레톤은 뼈도 못 추릴 듯.”
테일컷을 한 남자가 긍정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최희주와 이현욱에게서 남자에게로 옮겨졌다.
시선을 받은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귀에 매달린 십자가 모양의 귀걸이가 흔들거렸다.
최희주는 냉랭한 눈으로 남자를 노려봤다.
“‘서인철’.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거야?”
“아니. 진짜 그렇게 느껴서 말한 거였는데.”
“…….”
“뭐야, 나만 그렇게 느낀 거야?”
서인철은 주변을 돌아봤다.
몇몇은 천천히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들을 가리키며 최희주를 바라봤다.
“봐봐. 얘네들도 그러잖아.”
“후우. 뭐. 나도 그렇게 느끼긴 했는데….”
“지도 그렇게 느꼈으면서 왜 뭐라고 한 거야.”
“그럼.”
이현욱이 끼어들었다.
그의 중후한 목소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백도운이 한 말…. 믿어야 하나?”
“일단은 믿어야 하지 않을까?”
박건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선이 모이자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생각해봐. 애초에 도운이가 허무맹랑한 말을 한 거면, 도희가 가만히 있었을까?”
“하긴….”
“한숨 쉬거나 혼냈겠지.”
“그래, 맞아. 태천이도 실실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을 거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그러네.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었네.”
“그리고 그 말을 믿는다면, 납득되는 게 많아.”
긴 머리를 한데 묶은 여자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박건영의 말에 힘을 실으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최희주가 그녀를 바라봤다.
“‘수아’ 언니? 뭐가 납득되는데요?”
“심장.”
“아….”
“백도운 심장이 나았잖아. 세계수 열매를 먹었다면, 하트 브레이크 후유증이 나았다는 것도 말이 돼.”
그녀의 말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 마디씩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떠들었다.
“난 도희가 고친 줄 알았는데….”
“나도.”
“혜화 게이트 독점권 따낸 것도 그런 이유였잖아.”
“맞아. 김무연 때 순순히 내놓기에 고쳐선 줄 알았는데.”
“단순히 필요가 없어져서였구나.”
“근데 백도운 좀 바뀐 거 같지 않냐?”
서인철이 이어지던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다들 쉽게 그 주제로 넘어갔다.
그들도 백도운의 변화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가장 먼저 동의의 뜻을 내비친 건 박건영이었다.
“나한테도 형이라고 부르고.”
“맞아. 그거 왜 오빠한테 형이라고 불러? 둘이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없었는데.”
“없었어?”
“응. 개미굴 앞에서 잠깐 본 뒤로 어제 처음 본 거야.”
“웃기네, 그거. 지가 언제부터 오빠를 형이라고 불렀다고…. 맨날 이름으로 불렀으면서.”
“하하….”
최희주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는 박건영을 뒤로했다.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아무튼. 다들 백도운이 바뀐 것 같다는 건 인정하는 거지.”
끄덕끄덕.
모닥불에 둘러앉은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고갯짓을 보며 최희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제 어떡해?”
“뭐를?”
“백도운이 우릴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으니 우리도 달라져야 해?”
“아.”
“으음….”
그들은 고민에 빠졌다.
선뜻 어떻게 하자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들 몇 명이 박건영을 바라본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형의 의견이 어떤지 궁금한 거다.
박건영은 맏형으로서 부드럽게 말했다.
“난 예전에도 말했지만,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해.”
“흐음.”
“형님은 그리 말할 줄 알았지.”
쳐다보던 남자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최희주가 손을 휘저었다.
“오빠. 오빤 자존심도 없어? 백도운이 그동안 오빠한테 얼마나 지랄을 했는데.”
“굳이 따지자면, 난 지금 네가 나한테 이러는 게 더-”
“…….”
“알았어, 알았으니까 째려보지 좀 마.”
“변한 건 인정하는데 말이야.”
서인철이 손을 들어 올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는 바라던 대로 시선이 모이자 바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바로 잘 대해주는 것도 좀 그렇지 않아?”
“응? 왜?”
“이제 와서 그러면 걔가 A+급 헌터가 돼서 그런 거 같잖아.”
“아. 정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그건 숙이고 들어가는 거 같아서 싫지 않아?”
“아, 짜증 나! 백도운 갑자기 왜 바뀌어서는…!”
“그만.”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던 한재임이 최희주를 말렸다.
그녀는 자신을 말리는 한재임을 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저기.”
“아.”
한재임이 자신이 바라보던 곳을 턱으로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보자, 그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오는 도운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유재이와 홍수정이 함께였다.
홍수정은 완전히 깬 것은 아닌지 유재이를 붙잡은 채로 비틀거리며 걸었다.
“둘 중에 어느 쪽이 유재이야?”
“긴 머리 쪽.”
“저런 미인이 어쩌다 백도운이랑 사귀게 됐대?”
“글쎄. 약점 잡혔나?”
서인철과 최희주가 빠르게 질답을 나눴다.
박건영이 두 사람을 말렸다.
“에이, 도운이가 못됐어도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니야.”
“그래도 백도운이 못된 놈이란 건 인정하는 거네요, 형?”
“아, 음….”
서인철의 말에 박건영은 입을 다물었다.
자기도 모르게 한 실수를 주워 담고 싶은 듯 입을 가린다.
그 모습을 보며 서인철과 최희주는 킥킥 웃었다.
“…….”
그런 시답잖은 대화 속에서, 한재임은 도운을 바라봤다.
도운은 걸어올 때마다 점점 어려졌다.
곧 그의 키가 허리 높이까지 작아졌는데도, 한재임은 백도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어린 한재임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처음 보는 소년과 어깨를 부딪쳤기 때문이었다.
바로 고개를 쳐들고 소년을 노려봤다.
부딪친 소년은 주저앉은 자신과 달리 멀쩡히 서 있었다.
힘에 밀린 것 같아 창피했던 어린 한재임은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씨ㅂ….”
내뱉으려던 욕이 끝까지 맺어지지 않았다.
뒷머리가 길게 자란 소년과 눈이 마주치자 말문이 절로 막혔다.
소년의 얼굴 때문이었다.
작고 흰 얼굴엔 표정이 전혀 없었다.
보육원에서 봐 왔던 여타 어른들처럼 가면을 쓰고 감정을 숨긴 표정이 아니었다.
그냥, 없었다.
무표정한 가면을 얼굴에 박아 넣은 것처럼 표정이 아예 없었다.
당연히 어린 한재임을 향한 감정도 있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오빠…!”
소녀의 부름에 소년의 얼굴이 바뀌었다.
무표정하기 그지없었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맑은 미소는 소년에게 달려오는 소녀에게로 향했다.
포옥!
곧 소녀가 소년의 품에 안겼다.
“빨리 와. 예쁜 언니가 기다려.”
“도희야.”
“응?”
“언니가 아니라 아줌마라고 해야지.”
“왜?”
“아줌마한테 언니라고 하는 건 굉장히 버릇없는-”
“싫어! 예쁜 언니는 예쁜 언니야!”
“…그래. 우리 도희 마음대로 하자.”
소년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품에 안긴 소녀는 “헤헤” 웃고는 소년의 품에 더 파고들었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소녀가 품에서 빠져나왔다.
“깜빡했다! 언니 기다린다니까!”
“그래, 이만 갈까?”
“응!”
소년과 소녀가 손을 맞잡고 떠났다.
어린 한재임 홀로 남게 되었으나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표정 없는 가면을 박은 것만 같은 얼굴.
그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욱…!”
그날, 어린 한재임은 먹은 것을 전부 게워냈다.
***
“야.”
도운의 목소리가 한재임의 회상을 끝냈다.
한재임은 눈꺼풀을 몇 번 감았다가 떴다.
허리 높이까지 작아졌던 도운의 키는 다시 자라나 있었다.
“한재임!”
“…나 불렀냐?”
“나 불렀냐? 이러고 있네, 이거. 나 왜 자꾸 쳐다보냐니까?”
“내가 널 보고 있었다고?”
“이게 정신이 나갔나. 지금 나랑 네가 서로 보고 있는 거 보면 모르냐?”
“…그게, 네 착각인 거다.”
“뭐?”
“난 널 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보는 곳에 네가 기어들어 온 거니까.”
한재임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도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 넌 진짜 나랑 안 맞는다.”
“걱정하지 마라. 나도 너 같은 거랑 잘 맞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으니.”
“걱정, 하…. 됐다. 말을 말자. 가자, 유재이. 가요, 수정 씨.”
도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재임 앞을 떠났다.
옆에 있던 유재이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친구의 손목을 끌고 도운을 뒤따랐다.
그 모습을 한재임은 조용히 지켜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