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08
제209화
파티에서 가장 먼저 돌아간 건 최희석이다.
9시 반쯤이었나?
그는 배수현과 함께 다급하게 자리를 떴다.
세 사람 중 가장 아랫사람인 안지민이 두 사람을 뒤따르기 전에 우리 테이블로 와 인사를 했다.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무슨 일 생겼습니까?”
“네. 남해에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해요?”
“아…. 더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금방 가셔서 아쉽네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길….”
꾸벅.
안지민은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바로 떠났다.
그걸 보고 홍수정이 안타까워했다.
“금요일 밤인데도 편히 쉬지 못한다니….”
“저러니까 헌터들이 협회 소속이 되려고 하질 않지.”
“그런데, 남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글쎄? 당신 아는 거 있어?”
유재이는 그리 물으며 날 바라봤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얼굴로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몰라?”
“나한테 묻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당신 별 잡다한 거 다 알잖아. 혹시나 했지.”
“나도 몰라.”
“그렇구나….”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테이블의 와인을 홀짝였다.
슬슬 그만 마셔야 할 것 같은데.
파티가 제대로 시작된 지 2시간도 채 안 됐는데 그녀의 뺨은 벌써 볼그스레해졌다.
말투나 시선은 멀쩡하니 괜찮으려나.
귀엽기도 하고.
[ ]뭐. 왜. 뭐.
[세계수 어린나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전합니다.]흠, 남해라….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최희석과 안지민이 움직인 걸까.
새싹아, 뭐 들은 거 없어?
[어린나무는 없다고 전합니다.]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배수현이 최희석과 안지민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줬고, 화면을 보자마자 최희석이 일어났습니다.]내용은?
못 봤어?
마나의 흐름?
[순간이동 마법이라고 전합니다.] [배수현이 최희석과 안지민에게 순간이동 마법을 발동했습니다.]이동 마법?
두 사람을 남해에 보내기 위해서겠군.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추측에 동의합니다.]“흐음….”
에이, 됐다.
더 생각해 봐야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뉴스로 나오겠지.
술이나 마시자.
-라고, 생각하고 2시간 후.
11시쯤 중년 남성 무리가 파티장을 떠났다.
가정이 있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해체업자 아저씨들이었다.
이번 파티 때 그동안 잘 지냈냐고 말 좀 붙이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저씨들이 날 불편하게 여기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A+급 헌터가 돼버려서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아니면 예전과 달리 동료가 아니라 직장 상사처럼 보이게 돼서일지도 모른다.
비장의 수단으로,
“이 대리 좋아하는 여자 생겼던데요.”
라는 말로 관심을 끌어내긴 했다.
그마저도 몇 분의 대화로 그치고 말았지만….
아저씨들과의 사이가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끼면서 그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4시간 후.
파티장이 널찍해 보일 정도로 길드원들이 떠나갔다.
그중엔 내 지인들도 포함돼 있었다.
“형, 이만 돌아가 볼게요. 3개월 후에…, 봬요.”
12시쯤 김재식 가족이 떠났고,
“형님의 진정한 동생 지상욱!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믄 흐르그 흐쓸튼드….”
1시쯤 지상욱 커플이 떠났으며,
“오빠. 저 아직 포기 안 했어요!”
“…동생은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두 분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2시쯤 우연후 일행이 떠났다.
마지막까지 남은 내 지인인 유재이와 홍수정은 새벽 3시가 됐을 때 리터이어했다.
꾸벅꾸벅….
그녀들은 이마로 테이블을 부숴버리는 게 목적인 듯 자꾸만 머리를 흔들어 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조용한 재즈가 아니라 록이었다면 참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유재이는 그나마 홍수정보다는 정신을 유지했다.
“예상왼데.”
“뭐가…?”
“생각보다 술 약하네?”
“억울해.”
“응?”
“피곤해서 그런 거야. 원래 이 정도로는 안 취해….”
“못 마시는 애들이 그렇게 변명하곤 하지.”
“…두고 봐. 다음에 제대로 마셔줄 테니까.”
“다음에?”
“그래. 1대1로 붙어. 그때 내가 꼭 당신 비웃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 단둘이 마시기로 하는 거야?”
“……흠, 흠! 그, 근데. 당신도 많이 마셨잖아. 왜 하나도 안 취해…?”
“그야, 술 안 취하는 몸이라서?”
“……!”
“몰랐구나?”
말한 적 없던가?
새싹이 덕분에 독 같은 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거.
아, 아니다.
유재이는 내가 독에 면역이란 것을 알고 있다.
용두식 때 직접 봤었으니까.
아마… 독 면역이라는 게 술에도 통할 거로 연상하지 못한 것뿐이겠지.
“너무해. 날 속였어….”
“속이긴 내가 뭘 속였다고 그래.”
“정정당당한-”
쿵…!
옆에서 박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씨구….”
“수정아?”
홍수정은 드디어 자신의 이마로 테이블을 부숴버리기로 작정했나 보다.
지구의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을 받아버렸다.
물론, 당연하게도 테이블은 그녀의 바람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듯 간단히 무시했다.
내일 일어나면 홍수정 이마엔 작은 혹이 하나 나 있겠군.
유재이가 그녀를 톡톡 두드렸다.
“일어나, 수정아.”
“으응?”
“여기에서 자면 안 돼. 화장은 지우고 자야지.”
“괜찮아요. 후회는 내일의 내가 할 거예요….”
“또 트러블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일어나라니까…?”
“…….”
홍수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신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유재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손을 뻗었다.
눈앞에 있는 화이트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다.
어딜.
바로 와인을 빼앗았다.
“그만 마셔.”
“싫어, 더 마실래….”
“너도 수정 씨처럼 되려고?”
“후후….”
“왜 웃어?”
“후회는 내일의 내가 할 거야.”
“…….”
똑같은 말 하는 것 보소.
그래, 친구는 끼리끼리 만나는 거지.
유재이는 내게 흰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마구 흔들어 댄다.
“그러니까 와인 이리 줘…!”
“…….”
이 애교쟁이는 대체 누구지.
술버릇이 애교 부리는 건가?
좋아, 결심했어.
유재이 다른 사람들 앞에선 절대 술 많이 못 마시게 해야지.
“일어나. 바래다줄게.”
“싫어. 더 마신다니까, 아…?”
“……!”
“우와, 나 난다….”
난다.
그 말은 술에 취해서 나오는 주정이 아니다.
그녀는 정말로 날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던 무기에 의해서.
“자는 줄 알았더니?”
「방금 깼다.」
“나한테 와서 더 자.”
「괜찮다. 재이는 내가 바래다주고 오도록 하지.」
“네가? 왜? 내가 있는데.”
「나라면 한 번에 둘을 옮길 수 있으니.」
그러고는 무기는 꼬리로 홍수정을 들어 올렸다.
유재이와 달리 그녀의 취급은 별로 좋지 못했다.
유재이가 날개옷 입은 선녀와 같은 모습으로 날고 있다면, 홍수정은 허리를 휘감아서 마치 짐짝처럼 들어 올려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홍수정은 허리가 반으로 접혔고 두 팔과 두 다리도 땅을 향해 축 늘어졌다.
아무래도 사심이 들어간 것 같은데….
“…나도 한꺼번에 옮길 수 있어.”
세계수의 뿌리를 쓰며 말했다.
왼손가락 하나가 나무뿌리로 변해 뱀처럼 구불거렸다.
무기는 턱으로 뒤를 가리켰다.
「관리인을 찾아온 사람도 있고.」
“찾아온?”
돌아보니, 태천이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태천이는 파티장 바깥으로 나가는 무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재이 씨 괜찮아?”
“괜찮아. 취해서 졸려 하는 것뿐이야.”
대답하며 무기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무기의 몸에 휘감긴 유재이와 홍수정을 봤다.
유재이는 마치 날개옷을 입은 것 같아 아름다워 보였지만, 내 시선은 그녀보다도 홍수정에게 더 향했다.
꼬리에 휘감긴 홍수정이 이리저리 흔들렸기 때문이다.
딱 울릉도에서의 내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잘됐네….
울릉도에서 그렇게 한 번만 안아보려 하더니.
그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이루게 돼서.
자느라 기억을 못 한다는 게 한이 되겠어.
“근데, 왜?”
“네가 슬슬 재이 씨 바래다주려는 것 같아서 방해하려고 왔지.”
“…….”
“농담이야.”
“농담이어야 할 거야.”
“정말이라니까. 나는.”
“너는?”
“어. 도희는 진심이 살짝 섞인 것 같던데.”
“…….”
“도희한텐 뭐라고 안 해?”
“자. 실없는 소린 그만하고. 무슨 일이냐니까?”
“따라와.”
태천이는 뒤, 그러니까 파티장 앞쪽을 가리켰다.
그쪽에는 백운천의 핵심 멤버들이 테이블을 여러 개 겹쳐 놓고 앉아 있었다.
미성년자인 이연지까지 함께였다.
부모님을 동반한 파티라서 남아있을 수 있었나 보다.
흠. 무슨 일이지?
“설마 이 시간에 회의하려는 건 아니지?”
“아냐. 내가 주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주고 싶은 거?”
“응. 좋은 거야.”
아, 뭔지 알겠다.
유재이가 태천이의 부탁으로 만들던 액세서리 세트.
그걸 나눠주고 싶은 게 분명하다.
생각보다 빨리 취한 것이 피곤해서 그런 거라더니….
저걸 제작하느라 피곤했던 거구나?
그럼, 할 수 없지.
다음에 마시는 수밖에.
단둘이.
***
6시간 전.
최희석이 한진환의 얼굴이 한국에서 최고로 두껍다는 걸 도운에게 말하고 있을 때.
그 얼굴 가죽이 두꺼운 장본인은 남해의 한 외딴섬에서 염제 윤건과 싸우고 있었다.
아니, 두 사람의 싸움은 싸움이라고 표현하기엔 적절하지 않았다.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건 윤건 뿐이었으므로.
하늘에 떠오른 한진환은 윤건을 내려다보며 모든 공격을 여유롭게 대처했다.
윤건이 뿜어낸 화염은 태양이 뜬 것처럼 크고 거셌으나 그에게는 닿지 못했다.
윤건과 지켜보던 조주현의 머릿속에 ‘닿았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한진환은 천둥소리 한번과 함께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15년 동안 이어져 온 두 사람의 상황과 같았다.
닿았다고 생각하면 저 멀리 가 있고, 간신히 따라잡았다고 생각하면 더 멀리 가 있는….
붙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관계.
“뇌제…!”
그것을 부정하듯 윤건은 한진환의 이명을 부르짖었다.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밤의 어둠이 다시 외딴섬을 덮쳤다.
“…내 흉내라도 내는 거요?”
윤건은 온몸에 화염을 두른 채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은 한진환이 버스트 모드를 쓴 모습과 비슷했다.
정말 흉내를 낸 듯한 모습이었다.
“단순한…! 흉내가 아니다!”
콰앙…!
섬에 서 있던 윤건이 사라졌다.
천둥소리와 함께 이동했던 한진환처럼 윤건도 순식간에 이동한 것이다.
두 헌터의 싸움을 지켜보던 조주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윤건이 자신의 눈으로도 좇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인 것을 보고 한진환과 비슷한 경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주현의 생각은 옳았다.
윤건은 자신의 힘으로 번개처럼 움직이는 한진환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 사실에 관해서, 한진환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단한데, 아저씨.”
“……?”
그 순간 윤건은 기이함을 느꼈다.
몸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한 감각….
그 감각은 마치 본인의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분명 한진환처럼 빠르게 움직이게 됐는데도, 윤건은 본인이 너무나도 느리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나 말고 이 ‘영역’에 다다른 건 아저씨가 처음이야.”
그것은 한진환 때문이었다.
그의 움직임을 두 눈으로 좇을 수 있게 됐기에, 현재 자신이 얼마나 느린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윤건은 또 한 가지의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한진환이 A+급 헌터라는 것.
S급 헌터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S급 헌터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
“근데, 아직 일러. 다음에 다시 와.”
그 말을 끝으로 윤건은 의식을 잃었다.
한진환에게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건은 어딜 어떻게 무엇으로 얻어맞았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