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83
제184화
“앗!”
“관리인 님?”
“관리인 님!”
성역으로 들어오자, 엘프들이 하던 일을 만사 제쳐두고 내 앞으로 모였다.
살다 살다 엘프들이 가축들에게 사료를 주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웃음이 나온다.
다음에 올 때 밀짚모자라도 가지고 와볼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냈죠?”
“…….”
“…….”
인사를 건네지만, 엘프들은 인사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하나 같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선 날 유심히 훑어보기만 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찾아보려는 게 분명했다.
새싹이에게 내가 쓰러졌다는 걸 전해 들었을 테니….
더군다나 엘프들은 거주 중인 차원이 다른 탓에 찾아올 수도 없었다.
날 향한 걱정은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해갈(解渴)되지 않고 더욱더 커지기만 했으리라.
레지나와 파트리아가 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파트리아는 두 손을 뻗어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의 손에선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엘프 체온도 인간이랑 비슷한가 보네.
“이제 괜찮으신 겁니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서 더 날 향한 걱정이 엿보인다.
그런 엘프 앞에서 체온이 어쩌고저쩌고나 생각하고 있었다니….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내 손을 붙잡은 파트리아의 두 손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해주신 덕분에요.”
“정말 괜찮으신 거지요?”
“네, 정말 괜찮습니다. 다 나았어요.”
“다행입니다….”
파트리아가 안심하자 뒤에 서 있던 엘프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몇 엘프들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을 풀지 않았다.
레지나도 그런 엘프들 쪽이었다.
“레지나.”
“잠, 잠시만요…!”
“네?”
레지나가 홱 몸을 돌렸다.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설마 우나?
그런 생각이 들어 손을 뻗었지만, 손에 쥐어진 건 허공이다.
그녀가 빠르게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음, 당황스러운걸.
설마 지금 울러 간 건 아니겠지?
“어, 음….”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말라고 하셔도….”
레지나가 떠난 방향을 가리켰다.
그녀는 막 커다란 나무 안으로 들어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나무 안으로 들어가는 엘프라니….
그럴듯해 보이는걸?
아니, 아니. 이런 거 생각할 때가 아닌데.
파트리아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레지나는 지금 울러 간 것이 아닙니다.”
“아, 그래요?”
“선물을 가지러 간 겁니다.”
“선물이요?”
“네. 저희가 관리인 님께 드리려고 그동안 준비한 것입니다.”
“아니, 뭘 그런 걸 다….”
지금도 걱정 끼쳐서 미안한데, 여기에서 선물을 주겠다니.
더 미안해지게시리….
내 얼굴에서 생각을 읽은 걸까?
파트리아는 옅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큰 선물은 아니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주십시오.”
“갖지 말라고 해도 절로 생기는데요.”
걱정 끼친 마당에 선물까지 받는데 어떻게 부담을 안 가질 수 있을까.
부담을 갖지 말라는 말조차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파트리아는 “후후” 웃었다.
잠시 후, 레지나가 나무에서 빠져나왔다.
“오크통…?”
막 나무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커다란 오크통 2개를 옆구리에 하나씩 낀 채였다.
그것들은 예전에 한 번 본 것이기도 했다.
태천이가 눌렀을 때 타이밍 나쁘게 터졌던 것이 분명하다.
까만 액체가 담겨 있던 통이다.
그나저나 액체가 담긴 오크통이면 무거울 텐데 참 간단히도 들고 온다.
레지나는 겉보기와는 달리 힘이 엄청 세구나.
엘프라서 그런가?
탁, 타악….
내 앞까지 온 레지나는 바로 오크통을 내려놓았다.
통 안에 담긴 액체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 받아주세요!”
“이게 뭔가요?”
“힐링 포션이에요!”
“힐링 포션이요?”
오크통에 담긴 액체가 포션이었어?
근데 이거 저번에 폭발하지 않았던가?
포션이란 게 제작하다가 폭발하기도 하나.
제작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마셔도 되는 거 맞긴 하나 몰라.
“세계수 님께 들었어요.”
“뭘요?”
“그동안 세계수 님 잎으로 만든 포션을 전부 다른 분들께 나눠주셨다면서요.”
“네? 나눠…?”
말문이 절로 막힌다.
나눠주긴 뭘 나눠줘.
힐링 포션, 병당 3000만 원.
마나 포션, 병당 1500만 원.
원래 적정가보다 각각 1000만 500만 더 얹어서 팔았는데.
우리 새싹이, 이제 거짓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는구나?
그리 중얼거리며 새싹이를 바라봤다.
새싹이는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나뭇가지를 올렸다가 내렸다.
그 모습이 마치 어깨를 으쓱이는 듯 보였다.
돈 벌려고 모조리 팔아 치웠다.
-고 말할 수는 없지 않으냐.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긴, 사실대로 말했다간 엘프들이 내게 실망했을지도….
“이건…!”
레지나가 큰 목소리로 주의를 끌었다.
탕!
오크통 윗부분을 힘주어 두드리기도 했다.
“이건 다른 분들 주지 말고 꼭 관리인 님께서 써주세요!”
“내가요?”
“네!”
“어, 괜찮은데. 나 힐링 포션 없어도-”
“제발요! 부탁드려요…!”
“…….”
레지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런 얼굴로 나를 올려다봐서일까.
도저히 “필요 없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 말했다간 커다란 눈에 맺혀있는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말이라도 그러겠노라고 말해야겠다.
“알겠어요.”
“꼭! 꼭이에요…!”
“네, 꼭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죠. 이렇게 선물까지 챙겨 줬는데. 고마워요. 포션 먹을 일 없도록 조심할게요.”
“헤헤….”
레지나가 해맑게 웃었다.
그래, 역시 사람은 웃는 게 더 낫다.
그녀는 사람이 아니라 엘프긴 하지만.
“그, 그럼 저는 이만….”
“……?”
갑자기 레지나는 다른 엘프들 뒤로 물러났다.
뭐지, 웃다가 왜 저래?
대신 옆에 있던 파트리아가 말을 걸어왔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전대 관리인 님이 생각나서 그럴 겁니다.”
“아….”
“레지나 님은 그분과 아주 친했습니다.”
“네, 그럴 것 같았습니다.”
자기 송곳니를 뽑아서 줬을 정도니까.
그런 걸 준 사이인데 친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일 거다.
왜 하필 송곳니를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송곳니가 성역의 열쇠로서 작용하는 것도 좀 웃긴다.
무슨 몬스터 송곳니도 아니고….
새싹이가 더 성장하게 되면 나도 어금니 같은 거로 그럴 수 있게 되려나?
“그분도… 힐링 포션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하셨었습니다.”
“아….”
“저희도 그분 말씀에 동의했죠. 그분께 힐링 포션 같은 건 필요치 않으리라 여겼습니다. 허나….”
파트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일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당시 디싱이 힐링 포션을 지니고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마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 터였다.
내게 준 이 힐링 포션도 분명 그런 생각을 하며 만든 것이겠지.
“사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다른 말을 했다.
오크통에 담긴 포션에 관해서였다.
“이 통에 담긴 포션의 품질은 그리 좋지는 못합니다.”
“그런가요?”
“성역에서 자라난 잎들로 만든 포션인 만큼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진 않을 것입니다만….”
“다만?”
“세계수 님의 잎으로 만든 포션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하겠지요.”
“아, 그렇겠네요.”
주변을 돌아본다.
성역엔 숲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었다.
새싹이의 마나를 계속 받은 숲이니, 웬만한 포션 제작에 쓰이는 재료보다 좋은 재료인 건 분명할 거다.
하지만 전대 세계수나 새싹이의 나뭇잎에 비할 바는 못 되리라.
굳이 비교하자면, 가지치기로 생긴 숲보다 나은 정도로….
…어라?
그러고 보니, 가지치기로 생긴 숲도 적게나마 세계수의 마나를 품고 있으니, 포션 재료로 쓸 수 있지 않나?
다음에 나뭇잎 좀 떼가서 홍수정에게 감정받아봐야겠는걸.
“그러니, 관리인 님 편하신 대로 사용해주십시오.”
“괜찮습니까?”
“그럼요. 어차피 ‘그런 상황’이라면, 이런 포션으로는 바꿀 수도 없을 겁니다….”
“…….”
파트리아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상황….
그건 아마 디싱이 마족에게 당한 상황을 의미하리라.
파트리아의 말이 옳았다.
그런 상황이라면 세계수 잎으로 만든 포션보다 품질이 낮은 포션으로는 당장 뭐가 바뀌지 않을 거다.
“이리 말씀드리는 저도 관리인 님께서 사용해주시길 바라긴 합니다만….”
“제가 쓸 분량은 꼭 따로 빼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파트리아가 고개를 숙여온다.
나도 그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
나와 파트리아가 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려는 걸까.
살짝 떨어져서 있는 엘프들을 돌아봤다.
날 걱정해서 포션을 만들어준 이들이 보였다.
어떡하지, 나 이런 거에 엄청 약한데.
“…아, 참.”
“왜 그러십니까?”
“그 포션 말입니다.”
“네.”
“마시고 나서 맛 좀 평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맛을요?”
“이번에 만든 포션은 평소 만든 것과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랬습니까?”
“열심히 만들었습니다만….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요. 다음에 만들 때 참고할 수 있게 드셔보시고 꼭 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아. 네.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뭣보다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다.
홍수정이 포션을 제작할 때마다 시음회를 하고 있었으니까.
성역에 나가서 포션 맛을 확인해 봐야겠다.
엘프들이 만든 포션은 무슨 맛일지 기대되는걸?
***
성역을 빠져나왔다.
나오자마자,
“우왓…!”
무언가가 내 다리를 휘감았다.
두 손으로도 다 붙잡기 어려운 두꺼운 것.
그것에 다리가 붙들리자 세상이 뒤집혔다.
“안 돼, 우리 새싹이!”
놓쳐버린 스마트폰을 붙잡고자 손을 내뻗는다.
아깝게 닿지 않았을 때, 손가락이 갈색으로 변했다.
세계수의 뿌리가 써진 거다.
휘릭…!
덕분에 스마트폰이 땅에 떨어지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붙잡을 수 있었다.
휘감긴 스마트폰 꼴이 된 나는 고개를 돌려서 날 이렇게 만든 녀석을 쳐다봤다.
무기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
「…….」
“…뭐 하는 거야?”
「관리인이야말로 어딜 갔다 온 거지?」
“나? 난 성역에 좀 다녀왔는데.”
「성역?」
“새싹이랑 엘프들이 사는 곳이야.”
「……!」
무기의 눈이 커진다.
세계수와 엘프들이 있는 곳이라고 하니 가고 싶은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네?
성역에서 이곳으론 올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 성역으로 가는 건 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시도해봐야지.
“가만히 있어 봐.”
「……?」
화면 속 성역 들어가기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바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이런, 안 되네.”
「음?」
“너랑 같이 성역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안 돼.”
「아…. 그런가. 그건 참 아쉬운 일이군….」
무기가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쉰다.
아쉬움을 내비치는 무기를 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위로 해줘야-
“우왁…!”
무기가 몸을 구불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자연스럽게 꼬리에 거꾸로 휘감겨 있던 나는 이리저리 휘둘렸다.
이동할 거면 좀 제대로 태워주지….
휘둘릴 때마다 한 단어씩 힘겹게 말했다.
“어디, 가는, 거야?”
「관리인 동생이 찾고 있다.」
“도희? 난 왜?”
「걱정돼서인 게 당연하지 않나. 마족의 부하 놈들이 노리고 있는 상황에 갑자기 사라졌는데.」
“아….”
「어딜 갈 땐 사전에 알리고 가는 것이 좋다, 관리인.」
“동의하는데, 잠깐 갔다 오면 모를 줄 알았지.”
「…….」
무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이렇게 빨리 알아차릴 줄 알았나, 뭐.
[세계수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휘젓습니다.] [이 또한 관리인이 고쳐야 할 점이라고 지적합니다.]고칠 생각 없지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