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21
제322화
푹…!
아르카를 땅에 박아 넣는다.
이어 방금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읽었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관리인에게 성역으로 들어가길 요구합니다.] [엘프들이 관리인을 찾는다고 전합니다.]엘프들이 나를?
그렇다면 혹시…?
[어린나무는 관리인이 예상이 맞다고 전합니다.] [엘프들이 엘릭서를 완성했다고 설명합니다.]오오, 드디어!
그렇다면 바로 가야지.
고개를 돌려 메스트를 바라본다.
그녀는 가을 날씨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삽질하고 있었다.
좋아, 좋아.
“메스트.”
“…혹시, 방금 절 불렀나요?”
“응. 불렀어.”
“무슨 일이세요?”
“나 잠시 다녀올 데가 생겼거든? 좀 다녀올게.”
“네. 다녀오세-”
“잠깐!”
흐레이스가 끼어들었다.
내가 아르카를 박아 넣은 것처럼 삽을 땅바닥에 박아 넣는다.
“지금 어디 가는데요?”
“뭐? 내가 그걸 너한테 일일이 설명해야 해?”
“걱정돼서 그러죠!”
“걱정? 네가? 나를?”
얘가 하기 싫은 삽질을 하더니 드디어 미쳤나?
흐레이스는 눈을 찌푸렸다.
“누가 도운 님을 걱정한대요?”
“그럼?”
“도운 님이 하려는 짓이 걱정된다고요!”
“내가 하려는 짓…?”
“와, 저 뻔뻔한 것 좀 봐. S급 헌터과 거리낌 없이 싸우려던 사람이!”
“……!”
메스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어 흐레이스의 말이 사실이냐는 듯 날 쳐다본다.
음….
일단, 싸우려고 했던 건 사실이긴 하다.
알레딩 밀러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고, 나도 아르카를 어깨에 둘러멨었으니까.
하지만….
“안 싸웠으니 됐잖아.”
나와 밀러는 싸우지 않았다.
밀러가 한동안 지팡이를 들어 올린 채 나를 바라보았을 뿐.
시간으로 따지면 10초 정도 됐던가?
“밀러가 그냥 돌아갔으니 망정이지…. 거기서 둘이 싸웠으면 얼마나 큰 문제가 생겼을 줄 알아요?”
“에이, 뭘 또 문제가 생긴다고 그래?”
“생겨요.”
“어라?”
메스트가 흐레이스의 말에 동의할 줄이야.
진짜 싸웠으면 문제가 생겼나?
그녀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A+급 헌터와 S급 헌터의 싸움이잖아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죠. 누가 이기든지 간에요.”
그녀는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하다.
그날 밀러와 싸웠다면 누가 이겼을까?
싸움이 그려지긴 했으나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상상의 결과가 자꾸 변했기 때문이다.
리롄제 때와는 달리.
“이기든 지든 국가 차원의 외교 문제부터 시작해 온갖 문제가 벌어졌을 거예요.”
“그런가?”
“그위친 님을 생각해 보세요. 그분은 S급 헌터 세 분과 동시에 싸워 승리하셨지만, 그 결과 자유를 제한받게 되셨죠.”
“그걸 제한받는다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흐레이스가 심드렁하게 덧붙였다.
그 말대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의 자유를 누가 감히 제한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막아설 사람이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강한데.
그위친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다.
미국으로선 그가 드루이드라는 사실이 천만다행일 것이다.
인간들과 교류하는 것보다 숲에서 동물과 지내는 걸 더 좋아하니까.
“밀러 님이 그냥 돌아갔다면, 그런 생각을 다 하고 돌아간 걸 거예요.”
“그렇군….”
흐레이스가 하고자 하는 말뜻은 알겠다.
워낙 조심하지 않는 내 성질이 걱정스러운 거겠지.
다른 데 가서 또 비슷한 짓을 할까 봐.
물론,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지금부터 가려던 곳은 성역이었으니까.
엘프들과 싸울 것도 아니고….
“별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믿을게요.”
“씁. 난 못 믿겠는데….”
“참나…. 너나 잘해, 흐레이스.”
“제가 뭘요?”
“뭘요는 무슨. 너 돌아왔을 때 또 메스트 혼자 일하고 있으면 이곳 전부 너 혼자 파묻는 거야.”
“…….”
“대답해야지?”
“…알았어요, 알았어. 열심히 삽질하고 있겠습니다.”
그녀는 대충 대답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분명 알겠다고 말하는데 어쩜 이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할까.
도희가 날 바라볼 때 이런 기분이려나?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관리인이 동생의 마음을 이해한 듯해 흡족하다고 전합니다.]“열심히 삽질하고 알테라-쇼넴 쓰고 있을 테니까, 돈 좀 줘요.”
“갑자기 웬 돈?”
“밥은 먹으면서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백운천에서 먹고 왔잖아? 도시락도 싸 왔고.”
“정정할게요. 맛있는 걸 먹으면서 하고 싶어요.”
“맛있는…?”
메스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흐레이스를 바라봤다.
“흐레이스. 우리 매일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있잖아요? 여기에서 더 맛있는 걸 먹겠다는 건 사치예요.”
“…….”
흐레이스가 입을 떡 벌렸다.
나도 이번만큼은 그녀와 반응이 비슷했다.
백운천은 급식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다만, 그 돈은 먹는 양이 타인의 몇 배나 되는 녀석이 있어 맛보다 양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맛있는 음식’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할 수는 없었다.
“…들었어요? 그 급식이 맛있는 음식이라잖아요.”
“그래. 문제가 좀 있긴 하네.”
“저 녀석한테 진짜 맛있는 걸 먹여주고 올게요.”
“좋아. 인정.”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우리 새싹이를 위해서 고생하는데, 맛있는 것쯤이야 사줄 수 있지.
특히 메스트는 흐레이스처럼 타의(他意)도 아닌데.
“근데 뭐 사 먹이려고?”
“글쎄요? 치킨은 너무 식상하고…. 아, 그래. 미노타우로스 어때요? 한국에서는 그걸 숯불에 구워 먹는다면서요?”
“나쁘지 않은-”
“윽….”
갑자기 메스트가 신음을 흘렸다.
흐레이스에게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네던 동작 그대로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로막았다.
속이 안 좋은 듯한 표정이었다.
“미노타우로스를 구워 먹는다고요? 그 맛없는걸?”
“뭐야, 먹어본 적 있어?”
“네. 폭식이 줘서 팔 고기를 먹어봤어요.”
“아이고….”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에리크 이 쌍놈…
딸한테 팔 부위를 먹이다니 제정신인가.
“멍청이. 미노타우로스는 하체만 먹는 거라구.”
“그, 그런 거예요?”
“그래. 게이트 마나로 오염이 심해서 상체는 취급 안 해.”
“하지만 폭식은 모든 부위를 먹었었는데요?”
“폭식이 뭔들 안 처먹었겠어?”
“아, 아….”
“어휴….”
흐레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메스트가 민망할 것 같아 참았다.
대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건넸다.
“종류별로 다 먹여.”
“맡겨줘요. 쟤한테 극락을 보여 주고 올게요.”
그리 말하며 흐레이스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웬걸.
그녀는 열심히 삽질하겠다던 아까와는 달리 엄청나게 믿음직스러웠다.
일이나 좀 그렇게 잘할 것이지….
시끄럽네요.
***
“어서 오세요!”
성역으로 들어가니 엘프들이 반겨주었다.
전원이 모여 있는 걸 보니,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다.
할 일들 하고 있지 뭘….
부담스러워서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우후후….”
레지나가 웃음을 흘렸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파트리아를 비롯한 엘프들 모두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긴.
엘릭서를 완성했으니 자랑스러워할 만하지.
“짜잔! 엘릭서 38환(丸)이에요!”
그녀는 두 팔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옆의 엘프가 나무로 된 쟁반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쟁반엔 나뭇잎이 둥글게 말려 있었다.
메스트에게 먹일 때와 같은 형태인 걸 보니, 이번 것도 젤리 형태인 모양이다.
엘프들이 만드는 엘릭서는 원래 젤리 형태인 건가?
“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아니에요. 저흰 또다시 엘릭서를 만들 수 있어서 기뻤어요! 그렇죠?”
“네, 그야말로 홍복(洪福)이었습니다.”
레지나와 파트리아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다른 엘프들도 둘과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엘릭서를 만든 일에 보람을 느껴 고생스러움은 생각도 못 한 얼굴들이다.
이 엘프들, 홍수정 과(科)일지도 모르겠는걸.
실례인 생각을 하면서 엘릭서를 챙겼다.
엘프들도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28환만 챙겼는데, 그걸 보고는 레지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다 안 가져가세요?”
“여러분도 쓰셔야죠.”
“네에? 저흰 괜찮아요! 성역에서 잘 나가지도 않는걸요.”
“안 나가긴. 알테라-쇼넴에 쓸 잡동사니 찾으러 매일 나가잖아요.”
“그, 그건…-”
“…감사히 받겠습니다.”
파트리아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역시 나이 지긋한 장로.
챙길 수 있을 땐 챙기는 게 좋다는 걸 아는군.
“아, 그러고 보니.”
“……?”
“관리인 님을 드리기 위해 준비한 게 또 있었는데 깜빡했군요.”
“…저를 위해서요?”
저 말은… 거짓말이 분명하다.
날 주기 위해 준비한 게 아니라 그들이 마시고자 준비한 것이었겠지.
깜빡했다면서 내어주는 건 내가 엘릭서를 넘겼기 때문일 거고.
다행이구만.
레지나처럼 다 퍼주지 않고 챙길 줄 알아서.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서 파트리아는 두 손에서 포션을 꺼냈다.
다른 사람이 인벤토리 마법을 쓰니 새삼 신기하게 보이는걸?
곧 나와 그의 사이엔 100병 정도 되는 포션이 떠올랐다.
병 속엔 칠흑처럼 새카만 색깔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거 설마….
“혹시, 또 도전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맛은요?”
“후후, 저번과는 분명 다를 겁니다.”
파트리아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오….
입맛을 돋우는 얼굴인걸.
“마셔 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되지요.”
파트리아는 허공에 뜬 것 중 한 병을 내 쪽으로 밀어냈다.
그걸 집어 들고 곧바로 뚜껑을 열었다.
칙…!
소리 좋고.
흠, 이번엔 무슨 맛이 나려나?
저번처럼 맥X 맛이 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리 생각하며 포션을 입에 가까이 갖다 댔다.
그런데….
“…….”
“…….”
“…….”
엘프들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들이 만든 것을 마시려고 하니까 이해는 한다만….
이건 너무 부담스러운걸.
“…아. 저희가 너무 쳐다봤지요?”
“하하, 좀 부담스럽긴 하네요.”
“죄송합니다. 관리인님께서 맛있게 드셔주실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실례를 범했습니다. 너무 쳐다보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파트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그를 따라 다른 엘프들도 슬쩍 고개를 돌렸는데….
“…….”
문제는 고개만 돌렸다는 점이다.
파트리아를 포함한 엘프들의 눈동자는 여전히 나를 향했다.
그 모습이 더 무섭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네.
공포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고 원….
엘프들은 신경 쓰고 포션이나 마셔 봐야겠다.
내가 마실 때까지 그들은 시선을 거두지도 않을 것 같고.
“꼴깍….”
맛을 음미하기 위해 천천히 한 모금을 마신다.
톡!
쏘는 탄산의 맛을 가장한 폭발 마법이 입에서 미약하게 터졌다.
과연….
자신만만한 얼굴을 해 보일 만한걸?
이번에 만든 포션은 예전처럼 이상한 보리 맛이 나지 않아 훨씬 맛있었다.
단맛도 강하게 풍겨 확실히 콜라 맛이 났다.
“…어, 어떻습니까?”
파트리아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무 쳐다보지 않겠다던 말은 다 잊어버린 걸까?
엘프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내 쪽으로 고개를 향했다.
내가 뭐라고 할지 엄청나게 궁금한 모양이다.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실례겠군.
“맛있는데요? 여러분이 치킨과 함께 마셨던 콜라의 맛을 완벽하게 구현해냈어요.”
“그…! 정말입니까, 관리인 님?”
“네. 정말입니다.”
“오, 오오…!”
파트리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른 엘프들도 두 팔을 높이 쳐들거나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 기뻐했다.
흐음….
착각이겠지?
엘프들이 엘릭서를 만들었을 때보다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