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14
제215화
빠르게 변하던 시야가 멈췄다.
눈앞에는 정 세실리아 수녀와 개미 인간이 있었다.
무수히 많은 대왕 개미들도 있기는 했지만, 녀석들은 무기를 보고 감히 나서지 못했다.
도망치고 싶은 듯 보였으나 개미 인간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늦었다, 백도운.”
콰직…!
개미 인간은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정 세실리아를 짓밟았다.
“내가 조금 더 빨랐다.”
“…….”
정확히 놈이 짓밟은 건 그녀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실드다.
실드는 아주 미약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형태가 조금 이상했다.
도희의 실드는 둥근 돔 같은 형태여야 했는데, 지금 그녀를 보호하는 실드는 마치 마나 실드처럼 몸을 감싸고 있었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당황합니다.] [실드에서 관리인 동생의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전합니다.]도희의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럼, 실드가 깨졌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유지되고 있는 건데.
정 세실리아의 마나로…?
[어린나무는 잘 모르겠다고 전합니다.]…어찌 됐건.
도희의 마나로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실드는 그리 강력하지 못할 터였다.
대왕 개미들이 갉아대는 건 막아낸다고 해도, 크라우드 간부인 개미 인간의 공격은 막아내지 못하겠지.
설령 그게 단순히 짓밟아대는 것일지언정.
타앙!
개미 인간이 실드를 찼다.
약하게 유지되던 실드는 그 공격으로 인해 깨졌다.
금방 다시 수복되기는 했으나 역시 예상한 대로 실드는 개미 인간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정 세실리아는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대단한걸.
저게 다 무슨 소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허튼 생각하지 마라. 백도운.”
내가 뭘 생각했다고 지랄이야.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뱀. 네놈도다.”
「뭐라?」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내가 더 빠를 거다.”
「이 벌레 같은 놈이 감히….」
뱀이라고 불려서일까.
행동을 강제 받아서일까.
무기는 기분이 상한 듯 콧김을 거칠게 내뿜었다.
그러나 더 나서지는 않았다.
인질의 목숨을 두고 도박을 할 수는 없어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한 발자국 발을 내디뎠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내가 왜?”
“뭐?”
“야. 나 진짜 이해가 안 가서 묻는 건데. 그 수녀가 내게 인질로서 작용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냐?”
“뭐? 그게 무슨…?”
“도희도 태천이도 아닌데. 네가 그 여자를 죽인다고 협박하면 내가 말을 들을 줄 알았냐고.”
“……!”
어째 개미굴에 오면 이런 일이 생기네.
저번엔 김정철 부하 놈들이 김재식을 인질로 잡고 협박을 했었는데….
참 멍청하고 어리석은 놈들이었다.
인질엔 절대적인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말이다.
아주 소중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개미 인간도 내게 아주 소중한 사람을 인질로 잡지 않았다는 점에서 놈들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아주 똑같지는 않았다.
김재식은 헌터지만, 그녀는 성직자일 뿐이니.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지금 상황에 둘의 차이가 무엇이 중요한지 묻습니다.]중요해.
성직자는 신의 의지에 따라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지 헌터처럼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이런 데서 누군가의 인질로 죽어도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인즉슨.] [관리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그러니까, 방금 내가 한 말 전부 연기라는 거지.
정 세실리아를 구하기 위한.
[……!] [어린나무는 당황합니다.] [연기라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털어놓습니다.]믿지 못하겠다니….
연기인 게 당연하잖아.
그런 게 아니면 내가 여기까지 뭐하러 왔겠어?
[어린나무는 퀘스트를 깨기 위해 온 줄 알았다고 털어놓습니다.]엥?
그저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였다면 굳이 혼자 올 필요가 없지.
도희와 태천이도 데리고 왔을 거야.
내가 이곳에 무기하고만 온 이유는 딱 하나.
그게 정 세실리아를 구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야.
[확률?]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설명을 요구합니다.]인질은 인질로서 소용없거나 필요 없을 때 인질이 아니게 돼.
지금 내가 연기하는 것도 그걸 위해서고.
하지만 도희랑 태천이는 이런 걸 잘 못 해.
성녀와 기사는 인질을 구하고자 인질범의 뜻에 따르는 선택을 하고 말지.
두 사람은 머릿속으로는 그러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알아도 마음을 따르고 마는 녀석들이니.
그걸 잘 알기에 나만 이곳에 오는 걸 수긍한 것이기도 하고.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행동에 그런 깊은 뜻이 있는지 몰랐다고 전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을 줄 알았다고 털어놓습니다.]너무하네.
나도 생각하고 움직여.
가끔은.
“그럼….”
개미 인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새싹이도 속은 연기다.
아마 놈 또한 속아 넘어갔을 것이 분명하다.
“네놈은 이 수녀를 구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닌 거냐?”
“어. 구하러 온 거 아닌데.”
“아니라니….”
뭐라고 말해야 납득하려나.
어, 그래.
새싹이가 말한 걸 말하면 되겠다.
“난 퀘스트 깨러 온 거야.”
“퀘스트?”
“두 마리.”
검지와 중지를 들어 보였다.
마족의 권속을 사냥하라는 퀘스트는 8/10명을 충족시켰다.
현재 완료 보상은 전대 세계수의 솔방울이었고.
퀘스트 완료 버튼을 누르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아이템이다.
횟수를 채울수록 보상이 좋아지고 있으니 꾹 참을 거지만.
“앞으로 두 마리만 더 잡으면 딱 열 마리를 채우게 돼.”
“……!”
“네가 아홉 마리 째라는 거지.”
“하!”
두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개미 인간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정 세실리아를 내려다봤다.
“정말 놀라운 일이로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주시옵고….”
“이런 상황에도 기도하는 건가. 널 구하러, 아니. 구하러 온 것도 아니랬지….”
“구하….”
뚝….
그녀의 기도가 끊겼다.
대신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개미 인간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후, 후후….”
웃음소리가 개미굴에 울렸다.
다만, 그 웃음소리는 개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정 세실리아.
그녀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즉, 그녀의 어깨가 떨리는 건 울어서가 아니라 웃어서였다.
“아하하…!”
“웃, 웃어?”
그녀가 웃자 개미 인간이 당황했다.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매한가지다.
갑자기 왜 웃어?
정 세실리아는 고개를 들고 개미 인간을 노려보았다.
“당신. 도운 오빠에 대해 진짜 요만큼도 모르는구나?”
“뭐?”
“오빠는 나 같은 거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해. 내 목숨 따위 오빠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하지도 못한다고!”
“……!”
그 말에 개미 인간은 나와 그녀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럴 때마다 더듬이가 휙휙 흔들거렸다.
개미의 머리여서 표정을 정확히 읽을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당황하고 있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말이 내게 인질은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쐐기가 된 듯하다.
그럼….
개미 인간은 이제 어떡하려나?
[어린나무는 권속이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지 묻습니다.]어떻게?
그야, 둘 중 하나겠지.
인질이 소용없다고 생각해 풀어주거나.
인질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 죽이거나.
보통의 인질범이라면, 김정철의 부하 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질을 풀어주고 물러났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개미 인간이 보통의 인질범이 아니라 크라우드라는 점인데….
아마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네.
[그렇다면….]대비해야지.
개미 인간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눈동자를 굴려 무기를 바라본다.
놈이 정 세실리아를 공격할 경우 나보다 무기가 더 빨리 대비할 수 있어서다.
무기는 내 시선의 이유를 파악하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서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는구먼.
“뭐해?”
정 세실리아가 물었다.
우물쭈물 서 있던 개미 인간이 그녀를 쳐다봤다.
기분 탓일까….
내려다보는 쪽과 올려다보는 쪽의 표정이 뒤바뀐 듯하다.
놈을 올려다보는 정 세실리아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계속 그러고 서 있을 거야? 그럴 거면 이만 꺼져 주지 않을래? 도운 오빠랑 난생처음 데이트 좀 해보게.”
“이년이…. 죽여달라고 아주 사정을 하는구나.”
“웃겨. 죽는 게 뭐 대수라고.”
“뭐?”
“나한텐 그냥 주님 계신 곳으로 가는 것뿐이야. 아. 전입 신고를 해야 하는 게 귀찮기는 하겠다.”
“이, 이 미친 사이비 년이…!”
배짱 좋은 것 좀 보소?
역시 우리 보육원 출신답군.
마음 같아선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고 구하고 싶은데….
[그런 관리인을 위해] [어린나무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전합니다.]좋은 아이디어?
뭘 떠올렸는데?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스킬 목록을 확인하길 제안합니다.]스킬 목록?
나 뭐 새로 얻은 거 없는데?
[스킬 목록 확인을 다시 한번 제안합니다.]그래, 알았어.
지금까지 새싹이 말 들어서 안 좋았던 적 없으니까.
새싹이 말대로 스킬창을 열어 목록을 확인했다.
역시 변경된 점은 없었다.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었고, 지금 상황에 쓸만해 보이는 스킬은 딱히… 응?
어라?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높이 쳐듭니다.] [자기는 지금 아주 의기양양하다고 전합니다.]이런 바보 같은…!
따악!
손으로 이마를 세게 쳤다.
그 순간 개미 인간이 홱 고개를 돌려서 날 노려봤다.
주변의 대왕 개미들도 내게 달려들려는 듯 몸을 움찔거렸다.
내가 공격이라도 한 줄 알아서다.
“……?”
개미 인간과 대왕 개미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서 죽이라고 노발대발 대던 정 세실리아와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무기도 마찬가지다.
이마를 세게 때리고는 가만히 서 있으니 이상한 거겠지.
「관리인?」
“…하하. 미안. 내가 지금까지 바보 같은 짓을 해서 말이야.”
「그 많은 짓 중에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이게.”
무기의 머리를 후려치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당연히 무기는 아주 손쉽게 머리를 옮겨 손바닥을 피했다.
“뭘, 하는 거냐. 백도운….”
“응?”
“지금 이게, 너한텐 다 장난 같나?”
“뭐래. 나 지금 엄청 진지해. 정말로. 내가 한 바보짓을 반성하고 있어.”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그러니까, 이런 거야.”
설명을 해주고자 천천히 손을 내렸다.
손을 내리면서 허공을 움켜잡는다.
늘 그렇듯이 검지만이 접히지 않았다.
그 상태로, 나는 스킬을 발동했다.
“…세계수의 춤.”
그와 동시에 허공에 새싹이가 떠올랐다.
게임 속에서 늘 보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당연히 실물 크기는 아니었다.
내 몸통만 하달까?
“세, 세계수…!”
개미 인간은 내 몸통만 한 나무 형상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그놈은 내가 세계수를 소환한 거라고 착각한 듯 다급하게 정 세실리아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놈의 주먹은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나아가다가 멈췄다.
시선 또한 그녀에게서 허공에 떠오른 새싹이에게로 옮겨진다.
세계수의 춤이 완벽하게 통한 것이다.
“…근데 새싹아.”
[……?]“꼭 춤춰야 해?”
[세계수의 춤이니 당연히 춰야 한다고 설명합니다.]그럼 춤을 춰주면 안 될까….
지금 네가 하는 건 춤이라고 부르기엔 ‘춤’이라는 단어에 너무 미안한데.
그건, 뭐랄까….
격렬한 몸부림?
그 단어에 더 가깝다고.
“……???”
저거 봐, 저거.
정 세실리아가 어이가 없는 얼굴로 보고 있잖아.
「으으음….」
옆에 있는 무기도 다를 것 없는 얼굴이고….
아마 마법으로 이곳을 지켜보는 도희와 태천이도 비슷하겠지.
하아….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어야 하는 걸까.
***
코인시던스 후 빌딩 옥상.
이태천과 백도희는 마법으로 도운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연히, 바로 방금 그가 발동한 스킬 세계수의 춤 또한 보았다.
“…도희야.”
“네.”
“지금 우리가 뭘 보는 거냐?”
“세계수의 춤이요.”
“…몸부림인데?”
“…….”
“어떻게 봐도 몸부림인데?”
“춤이라잖아요.”
“…….”
이태천은 마른세수를 했다.
저놈은 스킬도 꼭 저 같은 걸 써….
***
[세계수의 춤(A등급) – 마나로 만들어진 세계수(현재 조금 더 자란 어린나무 상태)의 형상이 춤을 춰 적의를 가진 존재를 도발한다.] [1분 동안 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