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9
제19화
집을 나와서 향한 곳은 재이네 대장간이다.
홍유릉 게이트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통나무는 강력한 무기였지만 내 전투 스타일에 적합하지 않았다.
어깨에 둘러메고 다녀야 하는 것도 단점 중 하나다.
평범한 통나무가 아니라 세계수의 나뭇가지라는 점도 문제다.
그걸 밝히지 않고서는 유재이에게 통나무를 맡길 수 없었다.
보여주기 전에 비밀 유지 계약을 맺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기 싫다고 하면 보여 주지 말아야겠지.
“어서 오…늘은 가면 안 썼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계산대에 널브러진 유재이가 보였다.
저번과 비슷한 옷차림이었지만, 헤어스타일이 달랐다.
앞머리는 여전히 이마를 드러낸 채지만 뒷머리는 한 갈래로 묶었다.
그녀는 인사도 하지 않고 일어나서는 가면 얘기부터 꺼냈다.
애초에 가면을 쓴 것은 일대 그룹으로 들어가는 백도운을 알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가면 쓸 필요가 없어져서.”
“그래?”
“그보다. 한가해 보이네?”
“무슨. 밤새 망치 휘둘렀거든? 잠깐 쉬던 거야.”
아, 작업하느라 머리를 묶은 거였군.
나는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 방해된 건가?”
“아니야. 방해될 것 같았으면 문 닫았겠지.”
“그럼 다행이고.”
널브러져 있던 이유를 알고 나니 괜히 미안하다.
바로 본론을 끝마쳐서 쉴 시간을 더 빼앗지 말아야겠다.
마법 주머니에서 갑옷을 꺼내 계산대에 올렸다.
그 갑옷을 보자마자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날 바라봤다.
못마땅한 눈초리에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뭐, 왜.”
“갖고 간 지 얼마나 됐다고 얘가 이래?”
그러면서 유재이는 갑옷의 가슴과 배를 가리켰다.
두 부위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가슴 구멍은 새싹이, 배와 등의 구멍은 스켈레톤 로드가 한 짓이다.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 상태만 보면 이거 입은 사람 죽었는데?”
“짜잔.”
두 팔을 벌리며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자 그녀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당신 왜 살아 있어?”
“왜 살아 있냐니, 죽었어야 한다는 그 말투 섭섭해?”
“후우, 회복력이 대단하다 싶었지만, 사람이 아닌 줄은 몰랐네.”
“뭔 소리야, 나 사람 맞아.”
세계수의 열매를 먹고 세계수의 관리인이 되면서 신체에 여러 변화를 겪긴 했다.
하지만 종족이 바뀌진 않았다.
나는 엄연히 사람이었다.
그 생각을 부정하겠다는 듯 그녀는 갑옷을 세웠다.
그러고는 배의 구멍에 오른팔을 집어넣었다.
등의 구멍을 통해 그녀의 오른손이 빠져나왔다.
마구 흔들리는 오른손이 마치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이런 데 사람이라고?”
“…….”
“몬스터 죽이고 가져왔다고 하는 게 더 신빙성 있겠다. 대체 뭐랑 싸운 거야?”
“스켈레톤 로드.”
“뭐?”
“스켈레톤 로드랑 싸웠다구.”
“당신 D급 헌터 아니었어?”
“응?”
“어?”
“……?”
어라?
내가 전직 D급 헌터였다는 사실을 말했던가?
전직 헌터였다고만 말했지, 등급을 말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갑옷 구멍에 넣었던 오른손을 빼내 내게 내밀며 말했다.
“줘 봐.”
“응?”
“감정해 줄게. 게이트 다녀왔으니 획득한 아이템 있을 거 아냐.”
오, 그렇지 않아도 어디서 감정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유재이는 한국 100대 대장간의 대장장이였다.
감정 스킬도 분명 웬만한 감정사 못지않을 것이다.
싱글벙글 웃으며 마법 주머니에서 스켈레톤의 무기와 갑옷과 망토를 꺼냈다.
그녀는 계산대에 차곡차곡 쌓이는 장비들을 보며 물었다.
“사체는 어떻게 했어?”
따스한 손길에 의해 정화되어 가루가 되어 사라졌어.
그리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으므로 어깨만 으쓱여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산대에 놓인 아이템들을 확인했다.
헌터들이 몬스터 사체를 해체업자들에게 넘기는 건 통상적인 일이었다.
아마 스켈레톤 로드의 사체를 해체업자에게 넘겼다고 생각했겠지.
“무기와 갑옷 품질이 아주 좋네.”
“그래?”
진화 몬스터는 더 강한 만큼 더 좋은 장비를 지닌다.
스켈레톤 로드의 장비들은 전부 상급 품질이리라.
아쉬운 점은 갑옷이 중갑이어서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다.
크기부터 내 몸에 맞지 않았고 무거워서 쓸 수가 없었다.
“응. 별다른 옵션은 붙어 있지 않지만, 순수하게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아.”
“어느 정도로 높은데?”
“막 A급 헌터가 된 사람들이 쓰면 딱 맞겠네.”
‘막 A급 헌터가 된 사람들’….
그 표현을 통해 장비들이 아주 최상급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순수하게 공격력과 방어력은 높아도 다른 부분에서 하자가 있다는 소리다.
스켈레톤 로드의 장비였으니 신체 능력을 저하하는 옵션이 붙어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너무 무겁거나 내구도가 형편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이어 그녀는 계산대에 놓인 마지막 아이템인 망토를 감정했다.
“…헐?”
몇 초 후 그녀는 당황스러운 소릴 내더니 종이에 메모를 적었다.
그러고는 메모를 적은 종이를 내게 건넸다.
“당신, 스켈레톤 로드가 진화 몬스터였구나.”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진화 몬스터의 경우 가끔 스킬이 붙은 아이템을 떨어뜨리곤 해.”
“알고 있어. 마나의 성질이 변해서 그런…. 설마?”
“응. 망토에 스킬 붙어 있어.”
시선을 돌려 그녀가 건네준 메모를 읽었다.
메모에는 망토의 이름과 옵션이 적혀 있었다.
[스켈레톤 로드의 그림자 망토] [방어력(中)↑, A등급 스킬 그림자 밟기.] [‘그림자 밟기’ – 하루 3번 자기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상대 그림자에서 나올 수 있음.]“그림자 밟기….”
스켈레톤 로드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내 뒤에서 나타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장비 스킬일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나저나, 하루에 3번 쓸 수 있다고?
로드는 1번밖에 사용하지 않았었다.
이 스킬을 사용했다면 내게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쓰지 않았던 걸까?
사용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로드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내게 머리가 쪼개져 죽었다.
그렇다면,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던 이유….
내가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려나?
접촉하고 있는 상대가 있으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모르는 사이 사용 횟수를 모두 썼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확실히 알려면 직접 실험해 보는 수밖에.
문제는,
“무기랑 갑옷은 내가 구매할게. 어차피 당신 이것들 안 쓰잖아.”
“그렇지.”
“망토는 어떡할래?”
“흠….”
내가 망토를 입지 않는다는 것, 바로 그게 문제다.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 내 전투 스타일과 망토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예전처럼 앞에서 탱킹하는 스타일로 싸운다면 상관없겠지만, 그게 내게 유효한 전투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도희와 태천이와 파티를 맺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탱커를 맡았던 것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팔아 버리기에는 스킬이 좋아서 아깝다.
“고민되는걸.”
“…개조해 볼래?”
“개조?”
유재이가 계속 고민하는 내게 ‘개조’라는 제안을 해왔다.
아이템의 성능을 유지한 채 다른 장비로 고쳐 만드는 것이다.
개조 이후 품질이 좋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고, 아이템 스킬의 사용 제한 횟수가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걸맞은 장비를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 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어쨌든 이 스킬만 써먹을 수 있으면 되는 거니까.”
“그렇긴 하지.”
“맡겨 볼래?”
“흠…, 뭐, 좋아.”
어차피 망토 자체로 써먹기에는 모호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쓸 수 있을 만한 장비로 바꾸는 게 낫다.
그녀는 내 전투 스타일을 파악하고 있으니 개조를 부탁하기에도 제격이다.
“값은 어떻게 할래? 지금, 개조 끝난 후?”
“전부 끝난 후에.”
“좋아. 그럼 이만 가 줄래? 다시 작업하고 싶어졌어.”
“잠깐만, 보여 주고 싶은 게 더 있어.”
계산대에 놓인 아이템들을 챙기던 그녀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또 있어?’라고 묻는 듯한 눈은 내 손의 마법 주머니로 향했다.
마법 주머니를 쥔 채로 가만히 있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있다며?”
“그게…-”
“흐응, 비밀 유지 계약서라도 써 주길 원해?”
“어떻게 알았어?”
“보여 줄 거 있다면서 우물쭈물하면 뻔하지.”
유재이는 챙겼던 아이템들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아까와 같은 동작이었는데도 기분이 나빠 보이는 건 착각일까.
“좋아, 써 줄게.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되는데?”
음. 착각이 맞는 것 같다.
그녀는 호기심이 왕성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비밀 유지 계약을 하겠다고 했으니 보여 줘도 괜찮겠지.
나는 마법 주머니에서 전대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꺼냈다.
“…통나무?”
누가 봐도 통나무처럼 보이는 나뭇가지를.
옆에 세워 놓은 세계수의 나뭇가지는 170cm 정도로 내 어깨보다 조금 더 높았다.
“…인정해, 그렇게 보일 수 있어. 평범한 통나무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이건 평범한 통나무가 아니야.”
“그럼?”
“비범한 통나무야!”
“그래도 통나무잖아.”
음,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없는걸?
평범하지 않고 비범하다고 해도 통나무는 통나무였다.
“…….”
“후우, 무슨 약장수도 아니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쉰다.
그러고는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빤히 쳐다본다.
감정 스킬을 사용해 통나무를 감정하고 있는 거다.
“어? 응?”
유재이는 손을 들더니 두 눈을 살살 비볐다.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한 갈래로 묶은 머리가 따라 흔들거렸다.
“세, 세, 세계수? 대체, 대체 이 귀한 걸 어디서 구했어?”
그녀는 이내 통나무가 사실은 통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급하게 물었다.
스켈레톤 로드의 사체는 어떻게 했냐고 물었을 때처럼 말없이 어깨만 으쓱여 대답을 대신했다.
이번에도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걸음으로 계산대에서 빠져나온다.
바로 통나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살펴보는 모습이 꼭 새 장난감을 갖게 된 아이 같다.
“후아…. 이건 이 자체로 무기로써 완벽해.”
“어라, 그럼 어떡해? 이대로 갖고 싸워?”
통나무로 몬스터를 때려잡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을 거 같긴 하다.
재미만 있을 것 같아서 문제지.
“아니, 밸런스가 안 맞아서 안 돼.”
그 말을 들어설까?
몬스터를 때려잡다가 휘청이는 모습과 휘두르다가 손에서 놓치는 모습이 연상됐다.
그건 굉장히 재미없을 것 같다.
“응.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어. 맡겨 줄래?”
“좋아.”
질문에 즉답했다.
어차피 그러려고 꺼낸 거였는데, 인제 와서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고마워….”
그리 말하는 유재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세계수를 다룰 수 있게 돼서 기쁜 듯하다.
그녀는 통나무를 두 손으로 껴안듯 들어 올렸다가 뭔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눈이 살짝 커지더니 멈췄다.
그 자세 그대로 날 보고는 눈빛을 빛낸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반짝 빛난다.
“혹시 또 있어?”
“…있어.”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고 있으니 왠지 없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통나무를 꺼냈을 때 함께 감정받으려고 했었다.
“진짜? 뭔데?”
기대감에 들뜬 얼굴을 보며 마법 주머니에서 전대 세계수의 수액을 꺼냈다.
그녀는 내 손바닥 위 놓인 초록빛의 수액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깜짝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말도 안 돼…!”
왜? 대체 무슨 효과가 있는데?
궁금한 마음에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
백도희 한국 도착까지 99시간 2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