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00)
400화 떠나는 자들 (2)
달이 뜨지 않는 밤.
대전에는 창이 있었으나 어둠을 피할 수 없었다.
파천궁주 천혁은 우울했다.
언제쯤 이 어둠을 거두어 내고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자신의 생이 다하는 날까지 그 날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의심은 어둠을 키우고, 어둠은 다시 의심을 키웠다.
파천궁은 깊은 어둠에 빠져 있었다.
탁.
안으로 들어온 이는 어깨가 넓은 사내였다. 그는 두 손을 모았지만, 허리를 굽히진 않았다.
천혁은 그를 보고는 말끝을 높였다.
“돌아왔는가?”
그의 물음에 사내가 답했다.
“진실을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진실인가?”
“그렇습니다.”
천혁이 창백한 얼굴로 명을 내렸다.
“말하라.”
그가 오른손을 뻗자 사내가 두 손을 풀었다. 그와 마주한 사내는 바로 명왕이었다.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
“귀주에 대단한 고수가 있다는 소문 말이던가?”
“성존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재목이었습니다.”
천혁은 명왕의 한마디에 눈썹을 세웠다.
“성존이라고?”
파천궁에서 최고의 재능을 뜻할 때는 성존이 아닌 천존, 다시 말해 천마의 마지막 제자 천수와 비교했다.
그러나 명왕은 천수가 아닌 천존, 즉 천마와 그 재능을 비교하고 있었다. 그가 천마와 그 재능을 비교했다는 것은 십만마도의 주인을 넘어 마도재림을 이룰 수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라면 이룰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이룬단 말인가?”
“마도재림과 무종의 경지 말입니다.”
무종(武終).
쉽게 풀어 말하면 무의 끝.
천존이라 불리는 천수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화경 위에 현경, 그 현경 위에는 무종이라는 경지가 있다고 했다.
여기에 마도재림까지.
천혁은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과하군.”
“과하지 않습니다.”
천혁은 두 손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잡았다. 이것은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그의 습관이었다. 그는 파천궁주로서 냉철하게 상황을 보고자 했다.
“명왕, 그대가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몰라도 그런 터무니 없는 이야기는 믿을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라면?”
“그와 붙어 보았습니다.”
천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대가 그자와 싸웠다고?”
명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있는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명왕이 전력을 다했다면 대단한 싸움이었을 것이다.
천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대가 돌아와서 이런 말을 늘어놓았다는 것은, 그대가 졌단 말이군.”
명왕이 두 손을 재차 모으며 말을 받았다.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천혁은 명왕의 무공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무공은 무극의 끝자락, 즉 현경과 무극의 사이에 위치했다.
‘그런 그를 이겼다면 현경의 경지에 들어섰단 말인가?’
천혁 또한 현경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도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군.’
새로운 절대 강자의 등장은 무림의 판도를 바꿀 만한 사건이었다.
“현경의 경지인가?”
명왕이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경의 경지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천혁은 낮게 신음했다.
“으음.”
그는 명왕이 어떠한 말을 하기 위해서 돌아왔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명왕, 그대는 나보고 새로운 강자에게 고개를 숙이라 말하는 것인가?”
명왕이 따르는 것은 천존의 가르침보다는 강자존이라는 성존의 가르침이었다. 강자존의 법에 따르면 약자는 강자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당연했다.
“천가의 주인에게 어찌 고개를 숙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의외의 대답.
천혁은 명왕이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면 그와 손을 잡으라는 말인가?”
명왕은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그와 손을 잡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백도의 인물이기에?”
명왕과 싸운 강자는 단리원의 대협 장하였다. 그는 구파일방에 속하진 않았지만, 백도 무림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십만대산 수복과 마도재림을 노리는 파천궁이 대협 장하와 손을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바로 가교의 교주입니다.”
천혁의 눈썹이 높이 솟아올랐다.
“뭐라고?”
가교의 교주라면 새파랗게 젊은 명운이었다. 그런 그가 현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면 그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교주께서는 제 말을 믿지 못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제가 경험한 모든 것은 사실입니다.”
천혁은 권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장하라는 자가 정말로 가교의 교주 명운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명왕은 아직 두 손을 모은 상태였다.
“그는 진마를 쓰러뜨리기 위해 신분을 감췄을 뿐이었습니다.”
신분을 감추고 진마를 쓰러뜨렸다.
천혁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명왕이 대답했다.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 때문이라고?”
“가교 교주가 귀주에 있다는 것을 알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천혁은 명왕의 말에 혀를 찼다.
“쯧, 십만대산을 공격하거나 진마와 힘을 합쳐 그를 쓰러뜨리거나?”
“교주님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천혁은 그 물음에 낮게 웃었다.
“후후후후, 그대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우리는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친 것이로군.”
어느 쪽을 선택하든 파천궁은 적지 않은 이득을 보았을 터였다.
명왕이 두 손을 위로 들며 말했다.
“교주께서 은거하신다면 그는 쫓지 않을 것입니다.”
은거.
천혁은 명왕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다시 숨으라는 말이냐?”
“때는 언젠가 올 것입니다.”
지금은 명운과 대적할 수 없다는 말.
‘후후후, 다시 백 년을 더 기다리라는 말이구나.’
천혁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왕! 겨우 그런 말을 하고자 다시 돌아온 것인가?”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음에도 명왕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천가를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의 제안은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천가와 파천궁은 수백 년의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품은 원한의 깊이는 사람의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대와 내가 함께 싸운다면…….”
명왕은 천혁의 말을 잘랐다.
“이길 수 없습니다.”
그는 단호했다.
“진마까지 합한다면?”
“진마는 이미 죽었습니다.”
명왕은 파천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악산 전투와 진마의 소식을 들었다.
“진마가 죽었다고?”
“그의 강함은 진짜입니다.”
천혁은 두 눈을 감았다.
‘하늘이 또 가교를 돕는 것인가?’
그가 긴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끼이익.
닫혔던 문이 열리면서 한 사내가 등장했다. 그는 천혁의 오른팔 수왕이었다.
“물러갈까요?”
수왕은 명왕과 천혁이 마주한 것을 보고는 안으로 깊이 들어오지 않았다.
“수왕, 묻겠다.”
수왕은 천혁의 한마디에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현경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 우리를 노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수왕은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울 것입니다.”
“강자존의 법을 무시하고?”
“그것은…….”
천혁이 낮게 웃었다.
“후후후, 그대는 나와 같군.”
천마의 가르침보다는 천가의 원한이 더 중하다.
명왕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끝내 싸우신다면 멸망이 있을 뿐입니다.”
수왕은 명왕의 이야기를 듣고는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일이 있었구나.’
그는 앞서 명왕이 파천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었다.
“멸망인가?”
명왕이 천혁의 말을 받았다.
“사왕과 호법, 그리고 돌격대가 모두 있을 때도 이기지 못한 상대입니다.”
승산이 없다는 것은 천혁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다시 수왕에게 돌렸다.
“명왕이 본좌에게 숨으란 말을 하고 있다. 그대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나?”
수왕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어찌 교주님께 그러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명왕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끝내 멸망의 길을 걸으실 생각입니까?”
그는 파천궁이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천혁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원한이란 몇 마디 말로 지울 수 없는 낙인이었다.
“수왕.”
천혁의 호명하자 수왕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 하명하십시오!”
천혁이 낮은 음성으로 명을 내렸다.
“파천궁을 태울 것이다. 이동을 준비하라.”
수왕은 명을 받는 대신 고개를 들었다.
“파천궁을 태우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파천궁을 태운다는 것은 배수진을 친다는 뜻이었다.
명왕은 주먹을 꾹 쥐었다.
‘천혁과 싸우는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이 자리에서 천혁을 누른다면 그 한 명의 희생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어둠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둠으로 돌아간다.
이는 은거하겠다는 말이었다.
수왕은 눈썹을 세웠다.
“교주님!”
천혁은 오른손을 들었다.
“상대는 현경의 경지에 들어선 무인이다. 성존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의 발에 입을 맞추고, 그의 명에 따라 마도재림을 이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천가의 뜻을 이어받았으니, 그렇게 할 수가 없구나.”
수왕은 현경의 경지에 들어선 무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명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명왕이시여, 누가 현경의 경지에 들어선 무인이란 말입니까?”
명왕이 대답했다.
“단리원의 장하, 그는 이미 현경의 경지에 들어섰다.”
수왕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무명의 무인이 현경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명왕이 설명을 덧붙이듯 말했다.
“깨달음이란 스승이 필요한 것이 아니니, 문파를 가리지 않을 수밖에.”
수왕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너무 뜻밖의 일이었다.
천혁이 그에게 말했다.
“수왕, 내 명을 따르지 않을 것인가?”
수왕은 천혁의 재촉에 두 손을 들었다.
“교주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가 물러나자 명왕이 천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천혁이 담담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그대와 싸울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알고 계셨군요.”
“그대와 함께한 시간이 적지 않으니까.”
천혁은 몸을 돌렸다.
“작별이군.”
그는 명왕이 강자존의 법을 따르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새로운 주인, 아니 처음으로 주인을 만났다고 할 수 있겠군.’
명왕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천가의 비상을 빌겠습니다.”
천혁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가가 비상한다는 이야기는 그대의 새로운 주인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말일세.”
명왕은 말을 바꾸지 않았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습니다. 십만대산의 명가도 언젠가는 쇠락할 날이 올 것입니다.”
자신은 명운을 따르지만, 명운의 명가가 영원하진 않으리란 이야기였다.
“명왕, 그대의 언변이 이토록 좋은 줄 몰랐군.”
천혁이 기억하는 명왕은 강하고 거침이 없는 사내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유연한 달변가와 같았다.
“천가에 빚이 있으니까요.”
명왕은 강자존의 법을 따랐지만, 천가와 파천궁에 아무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대도 사람이라는 말이군.”
“저는 진마가 아닙니다.”
사람을 버린 자.
인외자 진마.
그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천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대는 진마가 아니지.”
그의 귓전에 공기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떠났군.’
명왕이 신법을 전개해 대전을 떠난 것이었다.
천혁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더 깊은 어둠으로 빠져들겠군.”
그와 천가는 다시 암도(暗道)라는 길을 떠나야 했다.
* * *
귀주성 영음현.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저택 앞에 섰다. 마차의 귀퉁이에는 어김없이 조각된 장식이 붙어 있었는데, 이러한 마차를 탈 수 있는 것은 부유하거나 신분이 높은 이들뿐이었다.
“마차가 도착했습니다.”
저택 앞에 선 이는 마융이었다. 그의 말을 받은 것은 최고급 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은 귀부인이었다.
“준비하느라 수고했네.”
그녀는 가벼운 걸음으로 마차에 올랐다. 이윽고 그녀의 시녀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뒤따라 마차에 올랐다.
마융은 두 여인이 모두 마차에 타자 옆으로 난 문을 닫아 주었다.
탁.
경칩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 대협께서 호위하실 것입니다.”
귀부인은 고개를 가볍게 숙였을 뿐이었다.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뒤 선두에 선 무인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대협, 부인을 부탁합니다.”
선두에 선 무인은 바로 명운이었다. 그는 두 명의 호위와 함께 마차 앞에 서 있었다.
“걱정할 필요 없네. 부인을 황도까지 무사히 모실 테니까.”
그가 모셔야 할 귀부인은 바로 빙왕이었다. 그녀는 전 호부상서 왕립의 부인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었다.
“대협만 믿습니다.”
마융이 포권을 취하자 명운은 고삐를 들었다.
“출발하지.”
그가 천천히 말을 출발시키자 마부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랴!”
그의 외침에 네 필의 말이 마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컥. 덜컥.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
(외전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