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16
제217화
오른손이 나무뿌리에서 원래대로 되돌아온다.
도희의 빛의 속박에 포박된 개미 인간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군 채다.
살려달라고 해서 살려줬는데도, 얼굴에서는 기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걸 포기한 사람의 얼굴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다.
놈이 말한 살고 싶다는 건 모든 힘을 빼앗기고 심장까지 고장 난 채로 목숨만 부지하는 것이 아니었을 테니까.
뭐, 나로서는 살려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도희가 협회에 데려가자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개미 인간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무기의 한 입 거리 야식이 됐겠지.
“오오?”
“오라버니?”
도희가 나를 불렀다.
도희의 품엔 정 세실리아 수녀가 안겨 있었다.
정 세실리아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시간도 시간인 데다 겪은 일도 겪은 일이니 피로했을 테지.
“…방금 퀘스트 알림창이 떴어.”
“퀘스트요?”
“응. 완료 보상이 세계수의 열매라네?”
“네?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로.”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퀘스트 알림창을 다시 확인했다.
[현재 완료 보상 – 세계수의 열매]세계수의 열매….
역시 9/10쯤 되니까 엄청난 게 보상으로 나온다.
하트 브레이크 후유증인 고장 난 심장까지 고치는 세계 최고의 영약.
완료 버튼을 누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뭐….
“받진 않을 거지만.”
“안 받을 거라고요?”
“어.”
“아니, 대체 왜?”
태천이 눈을 휘둥그레 뜬다.
퀘스트 보상을 받지 않겠다고 말하니 당황한 거다.
중간 보상이라는 걸 말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앞으로 하나.
마족의 권속을 한 마리만 더 잡으면 10/10이 된다.
100% 완료 보상은 분명 세계수의 열매보다도 더 좋을 터였다.
그걸 두 사람에게 짧게 설명해주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또 100% 완료 보상이 무엇일지 고민하기도 했다.
“솔방울이나 열매보다 더 좋은 거…. 그게 뭘까요?”
“글쎄. 전혀 감도 안 잡히는데?”
“혹시….”
“혹시?”
“지금까지 주겠다는 보상 다 주는 거 아닐까요?”
“엇? 그거 그럴듯한데? 게임에선 흔한 클리셰이기도 하니까.”
“그렇죠?”
“너무 욕심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죠?”
긁적긁적.
도희는 목을 긁는다.
태천이가 말한 대로 자신이 한 말이 너무 욕심이지 않나 싶었던 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주겠다는 보상을 다 준다…?
그건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전개이긴 하지만, 현실 측면에서 보면 너무 욕심 그득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솔방울이나 열매보다 더 좋은 게 뭐가 있을지 생각이 되지 않았다.
정말 무엇을 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새싹아. 혹시 너는 알아?
[세계수 어린나무는 모른다고 전합니다.] [이번 퀘스트의 보상은 전대 세계수가 결정한 것이므로 현재 세계수인 자신은 알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역시나….
그렇다면 알 방법은 마족의 권속을 쓰러뜨리는 것뿐이겠네.
생각할수록 아쉬운걸.
아까 그 해골 놈을 잡았더라면 10마리를 다 채우는 거였는데 말이야.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아쉬워하지 말라고 전합니다.] [기회가 아니라 위기였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합니다.]위기? 왜?
[문 뒤쪽에 다른 권속들이 대기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 여러 마법으로 습격을 방비해뒀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입니다.]그건….
새싹이 네 말이 맞네.
그 해골이 혼자 있었을 거란 보장은 없는 거지.
가뜩이나 강한 놈인데 동료와 함께 있었더라면….
심지어 버섯은 크라우드의 핵심이 되는 건 네 명이라고 했었고.
즉, 그 수준의 적이 3명 더 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런 4명과 싸우게 됐다면, 아무리 우리라도 무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린나무는 그게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전합니다.]좋아.
방금 일은 기회가 아니라 위기에서 벗어났던 거로 생각하자.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아울러 방금 에너지 정화 작업을 완료했다고 설명합니다.]새싹이가 보낸 메시지 옆으로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에너지 정화에 관한 설명이다.
[이번에 세계수의 뿌리로 얻게 된 마나는 총 42만240입니다.] [세계수 관리인이 첫 번째 결실에 필요한 에너지를 전부 모았습니다.]드디어 결실이…!
[첫 번째 결실이 자라납니다.] [세계수를 확인해주세요.]새싹이를?
시스템 창 말대로 바로 새싹이를 확인했다.
화면을 들여다보자, 새싹이는 조금 전과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크기가 더 자라난 것은 아니다.
새로 나뭇가지가 자라난 것도 아니다.
새싹이에겐,
“꽃…?”
푸른 꽃이 피어나 있었다.
은은하게 빛을 뿜는 푸른 꽃들이.
그 모습을 발견한 엘프들이 두 팔을 높이 쳐들며 기뻐했다.
몇몇 엘프들은 서로서로 얼싸안고 새싹이를 중심으로 강강술래를 하기도 했다.
얼굴은 (^0^) 이모티콘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밝다.
나무에 꽃이 자라났을 뿐인데 기뻐하는 걸 보니, 엘프들은 이게 결실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
“도운아, 뭐라고? 꽃?”
“새싹이 말이야. 방금 꽃을 피워냈어.”
그리 말하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결실이라기에 막연하게 열매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하기야 꽃도 나무의 훌륭한 결실이긴 하지.
근데 꽃이 자라난 거로 끝인 건가?
설마 저 꽃들에서 솔라빔이 쏘아지고 그러는 건….
…에이, 그건 아니겠지.
“정말 꽃이네.”
“우와…. 엄청 예쁜데요?”
톡, 톡….
도희는 화면을 두드렸다.
새싹이에게 자라난 꽃이 마음에 든 것 같다.
흐음….
새싹아.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어?
내가 뭘 부탁할 줄 알고?
[어린나무는 동생에게 꽃을 따다 주고 싶은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런 거라면 몇 송이쯤 허락하겠다고 전합니다.]우리 새싹이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눈치가 빠를까.
고마워.
이따가 성역에 들러서 몇 송이 따갈게.
[덧붙이자면.] [어린나무는 유재이에게도 따다 주는 것이 좋을 거라고 조언합니다.]유재이?
으음….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아, 그게….
유재이한테는 꽃을 건네줘도 꽃으로서 좋아할 것 같지가 않네.
새로운 매직 아이템을 만들려고 할 것 같아.
홍수정만큼 변태적인 시선을 보내진 않겠지만.
[…….]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생각에 긍정합니다.]“오라버니.”
“…어?”
“뭘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어요?”
“아, 내가 또 중얼거렸어? 새싹이랑 대화를 좀 하느라…. 왜?”
“이만 돌아가자고요. 수연이도 편하게 재우고 싶고.”
도희는 정 세실리아를 가리켰다.
그녀는 도희의 말대로 불편한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몸이 자꾸만 앞으로 기울어서 처박힐 것 같아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아, 미안. 먼저 가.”
“먼저 가라고요?”
“응. 여기 개미굴이잖아.”
“…그래서요?”
“여기에서 할 게 남았거든.”
“할 거, 요…?”
“……?”
도희와 태천이는 서로를 쳐다봤다.
이곳에 남아 할 게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는 얼굴이다.
그럴 거다.
앞으로 내가 어디로 갈 건지는 김재식 정도만 유추할 수 있겠지.
그때 같이 있었던 건 그 녀석뿐이니까.
그 녀석도 내가 그곳에서 뭘 할지까지는 모를 테지만.
***
「날 속였군….」
유영하며 따라오던 무기가 멈춰 섰다.
그러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마치 ‘네가 어떻게 내게?’라고 묻는 듯했다.
그야말로 배신당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뭐가?”
「좋은 곳이라고 하지 않았나.」
“맞는데?”
「저렇게 썩은 내가 나는 곳이 어떻게 좋은 곳일 수가 있는 거지.」
“썩은 내뿐일까. 독기까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
무기는 ‘얘가 미쳤나?’ 싶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뭐, 저런 반응은 정상적인 거다.
냄새나는 시체 보관소로 가는데 좋아하는 게 비정상적인 거겠지.
악취를 좋아하는 특이 취향이라면 또 모를까.
[어린나무는 관리인을 바라봅니다.]나는 이유가 있는 쪽이잖아.
너한테 줄 비료를 만들 수 있으니까 좋아하는 거야.
비료를 구할 수 없다면 시체 보관소 따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갈 수 있겠어?
아니면 뭐야.
비료 만들지 말고 돌아갈까?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시체 보관소로 들어가길 요구합니다.] [이어 어서 빨리 비료를 만들어주길 바랍니다.]“저 시체 보관소를 정화할 거야.”
「정화?」
“어. 그러면 새싹이에게 줄 비료가 만들어지거든.”
「호오?」
무기는 흥미로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주 조금 흥미가 일었을 뿐이다.
시체 보관소로 함께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은 듯했다.
「잘 다녀오도록.」
“…그래.”
무기의 배웅을 받으며 시체 보관소로 들어갔다.
무주 개미굴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대왕 개미들의 사체들이 썩고 산성액에 녹아내리면서 거대한 독기 덩어리가 된 모습이다.
그 덩어리를 향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스마트폰에서 흙이 마구마구 뿜어져 나왔다.
분수대가 된 기분을 느끼며 거대한 덩어리에 흙이 잘 묻어나도록 골고루 뿌린다.
부정한 기운과 악취가 점점 사라지고 시체 보관소를 가득 메웠던 대왕 개미의 사체들도 사라졌다.
자연히 그 위에 있던 내 몸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안정적으로 착지한 발아래에 동그란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새싹이에게 줄 비료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만족스러운 마음을 전합니다.]내 주먹보다 큰 덩어리에서는 상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피톤치드 방향제를 들고 있는 느낌이랄까?
톡, 톡.
따스한 손길로 비료와 새싹이를 어루만진다.
비료는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스마트폰을 향해 날아갔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화면으로 들어간다.
[어린나무가 A+등급 비료를 얻었습니다!]역시 A+등급이구나.
개미 인간 놈이 시체 보관소를 깔끔하게 정리할 리도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데, 화면에서 흰빛이 뿜어지며 비료가 전부 전달됐음을 알렸다.
화면을 바라보니….
“…뭐가 달라진 거야?”
[어린나무는 나뭇가지가 새로 자라났다고 전합니다.]“아, 그래?”
감개가 무량한걸.
이젠 나뭇가지가 하나 더 자라났다고 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니.
예전엔 나뭇가지가 자라나면 표가 딱 났는데 말이다.
“캐릭터 창.”
최대 마나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확인해볼까나.
[캐릭터 창] [백도운 – 세계수 관리인] [타이틀 – 세계수의 동반자] [HP – 100%] [MP – 1035만130/2070만260(50% 상시 공유 중)] [SP – ∞] [상태 – ] [호감도 – 이무기(보통)]최대 마나는… 총 70만이 증가했다.
무기와 상시 공유 때문에 실질적으로 늘어난 건 35만 정도였지만.
「관리인?」
무기가 시체 보관소로 들어왔다.
냄새 때문에 들어오기 싫다더니….
뭐, 이젠 방향제를 뿌린 듯 좋은 향기밖에 나지 않으니까 들어올 만도 하지.
「내게 공유되는 마나가 조금 늘어났던데.」
“새싹이에게 비료 줘서 그래. 나뭇가지가 새로 자라났거든.”
「아. 그런 거였군.」
“그러니까 좋은 곳이라고 했잖아?”
「인정하지. 그럼, 이제 할 일은 끝난 건가?」
“응. 돌아가자.”
무기에게 두 팔을 뻗었다.
무기는 “알겠다”라고 말하며 날아와 나를 휘감았다.
그러자마자 시야가 빠르게 변했다.
새삼스럽지만, 버스트 모드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지금보다 더 빨랐다면 멀미를 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