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07
제208화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돌아왔을 때,
“김재식…?”
파티장 앞에 김재식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녀석은 날 발견하고는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딱 봐도 내게 할 말이 있어 기다리는 눈치다.
최희석도 그걸 알아차리고는 자리를 피해 주기 위해 말했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네.”
“네. 아, 기왕 참석한 거 이젠 파티 즐겨주세요.”
“하하, 그렇게 하지.”
“지민 씨도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 후 최희석과 안지민은 먼저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재식은 옆을 지나치는 두 사람과 짧게 인사를 나누고 날 돌아봤다.
톡, 톡톡.
화면을 두드리며 녀석의 앞에 섰다.
“부모님 모시지 않고 왜 혼자 나와 있어?”
“아, 부모님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 엄청 알콩달콩 중이세요.”
“금실이 좋으시구나?”
“네. 동생이 태어날까 봐 걱정될 정도로요.”
“흠, 흠!”
깜짝이야.
별소릴 다 해.
먹은 것도 없이 사레들 뻔했네.
“됐고. 하려는 말이나 해봐.”
“네?”
“그러려고 나 기다린 거잖아. 아냐?”
“맞, 맞아요.”
“그러니까 하라고.”
“…….”
김재식은 바로 말하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러웠다.
답답함이 차오르려고 할 때쯤, 녀석이 말했다.
“형. 혹시….”
“응?”
“저 백운천에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오…?”
백운천에?
그렇지 않아도 김재식을 꼬시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스로 가입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니….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는걸?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좋아.”
“감…! 감사합니다!”
“단.”
생각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조건은 붙여야겠다.
백운천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니까.
지금 상태로 김재식을 길드에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한재임이 커트할 게 뻔하다.
개나 소나 다 가입시킬 순 없다고 말하겠지.
재능 있다고 말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마 한재임이라면,
“B급 헌터가 된 이후 정식으로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해.”
-라고 말할 터였다.
또 “그게 올바른 순서다.”라는 말을 덧붙이겠지.
전적으로 옳은 말이기도 했다.
현재 C급인 김재식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른 길드원들은 녀석을 낙하산으로 보고 무시할 게 분명하다.
“우린 B급부터 가입 신청을 받아. 유일한 예외는 힐러고. 귀하니까. 그런데 너는-”
“창을 쓰죠….”
“그래. 그러니까, B급으로 올라간 이후 신청서를 제출해. 안 그러면 친분을 이용해서 길드에 가입하려는 거로 보일 거야.”
“친…! 친분이요? 그, 절대 아니에요, 형!”
“누가 내가 그렇게 본대? 다른 사람들이 널 낙하산으로 볼 수도 있다는 거지.”
“아….”
“원칙대로 해, 원칙대로. 그러는 게 널 위해서도 좋아.”
[세계수 어린나무가 당황했습니다.] [관리인의 발언을 믿을 수 없다고 전합니다.] [어린나무는 그 누구보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관리인이 ‘원칙대로 하라’고 말해 놀랐다고 전합니다.]그러니까 “널 위해서도 좋다”라고 말한 거야.
새싹이 네가 말한 대로, 나야 원칙이고 뭐고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놈이니까.
원칙을 지키지 않은 데에 따른 페널티 같은 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놈이라고.
하지만 김재식은 그렇지 않아.
정도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그러지 말걸’ 하며 땅 파고 들어갈 놈이야.
봐,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죄송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착해 빠져서는.
정말….
나 이런 거에 엄청 약한데.
“그리고 하나 더.”
“더요?”
“나 중국 가는 거 알지?”
“네. 뉴스에서 봤습니다. 사막에 풀 심으러 가신다고….”
“그거 두 달에서 석 달? 그 정도 걸릴 것 같거든.”
“엑? 정말요? 뉴스에서는 반년은 걸릴 거라던데….”
그렇겠지.
협회는 잠을 자는 시간까지 추가해서 계산했을 테니까.
잠을 자지 않은 채로 무기를 타고 솔라빔을 쏘아대면….
협회가 계산한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거다.
“그동안 B급으로 승급해둬.”
“네?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B급으로 승급해두라고.”
“혀, 형….”
“왜. 못할 것 같아?”
“그걸 제가 어떻게 해요. B급이 지나가던 고블린도 아니고….”
“해. 잔말 말고.”
“혀엉….”
“이게 어디서 비음을 섞어.”
“죄, 죄송….”
“그 정도 해줘야 받아줄 명분이 돼서 그래.”
“명분이요?”
“그래. 우리나라에 B급 헌터가 몇 명인 줄 알아?”
“6310명이요.”
“…….”
얜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정확한 수치가 맞기는 한 건가?
자신 있게 바로 대답한 걸 보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아니, 중요한 건 몇 명인지가 아니지.
“그, 6310명 중에 너여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
“아….”
“헌터 시작한 지 2년 만에 B급이 된다면, 그게 곧 6310명이나 되는 B급 헌터들 중에서 널 선택할 이유가 되겠지.”
“……!”
“B급이 싫으면 A급이 되든가.”
“네…?”
“그러면 아예 우리 쪽에서 먼저 찾아갈걸? 백운천에 가입하지 않겠냐고.”
“A급…. 하하….”
김재식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꿈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자기 재능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겠지.
“재식아.”
“네, 형.”
“석 달이다.”
“…….”
녀석은 시선을 슬쩍 피했다.
톡, 톡, 톡….
검지가 스마트폰을 세 번 두드렸을 때, 피했던 눈동자가 다시 나를 향했다.
개미굴에서 봤던 눈빛이다.
죽음을 각오했을 때 보여줬던.
“…네!”
대답 좋고.
“아, 그래. 돌아와 있을 때 B급 돼 있으면 선물 줄게.”
“선물이요?”
“그래. 엄청나게 좋은 거로.”
“……?”
“기대해도 좋아.”
진짜로 좋은 거니까.
***
파티장에 들어갔다.
김재식은 생각 좀 정리하겠다고 바깥에 혼자 남았다.
들어가자마자 서인철이 보였다.
서인철은 무대 위에 서서 이현욱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역시 음주는 가무와 함께 하는 법이지….
그런데 즐거운 파티에 왜 하필 발라드를 부른담.
듣기 좋으니 아무래도 상관없긴 했지만.
“…어라?”
유재이 앞에 우연후와 김지연이 앉아 있었다.
원래 앉아 있던 사람인 도희는 무대 앞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하긴, 도희로서는 유재이 홍수정과는 나눌 말이 따로 없겠지.
우연후는 밝은 얼굴로 유재이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 내용이 궁금했지만, 그것보다도 더 궁금한 게 생겼다.
무기가 유재이의 몸을 칭칭 감고 있다는 거다.
그녀의 드레스 때문인지….
그 모습이 꼭 거대한 뱀이 밤하늘을 휘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아, 당신 왔어?”
“걔 지금 자는 거야?”
“응. 배부르다면서 오더니 자더라구….”
“허….”
성도 떼고 부르더만.
이젠 달라붙어서 잠까지 자?
둘이 대체 얼마나 친해진 거람.
“…그래서?”
“응?”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요?”
자리에 앉으며 우연후에게 물었다.
그는 빙긋 웃고는 바로 대답했다.
“꼬시는 중이었습니다.”
“뭐?”
“실력 좋은 대장장이. 그리고 포션 메이커시잖습니까. 일대 길드로 스카우트 하고 싶었어요.”
“…….”
스카우트?
아니, 그런 거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할 것이지.
꼬시는 중이라고 말하면 어떡해?
그런 의문을 담고 바라보자 우연후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옆에 앉은 김지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인간, 일부러 그런 식으로 말한 거군.
“우리 일대 길드로 오시면 최고로 모시겠습니다.”
“이 사람이. 양심 있어요?”
“네?”
“우리 파티에 와서 우리 사람을 꼬드겨?”
“두 분 백운천 소속 아니던데요? 그럼 저에게도 기회가 있는 거 아닙니까?”
이야, 뻔뻔한 거 보소.
건물만 여기 있을 뿐이니 괜찮다 이건가.
한재임이 이런 걸 견제하려고 이번 파티에 두 사람을 끼워 넣어 과시하고자 한 건데.
그런 거에 아랑곳하지 않는 인간이 나타날 줄이야….
저 정도로 피부가 두꺼워야 대기업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건가?
홍수정이 날 보며 묻는다.
“어떡해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두 사람이 알아서 하셔야지, 만.”
“만?”
유재이를 바라본다.
그녀는 여전히 등을 꼿꼿하게 펴고 앉아 있었다.
각목 같은 모습으로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는 건 무기가 깰까 봐 조심하는 것이다.
귀엽기는.
“나로서는 나와 함께 있어 줬으면 하지.”
“그래?”
“응. 넌 내가 아는 한 최고의 대장장이거든.”
“아는 대장장이가 나뿐이니까?”
“응.”
유재이는 입술을 한 번 달싹였다.
평소보다 붉은 입술에서는 불만스러움이 내비쳤다.
짧은 불만을 거두고 우연후를 바라본다.
“…난 도구보다 재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해합니다. 귀수산 등껍질이나 와이번 가죽, 만드라고라 정도라면 상시 갖춰드릴 수 있습니다.”
꿀꺽….
두 여자는 동시에 침을 삼켰다.
잘 모르겠지만, 전문가로서 탐이 나는 재료들인가 보다.
한재임한테 그것들 좀 구매해 놓으라고 해야겠는걸….
“분명, 대장장이로서 마음껏 다루고 싶은 재료들이기는 해요.”
“하지만….”
두 사람은 동시에 날 바라봤다.
그래, 그렇지.
귀수산 등껍질, 와이번 가죽. 만드라고라?
그런 재료들이 뭐 그리 대수로울까.
이쪽은 무려 세계수인데.
그치, 새싹아?
“…그렇죠.”
그 사실을 아는 우연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말을 덧붙였다.
“그것들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 아니. 오로지 도운 씨만이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죠.”
“포기하는 겁니까?”
“네. 아무리 저라도 그건 구할 수가 없어서요.”
“깔끔하게 포기하….”
어라…?
아쉬운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유재이와 홍수정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로 생각지도 않은 듯하다.
이 인간, 설마…?
찡긋.
우연후는 윙크를 해왔다.
그러니까, 일부러 그런 거다.
자기 같은 놈들이 그녀들을 찾아올 거라는 경고였다.
확실히 백운천 소속으로 만들어두라는 충고이기도 했고.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그런가요?”
“그러니까 이거나 받아요.”
“네?”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그에게 내민다.
총 8병의 엘프산 중급 포션이 그 앞에 놓였다.
“포션? 아. 혹시, 수정 씨가 제조한 포션입니까?”
“네. 수정 공방 포션입니다.”
“사람은 다섯인데, 8병이군요?”
“2병씩 나눠 주려고 생각했거든요.”
“주한이 거가 빠졌겠네요.”
“하하. 전 그리 말한 적 없어요.”
“하하.”
우연후와 마주 보고 웃는 사이, 홍수정이 유재이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속삭이는 동안 홍수정의 시선은 나를 향했다.
나에 대해 속삭이는 게 분명했다.
궁금하게시리….
[어머, 어머.]응?
[도운 씨 거짓말 엄청 잘하네.] [너 알고 있었어?] [어린나무는 홍수정이 하는 말을 전합니다.]아, 귓속말하는 거 엿듣는 거야?
[어린나무는 정정하길 요구합니다.] [엿들은 게 아니라 들리는 거라고 설명합니다.]그게 엿듣는 거지, 뭐.
남이 하는 말을 몰래 가만히 듣는 건데.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뜻에 따라 설명하지 않기로 합니다.]뭘 또 그렇게까지 정직하고 그래.
같이 엿듣자.
[…….] [알고 있어. 이 사람 거짓말쟁이인 거.]새싹이는 같이 엿듣기로 한 것 같다.
유재이와 홍수정의 대화를 가르쳐주었다.
[괜찮겠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하는데.] [괜찮아. 귀여워.] […우리 재이 큰일 났네.]귀엽다니….
살다 살다 별소릴 다 들어보네.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을 때,
“맛이 기대되는걸요?”
우연후가 포션 뚜껑을 열었다.
역시 우연후….
다른 사람들과 달리 포션을 거침없이 열고 마신다.
포션을 한 모금 마신 그는,
“헤에….”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웃어?
설마 맛있는 건가.
김재식 같은 타입?
“맛있네요.”
“정말? 이번에도 맛이 달라?”
“마셔볼래?”
“어. 나 수정 공방 포션 꼭 마셔보고 싶었어.”
“자.”
그는 기대하는 김지연에게 포션을 내민다.
아. 그런 거구나.
맛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옆에 있는 김지연을 마셔보게 하기 위한.
이 인간 연기력 엄청난 거 보소.
그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불쌍한 어린양은 포션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으읍…!”
마시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야 그럴 수밖에.
마시기엔 맛이 너무 없고, 뱉어버리기엔 제조한 사람이 눈앞에 있고.
김지연은 자기가 속았음을 깨닫고 우연후를 노려보았다.
꿀꺽….
진퇴양난에 빠졌던 김지연은 결국 마시는 걸 선택했다.
제조한 사람을 앞에 두고 뱉을 수는 없었으니까.
“우연후….”
“굉장히 특색 있는 맛이지?”
“특색 같은….”
“응?”
“아하, 하하하! 그러네…. 굉장히 적절한 표현이네…! 엄청 특색 있어요!”
불쌍하게도 김지연은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홍수정의 눈치를 살피면서.
특색은 무슨.
그냥 맛이 없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