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22
제323화
푹…!
성역을 나오자 삽질하는 소리가 나를 반겼다.
고기 사 먹으러 가라니까 왜 여태껏 삽질하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며 쳐다보자, 그곳엔 메스트와 흐레이스가 아니라 다른 녀석들이 있었다.
오늘 제주도에서 올라온 김재식과 지상욱이다.
김재식은 삽질하고 있었고, 지상욱은 옆에서 흐레이스처럼 번데기에 기대어 거의 드러눕다시피 앉아 있었다.
“앗, 형…!”
“형님!”
둘은 날 발견하곤 내 쪽으로 달려왔다.
처음엔 걸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먼저 도착하려는 듯 뛰었다.
뭣들 하는 건지, 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내 앞에 둘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너희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형수님한테 들었습니다.”
“뭐? 뭔수님?”
“재이 누나가 가르쳐줬어요. 형 만나려면 은마 매립지에서 푸른 꽃이 있는 곳을 찾으라고.”
“…굳이 왜 왔는데?”
“이것 때문에요!”
재식이 마법 주머니에서 창을 꺼냈다.
벌 인간의 팔에 달렸던 침으로 만든 창이었다.
이것 때문에 찾아왔다는 건….
“마음에 안 드냐?”
“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너무 과분해서 그래요!”
“과분하다고?”
“저, 전 이런 거 못 써요!”
그러면서 재식은 창을 내게 내밀었다.
과분하다니….
그렇게 좋게 만들어졌나?
“뭐 얼마나 좋게 만들어졌길래 이래? 재이한테 설명서 받았어?”
“아, 넵. 받았어요.”
“줘 봐.”
“여기요!”
재식이 주머니에서 설명서를 꺼내 건넸다.
창 대신 그것을 받아들고 바로 읽는다.
[품질보증서] [본 보증서는 제품이 J.Y. 정품임을 보증] [제품명 – ‘베르테브레 아스타vertebrae hasta’, 줄여서 베아] [제품 등급 – A+등급]오, 등급이 A+야?
벌 인간이 지녔던 것치곤 제법 훌륭한 무기가 만들어졌는걸.
하긴, 재료 자체가 좋긴 했지.
나무껍질을 뚫을 정도였었으니….
과분하다는 말은 벌 인간에게 더 어울릴 텐데.
“걸려 있는 스킬이 대단한데?”
“그러니까요! 이건 저한테 너무-”
“되돌아오게 할 수 있다, 라…. 탐나는 스킬이구만.”
“…네?”
“응?”
“……?”
재식이 눈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의 지상욱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기이한 것을 본 사람 같은 얼굴을 지었다.
그 얼굴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게 껄끄럽구만.
왜들 이래?
“…형. 지금, 대단하다고 하신 게 코풀라 스킬 때문이에요…?”
“그런데? 왜?”
“그, 인테르포쇼가 더 눈에 띄지 않나요…?”
“별로…?”
“…….”
직접 당해보기까지 한 스킬이다.
이제 와서 놀라고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었다.
그나저나….
벌 인간은 되돌아오게 할 수 있는 무기를 지니고선 무식하게 돌진을 해댔었던 건가?
실드를 뚫을 수 있으니 위력을 높여 한 방에 죽일 생각이었나….
바보 같은 판단을 했구만.
마나 과다증 때문에 몸이 펑펑 터져나가고 있었으니, 거리를 벌려 싸웠다면 시간이 좀 걸렸을지도.
“적당히 쓸만하네.”
설명서를 돌려주었다.
재식은 설명서를 건네받고는 눈을 끔뻑끔뻑 떴다.
“왜?”
“적당히 쓸만하다뇨…. 엄청나게 좋은 무기죠! 팔면 백억은 우습게 받을 텐데요!”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팔면 몇십억은 거뜬히 받을 수 있을 거다.
근데 백억 넘게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100억대 무기의 성능이 어떤지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재식이 베르테브레 아스타를 내게로 내밀었다.
“…아, 아무튼! 전 이거 받을 수 없어요! 제게 너무 과분하다고요!”
“받을 수 없다고?”
“네!”
“그럼 큰일인데. 나한텐 이거 쓸모없는 물건인데.”
“쓸모없는 물건…이라고요?”
“응. 너 내가 뭐 쓰고 있는지 잊었냐?”
“아….”
재식은 짧게 탄식을 흘렸다.
아마 머릿속에 아르카가 떠올랐을 거다.
베아는 분명 좋은 무기였지만, 아르카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실드를 뚫는다는 게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아르카는 실드를 넘어 결계를 통째로 베어내는데.
설령 그것이 몇 개월간 공들여 만든 결계라고 해도.
“그, 그렇네요…. 형한텐 필요가 없겠어요….”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아무리 좋은 무기라고 해도, 쓸모는 필요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아르카를 사용하는 내게 베아는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창은 잘 다루지 못하기도 하고.
“전 형님께서 주시는 거라면 뭐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요?”
나와 재식은 상욱을 무시했다.
저놈은 갑자기 뭘 감사히 받겠대.
“나한테 빌려 쓴다고 생각해.”
“빌려…?”
“대여료 내란 소리야.”
과분하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은 있겠지.
그럼 정당하게 값을 지급하고 사용한다고 생각하게끔 하면 될 일이다.
꿀꺽….
재식은 침을 삼켰다.
“대여료…라면, 얼마를 지급하면 될까요?”
“설마 내가 돈으로 달라고 하겠냐?”
“그럼요?”
“이건 내 예상인데, 아마 넌 곧 파티를 짜게 될 거야.”
“파티요?”
“백운천 소속의 다른 헌터들이랑.”
아마 옆에 있는 지상욱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다 같이 A급 테스트를 치른다고 했으니, 상철이랑 재욱이도 포함될 것이고.
또 밸런스를 위해서 마법사나 힐러가 추가될 거다.
“하, 하지만 저는….”
재식은 말끝을 흐렸다.
아마 나와 파티를 짜고 싶어 백운천에 가입했다고 말하고 싶었을 거다.
그게 불가능한 일이는 걸 본인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 때문에 끝까지 말하지 못했겠지만.
파티란 자고로 서로 도움이 돼야 한다.
그런데 나와 재식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큰 실력 차이가 있어 도움은커녕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만 될 뿐이다.
아마 지금 백운천에서 나와 제대로 파티를 맺을 수 있는 건 태천이와 무기뿐일 터.
문제는 태천이는 이미 자신의 파티가 있다는 거고, 무기는 그 능력의 특성 때문에 파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네가 내 파티 구성원이 될 수 있을 만큼 강해져.”
“……!”
“그게, 그 창을 사용하는 대여료야.”
“…….”
“싫어?”
“…아뇨.”
꽈악….
재식이 창을 꼭 쥐었다.
마치 그 창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듯이.
눈빛 좋고.
“지급할게요. 반드시….”
“…좋아. 기대할게.”
그럼 이제….
고개를 돌려 상욱을 본다.
녀석은 재식을 부러운 듯 쳐다봤다.
“…넌 왜 왔어?”
질문을 던지지만, 왠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까 눈치 없이 끼어들었던 것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멍청한 짓을 해대려고 왔겠지.
“…저도! 저도 주십시오, 선물!”
“후….”
내 그럴 줄 알았다, 너.
어쩜 이렇게 한치도 예상을 벗어나질 않냐.
“왜 얘만 선물을 주십니까? 형님의 오른팔은 바로 저 지상욱이지 않습니까!”
“얘가 미쳤나.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네? 너 내가 살려준 건 벌써 다 잊었냐?”
“앗! 아니,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었습니다…!”
“네가 누구 덕분에 만티코어로 변신할 수 있게 됐더라?”
“형, 형님 덕분입니다….”
녀석은 대답하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사실, 선물을 달라고 말한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재식이처럼 내게 기대를 받고 싶은 것이다.
어린애도 아니고, 원.
“…너도 마찬가지야, 지상욱.”
“네?”
“하고 있다고.”
“……!”
상욱은 눈을 크게 떴다.
또 감동이라도 받은 듯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저러다 눈물이라도 흘릴까 무섭네.
[세계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부르르 떱니다.] [어린나무는 관리인을 생각하는 동생들이 있어 기쁘다고 전합니다.] [그에 따라 관리인에게 아침 이슬을 보냅니다.] [이건 환희(歡喜)의 눈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아침 이슬을 받으시겠습니까? (YES / NO)]…환희의 눈물 같은 소리 하네.
안 받아, 이 녀석아.
하여간 요즘 들어 형 놀릴 생각만 한다니까.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아침 이슬을 보냅니다.] [거절은 거절이라고 전합니다.]어, 얼씨구?
***
백운천으로 돌아가 회의를 소집했다.
엘프에게 받은 엘릭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다.
회의는 훈련실에서 열렸는데, 태천이가 내 부탁으로 뱀파이어 로드가 있는 번데기를 지켜보느라 움직일 수 없어서였다.
회의에는 도희와 한재임, 그리고 홍수정이 참석했다.
“…….”
홍수정은 훈련실에 들어오자마자 흰 번데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웬 번데기가 있는 건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한재임은 아는 듯한 눈치인 걸 보니 태천에게 설명을 들은 것 같다.
물론,
“짜잔.”
인벤토리에서 엘릭서를 꺼내자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홍수정은 고양이처럼 네 발로 쭈그리고는 바닥에 내려놓은 엘릭서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평소처럼 완전히 처박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성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대화는 이어 나갈 수 있겠는걸.
팔짱을 낀 태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엘릭서라고?”
“정확히는 나뭇잎으로 감싼 내용물이.”
“아. 난 또 이 돌돌 말린 나뭇잎이 엘릭서라는 줄 알았네.”
“그렇겠냐.”
“흠….”
태천이 손을 뻗어 나뭇잎을 집어 들었다.
녀석의 커다란 손에 들린 엘릭서는 아주 간단히 찌부러질 것 같았다.
홍수정도 나처럼 생각한 걸까?
“조심! 제발 조심히 다뤄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면서 그녀의 시선은 태천이가 집어 든 엘릭서를 따라갔다.
태천이의 커다란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나뭇잎을 펼쳤다.
그러자 세계수의 꽃을 응축한 듯 동그란 엘릭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 우와아….”
홍수정이 감탄을 흘렸다.
도희와 한재임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눈빛을 빛내며 엘릭서를 쳐다봤다.
언제나 이성적인 두 사람도 엘릭서는 과연 신기한 모양이다.
“…이걸, 어떡해야 할지 고민이로군.”
“그러게요. 최희석과 배수현이 구매하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얼마에 팔아야 적당할지 감도 안 잡히는데.”
“공방주님. 바티칸에서는 엘릭서를 얼마에 팔죠?”
“바티칸에서는 엘릭서를 판매하지 않아요.”
홍수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설명을 덧붙였다.
“자신들이 신의 눈물이라고 부르는 걸 어떻게 돈 받고 팔겠어요?”
“그럼요?”
“‘헌금’을 받은 곳에 ‘선물’하는 거죠.”
“아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군.
도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헌금이 얼마나 될지는 알려지지 않았겠네요.”
“그렇죠. 대신.”
“……?”
“암시장에선 돈으로 거래되고 있어요. 조(兆) 단위로.”
“조, 단위….”
도희와 홍수정은 엘릭서를 바라봤다.
저 귀한 것이 태천이의 손 위에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짓게 한 장본인은 무심하게 말했다.
“얼마인지는 됐고.”
“됐다니.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냐?”
“있지.”
“…뭔데?”
한재임은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일단 들어나 보자는 생각인 거다.
태천이는 입맛을 다셨다.
“이거 무슨 맛일까?”
“오. 마침 나도 궁금했는데.”
나도 똑같이 입맛을 다셨다.
꼴깍….
홍수정도 마찬가지인지 침까지 삼켜댔다.
그런 우리 세 사람을,
“……”
“…….”
이성적인 도희와 한재임은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도희는 마법을 써서 엘릭서를 챙겼다.
태천이의 손에 들려 있던 것까지 모조리.
“도희야.”
“안 돼요.”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어차피 내가 구해온 건데.”
“그 하나가 한 사람의 목숨이나 다름없는데요?”
“…….”
쩝.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지.