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84
제185화
“다녀오세요.”
“다녀와.”
도희와 태천이가 내게 인사를 건넨다.
두 사람이 날 찾은 건 오로지 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손님들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케이오스에서 찾아온 곽형원 일행.
그들은 백운천 간부들이 모인 모닥불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저희끼리 모여 고기를 먹고 있었다.
아까 갤러리에 갔을 때만 해도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마도 미노타우로스 고기 냄새 때문에 깬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이 근방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으니까.
갤러리에도 닿아 그들의 코를 간질였으리라.
두 사람에게서 고개를 돌려 유재이와 홍수정을 바라봤다.
그녀들은 고기를 집어 먹으며 날 올려다봤다.
“다녀오물오물.”
“…맛있어?”
“오물오물.”
“그래, 그럼 됐어.”
두 사람은 대답 대신 열심히 고기를 오물거렸다.
먹는 거 방해하지 말아야겠다.
네 사람에게서 고개를 돌려 무기를 돌아봤다.
곽형원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무기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무기의 꼬리에 매달린 채였으니까.
그들이 이곳까지 온 것도 무기 때문이었으니 어차피 같이 가야 했고.
“무기야.”
「음?」
“저기로 좀 데려다줘.”
「알았다.」
무기는 그들에게로 나를 옮겨 주었다.
기다란 몸은 나를 금방 그들 앞에 서게 했다.
아니, 거꾸로 매달린 채니까 선 건 아닌가?
아무튼.
그들 앞에 다다르게 되자 곽형원 일행은 먹던 고기를 내려놓았다.
곽형원 옆에 앉아 있던 남녀가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네온다.
“안녕하세요, 백도운 씨. 저흰 케이오스에서 나왔습니다. 전 A급 헌터 ‘김규현’.”
“같은 A급 헌터 ‘이규리’입니다.”
“이쪽 분은-”
“알아요, 곽형원 씨죠?”
“오, 우리 형님을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나쁜 몬스터는 없다. 그 채널 주인이잖아요. 나도 그거 봐요.”
“그렇군요, 영광입니다.”
김규현과 이규리가 밝게 웃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선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내가 안다고 해서인 것 같긴 한데….
A+급 헌터 정도가 되니 사람들 반응이 참 다르다.
저런 얼굴은 도희와 태천이에게나 향하던 얼굴이었는데.
예전 같았으면 ‘어쩌라고?’라고 묻고 싶은 표정이었을 테지.
“…….”
“…….”
곽형원은 조용했다.
미노타우로스 고기가 담긴 일회용 그릇을 집어 든 채 가만히 나를 올려다봤다.
날 보고 있긴 한데….
정신이 딴 데 팔린 모습이다.
툭, 툭.
그의 양편에 선 김규현과 이규리가 그의 발목을 발로 차댔다.
두 사람은 마치 복화술이라도 하듯 그를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형님, 형님…!”
“오빠, 뭐해요?”
“…….”
하지만 그의 정신을 깨우는 데엔 역부족이었다.
곽형원은 멀뚱멀뚱 날 보기만 했다.
이 양반 왜 이래?
“…….”
“…….”
설마.
지금 나보고 먼저 인사하라고 하는 건가?
기 싸움, 뭐 그런 거?
인생 참 피곤하게 사는 사람일세.
“형님…!”
“오빠, 대체 뭐 하는-”
“…나도.”
“네?”
“나도요?”
“나도 매달려 보고 싶다….”
“…….”
“…….”
두 남녀는 말문이 막힌 듯 곽형원을 바라봤다.
멀뚱멀뚱 바라보는 두 사람을 이해한다.
나도 방금 곽형원이 한 말에 생각이 잠깐 멈췄으니까.
그러니까.
그는 지금 기 싸움을 위해서 날 올려다보고만 있던 게 아니었다.
나처럼 무기의 꼬리에 휘감겨 매달리고 싶어서 바라보던 것이었다.
이 양반도 제정신은 아니군.
“안녕하세요.”
그는 손을 뻗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방금 자기 속마음을 내뱉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얼굴이 참 해맑다.
반대로 김규현과 이규리는 당황스러워 보인다.
하긴, 그들의 자부심의 근원인 인간이 애처럼 매달려 보고 싶다는 말을 해댔으니….
내게 내뻗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늦었지만 A+급 헌터가 되신 걸 축하합니다.”
“고마워요. 우리 무기 때문에 찾아왔다고요?”
“네, 협회에서 요청을 해왔거든요.”
“흠….”
무기를 돌아본다.
시선이 닿자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강아지가 날 보곤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어뜨리는 듯했다.
아마 나에게만 그리 보이는 것이겠지만.
무기는 A+등급 몬스터였다.
다른 이들의 눈에서 무기는 전혀 귀여워 보이지 않으리라.
“…말씀하시죠.”
“우선.”
곽형원은 무기를 바라봤다.
무기도 내게서 시선을 돌려 그를 마주 봤다.
“지금 상태로는 무기 씨는 이곳 울릉도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
역시.
그의 입에선 예상했던 말이 나왔다.
「나갈 수 없다고?」
“네.”
「어째서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습군. 내가 인간들을 공격하기라도 할 것 같나?」
“물론, 나는 무기 씨가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옆에 서 있는 두 남녀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무기가 인간들을 공격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그러나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무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확신이었으니까.
「날 막을 수 있기는 하나?」
“네?”
「그동안 내가 이곳에 가만히 있던 게, 너희가 날 막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냔 말이다.」
“…….”
「단지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내 자유를 네놈들이 빼앗을 수 있을 것 같나?」
무기는 사납게 말했다.
김규현과 이규리가 몸을 움찔거렸다.
무기를 앞에 두고 긴장하긴 해도 무서워하거나 불안해하진 않았는데, 지금은 불안함을 조금 느끼는 듯했다.
유일하게 곽형원만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당당하게 말했다.
“자유를 빼앗지는 못하겠지만. 네, 막을 수는 있습니다.”
「막을 수 있다…?」
“무기 씨도 느꼈을 텐데요? 우리나라가 울릉도 게이트를 공략하지 못했던 건 실드 때문이었다는 걸.”
「…….」
“그리고 그 실드는…. 이제 못 쓰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곽형원은 나를 돌아봤다.
무기의 실드가 사라진 이유가 나이기 때문이다.
방송을 통해서 실드가 사라지는 모습을 전부 봤을 테니….
그의 시선은 날 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톡, 톡톡. 톡, 톡.
화면을 두드리는 오른손 검지로 향했다.
내가 ‘증표를 지닌 자’라는 걸 알고 있는 거다.
그 증표란 게 내 ‘검지’라는 것도.
“그 실드가 없는 지금이라면…. 네, 막을 수 있습니다.”
「…….」
“설령, 버스트 모드를 쓴다고 해도요.”
「버스트 모드?」
“몸을 번개처럼 변화하던 것 말입니다.”
「그걸 이 세상에선 버스트 모드라고 부르나? 유치하군.」
무기의 말에 곽형원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나라에서 그걸 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그렇게 불러서요.”
「아. 알 것 같군.」
“우린 그를 15년 동안 봐 왔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자 노력을 해왔죠.”
「…….」
혹시 모를 사태.
그건 한진환의 폭주를 의미했다.
한 국가에서 가장 강한 존재.
정부는 그러한 존재를 과연 가만히 두고 보기만 했을까?
그럴 리 없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대비해뒀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대비는 같은 속성의 마나를 지닌 무기에게도 통하리라.
“…….”
그런 이유로, 난 그위친도 걱정됐다.
나머지 S급 헌터 세 명으로도 상대하는 게 역부족이었던 그다.
미국은 그를 어떻게 할까….
그가 나 때문에 고립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밀러와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기를.
「그래.」
“……?”
「이곳의 인간 또한 비슷하구나.」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무기는 더 말할 생각이 없는 듯 입을 다문다.
그를 직시하던 곽형원은 나를 바라봤다.
아마 무기가 말한 인간은 위그드라실에서 살던 인간들을 의미할 것이다.
나도 아무 말도 안 하자, 곽형원이 말을 이어 나갔다.
“뭐, 이런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면, 이곳까지 직접 찾아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
“우린 무기 씨가 이곳에만 있는 걸 원치 않습니다.”
“형님 말씀이 맞아요.”
“우리는 무기 씨가 우리랑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어요.”
두 남녀가 곽형원의 말에 덧붙였다.
곽형원은 미소를 지은 채 마법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곧 그가 마법 주머니에서 두 가지 물건을 꺼냈다.
하나는 팔뚝만 한 크기의 스크롤이었고, 다른 하나는 팔찌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스크롤을 흔들어 댔다.
“‘스킬 스크롤’입니다.”
“스킬 스크롤이요?”
“네. 이걸 열람하면 ‘레이독치온(Reduktion)’ 스킬을 배울 수 있습니다.”
“레이…?”
“레이독치온. 몸을 축소화하는 A등급 스킬입니다.”
“축소화…. 무기의 몸을 작게 만들 수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당연히 원래 크기로 되돌아올 수도 있고요.”
“헤에….”
즉, 스미르노프의 거인화와 반대되는 스킬이다.
크기가 작아지는 만큼 무게도 줄어들고, 물리적인 공격력도 줄어들 거다.
마법은 신체 크기와 상관없으니 관련 없겠지만.
“하나에 13억짜리죠.”
“얼마요?”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13억짜리를요?”
“도운 씨와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아.”
즉, 선물이라는 이름의 뇌물인 거다.
A+급 헌터가 되고 나니 이런 걸 다 받게 되네.
“선물로 받기 싫으시면 구매하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곽형원은 씩 웃었다.
구매해도 좋고, 선물로 받아도 좋고.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다.
우선, 무기에게 물어보고 결정해야겠다.
“배울래?”
「…배우겠다.」
“오케이.”
그럼, 나도 아무래도 좋을 수 있겠군.
“받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곽형원은 웃는 얼굴로 스크롤을 건넸다.
웃는 얼굴과 태도 때문일까?
정말로 뇌물을 주는 게 아니라 선물을 건네는 것 같았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걱정합니다.] [후에 무언가를 요구하면 어떡할지 질문합니다.]걱정도 많다, 새싹아.
이제 날 알 때도 되지 않았니?
[어린나무가 의문을 표합니다.]요구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
뭐든 상관없으니까.
그걸 들어준다는 보장은 없거든.
[!]뇌물 받았다고 해서 내가 들어줄 보장은 없는 거라구.
그래 주고 싶지도 않고.
“아, 그거 도운 씨가 아니라 무기 씨가 익혀야 합니다.”
“무기가요?”
“네.”
“그렇대.”
「음. 펼쳐주면 바로 배우도록 하지.」
스크롤을 펼쳐 무기에게 내밀었다.
스륵….
무기는 펼친 스크롤을 읽기 위해 머리를 180도로 돌렸다.
그냥 내 몸을 돌려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곽형원을 바라봤다.
“그건 뭡니까? 팔찌처럼 보이는데.”
“반려 몬스터 인식표입니다.”
“인식표요?”
“네, 우리나라는 ‘몬스터 보호 관리’의 일환으로 ‘반려 몬스터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인식표는 반려 몬스터를 등록할 경우 제공하는 겁니다.”
아, ‘나쁜 몬스터는 없다’에서 본 적 있다.
테이머를 관리 감독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였지, 아마?
인식표를 통해 실시간으로 몬스터의 현 상태를 공유받아 테이머가 학대하지 않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실시간 공유인 만큼 위치도 전달되는데, 그게 싫어서 등록하지 않는 이들도 제법 많다고 들었다.
당연히 등록하지 않는 건 불법이므로 과태료를 내야 했지만.
그나저나, 내가 본 영상에서 인식표는 팔찌 형태가 아니라 보석 목걸이 형태였는데….
여러 종류가 있나 보지?
“아울러 인식표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전한 몬스터’라는 것을 국가가 보증한다는 거죠.”
“맞습니다. 아시는군요?”
“영상 본 적 있다니까요.”
“구독과 좋아요, 늘 감사합니다. 알림 설정은 해두셨나요?”
“…….”
당연히 알림 설정 안 해뒀다.
구독한 적도 없으니까.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영상을 봤을 뿐, 좋아요를 눌러본 적도 없었다.
솔직하게 말했다간 분위기만 싸해지겠지?
“…그래서 등록할 때 여러 테스트를 치르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무기는 아무 테스트도 안 치렀는데요?”
“그위친 님 덕분입니다.”
“그위친이요?”
“그분께서 이무기의 안전을 보장하셨습니다. 인간들이 선을 넘지 않는 한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셨죠.”
“그렇군요….”
세계 최고의 드루이드가 한 말이다.
그가 안전을 보장해줬는데도 부정한다면, 그건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거다.
믿고 싶지 않아서 꼬장 부리는 거나 다름없다.
“어라? 잠깐만요. 그위친이 보장했다면, 무기는 여기에서 그냥 나가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응? 그럼 아까는 왜 나갈 수 없다고…?”
찡긋.
곽형원이 윙크를 해왔다.
그 윙크를 보고, 그가 일부러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유는….
아마도 무기에게 ‘경고’해주기 위해서였으리라.
방금 무기는 자신을 막을 수 없을 거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어?”
내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다리를 붙들고 있던 꼬리가 사라진 거다.
타악…!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몸을 돌려 땅에 착지했다.
“무기….”
「…….」
“얼씨구?”
눈을 끔뻑끔뻑 뜨며 무기를 바라봤다.
무기는 작아져 있었다.
파란색 바디필로우가 생각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다.
꼭 끌어안고 싶다는 소리다.
“무기야, 너 지금 좀 귀엽-”
“꺄아아아아아악!”
귓가에 비명이 들려왔다.
홍수정이 질러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