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85
제286화
“…….”
“…….”
원탁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천리안 마법으로 본 전투 결과들 때문에 둘 다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허공에 떠오른 영상들에서 서 있는 이들은 전부 백운천의 간부들이었다.
원과 해골의 부하들은 모두 죽었다.
어떤 부하는 방심하다가,
한 부하는 오만을 부리다가,
충성스러운 부하는 본 실력을 다 했음에도 패배해 죽었다.
그렇지 않은 부하는 아직 결계 속에 있어 승패를 알 수 없었으나 큰 기대를 할 수는 없었다.
원과 해골은 나비가 딴생각을 품은 톱니바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군.”
해골이 처참한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원의 심정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해골과 달리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저렇게 될 일이었네.”
“그렇기는 하다만….”
해골은 원의 말에 수긍했다.
수긍하면서도 인정할 수는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도 그러고 싶은 걸 참기 위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면서 제주시청을 바라봤다.
제주시청엔 워프 게이트와 발사장치가 사이좋게 서 있었다.
“그래도 수확이 있으니 된 것 아니겠나.”
“그도 그렇군. 천공을 사로잡은 건 인정해줄 만한 일이지.”
“폭식을 붙잡기 위한 마법을 쓰게 된 것은 아쉽네만….”
원은 입을 다물었다.
아까처럼 충격을 받아 말을 이을 수가 없는 듯했다.
해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원이 바라보는 것을 바라봤다.
그곳엔,
“……!”
웬 오른팔이 팔뚝부터 허공에 떠 있었다.
꽈악!
손이 허공을 붙잡고는 사선으로 움직였다.
콰득, 콰드드득!
벽이 허물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면서 공간이 찢어졌다.
해골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천공(天空)….”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호칭의 주인.
이태천이 대미궁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왼손에 자기 팔만한 뿔을 쥐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해골은 부하인 소가 패배했음을 알아차렸다.
당연히 대미궁 속에 소와 함께 있던 거미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해골이 머릿속의 의문을 뇌까렸다.
“어떻게… 래버린스에서 빠져나온 것이지…?”
의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이태천이 폭식만큼 강할지도 모른다.
해골 자신도 쉬이 믿을 수 없는 답이었지만,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눈앞의 결과가 그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
또다시 원탁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
태천이 걸어 나오자마자 찢어졌던 공간이 수복됐다.
그는 그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발사장치로 걸어갔다.
그러는 동안,
[그대여, 문을 열어줘요.] [내가 당신을 기다리고-]스마트폰이 울렸다.
태천이 바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동시 통화 초대]라고 쓰여 있었다.
동시 통화.
분명 전투가 끝난 동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분명했다.
태천은 화면을 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 아, 드디어 받았다! 이태천! 너 괜찮아?
– 무슨 질문이 그러냐?
– 그래, 희주야. 태천이라면 당연히 괜찮지.
– 입 닥쳐! 서인철, 이현욱! 너희한테 물어본 거 아니거든?
– 너희 다 닥쳐! 태천이 목소리가 안 들리잖아!
전화를 받자마자 여러 목소리가 혼잡하게 들려왔다.
태천은 피식 웃으며 가장 먼저 물었던 최희주의 질문에 대답했다.
“난 괜찮아. 방금 전투 끝났어.”
– 끝났다…는 건, 너 혼자 그놈들을 해치웠다는 거지?
“응.”
– 미친…. 너 진짜 장난 아니다. 이 괴물 같은 놈들을 어떻게 혼자 상대한 거야?
– 그러게. 희주는 나 없었으면 돌이 돼버렸을 건데.
– 조! 조용히 해, 김보민!
– 뭘 창피하고 그러니? 다들 위험했었는데.
– 그래, 보민이 말이 맞아. 그놈들을 혼자서 상대한 태천이랑 재임이가 정상이 아닌 거야.
“잠깐, 재임이?”
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재임이 혼자서 크라우드를 상대했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다.
원래 계획으로는 도희가 혼자 크라우드를 상대했을 터였다.
“재임아, 은섭이 말이 맞아?”
– 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쩌다 보니, 라니…. 도희는? 그러고 보니 통화 목록에 도희가 없네?”
태천이 화면을 빠르게 훑었다.
목록에는 백 씨 남매와 이영지를 제외한 모든 간부가 참가해 있었다.
한재임이 질문했다.
– 하늘 안 보이냐?
“하늘? 보이는… 어라? 빛의 성역?”
– 백도희가 그걸 지금 제주도 전체에 전개하고 있다.
“뭐? 제주도 전체에?”
태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획이 갑작스럽게 바뀐 사실도 이해할 수 없었고, 도희가 제주도에 빛의 성역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도희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혼자서 제주도를 덮을 만큼은 아니었다.
무기가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건가?
그럼 탐지 마법은 누가 쓰고 있는 거지?
“…….”
태천은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다.
생각해봐야 헛수고였다.
그의 머리로는 답이 나올 리도 없었다.
빛의 성역을 제주도 전체에 쓰고 있다.
그에겐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계획이 또 수정됐나 보네.”
– 그런 셈이다만, 계획대로 된 것도 있다.
– 내가 말할 차례 같네.
“건영 형?”
– 우리가 ‘나비 씨’를 설득했어.
“오…, 오? 씨?”
– 나비 씨. 인사해요. 우리 마스터, 태천이에요.
– …….
박건영의 소개에도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5초 정도 침묵이 흘렀을까?
박건영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 부끄러운가 봐.
“그게 문제 맞아?”
– 응?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 천공.
태천이 목을 긁적거릴 때, 스피커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건영이 소개한 나비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가 예상한 대로 역시 부끄러움을 느끼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계산적인, 본인의 지금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 그쪽한테 질문이 있어. 해도 될까?
– 될 리가 없-
“해.”
태천은 한재임의 말을 일축했다.
그것이 탐탁지 않았지만, 한재임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상황에서 나비가 태천에게 물었다.
– …혹시 소가 래버린스를 썼어?
“썼어.”
– 썼다고? 너, 당신한테…?
“그렇대도?”
– …….
“왜 그래?”
“래버린스…는, 폭식을 붙잡기 위해 준비한 미궁 마법의 궁극(窮極)이야….
나비는 갑자기 설명을 덧붙였다.
그것은 태천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궁금한 듯한 얼굴을 하고 쳐다보는 박건영과 수아에게 한 것이었다.
짧게 설명을 덧붙인 후 나비는 또 질문했다.
– 거기에서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폭식조차 쉬이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고 그분들께서 장담했는데.
“글쎄?”
태천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가르쳐줄 생각이 없어서였다.
나비가 크라우드를 배신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와 동료가 된 것은 아니었다.
언제든 다시 배신할 수 있는 상대에게 자신의 능력을 떠들어댈 리가 없었다.
– …좋아. 이 일에 관련해선 더 묻지 않겠어. 그것만으로도 명운(命運)을 걸기엔 충분할 것 같고.
“응?”
– 뭐든 물어보란 소리야. 내가 아는 거라면 다 대답할 테니.
“오. 그럼-”
– 잘됐군. 내가 질문하지.
한재임이 끼어들었다.
이번엔 태천이 입을 다물었다.
그가 묻는 것보다 한재임이 묻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서다.
– 당장 묻고 싶은 게 있다.
– 질문해.
– 이 발사장치는 대체 뭘 발사하는 거냐?
– …….
– 이봐. 뭐든 물어보라는 건 그쪽이었어.
– …나도 알아.
– 그런데 첫 질문부터 막히면 어떡해?
– 흥. 막힌 게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고민한 거거든? 그 발사장치는….
태천은 나비의 말을 들으면서 발사장치를 바라봤다.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발사할 것처럼 생긴 장치.
그는 그것을 예전에 이미 본 적이 있었다.
도운이 납치당한 유재이를 구하면서 가져왔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까지도 무엇을 발사하기 위한 장치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었다.
– 크라우드의 목적 중 하나를 이뤄내는 물건이야.
– 목적?
“세계 전복(顚覆)….”
– 과연…. 천공 당신은 뭘 좀 아나 보네.
“대체 뭘 발사하는 거야?”
– 그분의 힘.
“그분이라면….”
– 그래. 우리의 주인이신, 마족 님의 힘이야.
– 설마….
한재임이 침음을 흘렸다.
크라우드의 목적이 ‘세계 전복’이라는 것.
그 목적을 이루고자 ‘마족의 힘’을 발사할 생각이라는 것.
두 가지 정보로 새로운 정보를 끌어냈다.
– 사람들을 네놈들처럼 바꾸려고 한 거냐?
– 정확히 우리처럼은 아니야. 그분들의 명령을 잘 따르는 괴물 같은 거로 바꾸려고 한 거지.
– 이런 미친 새끼들이…!
– 너희가 이겨서 참 다행이지? 졌다면, 오늘 밤 그게 발사됐을 거고 이 섬에 인간은 단 한 명도 살지 않게 됐을 거야. 너흴 포함해서.
– …….
침묵만이 흘렀다.
태천은 발사장치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지금 그것을 부숴야겠다고 생각해서다.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나비가 말했다.
– 부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
“뭐?”
– 그걸 부수면 안에 담긴 마족 님의 힘이 어디로 갈 것 같아?
“아….”
태천은 다급하게 손을 거뒀다.
발사장치 안에 담긴 힘이 어디로 갈지는 뻔했다.
바로 앞에 있는 태천을 향할 것이고, 인근으로도 퍼져 나갈 것이다.
– 위, 위! 위험했다…!
박은섭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도 태천처럼 발사장치를 부수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나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알겠어? 이제 너희가 할 일은 그걸 지키는 거야.
“지킨다? 무엇으로부터?”
– 무엇으로부터, 라니…. 우리가 폭식과 동맹 맺은 거 알잖아?
“그건 아는데…. 이걸 그놈한테서 지키라는 게 이해가 안 가는데. 놈은 지금 강원도에 있잖아?”
– 뭐?
“어?”
– 강원도에 있는 건 폭식이 아니야. 그 괴물 새끼의 딸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태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것이 폭식이 아니다.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였다.
그리고 나비도 그와 마찬가지로 험상궂은 얼굴을 했다.
– 아니지? 세계수 관리인이 제주도에 없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닐 거야?
“…….”
– 폭식이 나타나길 대기하고 있던 게 아니라고? 강원도에 가 있어서 여기에 없는 거였다고?
“그런, 거였는데…?”
– 이런….
나비는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 분노를 참지 않고 입 밖으로 토해냈다.
– 씨발…!
그와 동시에 제주도가 격렬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 울림은 마치 화산이 다시 활동을 시작한 듯했다.
– 폭식이… 움직인다…!
***
톡톡, 톡톡톡….
화면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못마땅한 듯 메스트가 눈을 찌푸렸다.
쳐다보자 메스트가 말했다.
“여유롭군요.”
“그렇지, 뭐.”
“동료들이 걱정도 안 됩니까?”
“어.”
“안 된다고요?”
“그렇다니까.”
“…….”
메스트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화면 두드리는 소리만 5초 동안 울렸을 때,
“신뢰…하는 겁니까?”
메스트가 다시 질문했다.
얼씨구.
내가 그놈들한테 뭘 해?
신뢰?
정말 생경하기 그지없는 단어인걸.
“동료들이 놈들에게 질 리 없다. 그렇게 믿으니까 여유로울 수 있는 거 아닌가요?”
“…….”
어처구니가 없군.
여기 한재임이나 최희주가 있었다면 그녀를 비웃었을 거다.
내가 놈들을 신뢰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빤히 바라보는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착각한 것 같다.
“내가 여유롭게 화면을 두드리고 있던 건.”
“……?”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이야.”
“뭘 기다린다는 거죠? 설마 바깥에 있는 동료들이 이 봉인을 풀어줄 거라고 믿는 겁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크게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난 그놈들 안 믿는다고.”
“네…?”
톡톡 톡톡톡.
화면을 두드렸다.
한재임, 최희주, 서인철….
그놈들은 나뭇잎 한 장 만큼도 믿지 않지만.
[세계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치켜듭니다.]우리 새싹이는 전적으로 믿는다.
[어린나무가 관찰한 결과를 전합니다.] [이 봉인에서 탈출할 방법을 두 가지나 찾았다고 설명합니다.] [우선 첫 번째 방법으로는….] […….] […….]“……?”
새싹아?
갑자기 말을 멈춘 새싹이를 불렀다.
새싹이는 줄임표를 보낸 이후 아무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대신 메스트가 감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역시 A+급 헌터…. 그냥 게임만 하고 계셨던 건 아니군요? 당신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그 순간,
[첫 번째 방법은.]새싹이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시지와 함께 귓가에 메스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처연했다.
“그렇습니다. 이 봉인을 푸는 유일한 방법은….”
[봉인 마법을 쓴 사람의]“저의 이곳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심장을 터뜨리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그리 말하며 메스트는 제 가슴 한가운데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